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짙어가고 해는 거울에 반사되듯, 꽃의 색으로 거듭난다. 밤, 늦은 퇴근길 아*** 근처 마트 앞 로드 카페에서 선생님들과 청소년들의 일탈 깊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사회의 농도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색으로 거듭난다고 한다. 훨씬 집요해지고 순수함이 없다. 그 조직적이란 습속은 기업체의 논리를 담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상상력마저 매마르고 추진력만 남아 좀비같은 이 정권의 뒤끝으로 이어지니 점점 갑갑해진다. 



녀석들은 왜 바닥의 시선으로 올려보지 못하는 것인지. 더운 여름 더 덮다. 좀비정권의 악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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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01 조르바
논 한마지기, 고등어 한손 그리고 난초 한촉(酌)



0. 지난 기억의 단편들을 다른 이의 말들에서 찾는다. 모임의 말미쯤 중동난 흔적들이 어렴풋이 맥락을 잡는다. 먼댓글로 이은 개인적인 흔적도 생각나질 않았는데, 지금 다시보니 몸으로 뱉은 말들은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도 생각도 울타리를 갖는 것이고, 그 정원이 넓어지는 것은 머리의 욕망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어쩌면 손, 발의 영역이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손과 발, 그 몸의 영역이 새롭게 피거나 자랄때, 그 생각도...꿈꾸는 마음도 지평을 넓힐 수 있겠다 싶다. 머리의 기억은 무척이나 얇고 끊겨있는데 생각이란 놈은 어찌 이리도 4년이 지난 시간에도 변함이 없는지 모르겠다. 

1. 열정적인 참여때문에 동*미 모임이 재미있다. 밑줄도 생각도, 마음도 온전히 건네는 것이 편하고 좋다. 그렇게 끌리는 주제는 아니어서 쉴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같이 행간을 나누다보니 생각도 섞이고, 마음도 섞이고 다져진다 싶다. 

2. 지난 흔적을 보니 아마 니체를 부정확하게 읽고 있을 무렵같다. 무수한 조르바를 만나고 있다는 것이나 저자의 베르그송,불교, 니체에 대한 심취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있어,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만다. 후기를 읽어보지만 니체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정확하지 않은 듯하고, 베르그송이나 붓다 역시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터인데..... 

3. 민**샘의 영화이야기가 끌린다. 크레타섬이나 지금의 현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수소문해서 편하게 보고 싶기도 하다. 

4. 화자와 조르바의 관계를 이어지는 인물로 내내 조지오웰이 겹친다. 머리와 손발의 연대..그 사이길과 통로를 만드는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다. 머리만으로 움직이는 가분수의 시대는, 파리의 밑바닥생활이나 위건부두로 가는길의  육화된 몸의 언어로 통로를 내는 모습은 지식인이자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 담겨있다. 어쩌면 그렇게 머리의 언어, 가슴의 언어, 손과 발, 몸의 언어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할 수 있다면, 실끈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아픔을 느끼는 것도, 치유해가는 것도, 즐거움을 받아들이고 지평을 넓히는데 장애를 많이 겪지 않을 것이다. 

5. 다음책은 몸의 말의 조르바에 이어 몸의말에 뿌리를 둔 머리의 말의 확장을 다룬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으로 이어가기로 한단다. 돌아와 빌려온 책들을 매만지다 잠들다. 

  

 

 

 

뱀발. 수다맨이 되어 내이야기만 잔뜩한 것은 아닌지, 혹 듣지 못하고 놓친 것은 없는지, 생각을 누르려는 의도는 없던 것인지, 말하기보다 듣는 편이 너의 생각에 대한 감도가 높은데, 어젠 조금 떨어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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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안다. 스마트폰의 용도를, 호들갑아닌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그들이 또 하나의 사치품을 장만하는 이유를 안다. 손전화를 바꾼 이유하고도, 디카도, 비디오카메라도 피시를 통채로 바꾼 이유도 그리로 통한다. 용도와 무관하게 일단 소유하는 순간, 갈증은 사라지고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뉴스와 장사속과 홈쇼핑이 분간이 되지 않는 지금은 통신비 과식과 맞물려 있다. 아주 조금 사회관계를 개선하는 효과만 있을뿐, 또 다른 악세사리 장식품. 움직이는 동선안에서만 왕복할 뿐. (일-집-일) 괄호밖의 관계는 없다.  

너는 안다. 거기에 혁명이란 말을 붙이는 이유를. 혁명도 싸구려가 된지 오래 그런 곳에나 붙이는 것이 혁명이란 이유를 안다. 그래야 솔깃하거나 자극이 되는 불감증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뉴스나 장사속이나 홈쇼핑에나 써주는 말이다. 실시간으로 고민이 왕래하는 그런 관계가 있다면 어쩌면 아주 조금 혁명의 잎사귀라도 붙여줄 수 있겠지만, 관계도, 사람사이의 농도도 없다. 그저 구별짓는 사치의 용도로 올 한해가 오고갈 생각을 하니 아파트에 쇼파들여놓듯, 김치냉장고 들여놓듯...혁명하고는 전혀 무관한 일들만 반복될 것을 생각하니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시시껄렁한 관계의 유통대역만 늘어날 광경을 목도하자니, 또 다시 시대의 18번을 반복해서 들을 수밖에 없음을.....보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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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6-0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생각하고 갑니다.

여울 2010-06-17 08:46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을 이유도 생각해봅니다. 현실은 그 사이 어디쯤 있겠죠. 다르게 생각을 많이 해볼수록 현실의 근사치에 다가서겠죠. 소프트한 것보다는 구조적인 것들이 변하면 좋을텐데요. 늘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님도 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총총
 

진보의 우울 

 
하루 종일,

진보란 글자를 마음에 달아본다.

그런데 참 우울해지는 것이다. 글자가

유리창에 내리는 비에 굴절되듯 비틀어져 흘러내리는 것이다.

 

하루 종일,

보수란 글자를 마음에 매어본다.

그런데 참 꿀꿀해지는 것이다. 현실이

가뭄의 뙤약볕에 말라 비틀어지는  잡초처럼 푸석거리는 것이다.

 

하루 종일,

두 단어를 머리 속에 넣어본다.

그런데 참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녀석은

목이 메여 도대체 목구멍으로 넘어가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상상 속의 동물처럼 그려내려고 할 뿐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살 수 없는 무엇인 것처럼 체하기만 한다.

 

어쩌면 세상은 자꾸만 마르고 탄 똥만 눈다. 어쩌면 세상은 변비꼴통이다. 아 지근
  
 

 보 라 


 
내가 너에게 취한 것은

아마 감청感靑때문이었을 것이다.

감청에 눈이 어두워 다른 색은 색도 아닌 듯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을 때일 것이다.

 

너가 나에게 취한 것은

아마 자주自朱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주에 눈이 어두워 다른 색은 색도 없는 듯

마음에 덧칠을 하고 다녔을 때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너에게 취한 것은

아마 아마 보라輔拏때문이었을 것이다.

너와 네가 섞여 시나브로  말려오는 보라촉에

나와 네가 섞여 피우는 보라의 춤사위에 

(붓꽃)


 


깃대종 


 
건강한지, 잘 살 수 있을지, 행여 문제는 없는 것인지

활동에 안위를 묻는 이에게

운동이 어떤 상태인지 묻는 이에게

그리고 내일은 해가 뜰 것인지 묻는 이에게 가족과 친지의 안부를 묻다.

  

가족을 묻는 것이 세월보다 더 빨리변하는 시류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너의 삶이 살만하다는 것을

그래도 너와 연결된 다른 너들의 삶이

악다구니가 아니라 한번 흉내내어 보고 싶은 것이라는 한마디를 듣고 싶은 것이다.

 

그래도

너의 가족들은,

네가 아는 이들의 연대는 ㅅ ㅏ ㄹ ㅁ  마디 마디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살만한 것으로 향한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다.

 

친지들로 향하는 작은 시선이 따듯한 것은,

그래도 조카들이나 자라는 이들에게 따듯한 마음을 섞는 일이고,

너에게

너에게 마음도 삶도 한켠을 담보잡히고 싶은 것이다.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나를

곧추 세우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만 말로만 연대의 깃발을 나부끼는 것이 아니라

물밑의 손발이 끊임없이 부지런을 떠는 몸짓이라는 것.

 

그래서 그 몸짓이 다행히도 그 스러진 깃발을 세우는 것이라고, 그 삶의 깃대를 곧추 세우는 것이라고

거름은 거름을 낳고, 거름은 거름의 거름을 낳고, 이 몸이 스러져 거름이 되더라도

밟고 밟고, 손을 포개고 마주잡고, 나를 넘고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몸의 연대로 밀고 가는 것이리라.

 

그렇게 어느새 가족의 경계가 묘연해지는 것이리라. 친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리라.
 
  


  
 잡아라 

 
절박이란 말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정말 절박해서였을까? 절박이란말이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놈은 신음같을 것은 아닌가? 고문의 막바지에 나오는 신음같은 것이지 옛날이야기처럼 술술 나오거나 저자거리에서 회자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네가 절박이란 금지어를 사용했으므로 절박이 전염되는 것은 전적으로 너로부터 책임이다. 그로 인해 평온과 새순이 베여 연두빛 피가 흥건해지거나, 마음에 아픔이 스며들어 밤잠을 설치거나, 먼너에게 취해 더 간절해지거나 내몫이 너의 몫을 담지 않고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면... ... 그 방이 붙은 것을 보았는가?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잡을 것인가? 신음처럼 새어나오는 그 몸빛 절규로부터.. 그러면 나는 무엇을 잡을 것인가?
  
 


  
 호인好人과 잔인殘人의 사이 

 
 

돈칠한 일터는 돈을 남기기위해 협박을 일상화하는데, 안타깝게도 편안함의 지시에는 익숙치 않다. 다가올 것이 자신의 본능에 위협이 되지 않으므로, 상황을 넘겨도 된다라는 생각이 그 틈을 비집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잔인함을 쓴다. 잔인을 은연중에 비추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긴장하며 상황을 넘겨도 되라는 생각을 쭈욱 짜버리게 된다. 그 위협과 협박에 자극을 받아서야 움직인다. 그러니 사람다움은 상황을 쥐어짜는 잔인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약하다. 
 

그런데 잔인에 익숙하게 되면, 잔인을 부리는 사람이나 잔인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나 물리력에 익숙하게 되어, 늘 불안을 중심에 넣는 셈이다. 불안을 동력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늘 힘의 지시에 익숙하게 된다. 끊임없이 다른 관계를 잘라버리고 사소한 관계를 자라게 하는 능력이 부족하게 된다. 어쩌면 상황은 악순환의 문턱으로 들어가는 셈인데, 문 안에 들어서면 그 소용돌이와 늪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잔인을 벗어나는 길은 어쩌면 스스로 단련하거나 세련의 기술을 익혀야 하거나, 익힌 이들이 우세를 점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면화는 현실이기에 무서운 것이다. 문 안에 들어서면 문밖이 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쪽 다 엄연한 현실이다. 불안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편이 혼자나 여럿을 위해 서로 좋은 일이다. 일들도 미리미리 여물게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의타심을 갖지 않게 하는 것도 이런 좋지 않은 상황을 예방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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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도 길어지고, 머리카락도 많이 웃자라있다. 일상은 숨이 차있고, 모임과 모임사이는 틈이 없이 비좁고  빡빡하고 팍팍하다. 일터 일로 잔뜩 신경이 곤두서있다.  여유를 음용치 못해 불안하고 있을 무렵, 어김없이 읽을 거리를 마저 읽지 못한 채 모임 앞에 선다.  하고싶은 이야기를 책속의 밑줄을 빌려 한다. 계속되는 동어반복이지만, 스며들고, 마음 속으로 가져가는 일은 또 다른 행로이겠다. 진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새벽 출장으로 무르익은 자리의 아쉬움을 뒤로 한다.  

인천으로 오가는 길, 욕심으로 가져간 책들이 밀려오는 졸음으로 밀렸다. 어제 박음질한 단 한장만 곱씹게 된다. 저녁에 돌아와 웃자란 머리를 자르고, 손질해주겠다는 사장님께 바쁘다는 눈치를 주며 덜 다듬은 채 돌아온다. 쪽잠을 자서 피곤을 던다는 것이 벌써 한시간 남짓 잠을 청해 약속한 손전화에 잠을 깬다.  

잠결에 걸어가 뜻이있는 집에 들러 쟈스민차로 잠을 밀어내고 지인들과 선거를 여운삼아 이야기를 건넨다. 찻집의 정원은 마거리트와 작약, 장미가 불쑥 손을 내민다. 밤이 색깔있게 내린다. 이야기도 내린다. 진보는 삶을 섞을 수 있거나, 열 수 있을까? 문화도 얇고 원심력의 자장과 머리만의 확장속도는 겁이 난다. 말로만 연대뿐, 몸의 연대는 씻고 찾을 길이 없다. 고민도 생각도, 짧은 삶의 편린도 섞이지 않는다. 벌써 시선은 십년 십오년으로 가 있지만, 또다시 유사한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접촉점도 접촉선도 접촉면도 접촉삶도 없는 진보가 무슨 진보인가? 그저 시류와 유행에 편승할 뿐 보고싶어도 만나고 싶어도 얘기하고 싶어도 얘기할 수 없는 서울에, 아니 지금여기가 아니라 저기먼곳에 머리를 담보맡긴 진보와 무엇을 도모할 수 있을까? 

검붉은 작약이 검게 익는 밤에 혀를 날름날름 내민다. 별들도 잎새에 이는 바람결에 잠들고 있을 듯, 잎새를 들추고 싶다. 당신의 마음을 들추고 싶다. 당신의 삶의 흔적을 들추고 겹친 잎새처럼 겹치고 싶다. 

100602 선거날 100603 런던코뮌세미나 6장이론적 배경 100604 참* 뜰이있는집  

 뱀발. 머리진보, 몸진보, 생활우파, 머리좌파, 시간우파, 삶좌파, 머리진보-삶우파,관계우파,관계좌빨...마음만진보, 마음도진보....괜한 딴지다. 물론 나에게도 말이다. 세미나 뒤풀이에서 *샘이 질문을 던진다. 두바이에 원전수출을 엠비가 했는데 왜 했을까요? 왜 했을까요? 몸에 뭍어있지 않는 앎들을 수소문해야 했고 어렴풋이 긁어오는 지식은 아무런 답변을 뱉어내지 못한다. 의문도 갖지 않았고, 선무당같은 앎들을 연결시켜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위만 전시하는 모습이 들어오고 예민하지 못함이나 어설픈 앎의 뿌리들.......이 생각을 스친다. 바람이 안개처럼 몸에 달라붙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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