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301 조르바
논 한마지기, 고등어 한손 그리고 난초 한촉(酌)

0. 지난 기억의 단편들을 다른 이의 말들에서 찾는다. 모임의 말미쯤 중동난 흔적들이 어렴풋이 맥락을 잡는다. 먼댓글로 이은 개인적인 흔적도 생각나질 않았는데, 지금 다시보니 몸으로 뱉은 말들은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도 생각도 울타리를 갖는 것이고, 그 정원이 넓어지는 것은 머리의 욕망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어쩌면 손, 발의 영역이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손과 발, 그 몸의 영역이 새롭게 피거나 자랄때, 그 생각도...꿈꾸는 마음도 지평을 넓힐 수 있겠다 싶다. 머리의 기억은 무척이나 얇고 끊겨있는데 생각이란 놈은 어찌 이리도 4년이 지난 시간에도 변함이 없는지 모르겠다.
1. 열정적인 참여때문에 동*미 모임이 재미있다. 밑줄도 생각도, 마음도 온전히 건네는 것이 편하고 좋다. 그렇게 끌리는 주제는 아니어서 쉴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같이 행간을 나누다보니 생각도 섞이고, 마음도 섞이고 다져진다 싶다.
2. 지난 흔적을 보니 아마 니체를 부정확하게 읽고 있을 무렵같다. 무수한 조르바를 만나고 있다는 것이나 저자의 베르그송,불교, 니체에 대한 심취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있어,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만다. 후기를 읽어보지만 니체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정확하지 않은 듯하고, 베르그송이나 붓다 역시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터인데.....
3. 민**샘의 영화이야기가 끌린다. 크레타섬이나 지금의 현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수소문해서 편하게 보고 싶기도 하다.
4. 화자와 조르바의 관계를 이어지는 인물로 내내 조지오웰이 겹친다. 머리와 손발의 연대..그 사이길과 통로를 만드는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다. 머리만으로 움직이는 가분수의 시대는, 파리의 밑바닥생활이나 위건부두로 가는길의 육화된 몸의 언어로 통로를 내는 모습은 지식인이자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 담겨있다. 어쩌면 그렇게 머리의 언어, 가슴의 언어, 손과 발, 몸의 언어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할 수 있다면, 실끈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아픔을 느끼는 것도, 치유해가는 것도, 즐거움을 받아들이고 지평을 넓히는데 장애를 많이 겪지 않을 것이다.
5. 다음책은 몸의 말의 조르바에 이어 몸의말에 뿌리를 둔 머리의 말의 확장을 다룬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으로 이어가기로 한단다. 돌아와 빌려온 책들을 매만지다 잠들다.






뱀발. 수다맨이 되어 내이야기만 잔뜩한 것은 아닌지, 혹 듣지 못하고 놓친 것은 없는지, 생각을 누르려는 의도는 없던 것인지, 말하기보다 듣는 편이 너의 생각에 대한 감도가 높은데, 어젠 조금 떨어진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