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봐, 그가 말했다. "불행한 인간과 행복한 인간, 둘 중에 누가 더 제물을 열심히 바치겠어?"
"당연히 행복한 인간이죠."
"틀렸어." 그가 말했다. "행복한 인간은 열심히 사느라 정신이 없거든. 아무한테도 신세를 진 게 없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그를 쓰러뜨리고 아내를 죽이고 아이를 불구로 만들면 저절로 소식이 들릴 거야. 온 가족을 한 달 동안 굶겨가며 새하얀 한 살배기 송아지를 제물로 바칠 거야. 여건만 허락한다면 백 마리도 사서 바칠걸." - P126

여기 이곳에서는 저마다의 얼굴이 잔인하리만치 뚜렷했다. 누구는 굵고 누구는 매끈하며 누구는 매부리코에 턱은 좁고 수염을길렀다. 각자 흉터, 굳은살, 찰과상, 주름살, 삐친 머리가 있었다. 한명은 열기를 식히느라 물에 적신 천을 목에 둘렀다. 다른 한 명은 어린애가 만들었음직한 팔찌를 차고 있었고 또다른 한 명은 두상이 피리새를 닮았다. 이들은 세상이 낳은 수많은 인간들 가운데 일부 중에서도 일부라는 생각이 들자 현기증이 났다. 이런 다양성이, 이 끝없는 생각과 얼굴의 반복이 무슨 수로 유지됐을까? 어떻게 세상이 미치지 않았을까? - P138

나는 아이가 팔을 날개처럼 구부리고, 자기 동작과 사랑에 빠진어리고 튼튼한 다리를 움직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명성을 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과 끈기를 통해, 태양 아래에서 빛날 때까지 정원을 가꾸듯 기술을 연마해가며, 하지만 신들은 이코르와 넥타르의 산물이라 탁월함이 이미 손끝에서 터져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입증하며 명성을 쌓았다. 도시를 무너뜨리고 전쟁을 일으키고 역병과 괴물을 낳고, 우리의 제단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그 모든 연기와 향기. 남는 건 재 가루뿐이었다. - P176

"행복한 아이로구나."
그는 자리에 앉아서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지금은 그렇겠죠.
아직은 어려서 자기가 포로인 줄 모를 테니까요." 하얀 흉터들이 그의 손 위에서 이글거리는 듯했다. "황금으로 만들어도 우리sage는 우리죠." - P185

아들을 앞세웠을 뿐 다이달로스도 금세 떠났다. 팔다리가 기운을잃고 회색으로 변했고 그의 모든 능력이 연기로 바뀌었다. 내게 그를차지할 권한이 없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고독한 삶을 살다보면 별들이 일 년에 하루 땅을 스치고 지나가듯 아주 간혹 누군가의 영혼이내 옆으로 지는 때가 있다. 그가 내게 그런 별자리와 같은 존재였다. - P198

그것 봐. 저들이 어머니의 자궁을 어떤 식으로 막아버리는지 봤지?
어머니가 아버지와 다른 이모들을 얼마나 쉽게 구워삶는지 못 느꼈어?
나도 느꼈다. 단순히 외모가 출중하거나 뭔지 모를 방중술 때문에그런 건 아닌 듯했다. "영리해서 그러잖아."
영리하다고! 파시파에는 폭소를 터뜨렸다. 너는 항상 어머니를 과소평가하더라. 어머니한테도 마녀의 피가 흐른대도 난 놀라지 않을걸, 우린 마법을 헬리오스한테 물려받은 게 아니야.
나도 궁금해했던 생각이었다. - P202

나중에,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나는 우리의 만남을 주제로 만들어진 노래를 들을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남자아이가 실력이 없어서제대로 부르는 음보다 틀리는 음이 더 많았지만 그 엉망진창 안에서도 운문으로 이루어진 달콤한 가락이 반짝거렸다. 내가 어떤 식으로그려졌는지를 접하고 놀라지는 않았다. 오만하게 굴다 영웅의 칼 앞에 부를을 끊고 자비를 구하는 마녀. 기가 꺾인 여자들이야말로 시인들의 가장 주된 소재인 모양이다. 우리들이 바닥을 기며 흐느껴 을지좋으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없는 걸까. - P265

그 당시의 내가 어땠는지 안다. 불안하고 안정감이 없는, 잘못 만들어진 활과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안의 모든 단점이 발가벗겨졌다. 모든 이기심과 모든 약점이 드러났다. - P330

그는 아이가 둘이었지만 그 어느 쪽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 아이를 제대로 아는 부모는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보면 우리가 저지른 실수만 거울처럼 비쳐 보일 뿐이다. - P404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는지 보았어야 하는 건데. 그보다 더 포악한 생물이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 둘 중에 내가 더 포악하긴 했다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어미 노릇이 쉬워 보였지." - P437

평생 여기에 머물거나 말거나, 그녀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친구가되고 그는 또다른 무언가가 되거나 말거나 결국에는 눈 깜빡할 순간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은 시들 테고 나는 그들의 시신을 태우며 그들에 얽힌 추억이 누렇게 바래는 걸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칠 줄 모르는 세월이라는 파도 앞에서는 모든 게 빛이 바랬다. 다이달로스도, 미노타우로스의 핏방울도, 스킬라의 허기도, 텔레고노스조차도. -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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