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하나의 ‘통계 단위‘로 보는 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지점에서 사람은 근본적으로 나뉘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결정의 순간에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다. - P13

내가 다른 세계를 알고 싶은 이유, 그리고 직업인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가능한 한 그 다른 세계를 보여 주고 싶은 이유는,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 없는 개인, 다시 말해 확장되지 않는 개인은 결국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약함은 여러 다른 이름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비겁함, 망상, 근본주의 같은 것들. - P23

‘연대‘는 타인을 이해한 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상관없이 그들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타인의 존재를, 그이의 고유한 세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내가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타인의 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탓해야 할 것은 타인이 지닌 낯선 특징이 아니라 그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편협함이어야 한다. - P38

어떤 경험들은 여전히 단어에 굶주려 있다. 그건 어떤 이들의 경험은 같은 특징을 지닌 이들끼리의 수평적 모임을 벗어나는 순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뜻이고, 그런 까닭에 외부인들의 편견에 따라 제멋대로 해석된다는 뜻이기도하다. - P44

누구나 여러 개의 삶을 산다. 어떤 삶들은 동시에 닥치고, 어떤 삶들은 시간을 두고 차례대로 찾아온다. 하지만 하나의 몸을 가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여러 개의 삶을 내 안에서 ‘납득이 되게‘ 하나로 구성하려 한다. 동시에 두 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 고민은 현재형이고, 지나고 보니 여러 개의 삶을 보내야 했던 사람에게는 과거형일 것이다. 그와 상관없이 ‘납득이 되게 하나로 구성하는 행위‘가 바로 이야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하려는 욕망은 하나의 몸을 가진 개인으로서 버릴 수 없는 욕망이다. - P172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남이고, 각자가 가장 확실하게 전할 수 있는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밖에 없다. 그 사실에 무감한, 혹은 ‘더 큰 이유‘를 들이대며 그 사실을 외면하는 이들의 연대는 환상일 뿐이며, 섣불리 ‘우리‘를 칭하면서 공통의 언어(라고 하지만 사실은 권력을 가진, 혹은 가지고 싶어하는 쪽의 언어)로 타인의 경험을 재단하는 것은 폭력이다. - P205

자연과 진화는 개체에 관심이 없고, 종종 개체는 자연과 환경의 무심함 앞에 서운할 정도로 하찮게 지워지기도 하지만 우연이라는 가냘픈 선이 또한 개체들을 이어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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