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展
프랑스 노년의 사상가는 68년 5월을 복기하며 여전히 우리는 같은 문제를 풀고 있는 ‘동시대인‘이라한다*. 수학자들이 이제서야 페르마의 정리를 풀어낸 것처럼.
어쩌면 그 문제를 풀려면 ‘0‘ 이 필요해. 수학사에서 0 이 필요했듯이. 정치는 그리 삼백년을 훌쩍 뒤지고 있다.고
자식이 부모 심경이 되어보지 않으면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듯, 삶을 두어볼 엄두라면 이해가 가까이 올까 봐. 사선에서 영점을 잡는 기분이랄까. 아마 그 노학자는 여전히.
어김없이 전시는 피지만 얘기는 자라지 못한다. 바닷가에서 시발된 전시는 제로 스티커만 아이들에게 찾으라 하겠지. 서울에서 뒤샹이 그리 처리된 것처럼 말이다.
*《반역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