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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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으로 묶여 나온 <강남몽>을 먼저 만났다. 복사된 대학교 교재같이 생긴 책을 처음 보기도 했지만, 남보다 먼저 (이른바 '어얼리 어댑터' 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미 인터넷 연재가 된 소설이기는 하다) 읽는다는 것에 흥분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읽어냈다. 광복전 만주에서부터 1995년 6월 강남의 백화점 지하실까지, 한숨에 내리 달려가면서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가, 실은 소설이나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강남 싸모님 박선녀는 이름 마냥 하늘거리면서 시골 식당집에서 대그룹 회장님 부인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고, 김회장님은 광복과 동란, 쿠테타와 군정들을 살아내면서 돈과 힘의 냄새를 기막히게 좇았다. 양태는 깡으로 서울에서 삼대 주먹 중 하나가 되고, 심남수는 젊은 시절의 씁슬한 강남 땅장사의 업을 덮고 교수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정아양은 이 모든 것들이 욕심과 허영으로 무너져 내린 백화점 지하실에서 아름답게 '희망'으로 피어난다.  

작위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이 아쉽긴 하지만, 이 책은 1971년광주 대단지 사건을, 제주 4.3 사건을, 중간중간 나오는 현대사의 이름들은 한글자 차이로 실존 인물들을 떠오르게 한다. (조양은, 장영자, 이준, 등등)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숨찰 만큼 나를 다그쳤고, 내가 읽는 것이 소설인지 아니면 현대사 교과서나 신문 기사인지, 그도 아니면 김훈 선생의 글인지, 헷갈렸다. 중간 중간 생각하면서 숨을 고를 여유를 주지 않는 건조하고 무서운 문장이, 황석영 작가의 전작 "개밥바라기 별"과 달라서 당혹스럽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  

제목마냥, 이런 지저분한 우리들의 과거사들이 다 꿈이었다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삼풍 백화점 자리에 화려하게 서 있는 새 건물을, 그 근방에 장성마냥 늘어선 부촌 아파트들을 생각하면, 우리네는 아직도 그 꿈에서 못 깨어나고 계속 허우적 대는 게 아닌가 싶다. 정아양은 지금쯤 어디서 뭘할까. 그녀는 가족들과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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