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습지만 슬프고, 또 날카롭기까지 한 소설의 주인공은 디테라는 이름(체코어로 ‘난장이’란다)이 말하듯 키작고 볼품없는 사나이이다. 신발에 키높이 깔창을 덧대면서, 웨이터복의 깃을 빳빳하게 풀 먹이면서, 돈으로 여자를 사면서, 키가 커졌다고 이제 어른이노라고 되뇌며 산다. 그의 인생의 목표는 그가 속한 서빙의 세계인 호텔에서 대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돈을 모아야했고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했다.
소설 Q&A 와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한 보잘것 없는 인간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나름대로 역할을 해내는 것을 그렸듯이, 이 책도 체코의 한 키작은 웨이터의 삶 에 어떤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나를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존스타인벡이 그의 호텔을 사려고 흥정하는 식이라니!) 이 책의 압권은 그가 인생 최고의 손님 아비시니아 황제를 접대하는 부분인데, 만찬용 음식을 준비하는 분주하고 정신없는 장면의 묘사는 가르강투아의 멋들어진 패러디라고 부르고 싶다. 각 장들은 디테의 입을 빌어 마치 데카메론 처럼 지금 부터 내가 하는 얘길 잘 들으쇼라고 시작하고 "괜찮았나요? 오늘은 여기까지" 로 맺는다. 하지만 발랄한 말투의 인생사가 마냥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과 단순한 해피앤딩으로 책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르다.
진정한 웨이터가 되기 위해서, 우리의 꼬맹이 디테는 모든것을 꿰뚫어 보고 들으면서도 못본체, 모르는 체 해야한다. 이런 보이지 않게 존재해야 하는 웨이터이기 때문에, 그는 더욱더 보이고 싶고, 들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의 싸부 중 하나가 "난 영국왕을 모셨지, 그래서 척하면 다 알고 다 보여“ 라고 버릇처럼 말한 것처럼, 그도 에디오피아 왕을 모신 경력과 그때 받은 푸른색 훈장을 인생 내내 들먹이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사람들 속성을, 고위관직의 인간들이 이 투명인간 웨이터들 앞에서 벌이는 은밀하고 ”천진난만한“ 행각들을 보고 듣는다고 해도, 그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존재가 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운명처럼 눈높이를 맞추며 만나서 "슬라브 인답게 정열적으로" 사랑하게된 독일 여성 리자는 하필이면 나찌 간호장교이고, 그가 굴욕적으로 이름과 몸을 독일로 변형시키려 애쓰는 동안 독일은 그의 고향을 침공한다. 그가 어쩔 줄 모르며 독일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장면은 너무나 슬프지만 우스꽝스럽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인생을 걸고 얻은 아들 하나는 그저 바닥에 못을 박고 또 박으면서 아빠를 몰라 본다. 금수저 하나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자살을 하려고 목매달 나무를 고르는데 나뭇가지는 너무 낮거나 너무 높다. 또, 백만장자들 속에서 그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안고 디테는 공산당이 백만장자들을 잡아 가둔 수용소로 자수하며 걸어 들어간다. 그 수용소 내의 전혀 감옥같지 않은 생활의 묘사들은 로베르토 베니니가 <아름다운 인생>에서 장난스럽게 나찌수용소 생활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역시나, 이곳에서도 디테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키작은 사내로 남는다. 아무도 그가 내미는 잔에 맞받아 건배들지 않았고 그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디테가 드디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일은 자기가 스스로를 바라 보기 시작하는 때 이다.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하나하나 실제로 일어났다. 이제 범위가 점점 좁아지면서 나는 서서히 어린 시절로, 그리고 청년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고 다시 견습 웨이터가 되었다. 그렇게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면서 여러 번 나 자신의 모습을, 내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라 그때 있었던 모습 그대로 직시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내 삶을 똑바로 마주 보게 해주었다. (289-290)”
그에게 이제 웨이터복은 “무슨 무대의상을 입은 느낌 (292)”을 들게 했고 그 깨달음 후에야 죽은 부인의 가방에서 꺼내온 우표가 없어져서 더 행복해진다. 그는 드디어 “프라하 시내를 걸어가면서 [...] 더 이상 넥타이를 매지 않았으며 조금 더 커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299)” 산장에서 만난 프랑스 교수가 아무리 형이상학적인 (그리고 현학적인) 말을 해도, 그는 개의치 않을 수 있게 된다. 드디어 디테가 득도를 한 것이다! “내가 나의 가장 좋고 가장 편안한 동반자, 나의 또 다른 자아, 나의 격려자이며 나의 선생이었다. (312)”.
인적이 드문 산골 노동자 숙소에서 드디어 그는 인생 최대의 질문인 죽음을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진정한 세계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더 이상 무엇이,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 강물에 녹아들고자 했다. 이제야 드디어 눈에 보이게 된 그의 주변에는 그가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산길을 내달릴 지경인 가축들이 있다. 또, 산골 마을 사람들은 그의 수다를 들으려고 그를 기다리고, 찾아오고, 파티에 초대한다. 그의 웨이터복은 이젠 입기에도 어렵게 느껴진다. “나는 분명 특별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고 디테는 행복하게 말한다. 물론, 그의 반어법적인 혹은 겸손한 표현을 따르자면 이 모든 일은 다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신” 덕이다.
시대를 웨이터의 눈으로 속속들이 꿰뚤어 보고, 너무나 철학적으로 고민한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이 책은 1989년 프라하의 봄까지 출판이 금지되었단다. 낯선 작가의 낯선 곳 이야기 속에서 의외로 우리 역사를 찾아 읽을 수 있었는데, 세계 어디서나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상상해 봤다.
2009.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