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건국자 태조 조광윤의 이야기.
언젠가 태조가 사냥을 하던 날이었다. 한 신하가 서류뭉치를 들고 찾아와 결재를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하도 졸라대 태조가 할 수 없이 그 서류를 훑어보니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었다. 태조가 어이없어 물었다.
“아니, 이것이 그리도 급한가?”
그러자 신하가 이렇게 대답했다.
“예, 사냥보다 급합니다.”
그러자 몹시 화가 난 태조는 옆에 있던 도끼를 들어 그 자루로 신하를 내리쳐 이빨 두 개를 부러뜨렸다. 그 신하는 조용히 이빨 두 개를 주웠다. 이에 태조가 물었다.
“그대는 짐을 고소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관에게 보고하여 기록하게 할 것입니다.”
사관에 의해 기록되면 그 기록은 천만 년 역사에 남는 것이었다. 태조는 한참 생각하더니 그 신하를 불러 두둑하게 보상금을 주었다. (625-6)
태조가 즉위 17년 후에 죽고 그의 동생 진왕 조광예가 태종이 된다. 그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형님 태조가 자꾸 술을 권하자 그 옆에 있던 태조의 총희 금성부인을 활로 쏘아 죽이는 충정을;;;; 보이기도 했던 인물.
태종은 학문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짐은 달리 좋아하는 것이 없소. 다만 독서하기를 좋아하는데 책을 통해 고금의 성패를 알아 좋은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경계할 뿐이오.”
그러면서 그 유명한 『태평어람』 1천여 권을 1년에 독파하였다. 이에 재상들이 말렸다.
“하루 세 권씩이나 보시면 옥체에 매우 해롭습니다.”
그러나 태종은 단호하게 말했다.
“짐은 어릴 적부터 독서를 즐겨해 독서의 요령을 터득하고 있소. 책에 유익한 말이 씌어 있으면 결코 지루하지 않소. 옛말에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만 권의 책을 읽는다고 했는데, 그 말은 제법인 것 같소.” (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