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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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시의 말미가 부사의 존재론이다. 생각의 키재기가 그런 것일까? 누가 먼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명하는가!가 문제이겠지? 그런 대표적인 시로 [와락]을 꼽는다. 그것이 유행의 레이더 망에 걸리지 않고 서로서로 풍요로운 다른 길을 갈 때 그 출발은 풍성해지는 것은 아닐까? 시나 평론이 늘 유행의 거미줄에 걸려, 유사한 박자를 만들어낼 때, 맥을 못추는 것은 아닐까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2. 지난 책을 읽다가 겹친 [어른이]란 표현도 지금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절망의 바닥에 마음을 닿고 벗어나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라면, 새로움이 그 고민이 생각의 파격을 일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늘 그 손가락만 보는 것은 아닐까? 유행만큼 더욱 더 무서운 것은 생각의 의탁이고 아주 가까이 살아 숨쉬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일들은 아닐까? 다른 책을 보는 말미 보다 흔적을 남긴다. 3. [옛 애인의 집]이란 시집과 [옛 애인의 집]이란 시의 말미를 보고 사실은 놀랐다. 세상의 모든 집, 모든 곳이 옛 애인이라니, 시인의 감각은 날카롭고 가슴을 져민다. 절망의 바닥에서만 샘솟는 절규일까? 이름을 지우고, 너의 흔적에, 늘 옛 애인같은 일상은 뭔가 일을 낼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부사의 존재론은 공감하는 바가 크다. 1.1 나는 명사인가 동사인가...?형용사인가? 그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 중요한 일이지만 치우치거나 마음 주지 않은 것에 눈길, 마음길 한번 주는 것이, 지금과 달라지는 것이 중요한 이야기일 것이다. 4. 문장을 공감하며, 나의 방점에, 너의 방점에 귀기울이는 일, 연습 역시 나를 , 너를 바꾸는 일이다. 어쩌면 바꾸는 것이 중요할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