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제주에서 열세 명의 소녀가 실종된다. 몇 명은 사망한 채 발견되고 나머지는 수년간 행방이 묘연하다. 심지어 그 사건을 수사하던 관리마저 실종되어 시신을 찾지 못했다. 그 수사관의 첫째 딸, 환(18세)이 목포에서 살다 5년 만에 고향 제주 행 배를 탄다. 남자의 복장을 한 환은 5년전 제주에 두고 떠난 여동생 매월(15세)에 대해 생각한다. 과연 매월이는 헤어졌다 만나는 언니인 자신을 어떻게 맞아줄 것인가.
이 책은 한국출신 캐나다 거주 중인 허주은 작가의 영어 원서의 번역서이다. YA청소년 소설 분위기와 (북미 독자층에겐) 이국적이며 판타지적인 요소를 많이 품고 있다. 화자인 환이 실종된 아버지를 추적하며 동시에 소녀들의 사망/실종 사건을 수사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활극도 제법 나오고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제주 여성의 경제 활동도 약간 언급된다. (남자들이 애들을 돌본다,고 나옴. 설마요) 큰딸 환이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아버지가 실제로는 다른 모습이었다는 사실, 신병으로 제주에 남아 무녀(심방)의 길을 걷게되는 매월, 양반 집안 규율(특히 결혼 출산 등 여성의 의무)을 강요하는 고모, 척박한 환경에서 소박하게 사는 제주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탐정 소설로는 긴장감이 덜하지만(공녀 제도가 소재라 권력형 인신매매 사건이다. 범인 추정이 어렵지 않았다) 소녀 탐정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인물들의 동선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동굴 앞에 있다 갑자기 툭 산방 앞에서 인물들이 인사를 하곤 한다. 제주의 유명 지형/지명들을 언급하지만 이야기와 겉도는 느낌도 들고 한국 출신 해외 작가라 그런지 한국 문화를 '소개'한다는 의욕만 두드러지는 곳이, 그러니까 한국적이긴 한데 뭔가 교포스러운 곳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
추석은 전국 각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재회하고 기념하는 명절 아니던가. (157)
소설의 배경은 1426년, 조선 세종 때라 (실효는 없었지만) 호패제 등을 통해 전국의 인구와 세수를 통제하던 시대이다. 인구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서 추석이라고 귀성하는 풍습이 나올 때가 아니다. 더해서 삼다도 제주의 무당집 마굿간에 말 네 마리가 있는데 이건 흔한 모습이라고 나온다;;; 정낭/정주목 묘사와 설명도 말들 만큼이나 자주 등장한다. 수사 하느라 서귀포까지 또 북쪽으로 다시 한라의 정상까지 종횡무진하는 환이와 매월이는 각자 말 한 마리씩 타고 달린다. 제주니까요. 하지만 국사시간에 배운 바로는 이렇게 쉽게 말을 가질/쓸 수 없었다. 또한 환이가 고모와 둘이서 하나의 가마를 타고 그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2인용 들가마라고?? 가마꾼이 여섯여덟 이상은 필요할 이 거대한 들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심방(무당)의 집에 양반집 처녀가 거처를 스스럼 없이 정하는 것이 이상하다. 이런 오픈 마인드이면서 촌장(아니 조선 초기에 아무리 제주라도 '촌장'이라는 직함? 호칭?을 쓰다니. 이거 완전히 시대착오 용어 같고) 어르신이랑 대면한다고 장옷을 입고 '거실'(또다른 현대 용어)에 앉는다. 최고봉은 세자빈 간택... 어디 ... 이러한 어색한 디테일, 한국에서 성장한 작가는 쓰지 않을 것들이 영어권 독자들에겐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출판사 소개에도 세계가 먼저 주목한 K-스토리라고 한다. 그러니 나라고 뭐 알겠어요? 600년 전 제주 이야기인데.
명에 보내는 '공녀'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 사라지는 소녀들, 발언권을 비롯한 많은 권리가 없는 여성의 삶에 이야기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억울한 어머니, 참지 않는 언니, 용기 내는 동생 등 여러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 자매의 탐정 활동을 돕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결국 어여쁜 딸과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비뚤어진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범죄에 대한 처벌도 나라에서 보낸 어사님이 해결해주시고(말 그대로 '어사님이 해결해 주실거야'라는 표현이 반복된다) 우리의 환이는 어느새 남자 옷 벗고 비단 치마 입고 뛰어 댕기다가 아버지 어머니 무덤에 찾아가서 곱게 인사를 드린다.
팩션 탐정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제주 방언과 여러 문장을 잘 살려 번역한 유혜인 역자의 노고에 감탄했다. 영문보다 훨씬 깊이와 멋이 더한 번역서는 또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