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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연스러움  

한옥이 아니어도 감나무 한그루 보듬을 수 있는 이는 감잎차에 까치손님에, 빨간점등까지 갖은 복을 짓고 있을 것 같다.

 

  

2. 넝쿨째 

슬레이트 지붕위에 호박이 넝쿨째...요즘 로또에나 맘 주지 이렇게 호박에 시선 줄 이들이 있을까! 그래도 뭔가 듬직하고 배부른 느낌까지는 못 앗아갈 것 같다. 돈돈 밝히는 이들에게도 식물성유전자가 꿈틀거리고 있겠지. 아마~

  

3. 바램 

 중악단 중간대문에 단청이 바랬다. 유일하게 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이 중악단은 명성황후가 다시 챙겨 제를 지내게 했다한다. 아마 명성황후는 경복궁 꽃담에 기대거나 책을 읽으며 이 생각을 했으리라. 그 바램이 아직까지 바래지지 않은 듯하다.  가을 복을 구하러 온 이들이 절에 넘친다. 큰 바램, 작은 바램 구별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렇게 작은 복들이 덜 생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복도 좋지만 시원한 바람이나 풍경소리에 뫔 맡길 이들이 넘치도록 태평한 시대를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복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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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4  밤, 모임을 핑계삼아 뒤로한다. 산책코스를 어디로 할까하다 몸이 가는대로 놓다둔다. 동네, 연단으로 향하던 몸은 익은 길로 향해 투박투박 걷다. 밤은 깊고 한적한 대학 교정 안, 아이 소리와 함께  발광셔틀콕으로 단란하다. 지천으로 난 산책길이 다닐만하다. 꼬리를 물며 가다보니 별은 익어 떨어질 것 같다. 개천의 물소리는 청진기를 댄 듯하다. 눈치채지 못할 곳에 비닐하우스와 소로가 맘에 든다. 샛길 사이 드문드문 마주치는 연인들의 걷기가 정겹다. 120' 11k 


 


2-0925  낮, 마음이 동하여 몸이 박힌 곳이 신원사다. 멀리 주차를 하고 중악단 꽃담과 탑을 담는다. 절은 복을 비는 이들로 넘쳐난다. 계룡산의 계곡이 탐스럽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며 너럭바위에 앉아 참선을 하는 이, 바위틈 밤톨이 가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음을 알린다. 가파르고 급한 내리막을 오르고 내려 중장의 아담한 마을을 걷다. 걷다보니 여기저기 담을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제 걷기에 취해 길고 먼 것이 없어질 쯤. 맘은 길가의 작은 꽃들로 취해 넘친다. 굿당촌의 굿판소리도 사연을 알길이 없지만 지나는 객에겐 편안한 굿거리로만 들린다. 5hr 12k 

뱀발.  

모임도 늘고, 몸도 걱정이 되어 채식으로 가는 길목?의 반식을 맘으로 정한다. 아마 그 양도 만만치 않으리라 여기는데, 그래도 이 가을 다져먹고 산책한다. 완보의 걸음 틈사이로 느낌의 강도는 또 달님하고 다른 듯하다. 걷다 마음 줄 이들이 늘었다 싶다. 지치지 않게 낼도 생각해줄 요령도 생긴다. 그러고보니 모임살이 한웅큼 준다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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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법?_ 토론회를 보면서 든 딴생각(酌)
[옮김] 양반증명서, 개혁 진보세력의 실패이유_강준만
어쩌면 윤리는
110805 이번엔, 대전 둔산좌파다

밤이 늦다. 스타일에 대한 딩가딩가 강의 뒤 옷맵시 이야기로 가을밤이 깊다. 법인사업1팀 영업동선을 한번 따라가본다. 목표와 실적 시간을 팔고, 마음을 팔고, 영혼까지 팔아야하는 동시대인의 버거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생동감은 지금 여기를 달군다. 가을 바람이 알맞아 아카데미 잡지 영업을 해본다. 어디를 가볼까? 수자원공사, 담배인삼....등등 법인 대상으로 광고영업이 먹히지 않겠느냐는 조언이다.

공동이냐 공동 체냐

지역의 착한 단체들, 지역화폐 렛츠, 문화생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회원에 대한 경향이 약간의 선민의식이 있는 것이 아닌가? 문화생협을 한다고 하는데 파는 상품은 무엇인가? 거래를 한다고 하는데 두루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히 따져보았는지 되묻는다. 가치만으로 착한일을 한다고 거래가 되고 생협의 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반문이다. 좋은 일을 하는 것까지 반대를 하지 않고, 대안이 붙은 것까지 폄하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 순결하고 고귀한 일이고 지켜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치를 빌미로 해서 더 이상 생각해야 할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공동의 느슨한 연대면 되지 않는가? 꼭 공동 체이어야 하는가? 체로 엮어 더 더딘 것은 아닌가? 꼭 가입을 해야하는가?가  한꼭지의 일리로 수면위에 올라왔다.

착한기업이냐 착한---기업이냐

한밭생협단위, 생협은 착한 단체가 아니다. 어느 덧 방점이 기업에 찍혀 있어 초과이윤을 남기기위해 착한을 멀리 보낸 것은 아닌가? 생산자에게 단가를 내리치려는 착하지 않은 기업의 생리를 그대로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회적기업은 글자 그대로 형용모순은 아닌가?착한기업 또한 그러한 것은 아닌가? 형용모순의 장벽을 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사이가 고민이다

착한 사람들은 사회적기업을 앞의 사회적에만 방점을 두고 기업을 고민하지 않는다. 시장의 생리와 자본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여러갈래길에 대한 경우의 수에 대해 갑론을박하지 않는다. 착한기업들은 건물을 사고 매장을 늘리고 장사에 혈안이 되어있지만 정작 관심을 둬야하는 가치를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한다고 해도 장사의 혈관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많아 고민이 품어지지 않는다. 착한---과---기업사이를 벌려놓고 기업만 매진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사회적기업/착한기업을 착한 것이란 착시를 유행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은 아닐까?

렛츠가 착하기만 한 것을 넘어서고, 생협이 기업생리만 닮고 있는 것을 넘어서려면 어찌해야할까? 도와 모, 선과악이란 이분법에 걸려 한발짝도 못넘어서는 것은 아닌가? 상상력이 거기에서 막혀버린 것은 아닌가? 선과 악, 도와모 사이엔 집단고민이 있다. 개,걸,윷이 개걸스럽게 박혀있다. 그 박힌 개걸,윷을 발라내는 연습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기업이라고 말을 하면서 기업생리인 모에는 관심이 없고 두루란 도만 주장하는 것은 아닌가?선이라고 가정하지만 자본의 확장에만 관심이 있는 *협은 안녕할까? 사회에 대한 착함이 자라게 하는 치열함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찌된 연유인가? 공정기업이란, 착한기업이란 말은 허구이다. (공정)기업임을 (착한)기업임이 전제를 두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기업임을 몸으로 인정하고 있는 생협은 어떠한가? 공정이나 착함을 얼마나 고민하고 있을까? 가치를 위무의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험은 얼마나 하고 있는 것일까?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공동의 느슨한 연대는 회원의 삶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돈만, 자본만 늘리다가 뿌리없는 공룡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위기의식은 스며드는 것인가? 가난함만이 공동체를 주장하는 몸통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공동체인가 공동인가

공동체는 이상인가? 공동체는 혹시 윷판의 모는 아닐까? 얽어매려 노력하는 순간, 느슨한 연대란 공동은 사라지고 그저 피트니스 클럽의 이용자처럼 공동체란 고민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할 수 없는 것까지 미리 제몸에 엮어두는 일은 합당한가?

스타일은 무엇인가?

유쌤은 나를 바라보는 태도라고 한다. (나)를 떨어져서 바라보는 태도가 바로 나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대할 때, 그(녀)가 그(녀)을 대하는 태도를 유심히 보면 그것이 바로 그(녀)가 파악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잇는다. 나는 무엇인가? 삶을 고민을 트라우마의 장벽을 어렴풋이 체험하고 있다면 나를 바라보는 태도를 여럿 둘 수 있다. 나-너가 붙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인 人의 기대는 형상이 그러하다. 유적존재도 그러하다. 나를 원자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나의 실물은 분자다. 나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나는 너의 여기저기에 붙어있다. 상호의존적이다. 나를 넘어서는 일은 너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다. 나를 넘어서는 일은 공동밖에 없다
.  

 

낙엽 하나. 첫째도 디테일, 둘째도 디테일, 세째도 디테일이다. 밤이 너무 깊다. 아무래도 무리다 싶은데 경계를 넘나든다.  

낙엽 둘. 순진한 것일까? 순수한 것일까?  순수가 힘이세다. 순수는 알면서도 하지않고 넘어 지키는 것이다.

낙엽 셋. 이분법? 삼분법? 그래 나머지 하나만 더 생각해보는 것이다. 

낙엽 넷. 겹눈. 가을잠자리에게서 배울 지혜는 이것이다. 겹눈. 

낙엽 다섯. 실명을 거론한 단체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을뿐, 책임은 제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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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시간을 늘려잡는다. 몸이 되받아 품어주어야 할텐데. 그저 졸음으로 방울방울 터져버리는 것 같다.  활자들 사이, 꾸벅거리다 못해 책을 떨어뜨릴 지경이다. 그리고 쪽잠을 청하기도 하는데 시간은 이리도 빨리 가버리는 것이다. 책갈피가 느는 속도는 걸음걸이만큼 느리다. 그 시간만큼 생각의 두께가 있는 독서가 되면 좋으련만, 이책저책 읽은 것들은 이어지지 않는다. 품어지지 않는다. 130' 12k 

     

뱀발. 시간에 덜 바래는 놈으로 체중계와 **계를 주문했다. 될 수 있으면 기능이 적은 것으로 말이다. 오붓하게 책볼 공간이 여의치 않아 작업대를 거실 한편에 두어야 될 듯 싶다. 책들이 갈 곳을 잃어 유니 방안까지 침투했고 매번 갈길을 잃는다. 가을맞이 정박처를 두어야 맘이 편하겠다. 주변을 바꿔야겠다. 가을, 바람도 딱 맞는 때가 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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