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남쪽에서 온 선물. 티벳의 파랑 하늘과 하늘까지 잇닿은 길과 뼛속까지 스미는 바람까지. 30km-70km의 바다를 들어올린 호수를 바라보며, 오감의 상상력이 닿지 않을 곳을 대면했을 때 어떠할까? 모두 감각은 정지한 듯 고요할까?

걸인이 반이며,  호수 사진을 찍어도 돈의 강압이 오는 곳.  문화혁명 파고에 스러지듯 남은, 지금은 자본의 때와 국물로 일상이 점거되어 버린 곳은 아닐까? 

 자본화의 속도에서 인 욕망은 어김없이 삶을 도려낸다. 일상을 낱낱이 돈으로 귀속시켜버린다. 경계로 가면 갈수록 날개짓은 바투 일고 세다.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영혼을 훔쳤다고 보상하라고 하면 보상하겠지만, 손을 벌리고 돈을 요구하는 일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고요의 나라는 더 이상 지구상엔 없는 것은 아닐까? 영혼을 망쳐버린 관광객의 욕망으로 그들은 이미 얼룩진 것은 아닐까? 왜? 그토록 자본의 변방은 삶이 복제되는 것일까?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저자가 사*맹 일원이었다고, 보길도를 단식으로 지켜내었다는 흔적을 보았다. 그로 인해 이렇게 티벳을 빨려들어갔다 나온다. 씁쓸하고 아리다.

자본의 때가 묻지 않는 고원을 상상해본다. 자본의 때가 묻지 않은 오체투지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시작을 상상해본다. 뼛 속까지 스미는 바람과 파랑, 하늘에 놓인 길을 가슴에 넣고 걷고 싶다. 감사

 2.

<나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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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1-0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의 무식함을 좀 어떻게 해보려고 문학책만 아홉권을 주문하고 들어왔슴다.
그랬더니, 구미 당기는 티벳 얘기가 턱하니 기다리고 있구려.
일단 보관함에 담고 새해는 희망이 날아갔어도 잘 견뎌보자고 안부 묻고 갑니다.

여울 2008-01-05 12:18   좋아요 0 | URL
여우님의 문학탑이 높게 쌓이는 것 만큼, 알량하기 그지 없는 제 것이 초라해보입니다. ㅎㅎ. 티벳책, 사진이 아름답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이 땅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는 이유로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인들이 있다. 한때 '천재 라고까지 일컬어지며 시를 썼지만 이들은 불치의 병으로, 불의의 사고로, 혹은 생활고를 비관하여 음독 자살로 생을 서둘러 마감했다. 뛰어난 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시인 모두 요절했다는 이유로 '묻혀버린 시인', '잊혀진 시인'이 되고 만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찍 세상을 떴다는 것만 해도 억울한 일일터인데 이들 시인은 지금껏 문단의 조명을 받은바 없다. 학계의 연구 대상이 된 적도 없으며 독자의 사랑을 받은 적도 없다. 지인들의 회고담은 남아 있지만 논문의 거의 없다. 살아가기가 팍팍했던 시절에 일상을 등진 이들을 위해 초혼제를 올리는 심정으로 시전집을 낸다.(출판사책소개에서)

 

김우창전집에 [서민의 살림, 서민의 시 -임홍재의 시],라는 비평이 있어서 거꾸로 들어와본다. 가슴이 아리고 뜨겁다.




춥고 가난한 겨울을 위해

남들은 다 버리는 무우청을 엮는다.

갈수록 쓰임새와 먹새가 늘어

가계부는 붉게 얼룩져도

아내는 부끄럼을 감추고

이웃집 것까지 거둬 모은다.

배추, 무우값이 똥값인데

요즘도 시래길 다 먹느냐며

수입식품만 먹는

기름진 이웃들 틈에서

우리는 자꾸만 난장이가 된다.

주눅이 들면 안된다고

그래도 아내는 열심히 뛴다.

구수한 황토 냄새

고향 맛을 그대로 간직한 시래기가

진귀한 듯 진귀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 곁에서

나는 허리끈을 졸라매듯

매듭을 꼭꼭 조여 맨다.

내일, 내일, 내일……

아내와 내가 믿는 내일은

따습고 밝을 것인가

시래기국처럼 구수할 것인가

생각하며 무우청을 엮는다   (1980)

2.

 지렁이 울음 소리 - 임홍재

달밝은 가을밤 귀뚜라미처럼

노래나 부르며 살았으면 하던

그 어린 시절

나는 왜 그토록 지렁이 울음 소리를 싫어했던가.

찌르르 찌르르르

신경의 올과 날을 물어 뜯으며

끊어졌다 이어지는

가냘픈 소리를

왜 사랑하지 못했던가.

밟히며 짓밟히며 수렁창에서

끈질기게 살아도

달밝은 가을밤

청명한 귀뚜라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지렁이 울음소리가 나를 물고

밤을 새운다.

섬돌 밑이나 돌담가에서

꿈틀대며 꿈틀대며

징그럽게 사는 꼬락서니가 싫어

발로 짓뭉개거나 두 동강을 내던

어린 시절의 그 지렁이가.

이제는 아예 내 몸속에 자리하고

청명한 가을밤

귀뚜라미처럼 귀뚜라미처럼

한세상 노래부르며

끗발 좋게 살자던 꿈은

다 어디 갔는가.

무엇 때문에 나는

지렁이처럼 숨 죽여 우는 것일까.

아 나는 왜 지렁이가 되어

밤마다 우는 것일까.

<청보리의 노래, 문학세계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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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1-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강화도의 함시인이 생각나누만요.......추운데 잘 지내시나..쩝

여울 2008-01-0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강열한 듯, 사서 보게되면 몇 편 더 올리지요. ㅎㅎ

파란여우 2008-01-0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때는 제가 시적 감수성이 없다는 사실, 시인을 잘 모른다는 사실, 시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 무엇보다 시어의 함의를 짚지 못한다는 사실이 제일 불만입니다.ㅎㅎㅎ

여울 2008-01-05 12:15   좋아요 0 | URL
여우님이 시적 감수성 운운하시면, 다른 분들은 어이하시라고 망언?을 서슴지 않으십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ㅎㅎ 임홍재 시인은 정말 가려진 시인같습니다. 갇힌 시인이 많은 것은 어찌보면 행복은 아닐까 합니다. 빨리 품에 안고 싶습니다.
 

 

 

 

 

0. 정치적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는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듯이 보이지만, 그 경계밖을 고려하지 않는다. 경기장안에서의 합리와 평등을 집요하게 합리화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현실보다는 경기장에 올라오기 위한 권력이 난무하는 현장의 요소가 태반이다. 경기장에 올라오기 위한 힘의 관계, 영역을 면밀히 보아야 한다.  정치적인 것으로 귀환을 이야기한다.

1. 무페가 여자인지도 최근에 알았다. 라클라우-무페라고 신사회운동이 바람이 불 때 일견식한 것 같은데, 이렇게 복습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 일찍 일어나 새롭다고 하는 마지막장과 후기를 읽고나서야 아~ 그렇구나라고 상기하게 된다.

2. 정치철학에 한 무식한 나에게도 이렇게 쉬운?말로 해제를 해주어 고맙다. 읽어나가며 학문에 대해 생각해본다. 공간에 머물러 완결성을 가지려고 하는 노력과 집요함은 시간에 대해 열려있지 않다.  공간에 너무 집착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아닐까? 시간의 축으로 볼 때, 남발한 학문은 얼마나 많은가?  의식이라는 것이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지금의 완결성에 집착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면에서 양쪽을 열어두는 무페의 정치철학의 학문이 열려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에도 연동되지 않나 싶다.(고인 물은 더이상 흐르는 물이 아니다)

3. 민*당 논쟁, 논쟁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경기장 밖을 보지 못하고, 논의의 반열에도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정파?적 이념 역시 공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가올 것, 무수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올려놓으려는 노력도 시선도 마음도 없는 사고의 경직성이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닌가 싶다.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중을 보려고도 보이지 않는 것을 살피려고도, 인터넷 논쟁의 축소판으로 번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시간의 축을 가져와서 반성적 자신을 대입시켜보거나 또는 사고를 열어두거나, 개인의 마음으로 가져가는 노력도 부족한 것 같다. 평론이나 관점이 맞는 것이 없나 하는 식으로 상품을 고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4. <물질과 기억>을 같이 올려놓는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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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일상으로 녹여내는 일,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이윤에 굶주린 자들><미친기후를 이해하는 짧지만 충분한 보고서>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는 이 땅에서 배부른 소리 좀 하려고 합니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무슨 남 걱정할 일이냐라구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노동운동도 하기 힘든데, 사회운동하기에도 정신없는데, 과학기술자운동까지 신경써야 하는 거야구. 도대체 당신들은 마음 편하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거냐구 말입니다.

도대체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다고 지구의 기후까지 신경써야 되는지? 뭐가 대단한 일이라고 석유까지 신경써야 되는 것인지?

금융과 자본은 세계화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정치는 세계화되지 못했습니다. 아니 꿈도 꾸지 못하죠. 세계무역기구는 있어도 세계환경기구나 세계윤리기구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불감증에 걸린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을 아프지 않는 것으로 등치시킵니다. 북에서 몇백만이 홍수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지?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삶이 내동댕이쳐지는지 보이지 않기에 아파할 틈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상하고 연결시키지도 않습니다.

아픔이란 것이 세계화되지 못할 때, 그렇게 앎이라는 것이 뉴스처럼 보도만 될 때, 우리의 불감증은 더욱 더 강도가 세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소비라는 행위를 동시에 합니다. 을의 처지에서 졸지에 갑의 처지로 바뀌기도 하지요. 한편 사회활동을 하는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구성하는 일원이기도 합니다.  교육운동-농민운동-여성운동-환경운동-농민운동-학생운동-과기운동-이주노동자-빈민운동-분권운동 같은 운동의 구성원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가 아파하는 것이 더욱 크다라는 사고는, 내가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므로 알아줘라! 내 주위로 모여야한다고 은연중에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픔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는 노력으로 아픔을 서열화하려는 허튼 짓은 아닌가요? 동시에 아파하지 않을 때, 같은 아픔에 대해 서로 모색하려하지 않을 때, 정신없이 속도에 취해 온 것처럼 그냥 휩쓸려가지 않을까 합니다.

지역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하고, 학교에 급식이 되도록 제도화하는 일, 사회단체를 통해 관리 감시하는 일과 만들어가는 일이 노동운동과 별개일까요? 교육운동과 별개일까요? 여성운동과 별개일까요? 과기운동과 별개일까요? 비정규직을 남발하는 대형마트나 자본과 기업을 속속들이 밝혀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가슴에 가져가도록 하는 일, 구매를 조직적으로 하는 일이 합쳐지면 아무 의미가 없을까요? 슈퍼와 벼룩시장을 살리고, 대형마트가 들어설 때 옵션을 두거나, 할인마트 운영시간을 줄이는 일이 시답지 않은 일인가요? 학원자본을 키우는 학원의 먹거리와 학습시간에 제한을 두는 것이 교육운동이나 침체를 걷고 있는 노동운동과 관계없는 소시민의 일일까요? 열악한 근로환경과 작업환경을 비교하도록 데이터를 내고, 비교가능하도록 노력하는 일은 쾌쾌묵은 일들을 하는 것일까요?

석유생산의 정점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현재화되고 있으며 , 곡물 역시 우리의 식탁을 점령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건강과 삶이 담보잡힌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기후온난화가 아니라, 양극화되어 가뭄과 폭우, 한쪽엔 긴 장마로 고착화되었습니다. 어김없이 자본의 양극화와 기후의 양극화로 세계인구의 1/6이 버젓이 굶어죽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친 기후라고도 하니 말입니다. 그대로 살면 좋을텐데. 안다는 것이 몹시 불편한 일이죠. 외면도 습관이 될 수 있을텐데. 찾아서 알아낸다는 것이 무척 불편한 일입니다.

일상의 절반이 석유중독으로 점유되어 있고, 먹거리의 절반이 곡물자본으로, 너무도 익숙한 것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 자식만,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게하려고 하여도 지혜있는 앎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익숙한 것과 다음세대는 분명히 결별하여야 될 것 같고, 지금 이 세대는 결별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 아픔은 고스란히 증폭되어 대물림될 것입니다.

없는 살림에 더 줄이라니 야속하지 않나요? 있는 놈이나 줄여야지 내가 뭘 기여한다고 줄이라니? 매일 먹는 먹거리도 의심하라구요? 그 판에 박힌 에너지 절약을 해야된다구요? 쇼핑중독인데, 그 사는 것 하나하나 신경써보라구요? 없는 살림에 더 비싼 유기농을 먹으라구요? 먹고 살기 바쁜데 농민들 걱정까지 하라구요?

줄이고 남기고 아낀 앎들은 어디에 쓰나요? 당신의 지난 일년 바뀐 삶이었나요? 일상은 다양해졌나요? 다르게 해보신 것 얼마나 되시죠? 다양한 삶의 가지수에 대해 논의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젠 여러분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답을 주셔야 할 때입니다. 

눈발, 참* 분들에게 보내는 뉴스레터 한 꼭지로 ... ... 분야에서 일가견하시는 분들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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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0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에선 오히려 살만하신 분들이 더 무관심하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고, 곱씹어 읽어 봅니다.

여울 2008-01-03 0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그런 면에서 저도 살만한 분?!인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줄이고 남기고 좋은 데 쓰겠습니다.

파란여우 2008-01-0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제 별장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그곳도 덧글은 남기지 않지만 은근 방문객이 많은 곳이라 널리 질문을 던져 놓고 싶군요.
허락해줘요^^*

여울 2008-01-05 12:08   좋아요 0 | URL
어여 가져가세요. 카피더레프트입니다. 찢고 늘리고 볶고해도 상관없습니다요. 이미 제 소유임을 떠났습니다. ㅎㅎ
 

 

 대*림 송년회, N =40-50, 식사를 하고 모임운영에 대해 몇분이 이야기를 꺼낸다. 이대로 아쉬움이 밀려와, 재차 다시 논의를 재촉하며 올려놓는다. 풍물모임이니 어떻게 하는 것까지는 좋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은 배제된 채로 결정되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 만약 한다면 과외나 지금하는 것 한가지씩 줄이고 한다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가버린다. 아이들을 너무 못살게 굴지 않나하는 야박한 심사와 반가족과 반주민인 남자어른들, 주부와 교감엔 이미 선과 정보에 차이가 있다.

섞고 흔들고, 생각과 행동이 섞이게 만들 수 있을까,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을까? 아이들은 덜 과로하고 덜 긴장하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마음에 자리잡으니 한편 측은하기도 하다. 막아서는 양반들에 끌려 들어온 것이 새벽 네시쯤이다.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 함께 움직이는 합이 늘 제자리이거나 음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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