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일의 풍요로움
대전 근대사산책이 있던 날, 일요일 늦잠을 자구 버스를 기다리는데 도통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젊은 친구가 건네온다. 먼저 기다리던 여학생은 서울 모대를 수시입학하고, 뒤늦게 온 뚱뚱한 편인 친구는 재수를 결심한 모양이다. 이리저리 나누는 이야기들에 엄연한 현실의 존재감은 둘을 가른다. 쌀쌀한 날씨 두둠하게 내의까지 챙긴 차림, 목도리에 비해 갸날픈 여학생의 모습은 너무 추워보인다. 서빙으로 80만원을 벌었다는 현실. 친구와 영화보러가는 길. 버스에 오르자마자 영화를 보기로한 그 여학생친구. 뚱뚱한 편인 친구는 섞이지 못하고 다른 곳에 앉는다. 늘 이 사회가 그렇듯이 친구의 경계는 선명한 듯하다.
그렇게 기형도의 시집을 넘기며 만*동 중학교 근처에 버스가 지나자 30대의 아가씨 목소리인 듯한데, 뒤에서도 다 들리도록 어디를 가느냐라구 묻는 소리같은데 곧 관심을 벗어난다. 시대의 우울이 배인 시집 이곳저곳을 들춘다. 그런데 상기된 억양과 톤의 목소리를 계속 이어진다. 아마 화답하는 사람도 없는 듯 싶다. 뚜렷한 대화의 흔적은 없는데 일정한 색깔의 목소리는 짙어지고 마주치는 시선은 없다. 곧 화면에 들어온 30대초중반의 아가씨는 기억이 선명하지 않지만 모자에 분홍색 하이힐을 신고 깔끔한 차림으로 여전히 공중에 대화를 하고 있다. 버스가 서고 차문이 열리고 주공 3단지 앞 주차장에 내리자 마자 버스에 대고 밝은 목소리로 "즐거운 하루"를 외치고 사라진다.
그녀를 오늘 다시 기억에서 불러내어 [즐거운하루]님으로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 [즐거운하루]님은 약간 들떠있고 "솔"에 약간 못미치는 음을 낸 것 같다. 그 기억은 쌀쌀해진 대전역, 한켠에 모이고 약간 늦은 다른 분을 기다리는 장면과 겹친다. 대합실 전경을 넣으려고 사진을 찍은 일행의 후레쉬에 날카롭거나 아니면 심심하던, 아니면 일과 가운데 하나로 이을 요량인 노숙하는 아저씨의 실갱이로 이어진다. 초상권을 침해하였다는 것인지 그것을 빌미삼아 뭐를 하자는 것인지. 촛불의 심심치 않은 행동대원 아저씨들이 그날도 어김없었다.
정신장애인에 대해 서툴다. 편견도 시각도, 더구나 몸으로 겪은 적이 거의 없기에 더구나 더 그러하다. 그저 활자화된 지식으로 지금의 사회가 받아내지 못하거나 격리되거나 폐쇄병동으로, 가끔씩 선생님들의 협박용으로...너희들 그러다가 저기로 간다거나...영화의 잔상으로 남아있는 정도이다. 먼댓글의 [지금도 이대로도 괜찮아]를 읽다가 생각이 겹쳐들어 흔적을 남긴다.
기형도는 어릴적 기억을 불러낸다. 부친의 사업실패와 병마, 어려운 생활이 그대로 그의 온몸에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정신장애를 갖는 사람들이 일련의 수세대 수십년에 걸친 악순환의 구조뿐만 아니라, 각박한 현실이 제조해낼 수도 있다는 징후에 무척 아프다. 성실한 학생, 회사원, 주부를 가리지 않는다. 정신병을 갖고 있는 경우 더욱 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이 더 어렵게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솔직한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아무런 소통방법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잘모르겠지만
자기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너를 마음에 두지 못하고, 관계에 단절된 모습은 우울한 현실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그 반대편을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즐거운 하루]님은 안녕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