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은 모두 다르다. 다른 것은 인정받고 존중받아야한다. 단하나밖에 없으므로 소중하고 귀하다. 사람으로 대하라. 저기 벌레나 다른 류로 대하지 말라. 소중하고 귀한 것이 아니라 바퀴벌레나 다른 사물로 대하는 순간 사람으로 존엄성은 사라지고 양심도 잃고 불감한다. 가난하므로 나이가 어리므로 나이가 많으므로 장애를 가졌으므로 여성이므로 때문에를 가진 모든 것은 나의 아래있다. 사람답게 살 권리. 누구나 다. 인권은 민주주의를 닮다. 많이 안다고, 지위가 높다고, 나이가 많다고 더 인권과 민주주의의 감수성이 민감하다는 것이 아니다. 머리에 머무르고, 가슴에 잠시 뜨겁다와는 그리 많은 관계가 없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느끼고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불편을 먹고 자란다.

#2.

등록금 천만원과 등록금 50만원,80만원, 100만원, 그리고 그 안에 건강보험료와 교통비가 포함되어 있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교육이 기본적인 권리로 내려와 있지 않는 사회는 경제적인 능력의 문제로 환원하고 국가는 꿈적거리지 않는다.

#3.

무방비 상태의 현실과 곤혹함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조직과 공부를 이야기한다. 공부와 생각을 품은 모임만이 현실의 깜깜함을 날카롭게 그을 수 있다. 그 현실의 더 깜깜함이 드러나겠지만 그래도 그 절망의 벽을 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선거와 활동, 세상을 조금 얇게하거나 무거움의 더깨가 내려앉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생각과 고민이 모이고 나눠지지 않으면, 그렇게 날카롭게 선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간다. 러시아혁명도, 영국의 여성참정권도 3.1운동도 5.4운동도 나비처럼 그렇게 파급효과를 내며 세상을 바꾼다. 미국의 여성운동도 그러하며 흑인 인권운동도 그러하다. 그 뿌리에는 늘 생각하고 고민을 섞고 나누는 흐름이 있다.

#4.

500년왕조가 바뀐 것, 또 다시 절망의 오백년이 되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의 방법은 이것이다. 인권은 서로 가르칠 수 있다. 많고 적음이 아니라 불편하고 아픔을 전달하는 것이다. 너에게서 나의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소비와 자본의 되먹임구조를 허문다. 70만개의 마을공화국을 주장한 간디처럼 자치의 그물망이 있어야 자본은 삶을 점령할 수 없다. 모임도 공부도 불편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또 하나의 작은 마을이다. 국가도 자본도 모임이란 작은 마을들의 권리를 넘볼 수 없도록 서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답게 살 권리. 네가 내가 갖고 있는 권리를 스스로 서로 주장하는 순간, 불편의 영역을 서로 보증하는 공간이 늘어나는 순간 민주주의는 숨쉴 수 있다.

#5.

인류는 그 숱한 죽음과 악몽을 거쳐 겨우 헌법이란 틀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피를 먹고 자란 사람의 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족을 칭칭 자본으로 권력의 치안의 경제논리로 칼을 되꼽는다. 모법의 수족은 여전히 사람의 권리란 심장에 칼을 겨눈다. 그리고 그 숱한 악몽과 죽음을 지금도 제조해낸다.

#6.

삶안에 갇혀있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 다른 권리에 예민하지 못한 일상. 불편은 관심도 없고 힘의 자장에 안주하려는 습속.  


 

 

 

 

뱀발.  

1. 인권연대 오창익사무국장의 인권강연을 듣다. 70만개의 마을공화국은 아니더라도 불감은 격리수용하고 생각과 고민이란 프리패스여권이 내왕하는 모임공화국은 어떨까? 이야기의 9할 7푼이 돈이야기인 이땅의 화제근간을 바꿀 다른 무엇이 들어서면 어떨까? 정파공학적 활동관료들의 불감도 격리하고 그래도 불편에 그 사이에 끼여들어 이러면 안돼하고 아프면 안될까? 나누고 바라보고 아파하는 모습, 하고싶은 이야기가 겹친다. 운동의 각질을 벗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모임의 각질을 벗기는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저 위의 이야기만 하고 나라를 들었다놓았다하는 비평만의 습속을 어떻게 벗겨낼 수 있을까? 알고 싶어 온 것일까? 느끼고 싶어온 것일까? 저 말잘하는 유명한 강사의 출현으로 기억할까?  

2. 내용을 정리할 겸, 생각을 보태본다. 인권의 끈이 느슨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모임의 위신이 아니라 내용에 충실하며 주위의 것을 담을 수는 없을까? 마음도 몸도 이렇게 얽혔는데 조금 생각이나 현실의 진도는 나가볼 수 없는 것일까? 

---당신의 인권감수성 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3. 조직이란 단어와 운동이란 용어가 몸에 맞지 않는다. 업계라는 동질감도 낯설어 하지만 남성성이 강한 용어는 강직하긴 하지만 별반 영양가가 높지 않다. 모임이나 활동으로 딴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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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마음을 훔치거나
마음을 흔들거나
마음이 기우뚱하거나
마음이 주춤거리거나 하면서
-1.
이렇게 혼자 맘 울타리 안에 머물러만 있는 것이 아니라,


0.1
마음을 구걸하거나
마음에 끌려다니거나,
-1.
마음을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1.0
한번 쯤 마음에 이골이 날 정도로 물려
한번 쯤 마음을 취할 정도로 많이 마셔
마음이 여기저기 저기여기 흔하디 흔해
+1.
그래서 모임에 차고 넘치는 것이 마음들이라면

2.
기우뚱한 마음도 받쳐주고
주춤주춤 서있는 마음들을 챙기고
흔들리거나 훔친 마음들의 지지대가 되어주거나
어떻게하면 울타리 밖으로 나돌아 다니게 할까 걱정하고

3.
여분의 마음이 몸과 모임의 경계를 넘어
여분의 마음이 모임과 몸의 경계를 너머
모임과 몸과 그렇게 한통속이 되어
서로 나눠쓸 수 있는 것이 마음들이라면

1.
나뭇잎에도
댓바람에도,
솔바람에도,
저기 뭉게구름 속에도,
저기 내리는 소낙비에도,
저기 밀잠자리에게도
꽃속에 얼굴을 파묻고 정신잃고 있는 나비한테도... ... -> 0.그리고 0.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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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코드는 동네를 떠다닌다. 뿌리를 내리거나 왜라는 이유를 찾겠지만, 찾으려하는 깊이의 심화가 부족한 채로 떠다닌다. 사람들 사이, 발라낸 것들만 존재할 수 없다. 뿌리를 내리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 마음의 빚을 지거나, 일근육이 생겨 서로 탄탄하게 자라면서이다. 세상은 공짜가 없듯이 사람들 사이의 일들도 공짜는 없다. 버찌를 물리듯이 먹는 조*바처럼 사람들 사이 마음들도 물리도록 들어 그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마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비집고 나오는 마음들이 있어야 그나마 모임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서로 서로 여분의 맘 덕분에 몸이 움직인다. 그제서야 모임은 몸으로 끌고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새벽 내내 꿈에 쫓기다. 답이 보였고, 너무도 쉬웠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잊지 말아야지 하면서 꿈을 상기시키지만 잡으면 달아난다. 어찌된 일인지 전혀 복기가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도... ... 손에 잡을 듯 말듯 잡힐 듯 말 듯 반의식의 꿈들은 평행을 달린다. 무더위와 함께 십여일을 반복되게 흐른다.

메모;
** 몇몇분들의 얼굴에 설레임도 생기도 더위를 먹었는지 조금 사라지는 느낌이다. 관계가 집중되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씩 생각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인지? 좀더 새로운 이들의 성원이 섞여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딴청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궁금하거나 설레일 꺼리들을 만들지 않는 것인지? 고민거리가 있는 것인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미묘하게 틀어진 것일까? 다소 서걱거리는 미묘함이 읽힌다.  필요나 발의에도 다가서지 못함도 편안하지 못하다.
** 이주노동자의 교육 또는 공동체 문제/분석(사람사이의 관점으로)
** 마음들이 날 끌고가지말게 마음을 허겁지겁 몇날며칠을 토해내도록 먹어야 마음을 요리할 수 있는 것이라면... ...
**강사DB/강의공개운동/필요시간/녹취록/문화재단반나절답사/찾아가는교육  ..

뱀발. 여름, 모임 사이, 들어선 더위가 불편하다. 시원한 가을 날씨가 그립다. 무더위와 습도... 불편한 날씨 사이를 뚫고 회의다. 개진한 의견들이 고맙다. 하지만 좀더 마음을 더 비치고 소란스러우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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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불볕더위, 땀이 샘물처럼 솟는 날. 꽃사냥을 나선다. 원추리는 모둠모둠 자태를 뽐낸다. 얇은꽃잎 세장, 두툼한 꽃잎 셋. 꽃잎에 번지는 색의 경계로 빨려들면서 어느새 난 호랑나비처럼 꽃방에 머리를 쳐박고 있다. 그렇게 정신을 잃어버린 나비들은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넘실넘실 꽃술과 꽃들사이를 넘나든다. 그러자 다른 한녀석이 날아든다. 꽃들도 관심없는 듯 몇길 높이에서 서로 뒷서거니 앞서거니 입을 맞추고 도망가는 모습에 끌려 정신줄을 놓는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날개짓은 우아를 넘어선 교태다. 그렇게 꽃과 꽃에 파묻힌 나비와 꽃. 주위를 맴도는 나비와 한길 위를 넘나드는 암수 한쌍에 시선이 오가는 사이, 어느 틈에 날아온 새들 한쌍이 빠른 날개짓으로 동선을 크게 그리며 노닌다.

지난 산행에서도 녀석들은 들켰다. 노린재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아예 꽃술안에서 신방을 차리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것이다.

질투심도 잦아든 지금. 난 불화를 걱정한다. 세상과 그렇게 넘실넘실 춤추지 못하고 그렇게 엉거주춤 세상에 춤한번 권면당하지 못하며 서있는 것은 아닌지? 삶을 껴안고 그렇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으면 좋으련만, 너-너-나를 보듬고 세상위를 춤추고 혼미하고 정신을 잃고 싶건만, 이렇게 세상과 불화다.

  


 


안해가 말한다. 끊임없이 세상을 남실거리는 당신을 보면 아이가 당신을 닮을까 걱정된다고 책을 몽땅 갔다버리고 싶다고... ... 가족이 무엇일까? 세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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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7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7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091012 죽음, 자유 그리고 사회
검소한 풍요와 성장 그리고 우리가 간직해야할 시선

날로먹기 - 실천적 지식, 과학적 지식, 자유로운 정신들, 실천적 실험, GDP에 잡히지 않는 경제, 필요에 의한 소비, 필요의 양과 질, 생협, 레츠, 두루의 양적 표현에서 질적 표현으로 나아가는 방법, 체험으로 인한 시각의 확보만큼 나아감. 시장의 하이에크식 해석. 시장이 정보(지식)을 섞이게 하고 나눌 수 있게 한다. 시장의 기능을 소비가 아니라 정보의 소통단위로 해석하여 GLC처럼 사회주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함. 렛츠와 생협의 대전이란 지역에 집중적인 관점과 통합하려는 욕구가 문제. 동단위로 작은 시도들의 노력이 자유로운 정신과 유대의 뿌리를 내릴 수 있음. 삶의 단위로 내려가서 진행될 수 있는 한계를 다시 보는 것이 필요함.

자유로운 정신들 - 진보적인 생각, 진보적인 머리를 갖고 있으나, 세속에 너무 물들지 않아 현실적인 여건들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음. 현실과 면밀히 섞이지 않아 현실에 접목된 실험이 부족함. 따라서 현실의 연결망을 진보적인 색깔로 물들이지 못함. 이런 현실의 적응부재를 머리의 색깔로 바꾸며 이동성과 휘발성을 특징으로 함. 현실에 뿌리를 내리더라도 너무나 약함. 머리의 연대에 대해서도 이런 이유로 별다른 관심이 없음. 머리의 연대를 통해 현실에 깊게 뿌리내릴 가능성도 크게 고려하지 않음.

실천적 지식 - 머리만의 유대가 아니라 몸의 유대나 몸의 연결망, 나가 아니라 나-너의 실천적 시도를 몸에 익힌 앎. 최소한의 비자본주의적 머리와 가슴을 마음, 손발의 문제로 접목시키려는 경험이 있어야 함. 군이나 시단위의 거대기획이 아니라 동이나 모임, 소모임 발딛는 곳의 관계망을 전제로 함.

과학적 지식 - 머리의 영역권내에 머무르는 앎. 이론적 근육을 제공할 수 있음. 하지만 현실의 문제로 접목되거나 이론성이 강해 손발이나 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체계나 앎의 그물. 현실과 연결성이 몇단계를 거쳐야 파악되는 앎의 체계.

조건들 - 분위기 아우라이기도 하나 실천적 지식으로 인한 관계망이 과학적 지식이나 여러 사회적 실험을 받아들을 수 있는 수준. 경제와 성장에 너무 사고가 발목에 잡혀있을 경우, 서유럽이나 북유럽, 다른 민주주의 실험을 접목시키거나 이식하기가 불가능함. 과도한 정치비평의 수준과 이런 경제우선으로 체화된 사고는 경직을 유발하며 무화시킴. 끓어넘치게 하는 방법은 없음. 그 내부에 사회적 시도나 실험, 최소한의 관계망이 생겨, 그 연결고리의 색깔을 조금씩 바꾸거나 온도를 높이는 과정이 반복되지 않으며 그 경제-성장의 체화논리에 냉각되기 일쑤임.


합 의 - 분권이나 자치의 개념, 소단위에서 사회적 시도나 실험이 필요함. 두루에 대한 접근도 자본의 지표에 잡히지 않는 비자본주의적 머리에 대한 사고가 필요함. 고르이 제기한 필요시간에 대한 개념도 넣어둘 것. 칼폴라니가 이야기한 거래의 범위에 대한 사고 필요. 현재 여러 단체의 경우 사고나 실험, 연결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함. 사고의 단위가 너무 광역단위임. 노조든, 소모임이든 두루두루 작고 단단하게 시도할 필요가 있음.

뱀발.  

1. 일터일이 겹치고, 책들을 어디에 둔 것인지 몰라 늦게 발견?해서 말미를 챙기지 못하다. 마지막 발제를 마칠 무렵, 이야기를 나눈다. 날로먹는 것이 그런데 책에 의지하지 않고 분위기에 의지해서 남긴다. 그러니 위의 얘기는 전적으로 내 식대로 간본 내용이다. 아무래도 의사소통을 위한 공용어가 필요하겠다. 머리속의 말들만 난무할 것이 아니라 정리도 되어야겠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한번 더 생각을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2. 아래 폴라니의 경제적인 요소에 대한 내용을 덧붙인다. 인간을 발라낸 경제요소 3에 모임이나 단체들은 인간적인 필요나 노고를 가미할 것을 요구한다. 경제에 인간을 심을 경우에만, 그 요소들로 사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이런 진짜경제가 삶과 만날 수 있고 모임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임의 경제적인 끈이 무엇인지? 그것이 필요라는 것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길을 가다보면 그렇게 동떨어진 경제라는 놈도 이쪽으로 빌붙으려할 것인지 모른다. 참고하시길. 어렵기는 하지만서두. 외적인 상품의 거래가 아니라 필요욕구와 노고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심화가 생협이나 렛츠의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3. 머리에서 발끝까지 핫이슈라는 노래를 들은 듯하다. 핫이슈가 되는 것은 요원하겠지만...조금이라도 마음품에 넣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어본다. 

4. 폴라니가 지난 한차례 유행처럼 다녀가시고, 사람들은 그가 왜? 어떻게 하려는가에 대한 관심은 잊어버린채, 한 것에만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닌가? 어디에도, 누구도 지금 가져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겠으나 우리의 유행병은 진보,보수를 떠나 심하다 싶다. 그것이 섬사람이어서인지? 경제인의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징표인지 모르겠으나, 소통도 연대도, 반성도 성찰도..어김없이 좋은 말은 다 유행처럼 소화해주시는 광경은 놀랍다. 그렇게 빨리 잊어버리고, 또 새것인 것처럼 환영하는 것을 좋아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어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현실이 반복되어 곤혹스럽다. 폴라니님은 어디서 방황하시는지? 내친 김에 다시 한번 불러주심은 어떠신지???


 

 

 

--필요와 경제적인 요소----------------------------- ---------------------------------

 5. 100723 일터회식이 잡혀 들어가는 길 아***를 들르다. 불교강좌에 참석하지 못한 미안함과 참석하신 분들이 적으면 어떨까하는 안달이 있기도 한 연유다. 사무실이 불이 켜있길래 늦은 시간까지 열강?을 하는지 알았다. 키*님이 있어 이런저런 근황들과 건강권이 주제인 디 플로를 뒤적이다. 헬쓱해지고 푸석해진 *바님을 뒤로하고 돌아오다. 큰녀석에게 불편한 책들을 건네주었는데, 나쁜피를 본 모양이다. 소감이 남다르고 가족에 대한 물음이 있던 것 같다. 그리고 런던코뮌의 접힌 부분을 본다. 책에 의존하지 않고 발제에 의존하며 흔적남긴 편이 낫다는 느낌이 든다. 크게 저자와 발제자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한 꼭지만 더 넣는다

필요와 욕망 그리고 진리 -  욕망과 필요, 필요와 욕망, 경제의 요소에 욕망만 있다. 욕망과 희소가치로 올인하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맹점이란 것이다. 그러니 그 욕망에는 필요와 노고가 들어가 있지 않다. 하지만 필요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모으거나 채우는 과정을 수반한다. 욕망이란 말의 전제는 홀로있는 개인을 전제로 한다. 욕망이란 단어의 기본적인 철학은 원자화된 개인이 있고 사고의 출발이 거기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욕망이란 말에서 서양철학이 갈때까지 간 극명함을 보여준다. 역시 그로인해 핀 악의꽃이나 문제꽃을 근본적으로 개인으로 돌려버린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했다. 기본적인 필요를 넘어서 인간적인 필요를 요구하는 함께사는 존재이다. 필요에 의해 진리는 생겨난다. 진리는 저기 달님이 아니라 여기 살아간다. 필요에 의해 진리는 아우라를 만들고 분위기는 진리의 영역을 넓히며 살아가게 된다. 욕망은 마치 지금 여기 있는 듯하지만 늘 저기에 있다. 욕망이란 뜬구름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라는 현실로 지금을 살아가면 진리는 생긴다. 필요는 기본적으로 유적존재이자 함께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발라내어 내 편의 대로 사고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너를 찾는다. 그래서 늘 궁금한 철학이다. 필요는 진리를 지금에 있게하고 같이 산다. 욕망은 진리가 마치 저기에 있는 듯 찾아야 할 것으로 만든다.

--머리아프시겠네요. 왠만하면 건너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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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맘과 맘을 섞다. 모임과 모임도 욕망을 섞어야 하는가
    from 木筆 2010-08-07 10:15 
             #1.  세번째, 서울-욕망의 도시로 이야기를 나누다.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삶의 기억이라 그리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래도 20대에겐 또 다른 문제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겠다. 재테크나 돈의 축적과정에서부터 어떻게 그렇게 결론으로 욕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내적논리가 궁금한 것이다. 그렇게 점점 풍선을 불리다 보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만화 속의 캐릭터
  2. [런던코뮌] 삶을 바꾸려 한 영국 신좌파의 교훈_서영표저자강연
    from 木筆 2010-08-26 16:48 
                화*모임에서 몇차례 세미나와 토론을 하였습니다. 생각보다 관심이 시큰둥?한 것 같아 한번도 소개흔적을 남깁니다. 서영표님의 문제의식과 학문에 대한 관심이 무척 방대하고 진도를 깊숙히 굳굳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론에 대해서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느낌이었는데...여러 인물들이 겹칩니다. 칼 폴라니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 지방자치의 현실에 관심이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