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의 용의자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다들 너무 죽이고 싶어했던 남자, 비키 라이.
그는 파렴치한인데다, 배은망덕하고, 욕심이 넘치는 무법자에, 무자비한 오빠였다. 붙일 수 있는 모든 죄를 갖다 대도 모자랐고, 그가 가진 것은 너무 많았다.  그런 그가 죽었다. 그리고 용의자는 여섯 명이나 된다.  

용의자가 둘이라도 복잡한 사건일텐데 작가는 용의자를 여섯 명이나 늘어 놓고, 게다가 그중 둘은 바다 건너 먼 곳에서 불러다 놓고, 피부색, 문화, 국경을 초월한 범 인류적인 인도의 살인사건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책의 중반부에 이르기 까지 이 여섯명을 따로 따로 읽으면서 (그것도 아주 빠른 호흡으로) 따라 가다 보면 이들이 모여서 도대체 뭘 하게 될지 궁금해 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이런! 맨 앞에 써 있었거든? 나쁜 놈 비키 라이가 죽는다고!)  

범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는데 (저자 말에 따르면) 세 번의 반전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반전보다는 6명의 용의자와 그 주변의 600명 (슬럼가의 시위대들이랑 테러단들 까지 합하면 6천은 족히 넘으리라)이 벌이는 좌충우돌 언사들이 더 내 눈을 끌었다. 과한 설정인 듯 보이는 빙의현상, 도플갱어, 반미 테러, 좀도둑, 고위층의 권력과 비리들,뭣보다 사람에 대한 폭력과 폭력들. 이 모든 배경 사건과 전설을 버무리자면 위대한, 아주 위대한 작가가 필요하다.

얼핏 우리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소설의 말미, 노골적으로 계획된 트리플 반전은 흥분했던 나를 진정시켰다. 결국, 이 "비리 덩어리" 였던 비키는 인도가 아니라 세계 어디나 굴러 다니는 오물 덩어리라는 것. 신이나 운명에 호소하기 보다는 인류의 양식에 따라 처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인도의 고급 공무원인 저자가 그려내는 이 고발성 글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하고 비딱하게 보고 싶어졌다. 저자는 범인류적인 "정의"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끝내 정의는 얼굴을 가리고 씁쓸하게 웃는다. 

어쩔 수 없이 저자의 첫 소설 <Q & A>와 비교하게 됐다. 인도 슬럼가의 껄렁하지만 순수한 청년, 그가 만나는 사랑과 장애물들. 그리고 찾아오는 대박인생. 더 복잡한 사건들과 더 악랄한 사기꾼들. 사건은 너무 복잡하고 언어는 현란해서 중간에 길을 잃을 뻔 했다. 그런데, 재미있다. 그래서 끝까지 따라 갔다. 그래도 모르겠다. 도대체, 누가 비키 놈을 죽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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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수도의 부자들은 늘 하인이 필요하다. 요즘 좋은 하인 구하기가 단종된 대우 마티즈의 스페어 타이어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72) 

그날 밤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전쟁이 한둘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들이 제 몸을 폭죽처럼 날려버리고 있는데 난 아직도 그들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조차 몰랐다. 그게 실제인 만큼 더욱 더 끔찍했다. (362) 

우리의 위대한 서사시들은 악이 만연할 때 신이 내려와 질서를 회복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개소리에 불과하다. 하늘에서 누군가가 내려와 지상의 혼란을 정리해주는 축복을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싼 똥은 결국 우리가 치워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구두를 벗고 바지를 걷고 찜찜한 똥통으로 들어가야 한다.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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