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노동시간 단축 이유는 긴 노동시간이 여성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이것이 전례가 되어 남성의 노동시간 단축을 얻어 내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여기서 여성의 나약함이라는 수사, 구원의 서사, 남성의 보호라는 이상이 요구의 당위성과 호소력을 어떻게 강화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여성과 남성이 누리는 일의 질과 양에 대한 공적 논의에 대한 한계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241

(일은 더 짧게, 가족과는 더 오래) 미국인들이 무급 육아노동의 가치는 점점 폄훼되고 돈받는 일은 과대평가되어, 결국 가족보다는 일의 상대적 매력이 높아지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이런 시간구속은 부모들에게 당연히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지운다/문제는 “아이와의 ㅅㅣ간”이라는 기준-아이들이 무엇을 언제 누구로부터 필요하는가-은 집안의 무급노동을 하는 풀타임 ㅇㅕ성을 특징으로 하는 가족모델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런 모델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가족 제도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또 ㄷㅏ른 중요한 문제이다. 이 근본적 문제 탓에 가족이 노동시간의 대안이자 노동시간 단축 요구의 이유로서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43-249

(탈노동) “대안을 상상하는 담론, 노동조건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담론이 필요한 때이다. 주 30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얻어 낼 때이다”/과거에는 누릴 수 없는 사치로 ㅇㅕ겨졌을지 모르는 것들이 점점 더 경제적 필수가 되어 간다고 이야기한다/그 ㅅㅣ간은 가족을 우ㅣ해, 공동체를 위해, 정치조직을 위해서도 쓰일 수 있다./”우리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이다. 252

젠더 분업이 여전한 것을 감안하면, 고용된 여성의 노동시간이 줄어든다 해도 그녀의 가정 내 노동이 늘어나 추가 시간을 금세 채워 버릴 수 있다. 현재의 가정 내 노동이 조직화된 방식이 문제시되지 않고, 고용주들이 사회적 재생산노동의 책임을 지는지 여부로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차별할 수 있다면, 모든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얻어 내지 못할 것이다/노동시간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노동시간제뿐 아니라 노동윤리에까지 맞서려는 노력 역시 힘을 잃는다./강조하려는 것은 근무시간제가 -풀타임, 파트타임, 시간외근무를 포함하는-젠더화된 구조물로, 전통적 젠더 분업을 중심에 둔 이성애 규범적 가족 이상에 의존하여 수립되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253,254,256

노동윤리와 가족윤릭가 여전히 일체의 역사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타래들로 한데 엮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무급 재생산노동의 조직화와 분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임금노동의 시간제에 맞서는 시도는 언제나 근시안적인 것이 된다. 259

노동시간 단축은 “국가를 사람들의 삶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국가 권력을 사용해 시민들이 진짜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가질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노동시간 단축이 가족이란 이름이 아니라 자유와 자율의 이름 아래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261

필자들은 “스스로 관리하는 삶”이라는 전망, “외부 권위의 부과”로부터 벗어난 시간의 전망을 이야기하며 “마침내 현재와 다른 대안과 더 나은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할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그린다. / 목표는 우리 삶을 재창조할 시간, 비노동시간의 장소와 행위, 관계들을 재상상하고 ㅈㅐ규정할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다/퀴어시간은 “가족, 상상, 육아의 관습에 따르지 않는 삶의 가능성에 대한” 시간성이기도 ㅎㅏ다./ 변신의 정치는 노동에 맞선 운동으로서 기존 요구를 진전시킬 기회만이 아니라 새로운 역량과 욕망, 그리고 결국 새로운 요구를 가진 새로운 주체성을 창조하는 과정으로서의 정치이다. 262

볕뉘.

0. 장시간 노동문화는 변칙적인 생활과 소비, 시장을 만들어낸다. 24시간의 휘황찬란은 맞벌이가 아니라 바톤더치의 결혼가족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 장시간노동의 삶이란 휴식이 아니라 나머지 시간을 늘어지게 만들거나 더 맵고 더 자극적인 것을 소비하는 악순환을 창조했다. 장시간노동사회는 정치 감도 하락, 친자본문화(기껏해야 과도한 극장문화)소비, 더많고 세세한 가사노동과 함께 굴러가고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1. 8시간이 아니라 6시간의 사례는 미국 대공황시기 기업의 경우처럼 소비가 아니라 문화를 창조한다. 비노동시간이 더 생산적이고 창조성있는 활동들을 낳는다. 노동을 이야기하려면 비노동과 탈노동을 반드시 사유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죽기전까지의 삶이 도드라지고,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이야기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과 노동에 갇혀 사유하는 이상, 좋은 삶을 토론하고, 경제, 사회, 문화, 정치적인 제한고리를 풀어낼 수 있다. 그래야만 자본주의 밖의 다양다기한 삶의 결로 자본주의을 포위할 상상을 해낼 수 있다.

2. 부디 4장은 깊이 읽어내길 바란다.

3. 가족 - 밖에선/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집에만 가져가면/꽃들이/화분이/ / 다 죽었다 - 진은영. 우리는 이미 다른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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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건을 만드는 데 참여하려는 욕망, 미래를 헤쳐 가거나 그저 살아남기보다는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소망으로서 자유. 43

자유는 개별자로서가 아니라 유적 존재로서 갖는 역량이며, 아렌트의 정식에 바탕을 두면 자유는 다원성을 필요로 한다./권력의 부재가 아니라 권력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44

계급의 정치학은 경제적 재분배와 경제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계급 범주의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 임금 수준을 조정하는 데 주력하는 정치학이다. 그에 반해 내가 들여다보고자 하는 일의 정치학은 공간에 대한, 일상의 시간에 대한 명령과 통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고,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이 될 수 있을지의 조건을 빚어내는 데 직접 참여할 자유를 추구한다. 내가 “계급 결과의 정치학”이라 부르는 정치학이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에 각을 세우는 것을 핵심에 둔다면, 내가 구성하고자 ㅎㅏ는 일의 정치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자유에도 비판의 날을 들이민다. 45

노동자로서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던 노동자는 이제 앞장서서 활보한다. 마르크스가 묘사했던 자본가와 노동장(둘다 남자였던) 사이의 거래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제3의 인물이 이제 겁에 질려 뒤를 따른다. 두 손에 식료품과 아이, 기저귀를 들고서 47

페미니즘은 일의 가치를 묻기보다는 일의 조직화와 분배 방식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여왔다/자율적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한다/마르크스 페미니즘 연구는 노동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노동의 가치화에 이론을 제기하는 방법으로서 가사임금을 논한다./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착취당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자 하나를 인용해 말하자면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노동자에게도 초점을 맞춘다./마르크스주의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족쇄 말고는 잃을 게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혁명 ㄱㅖ급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48,49

이렇게 일을 폭넓게 바라보면, 한때 반자본주의 정치학의 영역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유일한 혁명 주체로 본 공장 중심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산업 모델을 뛰어넘어 보다 포괄적인 장소와 주체들로 전환된다./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즈의 일에 ㄷㅐ한 연구가 생산 중심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한게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과의 관계 안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찾고 추구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것 역시 기능주의 논리에 경도된 것이라는 점에서 일부 한계가 있다. 50,51

이는 유토피아의 지평 안에서도 사유한다. 일이 착취와 지배, 저항의 장인 것만은 아니다. 일에서 우리는 종속된 지식, 저항의 주체성, 새롭게 발현하는 조직화 모델들을 기초로 대안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53/ ㅁㅣ래에 도래할 모습을 창조하는 것을 자본주의에 맞선 운동의 명시적인 일부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한 혁신을 “혁명”dㅣ후에 올 먼 미래로 미루는 “유예의 정치”에 도전한다. 54

유토피아적 요구의 가치를 평가하려면, 그 구조적 효과와 담론적 효과 양쪽의 가능성과 한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보편적인 기본소득 보장은 모든 노동자의 대고용주 협상력을 높여 줄 것이다/임금 감축없는 주 30시간 근무제는 불안전 고용과 과중 노동의 문제를 일부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58,59

이 책이 관심을 둘 요구는 노동조건의 실질적인 개혁을 가져올 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일이 갖는 지위에 대해 폭넓은 질문을 제기하며 ‘일에 종속되지 않는 삶‘에 대한 상상을 촉발하는 요구들이다. 다시 말해 종착점이라기보다는 방향등의 역할을 할 요구들이다. 59

우리가 일자리에 대한 만족도를 오로지 다른 일자리를 기준 삼아 따진다/ 현재 구성되어 있는 일하는 세계 자체를 다른 식으로 구성된 세계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판단이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62

어째서 일하고, 어디서 일하고, 누구와 일하고, 일할 때 무엇을 하고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모두 사회적 합의이고, 따라서 당연히 정치적 결정인 것이라면, 이러한 영역 중 더 많은 부분을 어떻게 해야 토론과 쟁투의 범위로 되찾아올 수 있을까? 일의 문제는 일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독식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문제는 일이 사회적, 정치척 상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까지 미친다. 63

볕뉘. 오랜만에 좋을 책을 읽는다. 삶과 일, 노동, 반노동, 탈노동을 버무려, 지금 우리가 어떤 사유를 하여야 하는지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다. 모처럼 좋은 토론과 논쟁들로 번지면 싶다. 이 책이 있어 그래도 좋은 봄이 될 것 같다. 아쉽지만 기본 취지를 먼저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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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시작하려면 지금 여기 있는 인간과는 특정한 분리가 필요하다

1. 합주행위

젠ㄷㅓ가 욕망하는 게 뭘까?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사회적 규범이 우리의 개별 인간됨에서 비롯되지 않은 욕망을 수반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조금은 덜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11

사람은 그의 인종, 그 인종에 대한 이해 가능성, 그 사람의 형태, 그 형태에 대한 인식 가능성, 그의 성별, 그 성별에 대한 지각적 검증, 그가 속한 민족, 그 민족에 대한 범주적 이해에 따라 다르게 생각된다. 12

인식가능성은 지배적 사회 규범에 따라 인정을 받은 결과로 생기는 것이라고 본다면, 인식 가능성에 못 미친다는 것에도 장점은 있다. 정말 내 선택이 혐오할 만한 것이고 나에게는 특정한 일단의 규범 안에서 인정을 받겠다는 욕망이 없다면, 내가 생존한다는 의미는 인정을 부여하는 이런 규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에 달려 있게 된다. 13

내가 행위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내 행위의 조건은 부분적으로 내 존재의 조건이기도 하다. 나의 행위가 내게 행해진 행위에 달려 있다면, 아니 그보다도 규범이 내게 작동한 방식에 달려 있다면 내가 ‘나‘로서 지속될 가능성은 내게 행해진 것과 밀접히 관련될 수 있는 나의 존재에 달려 있다./그런 패러독스만이 행위 주체성이 가능해지는 조건이라는 뜻일 뿐이다. 13

인간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시작하려면 지금 여기 있는 인간과는 특정한 분리가 필요하다/여기가 바로 비평이 등장하는 지점이다. 이때 비평은 다른 삶의 양식의 가능성을 열기 위해서 삶이 규제받는 관점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14

결혼이 친족 관계를 결정하게 되면 결혼 관계에 근거하지 않은 친족 유대를 세우려는 시도는 거의 불법적이거나 존속 불가능한 것이 되고, 그래서 친족 범주 자체가 가족으로 붕괴된다. 결혼 유대가 섹슈얼리티와 친족을 조직하는 독점적 방식으로 존재하는 한, 성적 소수자 사회 속에서 가능한 친족을 만드는 지속적 사회 유대는 인정받지도 못하고 존속하지도 못한다는 위협을 받을 것이다. 17

실제로 ㄱㅐ개인들은 어떤 신체, 어떤 젠더를 가지고 유지할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 사회적 지원 제도에 의존한다. 그래서 자기결정은, 행위 주체의 활동을 지원해주고 또 가능케 해주는 사회 세계의 맥락에 놓일 때만 가능한 개념이 된다./자기 힘으로 젠더를 주장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ㅎㅏ고 또 지원해주는 사회 규범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우리는 ‘자기만의‘ 젠더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외부‘에 의존하는 것이다. 19
인식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 삶은 살만한 삶이 아니듯, 인식 범주에서 살아낼 수 없는 규제가 생기는 삶도 수용할 대안은 못 된다/입장의 차이, 욕망의 차이는 윤ㄹㅣ적 반사 작용이 되어 보편화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21

젠ㄷㅓ를 역사적 범주로 이해한다는 것은, 몸을 문화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여겨지는 젠더가 계속 수정될 수 있게 열려 있으며 (인터섹스 운동이 분명히 밝혔듯) ‘신체anatomy’와 ‘성‘은 문화적 틀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23

인종이나 민족적 차이가 일차적인 것이 아니듯 성차도 더 이상 일차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이 표명된 인종적이거나 민족적인 틀 바깥에서 성차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은 옳다. 24

인간적 삶human life – 인간적이 그저 삶만 수식하는 게 아니라 삶은 인간을 인간적이지 않아면서 살아 있는 것과 연결한다./자신이 아닌 것과 맺는 관계가 살아 있는 인간 존재를 구성하므로, 인간은 그런 것들을 확립하려는 노력 속에서 인간의 경계를 넘게 된다/삶의 가능성은 인간적인 것을 초월해 살아있는 존재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런 역설은 살 만한 삶의 문제와 인간적 삶의 위상을 분리할 것을 요구한다. 27

인간 범주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며 또 광범위한 소수자들을 배제해야만 작동된다는 말은, 그런 범주에서 배제된 자들이 그 범주에 대해, 그 범주에서 말하는 ㅂㅏ로 그 지점에서 ‘인간‘ 범주에 ㄷㅐ한 새로운 표명을 시작할 것임을 의미한다. 29

정신분석학-성행위를 나누는 부모가 이성애 관계도 아니고 재생산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새로운 심리적 지형이 필요할 것이다./남성 여성의 이분 구조가 아닌 상황은 유아가 등장하는 사회 심리적 유형, 친족 층위의 변화, 인간이 ㅌㅐ어나고 양육되는 사회적 조건을 다시 숙고해볼 것을 요구하면서, 사회 분석과 심리 분석이 만나는 장소를 열어낼 뿐 아니라 사회적*심리적 분석의 새 영역을 열어낼 것이다. 30

나라는 존재가 언제나 내가 만든 적 없는 규범으로 구성된다면, 나는 이런 구성이 일어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정동affect과 욕망을 연출하고 구성하는 것은 규범이 나만의 가장 고유한 속성이라고 느껴지는 쪽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확실한 한 가지 방법이다. 31

젠더라는 것이 내 것이 되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섹슈얼리티 또한 어떤 특정한 ‘나‘의 박탈을 포함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게 나의 정치적 주장에 종지부를 찍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단지 누군가 이런 주장을 할 때, 그 사람은 그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33

2.

젠ㄷㅓ ㅎㅓ물기는 14년 전의 책 젠더 트러블과 달라졌다. 첫째, 나에서 우리로 존재의 인식론이 확대되었고, 둘째, 이론적 정교함에서 현실적 정치성으로 선회해 사회적 소수자에 ㄷㅐ한 ‘정치윤리적 성찰‘을 전개했으며, 마지막으로 다문화 ㅅㅣ대에 ㅊㅏ이를 수용하는 올바른 방식으로서 ‘문화번역‘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391

젠더 허물기는 여성이면서 사회적 소수자로, 또 성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현실의 사회, 문화, 역사, 지역적 관계 속에서 소통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정체성을 논의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 번역이라는 현실적 ㅅㅏㄹㅁ의 정치성이 주창되는 지점이다. 392

제도권 철학이나 규범적 젠터라는 안정된 제도나 확정된 의미가 기존의 고정된 규제에서 자유로울 때 새로운 해석과 의미가 열릴 수 있다. 정통 철학, 규범적 젠더만을 고집하는 것은 억압과 폭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반면, 그로부터의 자유와 타자성과의 소통은 비억압적이고 비폭력적인 미래로 향할 가능성을 연다. 393

문화 번역은 보편성 개념에서 배제된 것으로부터 역사적이고 우연적인 자기 정의를 발견하는 언어도단이나 수행 모순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서로 경쟁하는 열린 보편성으로 재소환되어 자기 안의 ㅇㅠ령인 타자를 포함할 가능성, 반토대주의적인 의미에서의 ‘구성적 외부‘가 될 잠재성으로 제시된다. 394

‘비평성‘이란 사유 실험, 에포케, 의지 행위를 통해 도달할 수는 없지만 토대 자체의 열개와 파열을 거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397

볕뉘

0. 세벽 세시 - ..잠들어 있는 새들을/꿈의 얼룩고양이가 덮친다/늙은 세일즈맨은 잠옷차림에 서류를 들고/축축하거 거대한 버섯들 사이로 갈팡질팡 걸어다닌다....네시의 기차가 오기 전에/쓰레기들이 은빛 레일 밖으로 치워진다. 진은영

1. 이른 잠, 한밤 중에 일어나 네시가 오기 전 잠을 청하지만 뒤척인다. 막 읽기를 끝낸 연유는 아닌 것 같다. 주디스버틀러의 ‘수행성‘, ‘정체성은 없다‘라는 말이 맴돌면서도 정확히 박히지를 않았는데, 이 책의 요지로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하지만 급하게 읽으려하지 않는다. 열어둔 책들 사이로 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마음의 잔상에 남아 더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 몇 권의 책들을 열어두었다. 가벼운 책부터, 주제가 있는 책들, 이렇게 철학가이자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책들. 심히 무겁고 버겁다. 그래서 가벼운 책들이 많이 필요하다. 잡지같은 책들을 곁에 열어둔다. 좀더 딱딱하고 힘겨운 책들을 읽기 위함이다. 많이 왔다. 보들레를도 읽어야 한다. 저기 한켠에 미뤄둔 파리의 우울에 말을 건네는 이가 있어 몇 꼭지를 읽어두었다. 랭보, 장 주네. 무거운가 가벼운가...아무래도 무거운 한 달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그렇지 가벼운 봄. 봄이 곁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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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은 하루의 시작일까 하루의 끝일까? 나는 조에게 물었다.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사이. 그건 어디에 속하느냐고. 조가 팔짱을 끼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뭐긴 뭐야. 어제와 오늘이 겹치는 시간이지. 그래서 그 시간에 책이 술이 가장 맛있는 거야. (윤성희 ‘모서리‘에서)

2.

해가 뜨면 아침이고 해가 지면 밤이다. 그 가운데는 새벽이다. (오한기 ‘홍학이된사나이‘에서)



볕뉘.

0.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되었어. 그 긴긴 시간. 그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들을 마음에 긋기 시작했어.
어쩌다 보니 색을 칠하게 됐어. 막막한 시간. 그 기다림도 여무는 시간들에 색깔을 입히기로 말야.
하얗게 하얗게 지난 밤 칠흑같은 졸음이 밀려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양으로.
까맣게 까맣게 온다 던 님은 오질 않고 어둑어둑. 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망으로.
푸르게 푸르게 내린 밤 설레임이 차곡차곡 쌓여와 이젠 분홍마저 내리는 새벽은 파아랑으로.
어쩌다보니 사랑하게 되었어. 어제와 오늘이 겹쳐 서성거림도 서걱거림도 남아날 것 같아.
어쩌다보니 낮은 잊어야 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사이 다 새벽이야. 새벽이야.
낮은 잊어. 푸르딩딩한 새벽이야.

1.

책 속의 새벽에 걸려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작가들의 괄호를 치는 상상력이란 때론 울타리를 넘어서 좋다. 그 말씨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한낮이 ㄷㅏ 새벽이라니..........묵혀보니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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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채색‘ - 한지 위에 보름달을 백여일이 지나 다시 그려본다. 노랑에 하양을 섞어 몇차례 올리고 말리고, 그위 파랑ㆍ노랑ㆍ파랑ㆍ연두ㆍ주황을 올려본다. 사이사이 말림. 미리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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