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가의 찬모가 화자로 나오는 단편 "식탐정 허균"(현찬양)을 읽었다. 한양에서 소문난 미식가인 허균이 소고기 뇌물을 거절 못해 그 벌로 귀양길에 오른다. 귀양지 함열에서 서당을 열어 생활비를 충당하던 허균은 학동 중 한 아이, 그것도 홍길동같은 양반가 서자의 죽음을 수사하게 된다. 제목처럼 식탐정이기에 아이가 사망 직전 먹었던 음식을 중심으로 추리를 진행하는데 옆에서 관찰하는 화자 찬모의 입담(필담)이 구수하고 재치있다. 짧은 글이라 설명이나 소개를 더하면 진짜 읽는 재미/맛을 깎을 수 있으니 직접 읽어보시길 권한다. 참, 허균이 받았던 뇌물로 한 요리는 바로 '승기야기'라고 한다.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검색해보니 조선 초 태조 때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제목부터 기담. 



우리 교산 어르신은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하루 여섯 끼니를 드시기는 하지만 식솔들은 끔찍하게 챙기셔서 저처럼 어린애에게 수작을 거는 일도 없고요. 뭐 사실은 제가 어리기만 했지미인이 아니라 건드리지 않는 걸지도 모르지만요. 하지만 미인이라 한들 제 얼굴을 보기라도 하셨을까요? 제가 볼 때 우리 주인님은 미인보다 잘생긴 만두 한 접시를 더 아끼신답니다. 원하는것이 이토록 분명하니 웃전으로 모시기는 좋은 사람입니다. - P180

이게 다 공자님 때문이랍니다.
예, 무식한 제가 공자님을 인용하는 날도 있네요. 공자님 그자식, 아니, 죄송합니다. 그분께서는 음식이 반듯하지 않으면 드시지 않으셨대요. 그것을 우리 주인님께서 따라하시는 겁니다.
모든 음식은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여야 하고 빛깔과 향이 좋아야 한대요. 잘은 모르겠지만 정신 수양을 위해 먹는 것을 정갈히 하는 거라던데 아무래도 제 짧은 식견으로는 공자님보다는 공자님 마누라께서 더욱 정신 수양이 되었을 거라고생각합니다. 저도 우리 나리 덕에 정신 수양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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