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이지만, 길은 어디까지고 이어져 있어 언제나 끊어지는법 없이 어딘가의 장소로 나온다. 지도에는 공백도 끝도 있지만 현실 세계는 빈틈없이 이어져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매년 이 보행제를 경험할 때마다 실감한다. 철이 들었을 때부터 언제나 간략화된지도와 노선도, 도로지도로밖에 세상을 파악하지 않아서, 이런 식으로 어디에나 빠짐없이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런 한편, 세계는 연속되어 있는 듯하면서 연속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 장의 큰 지도가 아니라 많은 지도를 조금씩 여기저기에 겹치게 붙여놓았다, 하는 것이 도오루가 걸으며 느끼는 이 세계다. 그래서 곳곳에 ‘이음매가 울퉁불퉁하다고 느끼는 장소가 있으며, 연하게 느껴지는 장소와 짙고 중요한느낌이 드는 장소가 있음을 깨닫는다. - P20

그래도 바다로 눈을 돌리면 아직도 낮의 영역이다. 파도에는 아직 오렌지빛 테두리가 흔들리고 있고, 하늘도 밝다.
낮은 바다의 세계이고, 밤은 육지의 세계다.
도오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야말로 그 경계선에 앉아 있다. 낮과 밤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여러 가지 것의 경계선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른과 아이, 일상과 비(非)일상, 현실과 허구.
보행제는 그런 경계선 위를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어가는 행사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냉혹한 현실의 세계로 돌아갈 뿐. 고교생이라는 허구의, 최후의 판타지를 무사히 연기해 낼지 어떨지는 오늘밤에 정해진다. - P98

시간의 감각이라는 것은 정말로 이상하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순간인데, 당시에는 이렇게도 길다. 1미터 걷는 것만으로도 울고 싶어지는데, 그렇게 긴 거리의 이동이 전부 이어져 있어, 같은 일 분 일 초의 연속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어느 하루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농밀하며 눈 깜짝할 사이였던 이번 한 해며, 불과 얼마 전 입학한것 같은 고교생활이며, 어쩌면 앞으로의 일생 역시 그런 ‘믿을 수없는 것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아마 몇 년쯤 흐른 뒤에도 역시 같은 말을 중얼거릴 것이다. 어째서 뒤돌아 보았을 때는 순간인 걸까. 그 세월이 정말로 같은 일분 일 초마다 전부 연속해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하고, - P224

도다 시노부에게 고백할 마음은 없다고 한 치아키. 그렇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 좋다고 한 치아키.
대체 어디까지가 사랑을 사랑하고, 어디서부터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 차이는 무엇일까. - P269

"그러나 이제 평생 두 번 다시 이 자리에 앉아서, 이 각도에서 이경치를 바라보는 일은 없겠지."
시노부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게. 발목 삐어서 여기 앉아 있을 일도 없을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어제부터 걸어온 길의 대부분도 앞으로 두 번 다시 걸을 일 없는 길, 걸을 일 없는 곳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앞으로 얼마만큼 ‘평생에 한 번‘을 되풀이해 갈까. 대체 얼마만큼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을 만나는 걸까. 어쩐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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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8 05: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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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8 0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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