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다룬 엣세이  "떡볶이 .."를 예전에 읽고 매우 실망을 했기에 이 책이 나온 직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사각사각>에서 추천하는 이야기에 넘어가서 구입해 읽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그냥 넘겨 버리지 않아서. 


조울병, 이라고 우울증과는 구별해서 칭하고 있는데 조증과 울증이 심하게 번갈아 오는 양극성장애를 겪은 저자는 담담하게 하지만 솔직하고 생생하게 병의 증상과 당시와 현재의 감상을 나눠주고 있다. 쇼크가 와서 기절하고, 강제로 입원도 하고, 가족과 친구들을 비난한 경험들. 어쩌면 나도, 라고 생각이 든 적이 많았다.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서 내놓다니, 아직도 저자의 용기에 감탄할 뿐이다. 그리고 힘들면 나도 병원에 가야한다는 걸 '배웠다.'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은 병원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이 보이는 표현이지만 우을증, 혹은 조울병은 그리 간단하고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감기는 뭉겔 수 있지만 이건 아니니까.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삐삐 처럼 마냥 밝고 힘차기만 한 건 아니다. 내용이 무겁기도 하고 그만큼 울림이 크다. 삐삐언니가 '사막'을 건넜다고? 흠.... 그건 .... 독자마다 기대하는 바와 받아들이고 공명하는 면이 다르겠지만 사막 한복판 혹은 어디쯤에서 손을 건넬 수는 있을 게다. 저자가 이 책을 지금 내 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독서였다. 



조증은 자신에 대한 몰입이자 스스로에 대한 황홀인 동시에 타인과 관계 맺으메 대한 몰입, 감정 투사의 남발이다. (50)


어린 시절의 경험이 조울병의 범인은 아니지만, 후일 조울병이라는 낯선 손님이 찾아왔을 때 그 놀라운 식탐을 채워주는 먹거리인 건 분명해 보인다. 조울병은 망각의 냉동고에 갇혀 있었던 일들을 불러내 놀라운 기억력으로 소생시킨 뒤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병이다. 감정을 끄집어내 뼈를 다 발라 먹다시피 악착같이 후벼 파고 증폭시킨다. 조증이 점령한 머릿속에선 과거와 현재의 경험이 형광물질이라도 발라진 듯 총천연색으로 다가온다. (80-1)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늘 다르다. 내가 고통의 견적을 정확하게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고통의 주인은 고통이다. (132)


세상엔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불운이 피해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불행을 겪어야 한다. (138)


조울병은 단일 유전자에 의해 발병되는 멘델의 유전 법칙을 따르지 않고, 다수의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발병하는 '복합유전질환'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다. (204)


정신의학계에선 의사와 환자 간의 경계 깨기 boundary violation를 의료 윤리 위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성이라 할지라도 의사와 환자가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환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이성 사이엔 더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고요. 미국의 일부 주에선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진료를 넘어서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규제하고, 치료가 끝난 뒤에도 일정 기간 이내엔 결혼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는 곳도 있을 정도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의사와 환자가 로맨틱한 관계를 맺는 설정이 종종 나옵니다.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면 로맨스 장르가 되겠지만,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이런 관계가 되면 스릴러가 되기 십상이죠.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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