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는 이유로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인들이 있다. 한때 '천재 라고까지 일컬어지며 시를 썼지만 이들은 불치의 병으로, 불의의 사고로, 혹은 생활고를 비관하여 음독 자살로 생을 서둘러 마감했다. 뛰어난 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시인 모두 요절했다는 이유로 '묻혀버린 시인', '잊혀진 시인'이 되고 만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찍 세상을 떴다는 것만 해도 억울한 일일터인데 이들 시인은 지금껏 문단의 조명을 받은바 없다. 학계의 연구 대상이 된 적도 없으며 독자의 사랑을 받은 적도 없다. 지인들의 회고담은 남아 있지만 논문의 거의 없다. 살아가기가 팍팍했던 시절에 일상을 등진 이들을 위해 초혼제를 올리는 심정으로 시전집을 낸다.(출판사책소개에서)

 

김우창전집에 [서민의 살림, 서민의 시 -임홍재의 시],라는 비평이 있어서 거꾸로 들어와본다. 가슴이 아리고 뜨겁다.




춥고 가난한 겨울을 위해

남들은 다 버리는 무우청을 엮는다.

갈수록 쓰임새와 먹새가 늘어

가계부는 붉게 얼룩져도

아내는 부끄럼을 감추고

이웃집 것까지 거둬 모은다.

배추, 무우값이 똥값인데

요즘도 시래길 다 먹느냐며

수입식품만 먹는

기름진 이웃들 틈에서

우리는 자꾸만 난장이가 된다.

주눅이 들면 안된다고

그래도 아내는 열심히 뛴다.

구수한 황토 냄새

고향 맛을 그대로 간직한 시래기가

진귀한 듯 진귀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 곁에서

나는 허리끈을 졸라매듯

매듭을 꼭꼭 조여 맨다.

내일, 내일, 내일……

아내와 내가 믿는 내일은

따습고 밝을 것인가

시래기국처럼 구수할 것인가

생각하며 무우청을 엮는다   (1980)

2.

 지렁이 울음 소리 - 임홍재

달밝은 가을밤 귀뚜라미처럼

노래나 부르며 살았으면 하던

그 어린 시절

나는 왜 그토록 지렁이 울음 소리를 싫어했던가.

찌르르 찌르르르

신경의 올과 날을 물어 뜯으며

끊어졌다 이어지는

가냘픈 소리를

왜 사랑하지 못했던가.

밟히며 짓밟히며 수렁창에서

끈질기게 살아도

달밝은 가을밤

청명한 귀뚜라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지렁이 울음소리가 나를 물고

밤을 새운다.

섬돌 밑이나 돌담가에서

꿈틀대며 꿈틀대며

징그럽게 사는 꼬락서니가 싫어

발로 짓뭉개거나 두 동강을 내던

어린 시절의 그 지렁이가.

이제는 아예 내 몸속에 자리하고

청명한 가을밤

귀뚜라미처럼 귀뚜라미처럼

한세상 노래부르며

끗발 좋게 살자던 꿈은

다 어디 갔는가.

무엇 때문에 나는

지렁이처럼 숨 죽여 우는 것일까.

아 나는 왜 지렁이가 되어

밤마다 우는 것일까.

<청보리의 노래, 문학세계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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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1-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강화도의 함시인이 생각나누만요.......추운데 잘 지내시나..쩝

여울 2008-01-0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강열한 듯, 사서 보게되면 몇 편 더 올리지요. ㅎㅎ

파란여우 2008-01-0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때는 제가 시적 감수성이 없다는 사실, 시인을 잘 모른다는 사실, 시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 무엇보다 시어의 함의를 짚지 못한다는 사실이 제일 불만입니다.ㅎㅎㅎ

여울 2008-01-05 12:15   좋아요 0 | URL
여우님이 시적 감수성 운운하시면, 다른 분들은 어이하시라고 망언?을 서슴지 않으십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ㅎㅎ 임홍재 시인은 정말 가려진 시인같습니다. 갇힌 시인이 많은 것은 어찌보면 행복은 아닐까 합니다. 빨리 품에 안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