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보는 문화>,신응철,살림
* 맥루한은 역사를 아래표의 4가지 시대로 구분하며 마지막 전기시대에는 시각위주의 소통구조에서 복수감각형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몇백년 뒤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실을 사는 자본주의 시대가 새롭게 자리매김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이 시각과 청각에 국한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왜곡된 시각편향. 일상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많은 시간 촉각과 후각, 미각 등이 극히 미미하고 스스로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원시인과 기본적인 몸의 코드는 비슷하지 않을까? 불과 200-300년 사이에 과도하게 바뀌고? 있다는 것은 무리한 표현은 아닐까?
하루의 대부분을 플라스틱화된 감촉에 길들여져 살고 있다. 미각도 그렇다치고, 나무의 촉감도, 비나 바람의 촉감도 지극히 제한될 뿐, 성형감각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도 산과 강을 목메어 갈구하는 것도 어찌보면 지극히 몸이 편안해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맥루한이 이야기한대로 구어시대에는 의사소통자체가 오감을 활용하지 않으면...그 예민함과 즐거움이란 고스란히 몸속에 기억되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소낙비를 좋아하고 듬뿍 맞고 싶어하는 것은 비가 몸에 젖는 감촉과 소리와 미각까지 자극하는 잊혀지려는 감각을 깨우려하는지도 모를 것 같다. 숲과 나무를 어루만지듯, 느끼듯이. 너무 과도한 시각집중 시대에, 돈냄새 듬뿍나는 현실에 몸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애써 잊으려하며 정신없이 살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050919 얕은 비가 은행잎을 두드리고 있다. 새로 개발한 주로 연단운동장- m*c 갑천변 5k코스 왕복. : 출발점 붉은 자전거도로(1.5k)-화*박물관 앞 아스팔트로(1k)-과*관 장미덩쿨로(0.5k)-갑천변 붉은우레탄로(1.5k): 발맛도 색깔있고, 얕은 안개비가 몸에 젖는다. 속도를 내어줄수록 맘에, 귓가로 다가오는 발자욱 소리는 감칠 맛이 난다. 갑천으로 다가서자 붉은 카펫과 잦은 동심원을 그리는 냇가. 반쯤 스며드는 빗줄기, 가쁜 호흡....모자를 헤집고 입술로 다가오는 비맛.. 다시 줄어드는 빗줄기. 속도를 번갈아 내어주며 돌아오는 길도 상큼하다. 오랫만에 맛보는 가을 달림이다.
050920 크로스컨트리 왕복 6k 앞산 오르막은 내달리고 내리막은 천천히, 조금은 가벼워진 몸으로 앞산의 숲을 달리다. 조금은 힘들지만 흙길이 곱다.
구어시대 (oral age) |
문자시대(literate age) |
인쇄시대(Gutenberg age) |
전기시대(Electric age) |
복수감각형 |
복수감각형위주 |
부분감각형 |
--> 복수감각형 |
오감사용-시,청,후,촉각.. |
필사시대 |
시각위주 |
시각/청각... |
H.M Mcluhan <미디어의 시대>
* 달리는 친구들 대부분은 시간에 집착한다. 나도 역시 그 부류지만. 하지만 앞을 선취하려는 기본적인 정서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 서구식 주입교육을 받아 시간표와 선형시간관에 익숙해있지만..어쩌면 기본적으로 우리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일장 일단이 있겠지만, 선형적시간관에 익숙하기가 어렵기에 서구스타일에 맞추기는 힘들 듯하다. 우리의 리듬과 일과 관계맺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계를 보지 말고 달리자. 감각에 충실한채로 오감을 활용해서...허기를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음식맛을 즐기려하듯, 달리기를 맞춰진 시간틀에 채우려하지 말자. 맛도 없고 군대에서 맛없는 짬밥 끼니때우듯, 3분 목욕하듯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기계적인 동작의 헬쓰클럽보단 이왕이면 거리로 숲으로 나서면 어떨까? 050922
구 분 |
유 형 |
지 역 |
특 징 |
비 고 |
모노클로닉 시간관 |
선형시간관 |
북유럽중심 |
개인을 집단으로부터 격리/사생활보장-몇
사람만의 관계/시간표를 실재하는 것으로 |
절약한다/낭비한다/잃어버린다/낸다/쏜살같다/느리다 |
폴리크로닉 시간관 |
비선형시간관 |
아시아,중동,중남미 |
사람끼리 관계/일처리 과정/교제하며 끊임없이
간섭 |
우리가 아닌 남과 문제 다루기 곤란 |
<문화를 넘어서> E.T H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