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50404093010177

 

보지 않으려 읽지 않으려 애를 쓰다.

며칠을 참다가 기사를 

문득 읽어버렸다.

 

눈물이 난다. 눈가가 붉어진다.

 

'밀도 높은 삶, 숙성, 돈이 안되는 일, 쟁이 'ᆞᆞᆞ

다음 글은 볼 수 있을까.

 

 막걸리 세통 사들고 벗들과 얘기나눌 수 있을까. 무례하진 않을까 ᆞ

 

ᆞ그래 난 글을 읽기가 겁이 났어ᆞᆞ참 부끄러워지거든 ᆞᆞ ᆞ

 

 

볕뉘

 

읽고 난 뉘, 사무실 문을 닫았다.

엉엉 울고 싶어졌다.

 

큰소리로 울고 싶었다

눈물과 콧물을

휴지로 훔치다

 

울고나니 많이 시원해진다. 아직 이런 선생이 곁에 있다니 든든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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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4-0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님은 읽기를 망설이셨다는데 저는 냉큼 가서 읽고 왔네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눈물이 아니라 눈물만큼 속깊은 웃음을 피울수 있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렵겠지요?
그가 처음 만든 듀오 이름이 입에서 막 구르네요 ˝도비두˝ ^^

여울 2015-04-08 09:12   좋아요 0 | URL
도깨비 두마리 ㅎㅎ 도비두....

지난 날을 떠올리며 슬몃한 미소가 번지는 인생이라...더 멋있네요^^
암튼 원없이 살아야겟죠^^

내비둬
이렇게 살게 내비두 오~~ 좋군요... 도비두...내비두. 레비두.ㅎㅎ
 

고진은 내향 세대를 옹호하는 근거를 헤겔의 지평을 변형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한번 깊게 내향적이지 않으면, 진정으로 바깥으로 향할 수 없다.” 자기 내면으로 가는 것은 헤겔식으로 말하면, 자기 안에서 대립을 만들고 그 대립을 자기의 한 계기로 지양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외면화와 내면화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고진에게 내면화는 외면화의 기반이며, 철저한 주체성은 철저한 타자 관계성을 의식하고 있다. 이에 기초하여 그는 자신의 좌익적 체계를 주체로서 좌익적 문학으로 개념화한다. 이것은 전공투 세대를 겨냥한 것이면서 전공투 세대에게 비판받는 요인이기도 하다. 445

 

고진이 보편적 인식을 지향하면서 칸트와 맑스를 연결할 때, 연결 속에서 등장하는 세 항은 서로 독자적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된다. 세 항들의 이중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맑스와 칸트를 도입하는 고진의 주장을 살펴보자. 나는 최초에 소위 네이션=스테이트란 자본=네이션=국가라고 서술했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시민사회=시장경제(감성)와 국가(오성)가 네이션(상상력)에 의해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말하지면 보로메오의 매듭입니다. 즉 어느 하나를 없애면 무너지는 매듭입니다.” “칸트의 인식 기능으로 번역하면, “네이션은 국가와 자본주의 경제라는 서로 다른 교환 원리에 서는 것을 상상적으로 종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환양식논의와 분리할 수 없으며, 동시에 어소시에이션을 실현하는 부단한 과정과 맞물려 있다.“ 457

 

고진의 반복강박은 천체의 반복처럼 자본의 확장대의제의 불완전함에서도 드러난다. 맑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에서 대표제의 불완전성을 언급하면서 대표하는 것과 대표되는 것 간에는 필연적 관계가 없다는 논지를 설파한다. 맑스가 여기에서 지적하는 것은 유권자의 손에 의해 뽑힌 대표자가 선거 이후에 유권자의 의지를 저버리는 현상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선거 이후가 아니라 선거 이전의 문제이다. 유권자는 투표할 때, 자신과 동일한 당파성이나 이해관계를 견지한 사람에게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투표하며, 뽑힌 대표자를 자신의 당파성과 배치되는 방식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대표성의 불완전함이다.“ 474

 

고진은 세계공화국에서 인류 전체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세 과제를 제시하면서 글을 맺는다. , ‘전쟁환경파괴경제적 격차로서 인류 문제를 제시한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공히 집약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곧 국가와 자본의 문제로 귀착하게 된다. 고진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칸트처럼 국제연합을 고려하면서 각 국가는 장기적 안목에서 국제연합군사적 주권을 서서히 양도하는 구조, 그래서 점차로 확장된 국제연합을 구성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확장된 국제연합의 최종 이념은 세계공화국이다. ‘세계공화국은 현실적으로는 실현될 수 없는 규제적 이념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만약 이념을 포기한다면, 지향점이 사라질뿐만 아니라 노력을 위한 추동력도 사라질 것이다. 고진은 그럴 경우 미래를 위한 상상력도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당면한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노력위로부터의 노력이 동시에 요구되는데 어소시에이션세계공화국은 그 양면이다. ‘확장된 국제연합실현 가능한 구성적 이념이며, 우리 모두가 위로부터강화해나가야 할 요소이다. 그러면 아래로부터와 위로부터의 운동의 연계에 의해 새로운 교환양식에 기초한 글로벌 커뮤니티(어소시에이션)가 서서히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478

 

볕뉘.

 

1. 재독하거나, 지나쳐버린 흔적들을 다시 쫓고 있다.  기억을 상기시켜주고 잊혀진 것들이 이어지는 느낌이 좋다.  쓰는 개념들이 다르긴 하지만 맑스에 고정점을 두고 다시 고민과 삶, 사상의 결을 반추하게 해주어서 고맙다.  읽고 스치고 안개같이 몽롬함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비교적 가까운 용어를 써야할 사실을 대비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2. 발리바르, 바디우, 랑시에르, 라클라우, 무페, 그리고 고진을 다시 본다. 윤여일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서동민의 '두제곱의 사유', 지금 말하고 있는 '외면화와 내면화'는 타자와 관계성 확장을 위한 철저함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국가, 정치, 경제, 주체, 윤리라는 문제들을 좋은 것, 나쁜 것으로 구획짓고 객관화하는데만 익숙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볼 줄 아는 것, 정녕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라고 되물을 수 있을까? 맑스이전의 사고, 맑스에 멈추어선 사고이후 우리는 스스로의 허상을 얼마나 허물 수 있을까?  무너지는 만큼 다시 설 수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을까. 치열한 고민과 시선과 사유를 따라갈 필요는 없을까? 과거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얼마나 재사유화, 재삶화하느냐에 따라 다가올 미래는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은 아닐까

 

3. 어쩌면 다 무용한지 모르지만, 내면화의 과정을 겪는 것과 겪지 않는 것의 지평은 다를 것이다. 자본을 너머서려면 노동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실업에 천착해야 하며, 정치의 공황을 너머서려면 프랑스혁명의 지점에 다시서야 한다는 점들.  어쩌면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들에 다시 논의를 불붙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쟁과 환경파괴를 너머 경제적 격차를 함께 아우르지 않으면 우리의 상상력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고진의 말과 정치철학자의 외침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4. 오랜만의 푸념이다. 삼독을 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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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0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세계공화국과 피케티의 글로벌자본세는 의의면에서는 상통하는 것 같네요. 둘다 실현불가능한 규제성이라는 지적을 받는 것까지. 그 기반의 맑스 또한.

푸념이라 생각되지도 않지만 게의치 않습니다. 사람인데! 늘 좋은 글, 사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여울 2015-04-06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 다듬지 않는 글 잘 봐주셔서 고마워요. 봄이 아까운 시간들이네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기계화가 인쇄술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는 규격화되고 반복 가능한 의무를 수행하는 기계를 발명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 전에, 인간이 기계화되어 인간 자신이 기계적이고 획일적이며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변모되거나, 정확하고 획일적이며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변모되거나, 정확하고 획일적이며 반복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스스로에게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적 분업은 기계적 분업에 선행하고, 대체로 기계적 분업은 복잡한 자동 기계의 발명에 선행합니다. 최초의 단계는 인간 전체를 하나의 확대된 눈, 확대된 손, 확대된 손가락으로 전락시켜 모든 다른 기능을 이 확대된 영역에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104

 

낙서하나 없는 여백! 더러운 손자국이 전혀 없는 책! 모서리를 접은 흔적도 없는 책! 그러나 예술이 사적 생산을 저해하는 한, 문맹에 가까운 시대에도 충분한 책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결국 필사본의 발전 과정에서 기술성과 심미성이라고 하는 두 가지 추진력은 갈림길에 서게 됐습니다. 필사본의 심미적이고 개성적인 부분은 책의 실용적 임무를 방해했습니다. 따라서 사상의 유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예술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이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바로 그때, 기계가 도입돼 그런 과정의 반복 부분을 떠맡았습니다. 그 결과 인쇄술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완전하게 성숙했습니다.” 108-109

 

우리가 기계의 발전을 예술과 그 고도의 비밀을 상실하는 경우 다시 발명할 수 없는 예술인, 수공예 속에 있는 기계의 근원으로부터 너무 멀리 떼어 놓아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생물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기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기생이 아니라 공생이어야 합니다. 나아가 이는 기계의 실용적인 장점이 인간의 자율성이나 발전을 위협하면 기계와의 협동을 거부하고 심지어 일시적으로 포기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111

 

회화가 입체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의 출현과 같은 급격한 변화 과정을 겪은 반면, 인쇄업에서 1920년대라는 광기의 시대에 화가의 동료들이 전환시킨 가장 거친 관념이란, 아마도 민주주의적 관심에서 대문자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 또는 음영이나 셰리프가 없는 활자체 너무나도 부적절하게도 현대 고딕이라고 불리는 가 과거 활자체보다 선호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13

 

기계 예술의 규범은 본질적 요소에 대한 정확성, 경제성, 원활성, 엄밀성, 제한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규범이 부적절한 장식의 응용이나 부적절한 형식의 포장에 의해 침해될 때, 그 결과는 기계의 인간화가 아니라 비속화입니다. 가령 연필깎이나 다른 문방구를 유선형으로 만든다든다, 다른 자동차의 라디에이터를 상어주둥이 같은 기계적 장치로 만든다든가, 다른 자동차 설계자가 시도했던 것처럼 안전하게 몰딩해야 할 부분을 크롬 화살로 만들어 속도를 강조하려는 경우입니다. 이런 짓으로는 인간적 가치를 확보할 수 없고, 오로지 중요한 기계적 가치를 상실할 뿐입니다.” 118

 

기술의 진로를 지속적 상승이 아니라 평탄한 수평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반적 견해와 매우 다른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은 또 다른 위험한 이단으로 보일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지난 3세기 동안 인류는 끝없는 개량, 개혁, 변화를 지향해 왔습니다. 그리고 공리주의적 교리 문답에 의하면 인간의 주된 의무는 기계적 변화를 유리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만큼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그 변화에 스스로 적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케케묵은 견해는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배울 능력이 없고, 우리가 창조한 기계를 지배하고 그것을 제자리에 둘 능력도 없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계에 사로잡혀 초래한 열광과 강제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고, 따라서 철학과 종교와 예술은 인간에게 다시금 전인적인 삶의 전망을 열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다시는 우리의 것이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우리 자신을 더욱더 완전하게 이해하게 되면, 기계에 속하는 것은 오로지 기계에게로 돌리고, 삶에 속하는 것인 주도권, 선택 능력, 자기 관리, 요컨대 자유와 창조성은 삶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121-122 3[수공예에서 기계 예술로]

 

 

볕뉘.

 

1. 기술의 진로를 평탄한 수평으로 번지는 것으로 한다. 철학과 종교와 예술이 삶의 전망을 열어놓으려면 경제와 정치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기술이 우리의 영혼을 끌고 다니거나 삶을 내동댕이치고 있다면 말이다. 저자는 벤담의 공리주의의 뿌리부터 찾는다. 칸트의 세계시민으로서 역할이나 목적으로 대접하지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는 외침은 여전히 아무런 파고를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외면화와 내면화를 동시에 가늠하여 단 한명의 삶이라도 더 건지려고 의식하지 않는다.

 

2. 주말 처음 대면하는 마을, 길도 모르는 곳에 산책을 나섰다. 양손에 빈병을 가득 챙겨든 할머니가 다가온다.  여기가 어딘지 집을 찾지 못하겠다고 한다. 스마트폰은 있는지 집에 전화는 있는지 걱정이 되어 되물었다. 혼자 사신다고 한다. 어디에 사시는지 낯선 거리가 익숙하지 않아 망설인다. 같이 걷다가 보행길이 나타나서야  몸에 익숙한 곳이 나타나 집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초록불을 기다린다. 안부가 궁금해진다.

 

3. 조금씩 재독을 하고 있다. 생각꼬리를 잡을 수 있을지?, 하지만 쏙 파고 들어와 앉지를 못한다. 안개같은 점선같은 기억에 실선을 조금씩 긋는다. 낯선 공간에 마실을 다녀왔다. 지도가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많은 풍요로움을 주는 시장거리에 점심 때를 놓치면서 거닐다 보니 안개같은 꽃, 눈같은 꽃들이 바람에 날려 떨어진다. 이렇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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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다 꽃이다' ㅡ 피거나 팔리기위해 '눈과 땀'을 닮아 아름다워졌다. 시장엘 가면 봄을 다시 만날 수 있단 생각이 스몄다. 더 아름다워져야겠다. 팔리거나 피기도 하기위해 ᆞᆞᆞ

 

2. ktx 마중겸 나와 *도 시장엘 들러 국밥 요기를 하고 거닐다보니 투박한 말투며, 손님의 마음끝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안간힘이 읽힌다. 그렇게 안간힘이 얹혀 다음에는 발길을 하고 다시 오리라는 것도 그들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한땀한땀 수놓은 좌판과 캘리그라프에는 간절함이 배여있다. 아름다움만큼이나... ...남은 시간 다음날 인산인해를 이룬 벚꽃길을 미리 가본다. 햇살이 비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비가 후두둑 장대비처럼 내리꽂는다.  봄이되 봄이 아니다.

 

3.  묘목과 꽃이 사람들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장터에는 열에 하나가 꽃과 나무다. 마음마저 풍요로워졌다. 시장 한 귀퉁이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생각했다. 벗과 낮술하며 이야기나눌 딱 좋은 곳이라고 말이다. 첫 탐방에 참 다른 묘미를 느꼈다. 바삐 움직여 딸과 해후하고 한달 전에 온 북삼식당의 돼지두루치기를 먹었다. 고기가 떨어졌다. 손님은 줄서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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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4-0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날...참 정감있는 단어예요.
오늘 이곳 장입니다. 점심에 해장국이랑 핫도그 먹을거예요^^

여울 2015-04-07 10:24   좋아요 0 | URL

해장~ 확 당기네요^^

장이란 말만 들어도 설레네요. 어디든 가고싶네요. 따끈한 국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