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인근 유스호스텔에서 워크샵 일정을 알게되어 참가하게 되었다. 다소 뻘줌하지 않을까 걱정이긴 하였지만, 수수한 분위기와 격식없는 자리가 편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편하게 정책과 방향에 대해 귀동냥 할 기회가 있겠는가? 문외한의 입장에서 불쑥 끼어들었다.

금욜, 저녁일정부터 소화할 꺼리가 다소 부담스런 주제인데, 노무현정권 정책평가와 개혁과제. 감신교수의 경상도 억양짙게 배인 간결하고도 쌈박한 강의는 매료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카피부터 배경, 선정된 3대 주요과제와 10대 세부과제는 과학기술분야의 정책과 비교될 정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된 듯 싶다.

북유럽,유럽의 정책들이 활발하게 소개되고, 해당하는 개선지표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더욱 실감났다. 하지만 민*당 내의 받아안을 주체들이나 준비정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아이러니한 일이다. (따로 원문을 올려야겠지만, 수중에 자료가 없다. 분위기만...)

이어진 강의는 강사분이 인수위원회도 참가하여 그 성과와 한계를 더욱 선명히 볼 수 있는 것 같다. 공공성이란 부분과 의료 서비스 산업화가 두축으로 동시에 진행되었는데, 다양한 색깔의 자본이 법적이 제약조건을 해지시키면서 어떻게 요동치는지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하였다. 더구나 한미에프티에이의 고속도로가 가지고 올 파고는 공공성보다 시장에 손을 들어주면서, 급속히 공공성을 위축시키거나, 아니 겉잡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더 깊게 보였다.

저소득층은 5년만에 확연하게 의료비 비중 현저히 늘어난 것이 보였고, 재정마련도 담배값에서 해결하는 등, 적극적인 개선책이 미진한 점들을 지적하였다. 운동의 방향은 몇차례 반복되어 지적되었는데, 부문의 전문화가 아니라 부문운동의 수평적 연결고리를 가진 의제나 연계, 연대가 이어지지 않고는 해결이 어렵지 않나하는 점이다.

반복되는 강의에서도 느끼는 점은 불과 5-6년동안 현격한 깊이, 환자운동으로 대별되는 인터넷공간의 활용은 더 이상 전문가의 수직깊이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얼마나 다양한 교육-지역-과학-환경-보건의료 등으로 연계되는 고리를 찾아내어 만들어가는가? 학습된 집단지성으로 해결해낼 가능성등이 보이는 것 같았다.

환자로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강주성대표의 강의는 무척 인상적이었고, 깊이가 있었다. 경의를 표한다. 아래 접힌부분에서 그분의 근황을 좀더 알 수 있었다. 김명희샘의 카랑카랑한 명강의도 부러움을 살만하였다. 고맙고 감사드린다. 아카데미나 지역에 강연기회가 더 있게 되기 바란다. 아니면 만들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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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건의료]이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으세요.(作)
    from 木筆 2007-10-24 14:08 
     낙엽. 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총알코올 섭취량만 눈에 들어오는지~. 들킨 듯 주춤서다.  건강들 하소서. 건강도 챙기시구. 나름 일상에 공약도 맹글어보시길... ... 0.  이것만은 국가에서 관리해줍니다     청소년기 - 정신건강상태 평가 및 상담료 지원      건강위해물질 및 행위에 대한 건강세 부과    
  2. [펌] 환자에겐 '필독서'…병원에는 불편한 '진실'
    from 木筆 2007-11-19 09:44 
        &
 
 
감비 2007-10-2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처음으로 흔적 남겨요. 잘 읽고, 어제 얘기했던 거 같이 느끼고 갑니다. 감사~^^

여울 2007-10-23 23:43   좋아요 0 | URL
ㅎㅎ.자주 들르셔도..출장이라 지금 보았네요. 자료집도 한번 보시구요.
 

 

 인쇄가 발달하지 않을 때, 건축물은 그 자체로 언어이자 기념비였다. 모든 것이 응축된 산과 같은 것이었다. 산처럼 들어선 그 건축물은 생활인에게 모든 것을 표현해주는 종합예술물이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은 건축을 일상에서 분리해내었다. 새처럼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를 나누어서 가져가 버렸다. 미켈란젤로의 그림들도 모두 건축의 일부였다. 그러던 것이 박물관과 미술관이란 전시공간이 생기면서 미에도 서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술을 음미하기 위해선 두가지 방법이 있다. 작품에 빨려들어가는 법과 작품이 빨려오는 체험 두가지이다.  작품에 빨려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상의 일이어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다른 한가지 특별한 의도가 없이 방만한 상태에서, 산만한 상태에서 체험하는 건축물이다. 밖에서 사진으로 음미하는 행위는 일부분일 뿐, 건축물 사이를 비집고 산만하게 돌아다니면서, 의도하지 않은 채 얻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이런 예술이 없어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건축가는 이런 의미에서 복원을 필요로 한다. 일상의 무의식을 형성하는 건축이 재정립되어야 한다라고 한다.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문득 책이 다가서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란 시공간에 딱 버티고 서서 고를 수밖에 없는 책들이 있다. 어쩌면 우연한 계기에 그 접촉점이란 대면이 없었으면, 생각길이 어디로 길을 내었을지도 모를 그런 상태 말이다. 잠깐 인근 공장을 다녀오는 길, 점심을 틈타 도서관에 들르다가 예상치 못하게 대면한 책이 그렇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러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야 한다고.

수잔 손택은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라 한다. 그렇게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회의 이미지들을, 그런 <타인의 고통>을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로 소비해 버리는 현실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도 진지해질 가능성 마저 없애게 만든다 한다.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온갖 진흙탕것이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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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문국현 현실"을 안고 넘자(酌)

 책을 한점도 보지 않는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웠는데, 식곤증으로 몇차례 선잠이 지나간다. 초1 민이는 목욕재개를 하구 받아쓰기 숙제를 한다.  '방귀를 뽕하고 뀌었어요' 불러달라고 하고, 방귀소리에 깔깔깔 웃고 하더니, 틀린 것도 정답으로 하더니, '아빠, 백점맞으면 뭐해줄거예요'라구요.한다. 그렇게 응석을 부리다가 이내 잠에 골아떨어진다. 딸래미도 시험이 코앞인데, 틀린 문제를 가져와 식초가 노란색깔이 아니냐고 한다. 단무지? 양파생각해봐~ㅇ. 그렇게 바꾸어가며 조용해진다.

 야구 경기-축구경기-시흥갯골환경스페셜-태왕사신기까지 골고루 맛을 보았다. 한쪽에서는 권영길 초청토론회 - 한쪽에서는 문국현토론회라는데, 지역방송은 권영길 초청토론회를 보여준다. [초청토론회-질문있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은 사전 질문지를 주지 않고, 즉석질문으로 후보자의 순발력-대안제시력 등등을 보여주도록 꾸몄다. 이명박이 더 궁금해진다. 깔끔-명쾌하지 않았지만,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에 편승하지 않고 지적하여 넘어서는 것도 괜찮다 싶다. 사표심리-백만집회-정책현실성-노조과격화와 파업-가치의 연정. 한미에프티에이와 비정규직 등등, 물론 가슴을 움켜지게 하는 절실함과 쌈박함까지는 기대할 수 없지만 쟁점을 드러내는 것도 봐줄만 하다.(물론 나의 관점은 토론회 전후 일반인이 보았을 때를 고려하면? 이란 전제이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온 것인도 모른다. 불과 몇달전으로 돌아가 문국현-노회찬-심상정-권영길이 없는 경선은 어떠하였을까? 늘 현실은 후회해도 소용없다. 현실은 만일이 없으니말이다.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사라져주면 좋겠다는 희망 역시 만일이다. 훨씬 삭막하지 않았을까? 심바람의 세박자경제도, 노회찬의 촌철살인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 권영길이 험로로 만들어온 것이 구태일 수 있을까? 문국현에게 많은 사람이 설레이는 것이 왜 마이너스라고 장담하는가? 대중의 가슴에 주목하지 못하고, 똑같은 한표로, 몸뚱이란 산술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아래 토론에서 어떤 것이 다른 관점에서 논의되었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발제 논문은 논의를 숙성시켜야 할 지점에 대해 논거를 제공한다. 자유주의, 공화주의란 관점에서 진보가 품어야 될 것, 여러 매체에서도 쟁점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웠는데, 좀더 숙성시킬 계기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주택-교육-노후, 일에 대한 쟁점이 폭발하여 생활인에게 실감나게 다가갈 수 있다면, 이번 대선에 지고 이기고를 떠나, <참진보>의 외연을 확장하며, 불과 몇년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번 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역동적인 우리들 모습이 기회를 많이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가치>를 열어두고, 그것이 우리 가족의 품안에 들어가, 우리 친구들의 가슴으로 들어가 얼마나 뭉클거리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렇게 마음에 작은 틈이 생긴다면, 그것으로도 진보는 큰 승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면에서 열어두지 못하고 진보를 가장하여 제것만 옳다고 주입하려하고 세뇌하려는 의식이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역에서도 정책참모진들이 바쁘겠지만 공유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것. 가슴을 울려내는 실천공약으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 우리 패거리가 아니라고 배제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일이 바쁜 와중에도 놓치지 말아야할 한가지는 아닐까? 느슨한 사회단체 연대 조직의 몫도 공정선거감시가 아니라 질적으로 한단계 다른 일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우연히 주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 혼자 쓸 데 없는 생각을 해본다. 집식구들과 <울린 가슴>을 가지고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면, 모든 주변 상황은 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상수가 아니라 오히려 영향도 못미치는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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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인만큼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이며, 그러면서도 셈세한 성정까지 갖춘 민족이 드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정해진 틀이나 질서를 꺼리는 활달한 성질이 있으면서 동시에 섬세한 데로 가면 지극히 세심해지는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2. 풍류를 겸한 구황용 밥 - 부족한 쌀 대신 채소를 넣어 양을 늘려서 허기를 면하려 한 데서 끝났으면 재미가 없었을텐데, 여기에 향기가 은은하고 그윽하게 나는 독특한 채소를 사용했다.

 

3. 음양-오색-오미/시간보다 공간-식물성기름/정성-시간/잔치문화

 

 

어렵고 힘들어도 멋을 담을 줄 알거나, 일상에서도 조화의 끈이나 정성을 잃지 않던 마음들은 온데 간데 없고  쏠림만 남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멋-조화-쏠림)은 조급증때문에, 돈맛 좀 알아 제각기 뿔뿔이 이간질당한 것일까?그래서 보이는 것이라곤 쏠림밖에 없는 것일까?


많은 지식인들이 좀더 나은 방향으로 제시하는 서구의 <합리성>이란 잣대는 이런 연유로 부족하다. 화끈하고, 자존심세고, 새로운 것들을 너무 좋아해서 따로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를 동시에 버무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제대로, 또 길게 오래 푹푹 고와야 된다. 일터에서도, 친지들과 모임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하지만 그 쏠림에도 멋과 조화가 복원되지 않으면, 집단건망이라는 시간의 늪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끊임없는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일만 남을 지도 모른다.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늘 멋을 보태서 해결한 것은 아닐까? 시간의 축도 길게 잡고... ... 최소한 안달복달만  한 것은 아닐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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