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로 비춘 햇살이 환하다. 지평선과 수평선이 맞닿아 있기도 해서다.  밝지만 추위는 뾰족하다.


1. 관성 - 천자문 4자*250구절를 따라가보면서 꼭지별로 띠지를 붙이고, 헛갈리는 글자를 형광펜으로 칠해본다. 그러다가 늦게 도착한 옥편을 살펴봐. 우주는 어떻게 중국선왕과 지명, 행실은 어떻해야하며, 관직은 어떻고, 자연은 어찌어찌하며 등등 그리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더구나 암송이라니, 무의식중에 들어온 문맥의 역할들이 어찌했을지 궁금하다. 연구논문들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그래도 지금 나처럼 수긍을 하고 배우러 드는 이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직분은 늘 우주의 중심이고 당연한 천동설론자가 득실거리는 현실까지 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신분이 보여주는 구태는 여전할 것이며, 어른이 되어도 사회적 유아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관행과 제도는 어김없이 길게 제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늘 한해가 가고 다음해가 오는 것처럼 말이다. 


2. 갈증 -  모처럼 단골식당에서 저녁. 심장 스텐트 시술한 동생벌 친구도 오고, 술 센 할베도 와서 식사중이다. 내일 병원에 다녀온단 소리를 듣고 이 할베는 큰 병원다녀오라고 자문을 해주고 있는데 또 다른 손님이 왔다. 이 분은 몹시 거슬렸던지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마스크 쓰세요.  그런데 왠 일. 단체 손님. 넷*넷. 주변은 안중에도 없는지 특유의 강한 엑센트로 친밀감을 과시한다 싶다. 계산하려 일어서자 그제서야 미안함을 눈치챘는지 다가서서 미안하다고 한다. 다가서지 않으셔도 된다. 버럭하지 않아도 된다. 반가움을 표시하고 조언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 모처럼도 없애야겠다 싶다. 뭐라도 해서 들거나 배달을 시켜야 하는구나 싶다.


3. 다짐 - 시술한 양반은 별반 직업이 없다. 아버지에게 받은 건물. 마땅히 소득이 없는 듯싶다. 날건달처럼 살아 욱하는 성미는 그대로 남아 있는 듯. 그가 몸이 좋지 않아 아마 큰 병원으로 문진을 가는게다. 아무 일 없으면 좋겠는데, 불쑥 책을 언제 내시느냐고 묻는다. 어 무슨 말이지. 아 도록을 말하는 구나 싶다. 내년, 아니 내 후년이 될 듯 싶어요 한다. 앞의 일이 어찌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나아진 것은 아닐까 싶다.


가끔 인체에 관한 책들을 자주 본다. 일터에 동료들이 아프거나, 주변 친구들이 자주 통증을 느낀다면 말이다. 어렵기도 하지만 틀을 잡고 가면 그리 어려운 편도 아니다. 대부분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너무 맡겨서 탈이다. 제 몸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면 여러가지를 건질 수 있기도 하다. 최근 여러 연구들로 보는 맛도 있다 싶다.  배려도 그러할 것이다. 다르게 만드는 시작은 늘 나에 대한 자극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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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12-31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21-01-01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 저도 몸의 소중함을 구체적으로 깨닫고 몸소 이겨내면서 지나왔네요. 아직 분투 중입니다. 나아지겠지요. 몸도 마음도 잘 돌보며 살아야겠어요.

여울 2021-01-01 21:08   좋아요 0 | URL
네 잘 챙기셔야해요. 늘 거기에서 시작되잖아요 ㅡ
 

저녁 어스름. 밖이 많이 밝아진다. 마땅히 갈 식당도 없고 무얼해서 먹나. 남은 재료. 그 된장을 아직도 처치를 못했으니 어떻게 한다. 담궈둔 현미를 안쳐야 하고, 마무리 짓지 못한 음식물쓰레기도 처치해야 한다.


0. 배추 - 남은 네쪽. 국물용 팩. 막된장을 넣어 끓인다. 도토리묵을 샀는 줄 알았는데 메밀묵이다. 한모가 400g이니 많다싶다. 절반만 툭 썰고, 야채 송송. 간은 간장, 참기름, 올리고당, 식초 조금, 고추가루 약간해서 조물조물 무친다. 음 짜군. 끓는 물 조금 붓고 시식. 괜찮다. 그렇게 포만감있는 한끼.


1. 커피 - 미뤄둔 개수대. 끓는 물을 붓고, 음식물쓰레기통에도 확인처리. 이것저것 윤이나게 박박. 나머지 음식물도 마무리겸 쑥 비운다. 손잡이가 삐끗해서 참사가 일어날 뻔했지만 그래도 순탄하게 수습했다. 그래 이럴 땐 커피가 최고지. 다이소에서 산 세트를 확인 겸 사용한 뒤 마지막 남은 필터 확인. 오오 생각보다 성능이 좋다. 킨타마니 아라비카 커피 향이 좋다.


2. 재독 - 출근 길. 문득 <<시간과 타자>>라는 책이 생각 나서 책꽂이를 훑는다. 어 이상해. 어디 있지. 여기 있어야 하는 데. 어쩌지. 스캔을 하다보니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읽었던 내용들이 다 지워진 것 같다. 뭘까. 도대체 읽었던가 싶다. 그래. 맞아. 책들은 이렇게 몇 번을 지우는 것이지. 그렇게 지워진 이력에 살아 남아 올라오는 것들이 진짜야. 막 땅을 고룬 것이라고. 이렇게 안위를 해 본다. 그러다 몇 권의 책들을 더 짚어든다.







어쩌면 해가 지는 것이 아니라 저녁하늘이 올라오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새들도 꽃들도 겨울을 참으며 점점 더 일찍 해를 마중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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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1-01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관점의 차이! 저녁 하늘이 올라오고 있다라니요. 멋집니다
 

‘가을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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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탁‘

의탁의 의탁.
의탁×의탁×의탁.
의탁의 의탁의 의탁.

의탁×의탁°°×의탁°°°×의탁°°°°.

남의 편에게 정치를 묻고
안의 해에게 집안의 일들을 묻고.
놀러갈 곳을 묻고

용한 병원을 묻고 용한 점집을 묻고 용한 목사/스님/신부도 묻고.

어떻게 해야하냐고 선배에게 묻고
어떻게 해나가야 하냐고 먼지날리는 책에게 묻고
어떻게 하냐는 컬럼 쪽지에 기대고 왈왈거리는 것에 기대고

달라지고 달라가고 달이 져도.
그 자리 그 자리 그 자리.
변할 줄 모르는 자리.

그 자리에 고여있는 건 뭘까.
그 자리를 흘러나오는 건 무얼까.

볕뉘.

문학소녀였고 퀴즈를 좋아하는 칠순의 식당사장님은 오늘도 여전하실 것이다.

믿을 뻔 했고 믿었고 믿고 싶었는데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기대지도 믿지도 말아야 하지 않을까. 흘러다니는 구할이 이런 것들이라면 퍼나른 것의 구할이 그렇다면 말하는 사람들의 구할이 남의 생각에 기댄다면 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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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

죄는 지은 네가 사죄를 해. 엄한 하느님 끌어들이지 말고. 빚내서 짓는 교회는 대체 뭐야. 하느님은 네 안에 있다°는 말. 이리 해달라 기도하지 마라. 지은 죄는 당사자에게 빌라. 신은 바쁘다.

볕뉘. 다시 보기로 한다. 신을 팔고 다니거나 자신의 죄를 감해달라 굽신거리는 자들을. ㆍㆍㆍ ㆍㆍㆍ인간 예수는 그러지 않았다.

° 레프 톨스토이,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박홍규역
° 이문영 Moonyoung Lee, 《톨스토이와 평화》, 모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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