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 알라디너 모꼬지?! , 누리꾼의 공간과 한계

 

 인터넷 생각글의 풍요로움에 대한 단상

1. 뺄셈

 - 생각글은 어떻게 풍부해질 수 있는가?

 - 왜 입장이 다른 생각글은 인터넷공간에서 공약수를 쉽게 찾지 못하는가?

 - 생각글이 여물거나, 숙성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 인터넷 공간은  왜, 활자에 집착하게 되나, 상처란 감정에 귀기울이지 못하는가?

 - 상처 댓글은 왜 인터넷공간에서 더 증폭되는가? 처음과 지금의 사이를 제기한 쟁점만으로 바라보려는 구분이 필요한가? 가능한가? 할 수 있는가? 상처난 감정이 회복될 수 있는가?

 - ㄱ,ㄴ,ㄷ,ㄹ이란 사람이 다른 주제로 다른 공간에 만나서 논의를 나누었다면, 논의의 진전이 없었을까?

- 소모하거나, 소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인터넷 생각글 논쟁의 위험수준과, 그 관계를 풀어나가는 법; 생각이 다져지는 공간이 아니라 얇은 종이와 같아서 밟으면 상처나고 으스러지는 공간, 논지가 함유하고 있는 정서, 감정의 흔적에 대한 이해. 뺄셈보다 의도와 장점을 분리해내는 일. 감정에서 출발한 논의를 애초의 의도와 구분해내는 일

- 논쟁에, 논의에 이겨야한 하는가?

- 권력, 억압만 하는가? 사실인가? 가치중립인가? 권력을 생성될 수 있는데, 일방이라여기는 것은, 미시권력이 인터넷공간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2. 덧셈

-  공간이 소통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할 것

-  쟁점을 명확히 할 것. 발행 생각글의 논지를 단순화할 것. 가치-취향-방식의 보조틀을 꼬투리 삼지 말 것.

-  애초 생각글의 논지에서 얼마나 덧보태어졌는지에 중점을 두어 평가해볼 것.

3. 나눗셈

- 인터넷 공간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생각을 교감하는 일에는 심연의 강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건널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지속적인 지식의 전달에도 불구하고, 감정이나 포인트,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눈동자라는 것이 없기에, 팔짱을 끼거나, 몸을 뒤로 빼는 몸짓이 없기에. 꾸며지거나 덧보태어질 수 있기에 정확한 전달이 어려운 것은 아닐까? 문화적인 역능 부족, 다양성에 대한 논의, 당위성이라는 위장적인 표현은, 현실 공간에서 자기말만 하려고 하는 것, 듣지 않는 문화와 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학자가 자신의 논리를 반박하는 일에 집요하게 발화지점에서 논의를 확장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대를 침몰시키려 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도 논쟁이 아니라, 상대를 나의 논리에 귀속시키려는 욕망이 앞서 실질적인 진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 얼마나 잘 들을 수 있느냐? 발화지점이 어디냐? 우리의 다른 가치에 대한 수용력, 수용수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수용수준이 성숙되지 않으면, 여러 반찬이나 다른 식성을 몸으로 인정하는 수준에 근사하지 않고서는 논의나 논쟁의 진전으로 인한 상호 변화를 기대한다는 일은 욕심이 되는 것은 아닐까?

- 우리의 문화적 수용성, 수준, 다문화, 다가치에 대한 섞임-융화능력은 어느 수준일까?

4. 곱셈

 - 소통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내에서 소통은 현실의 공간과 달리, '유아기' 수준임을 명심할 것. 새로운 방식, 새로운 나눔틀, 나눔 윤리에 대한 성찰을 같은 수준으로 키워내지 않으면, 생각만큼 열린 공간 확장은 한계가 있음. 오히려 다른 기준, 틀을 키워내면, 그 소통공간의 확장-영역은 다른 속도를 가지고 나아갈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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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논쟁의 발화지점 다시보기.....
    from 木筆 2007-10-09 10:03 
    0. x축을 지금이라두자. y축을 시간이라고 하자. 지금이라는 수평면을 상황이 벌어지는 국면(생각면)이라고 하자. 그리고 a라는 사람의 생각, b라는 사람의 생각이 부딪치거나 발화하는 지점이라고 하자. a라는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직선일 필요는 없지만, 일정한 생각의 방향성을 가지고 왔다고 하자. 굳이 a와 b일 필요도 없고, c와 d로 이어진다고 하자. 그러니 다양한 주제로 다양하게 생각면을 가질 수 있다고 하자. 1. 사람들은 발화지점,
 
 
 

 

 

게임-맥주한잔, 0.1 주먹 또는 손가락 하나내기, 술래부터 1번, 낸 숫자 합에 걸린 사람 한잔하기, 안주먹기 또는 물먹기.(참여인원 9-10명) 몇순배 돌자 감이 익는다. 한표가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 서서히 걸리지 않는 사람, 걸렸으면 하는 사람이 드러난다. 걸리지 않기 위해, 낼 것이냐, 내지 않을 것이야.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기도 하구. 하지만 보다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공모의 결과가 원하는 목표점을 근사하게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한표를 행사하다가 서로의 한표, 다음은 우리를 한표를 생각한다. 암묵적인 분위기가 한표 행사에 결정적인 조건이 되기도 한다.

다음 - 0,1,2 숫자를 하나 늘린다. 어떨까? 내가 쓸 수 있는 표가 3표인 셈이다. 헷갈릴까? 이것도 몇순배 돌자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익숙해진다. 맥주는 동이나고, 어떻게 하면 남의 술 맛을 볼까 전전긍긍하며 게임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0을 내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차리지 못한다. 이것도 정확히 목표점을 맞추기는 조금 힘들지만, 인근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한표가 목표점을 빗나가게 할 수도 있다. 복잡한 듯 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셈인가?

놀다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만, 내 한표만, 나와 너의 한표가 아니라, 우리의 한표가 아니라, 오로지 야생의 한표만, 미칠 파급효과도 전혀 모르는 이기적인 한표를 생각해본다. 살고 있는 세상과 겹쳐진다.  나한테 피해로 돌아오는 순간, 너를 감지하는 순간 생각은 조금 달라진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 한표의 피해가 나한테로 올 수도 있고, 결정적인 순간엔 나만 피할 수 있지만, 너무 남들을 생각하지 않아 나-너에게만 오게 된다.

도식적이지만 (나-너)를 감지하면 다른 우리를 넣기 시작하면, 조금 달라진다. 나-너 앞에 멈추게 할 수도 있고, 나-너 뒤에 멈추게 할 수도 있고, 다른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도 할 수 있다.

(짧은 순간, 짧은 몰입에 여러가지를 맛 본 셈이다. 술을 좋아하면 술로, 콜라를 좋아하면 콜라로, 물을 좋아하면 물로....휴가가면 한번 해 보시라.)( 070721-22 대*림, 모꼬지흔적, n=40*알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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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회자되는 <기독교>와 <비정규직 이랜드>에 스스로 이기적인 한표만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선택한 한표, 내어논 손가락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무감각한 이슈엔 그저 무차별적인 <한표>만 행사하는 것은 아닐까? 나만 보고 고민하는 글쓰기가 어느 덧 흔적으로만 존재할 수 없음에 좀더 사회적인 기능, 너에 대한 느낌을 배려하지 못함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터넷 글쓰기도 이런 한표로 채워지고, 오프라인의 생동감이나 오감이 존재하는 만남의 관계가 있지 않고서는, 여물지 않는 시각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책임없는 한표로 끝나거나, 오해로 인한 상처만 받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전자민주주의란 것이 어느 단계까지 선형적인 증가가 있다고 판단하지만, 시공간의 물리적 관계가 부족할 수 밖에 없음으로 인한 하락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내용있는 알라디너의 모꼬지도 괜찮을 듯하다. 눈팅만 해서 사람을, 생각의 골, 그 사람이 담지한 문화,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이지 않을까? 누리꾼의 논쟁이 한번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논쟁, 논의를 풍부하게 하는 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아날로그로 대면하고, 느끼고 다시 돌아와 논의를 진척시키는 것만큼 빠른 길은 없지 않을까 싶다. 혼자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그것이 돌아가는 듯하지만, 지름길 가운데 한가지 일 수 있다.

 끊임없는 활자를 되새김질 하는 일, 마음에 들어온 상처의 말은 떠나간 애인 편지의 한줄에 미련을 갖는 일만큼 허망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 시각, 눈팅의 한계가 아닐까? 표정과 향기, 듣고, 느끼는 즐거움을 버린....

상처의 말을 다시볼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의 장점이라구. 이것은 독이다. 관계에 있어 서로를 허무는 독이 아닐까? 그 독이 키운 논의는 지속적인 뺄셈이라고 여긴다. 보고 볼 수록 상처만 덧보태는 독이다. 집착같은 불필요한 감정을 재생산한다는 표현이 맞을까? 마을에 쓴 글은 한표가 불끈한 감정이든, 논리정연한 반박이든,  논리정연한 주장이든, 나만 생각한 한표, 나-너만 생각한 한표가 아닐까? 다른 우리를 감안한 한표인가? 이미 상처난 마음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은 관계에 있어 한계가 있다. 그 응어리들은 논리로 이성으로 풀어지는 것일까?

(예방을 생각한다면, 논의의 지점을 살리고 풍부하게 하고 싶다면, 생각의 접촉면이 풍요로워지고, 그 지점을 숙성시키고, 빨리 효과를 보고 싶다면) 이런 인터넷 세상에서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하겠지만, 만나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않고서는 질적인 풍요로움을 느끼기는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생각이란 것이 고민이란 것이 관점이란 것이 생각보다 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가 생긴 뒤, 이미 늦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진정 배려한다면, 인터넷의 만남을 관점이나 다양함으로 가져가고 싶다면, 부질 없이 생각하는 지 모르지만 선물하고, 만나고, 오프의 관계같은 아날로그란 전선을 갖지 않는 한 없다고 여기는 것이 지금까지 인터넷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다.(논리적이거나, 연구 논문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서두)

아프지만, 성숙을 위한 마을의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주저리주저리 애초 흔적의 의도를 벗어나 길어졌다. 미안한 마음..

(고 김선일씨 만큼 마음이 무겁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루 빨리 아무일없이 해결되기만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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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70728 누리꾼 생각글 - 풍요로움을 위한 윤리(作)
    from 木筆 2007-07-26 11:14 
       인터넷 생각글의 풍요로움에 대한 단상  - 생각글은 어떻게 풍부해질 수 있는가?  - 왜 입장이 다른 생각글은 인터넷공간에서 공약수를 쉽게 찾지 못하는가?  - 생각글이 여물거나, 숙성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 인터넷 공간은  왜, 활자에 집착하게 되나, 상처란 감정에 귀기울이지 못하는가?  - 상처 댓글은 왜 인터넷공간에서 더 증폭되는가? 처음
  2. 논쟁의 발화지점 다시보기.....
    from 木筆 2007-10-09 10:04 
    0. x축을 지금이라두자. y축을 시간이라고 하자. 지금이라는 수평면을 상황이 벌어지는 국면(생각면)이라고 하자. 그리고 a라는 사람의 생각, b라는 사람의 생각이 부딪치거나 발화하는 지점이라고 하자. a라는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직선일 필요는 없지만, 일정한 생각의 방향성을 가지고 왔다고 하자. 굳이 a와 b일 필요도 없고, c와 d로 이어진다고 하자. 그러니 다양한 주제로 다양하게 생각면을 가질 수 있다고 하자. 1. 사람들은 발화지점,
 
 
조선인 2007-07-2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모꼬지라니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2007-07-26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6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4권>

1부 막이 오르면
1 앞선 시기 그리고 다른 지역
2 프랑스 혁명기의 불안정한 경계
3 홈 스위트 홈

2부 배우들
1 가족의 승리
2 가족의 기능
3 인물과 역할
4 가족의 생활 방식
5 부르주아 사생활의 의례
6 가족의 비극과 갈등
7 주변적 인물: 독신자와 외로운 사람들

3부 무대 그리고 장소
1 거주 방식
2 사적인 공간들

4부 무대 뒤켠
1 개인의 비밀
2 내밀한 관계 또는 주고받는 즐거움
3 외침과 속삭임


<5권>

1부 사생활의 경계와 공간
서론
1 노동
2 가족과 개인
3 이웃에서 대도시로: 이행과 간섭


2부 비밀의 역사?
1 역사의 비밀들과 비밀의 역사
2 전쟁과 정체성의 혼란
3 가족의 비밀
4 몸 그리고 섹스의 수수께끼

3부 문화적 다양성
1 가톨릭 신자들: 상상과 죄
2 공산주의자 되기? - 하나의 존재 방식
3 유대인으로 살아가기: 프랑스의 경우
4 이민자로 살아가기: 프랑스의 경우

4부 신화, 모델, 가장(假裝) - 변화의 회오리바람 속의 사생활
1 현대의 사생활은 미국을 모델로 하고 있는가?
2 투명함의 모델: 스웨덴 사회
3 이탈리아 가족: 프라이버시의 역설
4 독일 가족: 사생활과 정치 사이에서
5 미국 가족: 신화와 현실

 
     

 1. 읽은 책

 

 

 

 

2. 읽는 책

 

 

 

 

3. 읽을 책

 

 

 

 

 

후기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엥겔스.

 0. 라이히 - 윤수종교수를 통해 개인적인 <스피 박>의 독서 일정에 불쑥 들어와 마음을 훔쳐간다.  <히피>를 본 것도 이것에 일조를 했다. 조금 빈약한 듯하여, 사생활의 역사 4,5(프랑스혁명부터 지금까지)를 도서관에서 빌려 같이 본다. 약식으로 사진과 중간중간 필요한 부분만 크로키하듯 ....그러면서  세월은 거슬러 올라가 궁금증이 여기까지 미친다.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가족의 등장, 몸, 섹스, 오르가즘, 성혁명, ...앞날...

0.1 네그리...68혁명 - 노동운동에 있어 다양한 흐름과 시도가 이어진 데 놀랍다. 역사적 흐름이란 것...19세기 초중반 사유의 흔적, 재독의 영향력이 깊고 넓다는 느낌, 실천들에 대한 재음미가 필요하지 않을까? 관심이 끌리는 부분이다.

0.2 문화사는 유사한 책을 보는 중, 중간정도씩 읽다. 더 눈길이 가게될런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0.3 윤수종교수님 강연도 있어 이를 기회로 함께 논문과 함께 섞어보고 있다. 비판논문도 흥미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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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골수, 교조, 기도, 편가르기, 사탄,남,예수,다양성,맛,밀어내기

1. 

 몸은  자란다

 마음은 몸을 자라게한다.

 아픔은 마음을 자라게 한다

 슬픔도 마음을 자라게 한다

 아파하는 것,

 슬퍼하는 것,

 늘 달리 보는 것,

 불감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처음이다.

 

 2.  오, 하느님

 

 이 세상사람들은

 매일매일 하느님이란 시멘트를

 마음 속에 조금조금 심는다.

 힘들고 어려울 때, 더 많이 복용하기도 한다.

 괴롭고 슬플 때 더 더 많이 복용한다.

 신심에 넘쳐 제 몸이 굳어 어떤 남과

 섞이지 않는 것도 모르고 제 몸도 먹는다.

 하느님을 믿는 만큼

 '사탄'을 너무 많이 만들어

 세상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제 몸은 더 더욱. 중세도 아닌데 중세를 사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어찌 그리, 일주일에 한번 새로운 사람이 되는지

 리셋기능이 강한지

 나머지 육일은 남 마음에 비수를 꽂고 피를 낭자하게 만들고 다닌다.

 아~. 주님. 기도하게 하소서. 불감하게 하소서, 제겐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3. 밥 맛이다.

 

밥맛만을 고집하는 편집증자에겐

반찬이 없다.

일식 삼찬도 없다.

굳은 마음엔 경화한 간처럼 재생기능이 없다.

반찬을 거부하는 거식증 환자처럼

'교조'와 '사탄'을 되뇌일 뿐이다.

돈이 신이되고 비정규직이 사탄이 되는 아이러니, 기도하니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4.

새롭다는 것은

아름다움과 슬프다는 것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연애할 줄 알던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 마음엔 왜 오로지 굳은 '돈'과 '자식', 현실을 잊기위한 '주님'과, 구복한 '신'만 들어앉아 있는가~

단 한줄의 편지에도 들썩이던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서 헤매이고 있는가

오막살이 판잣집도 좋다던 당신은

오늘도 불감하는가.  오늘도 당신과 연애하고 싶은데... ...

 

 

5.

 불감의 시대는

 어느 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6.  당신, 오늘도 기도하셨나요. 아니면 선서를 하셨나요. 1. 2. 3... 제 흔적이 그대 맘에 다가가나요. 아프시나요. 못 느끼시겠다구요. 뭐라고 하는지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다구요. 들리지 않는다구요....라구요...뭐... ... 아~ 이랜드 물건 당분간 팔아주지 않겠다구요..아니 그러면 안되구요. 불매하셔야되요. 아니 그것보다. 제대로 느끼셔야해요. 외우지마시구요. 당신 마음을...흔들어 보시라구요....바빠서 못하겠다구요...아니요. 그러지 마시구...느끼시라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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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7-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의 저 메일...무서워요...

조선인 2007-07-2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끔찍합니다. ㅠ.ㅠ
출처를 안 밝히셨는데, 이메일을 제 블로그에도 공개하겠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말씀해주세요.

여울 2007-07-23 14:26   좋아요 0 | URL
http://antieland.tistory.com/ 여기에서 가져왔답니다.
 
잃어버린 감각 즐기기

아*** 인문강좌 [정보화시대의 이해]란 주제로 강연이 이어졌다. 강의 스타일과 자리배치가 차이가 나서 김교수님은 초반 어려움을 겪은 듯하지만, 풍부함과 열정으로 분위기가 후끈해진다.

중간 맥루한이야기가 나오고, 지난 흔적이 겹쳐지는데, 이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먼댓글로 확인해보니, 2년전 생각흔적과 동일한 질문을 해버렸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사고 맥락은 그대로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셈이다. 온라인과 오프모임, 매체가 갖는 접근성은 일반 사람이 생각하듯 공평한 접근성이 아니라, 그만큼 활용하고 포섭하는 능력이 많다는 것이다. 케이블tv가 되면 쌍방향이 될 것이다. 전자민주주의가 도래할 것 처럼 부르짖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 많은 채널들은 19방송으로 통일되고 말았는데..

2020년 많게는 5-10년 차이가 나겠지만, 광섬유통신(FTTH, Fiber to the Home)망의 완료시점과 맞춰 멀티미디어, 디지털 환경의 조성의 변화는 예고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그 변화 속도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고, 상황의 변화는 상상을 넘어설지도 모른다고 한다. 무어의 법칙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만큼, 자본의 포섭능력은 그만큼 입체적인 것은 아닐까?

기본적인 소통이나 정보의 접근성에 대한 수월성은 인정되지만, 자본에 포섭된 텔레비전이 생각없는 복제인간을 양상하듯이, 자본에 포섭된 가상현실이란 99:1의 가능성과 소통의 한계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지금보다 열배나 투명하게 일하여야만 하고, 바빠져야 하고, 더 벌기위해 안달해야 하지 않을까?정보화시대의 급류에 휩쓸려가는 지금, 환타지만이 아니라, 지금 떠내려가는 지점 급류가 자본의 흐름이라는 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직접민주주의, 소통이라는 것이 단지, 허구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그 효과때문에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들여다보이는, 보일 현실에 살고 있음으로 지나온 만큼, 지나올 년수*2자승배로 들여다보지 않으며 안되는 것은 아닐까?

급류에 떠내려갈 수록, 닻을 내려야 되는 지점, 멈춰서야 되는 지점, 만들어야 되는 지점, 자본의 그늘을 잡아떼려는 만들기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뗄레야 땔 수 늪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온라인의 시각 편향적인 관계는, 시공간이란 영역과 오감*육감이라는 언플러그한 접합이 없고서는 울림없는 메아리는 아닐까? 시각과 상상은 해결된 것처럼 생각되지만, 꿈처럼 허망할 수도, 허망해질 수도 있을 가능성이 더 큰 것은 아닌가?

시각만으로 편향된 사회, 도시만으로 편향된 사회는 관계와 다른 감각이 복원될 수 없는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가 그저 밋밋함으로 미끌어지기만 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본이 요동치는 몇백년동안은?

불연 혼자 생각만 되뇌이게 된다. 통역사적인 관점과 앞, 그리고 지금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는 지점, 온라인의 문제점에 대해 멈추게 만들어준 강연이 고맙다. [정보사회의 미래]란 주제로 심도깊게 논의가 이어지면 더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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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수가 이어져도 자리를 일어서지 않는다. 15명에 가까운 분들이 야심, 아니 새심한 시간 가까이 논의를 확장해간다.

2. [건축과 철학] [축구문화사강연과 축구서포터즈의 만남] [홈피개편과 아이디어소통시스템만들기] [사회생물학,진화론] [부드럽고 넓은 세미나팀 만들기] [회원확대] [소통] 등등 새롭거나, 실험정신이 투철해야될 꼭지들, 외연을 부드럽게 확장하기 위한 방법들이 품어지고 나눠졌다.

3. 구체적이지 않으면, 환부의 고름만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살도 도려낸다. 이쯤이라고 썩은 뿌리를 자르지만, 잘 못 잘라 더욱 싱싱하게 커간다. 세부적이지 않으면...안된다는 객적은 생각도 이와 상관없이 일어나 흔적을 남겨 놓는다.

4. 강연한 샘이 더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떡 본 김에 장사지낸다구,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품고 나눈 것 같다. 사무처와 많은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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