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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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지금껏 인생에서 '진짜'를 찾아 헤매었다. 진짜 아버지, 진짜 양갓집 규수, 진짜 부와 명예와 권력 ...... 하지만 진짜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는 가짜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진짜'를 찾아다닌 여정은 다만 자신이 얼마나 '가짜'인가를 증명하고 다닌 것에 불과했다. 그것이 아버지와 여인이 함께 나눈 밥상 위에 앙상한 생선뼈와 함께 비릿비릿하게 드러나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아버지가 아주 조금 불쌍했다.-144쪽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 귀찮고 재미없었다. 아무리 고상하고 우아한 것이라도 과다하게 심각해지면 유치하고 천박할 수 밖에 없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걸까? 애국이니 결사항전이니 하는 구호가 드높은 가운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블랙 코미디가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157쪽

현옥을 만난 후 내게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문득문득 심장이 바특하니 졸아붙는 듯한 통증 속에 나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는 것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인력거에 올라앉아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다가도, 밥을 먹거나 양치질을 하거나 친구들과 시시풍덩한 농지거리를 하다가도, 불편듯이. 그러면, 보였다. 암흑 속에서도 그 모습이 찬연히 보이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뇌엽에 간직된 시각적인 이미지를 끌어내 떠올리는 일이다. 그건 맹인이라 할지라도 '볼 수 있는' 독특한 영상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 비록 만날 수 없을지라도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볼 수 있다. 그것은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을 동반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눈을 감았을 때 더욱 선명해지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181쪽

어머니는 그 고양이상의 생김새를 특별히 좋아하던 여배우 시몬 시몽을 흉내 내어 검게 빛나는 옷을 입고 다리를 꼰 채 안락의자 안에 우울한 몸을 깊게 묻었다. '신여성'과 '모던껄' 들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모던 가정을 꿈꾸었던 한 무리는 '현모양처'란 이름의 박제가 된 채, 가정에서 개인을 제국에서 민족을 해방하자던 다른 한 무리는 애써 얻은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군국의 어머니'가 되자는 연설을 하고 다니며. -239쪽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신분 세탁을 해도 아버지는 백정 쇠날이의 아들 훕시로 혈혈단신 경성에 도착했던 열일곱 살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하긴 열일곱 살 때와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도 아니고) 달라진 채 관 두껑을 덮고 누울 수 있는 인간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302쪽

'왜 나야? 왜 내가 죽어야해?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없이, 남의 나라, 남의 전쟁에서?'
-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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