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눈다. 먹은 음식을 비계와 비료로 만드는 사람, 먹은 음식을 일과 유머에 쓰는 사람, 그리고 먹은 음식을 하느님에게 돌리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고 자신은 가운데 부류에 속한다고 말한다. “저는 셋 가운데 가장 흉측한 녀석은 아닙니다. 주인님, 그렇다고 가장 훌륭한 축에도 못 끼고 그저 어느 중간쯤에나 끼겠지요. 내가 먹은 음식은 일이 되고 좋은 유머가 된다는 거죠. 결국 그만하면 과히 나쁠 건 없어요!”(by 로쟈)
1. 저자 속엔 호메로스와 니체, 베르그송/부처, [여행]이 섞여있고 이 소설은 저자가 섞여있는 조르바이다. 조금 추워진 동네를 달리며 '조르바' 생각에 빠져버린다. 카사노바틱 하지만 저자입장에선, 아니 내입장에서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호메로스와 니체, 그리스인에 심취해있던 니체의 행간이 내내 읽힌다.
2. 살면서 우리는 늘 무수한 조르바를 만난다. 그리고 무수한 조르바를 잊어버린다. 머리부터 채워넣는데 익숙한 우린, 보여지고, 살아지고, 끼워넣어진다.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넣으려고 하는 우리는 늘 안달하고 걱정하고, 해야만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며 살아진다. 머리가 먼저 굴러가는 동물원에 살고 있고, 모든 것이 그렇게 정해져서, 동물원 안과 밖을 넘나드는 조르바를 만나면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조르바편인데, (돈냄새 풀풀거리는) 동물원 안의 안락함은 볼거리와 팝콘으로 늘 무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낮의 무수한 조르바는 밤과 주말만되면 울타리안에서 잠복근무하는지도 모르겠다. 충만해 나누기에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하는 욕망에 중독되어 스스로 학대하는데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3. 조르바를 달리기에 가져와본다. 취미삼아 한 달리기는 늘 전제조건이 "--을 위한" 뜀박질,- 기운을 차리기 위한, 모임시간을 늘리기 위한 - 늘 부족해서 채우기 위한 모드였던 것은 아닐까? "기운이 넘쳐" "기운"을 나눠주고 싶은 뜀박질은 아니었든 싶다. 한번 모드 좀 바꿔볼까? 몸에 기운이 바닥나니 생활이 말이 아니다. 나눔모드를 위해 부지런히 몸 좀 만들어야 쓰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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