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맥주한잔, 0.1 주먹 또는 손가락 하나내기, 술래부터 1번, 낸 숫자 합에 걸린 사람 한잔하기, 안주먹기 또는 물먹기.(참여인원 9-10명) 몇순배 돌자 감이 익는다. 한표가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 서서히 걸리지 않는 사람, 걸렸으면 하는 사람이 드러난다. 걸리지 않기 위해, 낼 것이냐, 내지 않을 것이야.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기도 하구. 하지만 보다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공모의 결과가 원하는 목표점을 근사하게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한표를 행사하다가 서로의 한표, 다음은 우리를 한표를 생각한다. 암묵적인 분위기가 한표 행사에 결정적인 조건이 되기도 한다.

다음 - 0,1,2 숫자를 하나 늘린다. 어떨까? 내가 쓸 수 있는 표가 3표인 셈이다. 헷갈릴까? 이것도 몇순배 돌자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익숙해진다. 맥주는 동이나고, 어떻게 하면 남의 술 맛을 볼까 전전긍긍하며 게임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0을 내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차리지 못한다. 이것도 정확히 목표점을 맞추기는 조금 힘들지만, 인근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한표가 목표점을 빗나가게 할 수도 있다. 복잡한 듯 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셈인가?

놀다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만, 내 한표만, 나와 너의 한표가 아니라, 우리의 한표가 아니라, 오로지 야생의 한표만, 미칠 파급효과도 전혀 모르는 이기적인 한표를 생각해본다. 살고 있는 세상과 겹쳐진다.  나한테 피해로 돌아오는 순간, 너를 감지하는 순간 생각은 조금 달라진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 한표의 피해가 나한테로 올 수도 있고, 결정적인 순간엔 나만 피할 수 있지만, 너무 남들을 생각하지 않아 나-너에게만 오게 된다.

도식적이지만 (나-너)를 감지하면 다른 우리를 넣기 시작하면, 조금 달라진다. 나-너 앞에 멈추게 할 수도 있고, 나-너 뒤에 멈추게 할 수도 있고, 다른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도 할 수 있다.

(짧은 순간, 짧은 몰입에 여러가지를 맛 본 셈이다. 술을 좋아하면 술로, 콜라를 좋아하면 콜라로, 물을 좋아하면 물로....휴가가면 한번 해 보시라.)( 070721-22 대*림, 모꼬지흔적, n=40*알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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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회자되는 <기독교>와 <비정규직 이랜드>에 스스로 이기적인 한표만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선택한 한표, 내어논 손가락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무감각한 이슈엔 그저 무차별적인 <한표>만 행사하는 것은 아닐까? 나만 보고 고민하는 글쓰기가 어느 덧 흔적으로만 존재할 수 없음에 좀더 사회적인 기능, 너에 대한 느낌을 배려하지 못함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터넷 글쓰기도 이런 한표로 채워지고, 오프라인의 생동감이나 오감이 존재하는 만남의 관계가 있지 않고서는, 여물지 않는 시각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책임없는 한표로 끝나거나, 오해로 인한 상처만 받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전자민주주의란 것이 어느 단계까지 선형적인 증가가 있다고 판단하지만, 시공간의 물리적 관계가 부족할 수 밖에 없음으로 인한 하락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내용있는 알라디너의 모꼬지도 괜찮을 듯하다. 눈팅만 해서 사람을, 생각의 골, 그 사람이 담지한 문화,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이지 않을까? 누리꾼의 논쟁이 한번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논쟁, 논의를 풍부하게 하는 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아날로그로 대면하고, 느끼고 다시 돌아와 논의를 진척시키는 것만큼 빠른 길은 없지 않을까 싶다. 혼자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그것이 돌아가는 듯하지만, 지름길 가운데 한가지 일 수 있다.

 끊임없는 활자를 되새김질 하는 일, 마음에 들어온 상처의 말은 떠나간 애인 편지의 한줄에 미련을 갖는 일만큼 허망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 시각, 눈팅의 한계가 아닐까? 표정과 향기, 듣고, 느끼는 즐거움을 버린....

상처의 말을 다시볼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의 장점이라구. 이것은 독이다. 관계에 있어 서로를 허무는 독이 아닐까? 그 독이 키운 논의는 지속적인 뺄셈이라고 여긴다. 보고 볼 수록 상처만 덧보태는 독이다. 집착같은 불필요한 감정을 재생산한다는 표현이 맞을까? 마을에 쓴 글은 한표가 불끈한 감정이든, 논리정연한 반박이든,  논리정연한 주장이든, 나만 생각한 한표, 나-너만 생각한 한표가 아닐까? 다른 우리를 감안한 한표인가? 이미 상처난 마음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은 관계에 있어 한계가 있다. 그 응어리들은 논리로 이성으로 풀어지는 것일까?

(예방을 생각한다면, 논의의 지점을 살리고 풍부하게 하고 싶다면, 생각의 접촉면이 풍요로워지고, 그 지점을 숙성시키고, 빨리 효과를 보고 싶다면) 이런 인터넷 세상에서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하겠지만, 만나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않고서는 질적인 풍요로움을 느끼기는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생각이란 것이 고민이란 것이 관점이란 것이 생각보다 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가 생긴 뒤, 이미 늦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진정 배려한다면, 인터넷의 만남을 관점이나 다양함으로 가져가고 싶다면, 부질 없이 생각하는 지 모르지만 선물하고, 만나고, 오프의 관계같은 아날로그란 전선을 갖지 않는 한 없다고 여기는 것이 지금까지 인터넷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다.(논리적이거나, 연구 논문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서두)

아프지만, 성숙을 위한 마을의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주저리주저리 애초 흔적의 의도를 벗어나 길어졌다. 미안한 마음..

(고 김선일씨 만큼 마음이 무겁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루 빨리 아무일없이 해결되기만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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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70728 누리꾼 생각글 - 풍요로움을 위한 윤리(作)
    from 木筆 2007-07-26 11:14 
       인터넷 생각글의 풍요로움에 대한 단상  - 생각글은 어떻게 풍부해질 수 있는가?  - 왜 입장이 다른 생각글은 인터넷공간에서 공약수를 쉽게 찾지 못하는가?  - 생각글이 여물거나, 숙성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 인터넷 공간은  왜, 활자에 집착하게 되나, 상처란 감정에 귀기울이지 못하는가?  - 상처 댓글은 왜 인터넷공간에서 더 증폭되는가? 처음
  2. 논쟁의 발화지점 다시보기.....
    from 木筆 2007-10-09 10:04 
    0. x축을 지금이라두자. y축을 시간이라고 하자. 지금이라는 수평면을 상황이 벌어지는 국면(생각면)이라고 하자. 그리고 a라는 사람의 생각, b라는 사람의 생각이 부딪치거나 발화하는 지점이라고 하자. a라는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직선일 필요는 없지만, 일정한 생각의 방향성을 가지고 왔다고 하자. 굳이 a와 b일 필요도 없고, c와 d로 이어진다고 하자. 그러니 다양한 주제로 다양하게 생각면을 가질 수 있다고 하자. 1. 사람들은 발화지점,
 
 
조선인 2007-07-2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모꼬지라니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2007-07-26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6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