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공기가 맑다. 곧 찬기운이라도 섞일 듯하다. 언제부턴가 자판, 아마 마음에 드는 자판이 맞겠다. 그것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다. 잘 맞지 않는 어색한 키보드라면 생각도 엇박자에 잘려 진도를 나갈 수 없다.

이러게 키보드에 마음을 의탁하고 있다니 말이다. 그럴 수 있겟느냐고, 마음을 바르게 먹고 우주의 기운을 생각하면 할 수 있는지 알았다. 의지박약.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장기가 서로 각자의 중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의 순서만 바꾸어보아도 손은 예사롭지 않다.

문득 지난 노트북을 꺼내 이것저것 끄적여보니, 키보드의 날렵한 감각이 되살아난다. 역으로 얼마나 나쁜 글쓰기 환경에서 어좁이가 되어 자라목을 길게 빼며 손가락과 눈을 혹사시킨 것일까 하는 자각이 드는 것이다.

손에 맞는 자판을 제대로 길들여야겠다. 찬바람이 불면 좀 시원한 손맛을 봐야할 것 같다.

볕뉘. 어제부로 항생제와 부대약을 끊고, 이담제만 먹고 한 달에 한 번 진료만 받으면 된다. 걱정했던 조직검사도 양호하니 걱정말라고 한다. 짧은 병상기간이었지만, 소도시의 병원맛, 의사맛, 병동맛을 제대로 느꼈다. 굳이 냉대가 공존하는 중대형도시의 병원을 선호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환자의 한호흡을 품고 대화할 줄 아는 관계자들의 맛이 깊다. 높지만 시끄럽지 않은 소도시의 말맵시에 빠져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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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 요기 조기에 여울, 여울 灘에 머리 이름들을 붙여 본다. 삼탄, 지탄, 탄탄. 여울들이 있는 지명이다. 그 앞에 꿈에서 본 여울을 붙인다.
몽탄, 그 자리에 달빛을 옮겨온다. 월탄. 달빛아래 여울. 여울 곁에 풀잎들. 그 풀잎에 비치는 달빛들. 그리고 물고기 거스르는 여울 소리.
그 소리와 빛과 은은히 비추는 실루엣들을 삼켜본다.

2. (수)수, 소소, 사소. 그렇게 작고 가벼운 것들을 다가올 시간 층층이 넣어본다. 그렇게 켜켜로 맛을 내는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 그 시간의 즙
을 내어본다. 떨어지는 설렘. 감정의 곁들이 나비 같다. 그 느낌들을 담는다. 다가올 느낌들을 사소하고 소소하고 수수한 사건들 속에 넣
는다. 그 안에 시간이 자란다. 공명하는 이야기가 번진다.


볕뉘.

0. 다시 모임에 서효인시를 읽다. 여수란 시의 장소 속엔 시간의 켜가 녹아있다. 밀려온 시간의 흔적들이 그 장소에 배여 독특한 감정의 시공간
으로 만들어낸다. 하나하나 인상이 깊다.

1. 기획된 느낌이 다 가시지 않아 어색하고 불편한 구석도 있다. 그 불편한 느낌과 한적하기만 다가올 시간과 느낌을 넣어 끝말이 지어본다.

2. 새로운 장소. 새로운 느낌, 새로운 시공간...그리고 지속의 생동감은 공통기억으로 자리매김되어 서로 달라지면 좋겠다. 한음 한음에 또 다르게 변주되는
음과 음악으로 거듭나면 어떨까 싶은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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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책방 같은 자리.
아편처럼 한움큼 쥐고 맡던 아카시아가
어김없이 파랑하늘 검은가지 위에 주렁주렁 걸려있다.


시를 훔쳤다. 몇 편의 시간을 훔치다가


코끝으로 몰려온 내음이 글썽거리다 눈물로 피었다.
왈칵 눈가로 꽃들이 피어 시가 어른비춘다.


파랑에 검은 활자가 얼은얼은 잠기다.나비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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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복제 시대의 미술작품

신ㅂㅣ화는 어떤 어휘들을 사용했느냐 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조금만 달리 보면 너무나 명백한 것을 쓸데없는 엉뚱한 설명으로 핵심을 흐려 놓는 데서 신비화는 비롯한다. 20

원작은 바로 그것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나온다 이것은 어떻게 평가되고 정의되는가/‘예술작품‘은 가짜 종교성의 분위기로 포장된다. 예술작품은 마치 성물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제시된다. 27

미술이란 그것이 지닌 유일무이한 변함없는 권위를 통해 다른 형태의 권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미술은 불평등을 고상한 것으로 보이게 하고, 위계질서를 짜릿한 긴장감을 주는 것으로 만든다. 36

과거의 미술은 더 이상 과거에 대한 향수의 감정으로 바라보지 않을 때, 그 작품은 단순히 성스러운 유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원작에는 그 그림에 대한 어떠한 정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없는 침묵과 고요함이 있다. 37 실제 물질 즉 물감에 스며 있어서, 보는 이는 그 물질성을 통해 화가의 몸짓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세잔-세상의 삶에서 한순간이 지나간다.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잊어버리는 것. 바로 그 순간이 되고, 예민한 감광판이 되는 것. 38

예술을 경험의 모든 측면과 관련시켜 보는 총체적인 접근방식과, 지배계급의 몰락을 아쉬워하며 이들에게 봉사하는 지식분자인 몇몇 전문자들의 비교주의적 접근을 구분하자는 것이다/이제 예술 이미지는 마치 언어처럼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예술 이미지는 삶의 주류에 합류했는데, 이제 예술 ㅈㅏ체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삶을 지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38, 39

이미지의 새로운 언어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새로운 언어를 통해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경험들을 더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말 이전에 보는 ㅎㅐㅇ위가 있다) 이때 경험이란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과거에 ㄷㅐ한 우리의 관계라는 본질적인 역사적 경험을 말한다. 즉, 우리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경험, 우리 자신이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그런 역사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경험 말이다. 40

4. 유화

작품들이 표현하는 명목상의 가치가 화가 본인에게는 별 다른 의미가 없었다. 화가 본인에게는 주문받은 그림을 환성하는 일 또는 그림을 파는 일이 더 중요했다. 진부한 작품은 서투름이나 무지함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장의 요구가 예술 자체의 요구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생기 결과였다. 103

유화시대의 전통 이전의 작품들 역시 부를 찬양했다. 그러나 여기서 부는 고정된 또는 신성한 사회적 질서의 상징이었다. 106

한스홀바인의 대사들이란 작품, 우리가 여기서 관심 갖는 것은 세상에 대해 이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다. 이는 한 계급 전체가 일반적으로 취했던 자세다. 이 두 대사는, 세상이라는 것이 그들이 거주할 장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112

공적인 초상화에서는 반드시 거리가 형식적으로 강조되어야만 한다. 평균 수준의 전통적 초상화들이 대체로 딱딱하고 경직돼 보이는 것은 화가의 솜씨가 모자라거나 기술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이 인위성은 초상화를 보는 방식 깊숙이 내재하는 성질이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아주 가깝게 볼 수 있어야 함과 동시에 멀게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미경으로 어떤 표본을 보는 것과 유사하다. 114

신호ㅏ를 그린 그림들은 이 유화의 범주 가운데 가장 속이 비어 있어서 대부분 거들떠볼 가치조차 없는 것들이다./만일 그림이 상상력을 갖게 ㅎㅏㄴ다면 그림의 목적을 잘 수행한 것이 아니다. 이 그림들은 그것을 보는 관객이자 소유자인 ㅅㅏ람들에게 새로운 ㅊㅔ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다시 꾸며 주는 역할밖에 ㅎㅏ지 못한다. 118,119

하층 계급의 생활장면들을 묘사하는 소위 ‘장르화‘는 신화 그림과는 정반대인 것처럼 생각되어 왔다. 말하자면 고귀한 ㄱㅓㅅ 대신 저속한 것으로서, 이 ‘장르화‘의 목적은 이 세상의 덕성은 사회적이고 금전적인 성공으로 보상받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이런 그림은 이제 막 부르주아지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다. 그들은 그 그림 속에 ㄱㅡ려진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가 아니라, 그 장면이 예시하고 있는 도덕적 기준을 긍정했기 때문에 그 그림을 좋아했던 것이다. 121

풍경은 유화의 범주에서 가장 논란이 적은 부분이다./자연의 양상들이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전체로서의 자연은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125,126

지난 사 세기 동안 생겨났던 매너리즘, 바로크,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양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화의 전통 자체가 하나의 유산으로 남긴 것은, 그것의 모델은 세상을 향해 난 창이라기보다는 벽 안에 소중하게 박아 놓은 금고에 더 가깝다. 즉 가시적인 사물들을 한데 모아 저장해둔 금고. 128
렘브란트 자화상 130-131

7. 광고

광고는 절대로 현재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과거에 관해 언급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항상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우리는 광고라는 시스템 전체를 마치 철따라 변하는 기후의 한 부분인 양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우리는 우리 자신이 광고를 스치는 게 아니라, 광고가 끊임없이 우리를 스치고 있다는 인상을 갖는다. 150,151

모든 광고가 서로 다른 광고 내용을 더 믿음직스럽게 만들고 효과있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로서 언제나 다 함께 공통된 제안을 하고 있다./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무엇인가를 더 사들임으로써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활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152

이제 광고 자체와 그 광고가 선전하고 있는 것들로 얻을 수 있는 쾌락과 이익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광고란 실제 그 자체에 기생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과연 무엇이 그들을 남들의 선망의 대상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가. 그건 바로 ㄷㅏ른 사람들의 선망이다. 광고란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153

광고를 보는 구매자들은 그 광고의 상품을 구입하면 이루어질 수 있을 법한 자신의 모습을 부러워하게 된다. 155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운 역사, 신화, 그리고 시는 광고가 주는 매력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될 수 있다./광고를 보는 구매자와 세계와의 관계는, 유화를 소유한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와는 아주 다르다 162, 164

유화는 시장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것이었다. 광고는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모든 광고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돈이 전부이고, 돈을 벌어야 불안감이 사라진다. 166

만일 당신이 이 상품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이성으로부터 사랑받게 될 것이고, 살 수 없다면 사랑을 덜 받게 될 것이라는 식이다. 광고에 의하면 현재란 불충분하다고 단정적으로 얘기된다. 유화는 영원히 남는 기록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림이 그 소유자에게 주는 ㄱㅣ쁨 중 하나는 그것이 자신의 현재 이미지를 미래의 후손에게 전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유화는 자연히 현재 시제로 그려져 있다. 168

광고의 진실성이란 광고가 주는 환상이 그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품는 환상에 얼마나 적절하게 들어 맞느냐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광고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백일몽에 적용된다. 169

개인적인 행복의 추구는 만인의 권리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실제의 사회적 환경은 개인으로 하여금 무력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의미없는 노동시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현재는 꿈속의 ㅁㅣ래에 의해서 ‘상쇄돼 버린다.‘ 이 미래의 꿈 속에서 노동하는 순간의 피동성은 상상적인 행동에 의해 대치된다. 백일몽 속에서 피동적인 남녀 노동자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ㅂㅏ뀐다. 노동하는 자아는 소비하는 자아를 선망하는 것이다./광고는 소비를 민주주의의 대체물로 만들어냈다. 무엇을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무슨 ㅊㅏ를 탈까 하는 선택은 의미있는 정치적 선택을 대치하고 있다. 광고는 ㅅㅏ회 내부의 비민주적인 모든 것들을 은폐하거나 보상해 주는 일을 돕는다. 173

광고는 꿈을 제조해내지 않는다. 광고가 ㅎㅏ는 일은 단지 우리 각자에게, 우리는 ㅇㅏ직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지만 장차 그렇게 될 수 있다고 ㅇㅣ야기해 주는 것이다. 173

광고에서는 본질적으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광고는 그것 이외에 마무 일도 생겨나지 않을 때만 효력이 있다. 177

광고가 보여주는 것들은 모두 장차 어떤 사람에 의해 획득되기를 ㄱㅣ다린다. 획득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행동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고,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은 다른 모든 느낌을 없애 버린다. 광고는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매우 중요한 정치적 현상이다...그것은 획득할 수 있는 능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모든 희망이 한데 모이고, 동질화되고, 단순화된다. 그렇게 모인 희망들은 정체불명이긴 하지만 강력하고, 물건을 살 때마다 반복되면서 마력적인 약속이 된다/자본주의는 다수의 관심을 가능한 좁은 범위 안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그 생명을 이어 나간다...오늘날에 와서는 발전된 국가들에서 무엇이 바람직한 것이고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은가에 잘못된 기준을 부여함으로써 이를 달성하고 있다. 178

볕뉘

0. 존 버거의 에세이를 이어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언어, 말하기 이전에 바라보기 등 통찰이 단순하면서도 놀라워 그 결을 더 느끼고 싶은 연유다. 이 책도 그러하다. 마지막장 광고는 우리의 증상을 광고라는 매체를 통해 번지는 것이 왜 인가 자명하게 이야기한다. 왜 민주주의는 소비를 통해 갇힐 수밖에 없는가라는 것도 어느 책들보다 간결하고 깊은 깨달음을 준다.

1. 유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회회사가 미의 시대별 변천같은 모호한 궤변으로 피해가지말고 부르주아가 갖은 소유목록을 확인하는 것에 일차적인 시선을 두어야 한다고 못박는다.

2. 삶과 구조에 깊은 사유와 노력이 돋보인다. 생각의 틀을 어디서부터 마련할 것인가란 지침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다음 사진의 이해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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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애목록‘

1.

퇴근길 눈여겨 본 전지된 모과 잔가지를 출근길 셋. 조팝가지 셋. 정리하다 떨어진 꽃잎 세송이. 꽃 하나. 모과잎 하나.

2.

복숭화 꽃 중가지 셋. 가지(소) 셋. 낙화 하나

3.

개나리 특대 3 대 4. 중 4. 소 5. 낙화 2

4.

열외 - 벚꽃. 진달래. 산수유

5.

드로잉 다섯. 기대기대 둘. 기다림 여섯. 설레임 일곱.

6.

찬 봄 둘. 해 봄 셋. 그래도 읽어봄 넷. 뜬 봄 하나. 열봄 하나. 안해 봄 둘.

군말. 그래도 책들이 많이 다가오고 가고, 꽃들을 미리 맞아 설레이고, 친구들도 새로 사귈 수 있는 나날인 듯. 어김없이 봄도 내리막 꽃들이 오프에서 활짝피기 전에 흔적을 남겨본다. 네가 있어 정신없는 봄이라구.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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