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나날이 늘어나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새로운 유행 품목이 되었다. 부자들은 새집을 지으면 정원에 값비싼 식물을 심어 부를 과시했다. 이때 여러 화려한 색의신품종 튤립처럼 훌륭한 자랑거리는 없었다. 튤립 구근 거래 한 번으로 임금의 수십 배를 버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어느새 튤립은 최고의 투기와 도박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튤립 신품종 열기는 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에 절정에 달했다. 1637년 2월5일, 알크마르에서 열린 경매에서 튤립 구근 하나가 최고 2000 휠던에 팔렸다. 이날 경매의 총 거래액은 9만 휠던이 넘었다. 최고 품종인 셈페르 아우구스투스의 구근 가격은개당 1만 휠던까지 올라갔다. 1만 휠던은 암스테르담의 최고급 저택 가격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의자 하나가 1훨던, 침대가 10~15휠던, 황소 한 마리가 120휠던, 부유한 상인의1년 수입이 3000휠던이었던 시절이다. 당시 물가와 비교하면 튤립 구근 가격은 분명 비정상적이었다.
1000휠던에 팔렸던 구근은 같은 해 5월 6휠던까지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 금액그러나 투기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1637년 2월 첫 주부터 튤립 구근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공포에 사로잡힌 꽃장수들은 사놓은 구근을 헐값에 팔아치웠다. 이해 1월의 5퍼센트만을 건지고 파산했다. 대공황에 필적할 만한 시장의 몰락이었다. - P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