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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비평의 인문학

황정아 (지은이) | 창비 | 2015-12-15

 

 

  개념의 동시대성을 고찰하는
인문학의 새로운 칼날
.

 

  어느쪽에서는 인문학 열풍이라고 하고 어느쪽에서는 인문학 위기라고 말한다. 헬조선의 사회에서 어떤 이는 인문학을 답이라고 길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인문학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 말한다. 인문학에 부여된 이 상반된 논리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이 책은 인문학 열풍 앞에서 그 미래를 모색하는 연구방법론이라고 소개된다. 인문학의 개념이 지닌 의의를 논하며 그것이 현대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지를 탐구해온 작업의 집적물이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서 현사회의 무수한 관념과 함께 사회에 대한 개념이 정리될 수 있을까. 현사회를 비평의 눈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

H. A. 거버 (지은이) | 김혜연 (옮긴이) | 책읽는귀족 | 2015-12-12 

 

 

 

“겨울밤에는 기인 이야기를 읽고 싶다" 

 

 러시아에 유명한 장편소설이 많은 이유는 추위와 긴 겨울, 밤 덕분이라고 한다. 새해도 밝았지만, 어쩌면 아직은 싱숭생숭한 나날들. 겨울밤, 이야기를 읽고 싶다. 어린 시절의 향수처럼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처럼, 그냥 재밌는 이야기들,
 신화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결국엔 모든 신화들이 비슷하다고 하지만. 북유럽의 신화엔 또 어떤 상상엵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있을런지.
  신화는 수많은 이야기와 영화, 그림, 음악 등의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토르>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등의 영화도 북유럽 신화에 바탕한다고 하니 재미또한 옹골지게 있을 듯하다. 

 

 

 

그림자 노동

이반 일리치 (지은이), 노승영 (옮긴이) | 사월의책 | 2015년 12월

  

 

 노동을 하고 싶은데 노동할 곳이 없는 현실에서 읽게 되는 그림자 노동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저자는 우리가 노동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고 하는데, 과연 얼만큼 뒤집어질 수 있는지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어쩌면 익히 느끼고 있는 것들을 얘기할지도 모른다만, 그 숨겨져 있는 '의미'를 조금 더 명징하게 읽어내보자.

 노동이 있되 노동이 없는 이 현실에서.

 

 

 

자아의 원천들

 찰스 테일러 (지은이), 권기돈, 하주영 (옮긴이) | 새물결 | 2015년 12월

 

 

  도덕만 이야기하는 철학은 공허하지만 

도덕을 이야기하지 않는 철학은 존재할 수 없다." 

 

  앗, 선택하고 보니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다...음..

  철학서들은 읽고 나면 명확성보다는 오히려 혼돈의 시간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 혼돈이 참 좋다.

 이 책은 반인간주의와 반도덕주의가 지배한 20세기 하반기의 유럽과 미국의 주류 철학에 맞서 '인간됨'과 '인간 주체'를 도덕철학적으로 옹호하며 근대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서구 사상의 해석의 모든 지형도를 전복시키는 동시에 철학이 현실과 맺는 관계 또한 새롭게 조명하는 책이라고 한다.

  어쨌든 내 속에 반항적 기질이 다분한 건지, 주류에 대해 '전복'적인 이야기에 혹한다. 여기에서 다루는 전복성은 얼마나 설득적일 수 있으며 얼마나 흥미진진할지를 기대하며. 

 

 

외톨이 선언

애널리 루퍼스 (지은이), 김정희 (옮긴이) | 마디 | 2015년 12월

 

 

  군중이 아닌 개별자로서 나를 마주하기

 

  고독마저도 감미롭다는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하지만, 현대 세상에서 고독한 개인, 외톨이는 그닥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오히려 왕따로까지도 연결이 되려고 한다.

  이 책은 세상 곳곳에 숨은 외톨이를 찾아나서는 대중문화.심리 교양서다. 저자는 외톨이에 대한 오해를 밝히고 진면모를 보여주고자 종교에서 광고, 의복, 범죄, 예술, 기행, 환경, 문학, 종교, 대중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시선을 통해 외톨이의 의미를 찾아낸다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혹은 예술가라고 부르는 이들은 다 외톨이였나?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다고 하는 우리들은, 그럼에도 외톨이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외톨이 선언이라는 책이 어떻게 바꾸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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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에는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에 그리 능하지 못하다.

 

   살아가는 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물음은 영원할 것이다. 끊임없는 인간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질문이다. 어떻게 잘 살아 갈 것인가. 그것을 위해 인간의 진화와 심리와 역사를 탐구하는 것일 게다.

  이 책은 인류의 시원부터의 인간진화의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한 책이다. 적어도 인간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파악할 수는 있다. 그리고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야전과 영원

- 푸코, 라캉, 르장드르

 

 

 

“영원"한 "밤"의 "투쟁"에 바치는 책  

 

“영원한 야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통일된 시점 따위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영원한 야전”이다.

   

  미셸 푸코, 자크 라캉, 피에르 르장드르를 읽는다. 저자는 이들의 텍스트를 분석하며 한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가운데 어떻게 사회 안에서 주체가 되어가는지를 이야기한다. 통일된 시점이나 필연성, 전체성을 보장하는 것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의 니체라 불리는 사사키 아타루다. 니체의 푸코와 라캉과 르장드르 해석이라고 해야 하나. 책소개에선 이 책을 통해 고도의 지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긴 겨울, 지적모험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 합법적 권력은 가난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불평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가의 역할은 이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당연시되어 왔던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전제가 잘못 되었다 주장한다. 저자는 평생토록 불평등을 연구해왔단다!

 문명은 발전하는데 인간은 왜 자꾸 가난해지는지, 다같이 잘먹고 잘 살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건지, 도대체 이해되지 못할 정치인들의 행태는 복지사회도 거부하는 판국이다.

 저자는 불평등의 가장 큰 이유가 불평등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게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갖다 바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음, 이건 익히 아는 바다.  어쨌든 심적으로 익히 아는 바를 저자는 논리로 전개하며 감정적인 불평등에 대한 반감을 보다 차분하게 말하고 있다.

  가난은 권력의 문제다! 그래서 결론은 권력을 바로잡아야 하는 거다.  제 이기에 물든 권력자들을 합법적으로 권력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한 정책들과 제언들을 저자에게 들어보자.

 

 

 

어리석음

 

 

 

  “어리석음에 관한 철학적 사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음의 사유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핀천, 도스토옙스키, 워즈워스, 칸트, 키르케고르, 워즈워스.

어리석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들의 저작들을 만나게도 된다. 어리석음은 뭘까. 저자는 어리석음은 지식 이전의 순수한 상태와는 다르며 지식을 전제하기에 어리석음이 생겨나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 로넬은 서양철학이 어리석음을 어떻게 억압하고 왜곡했는지를 추적한다. 어리석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계보 및 그 한계에 대한 비판, 어리석음을 미학적 범주로 다루는 사유의 흐름에 대한 비판, 그리고 로넬 자신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어리석음에 대한 고백과 '타자'에 대한 어리석음의 윤리 모색이 이루어진다.

  결국 어리석음을 서양철학서로 철학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내 아디아포라 상태는 누가 만드는 거야!!!!!!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어이없는 상태로 흘러갈수록 아디아포라가 증가하는 것 같다. 아디아포라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 도덕적 마비 상태를 말한다. 너무 기막힌 일들이 반복, 점층되어 나나타니까 자꾸 내가 아디아포라의 상태가 되어가는 것만 같아 몹시 억울하고 슬프다.

  저자는 악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일상적으로 무감각할 때,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할 때, 우리의 윤리적 시선을 무심코 거둘 때와 같이 일상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한편 악은 국가와 이데올로기마저 민영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인간관계도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태도를 닮아가면서, 그 속도는 더 급박해지고 정체는 더 교묘해지고 있다. 

 아,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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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심리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페이스북 심리학 - 페이스북은 우리 삶과 우정, 사랑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수재나 E. 플로레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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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좋아요?! 



쉽게 물든다


  어떻게든 눈을 뜨고 보아도 좋은 일 하나 없는 세상이다. 좋은 일이란 건 보는 것인가, 보이는 것인가. 그것을 발견해내지 못함은 내 탓인가. ‘좋다’가 객관적 상황의, 사실이 아니라 감정의 발현이라 한들 달라진 건 없다. 거듭 생각해도 부닥치는 현실에서 ‘좋은 일’을 만나기는 쉽지 않고 다른 이들의 좋은 일들을 바라만보다가 이룬 것 없는 삶에 대한 씁쓸함을 더욱 자각한다. 자학에 이르는 길을 이토록 빨리 찾기도 쉽지 않을 텐데 쉽게 그 길을 알려주시는 가히 놀라운 2015년이다.

  결핍이 충족되어야 한다면 그래서 쉬이 욕구를 충족시켜줄 디지털 세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 세상의 놀라움은 연장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얻으려 했던 좋은 것을 얻고 있는가. 내가 한만큼, 내 일상을 단지 게시하는 대가로, 타인들에게서 너의 삶이 ‘좋아요’라는 인증을 받는 순간 그토록 비어가기만 하는 삶의 욕구가 채워진 듯한 충족.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보상이듯 봇물 터지듯이 이뤄지는 좋아요는 자신의 가치가 회복되며 비로소 존중받고 인정받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이미 좋아요에 강화된 ‘나’는 좋아요를 생산해내느라 밤낮없는 노동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좋아요가 계속될 때 행복감과 충족감이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결국 디지털세계의 삶에서도 충족되지 못하는 결핍은 생기기 마련이다. 밤낮을 잃은 노동에 감각은 마비되고 충분히 재단된 나의 일상에서 더 이상 좋아요를 획득하지 못할수록 고통은 고스란히 쌓이게 된다. 강박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행동들이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잊게, 잃게 만드는 길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북받쳐 오르는 고통을 어찌 할까. 아직 그 고통을 알지 못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 수재나 플로렌스는 강박처럼 페이스북 세계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녀가 들려주는 사례들은 실례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실례이기 때문에 전해지는 충격이 크다. 저자가 3년 동안 인터뷰한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이처럼 쉽게 페이스북 세상에 물들어 자신을 잃고, 심각한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중독 행동은 그 순간에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는 것처럼 보인다. 페이스북은 자신에 대한 느낌을 바꿀 수 있다. 자신의 삶이 문제투성이거나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될 때 페이스북은 훌륭한 탈출구가 되어준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페이스북 세계로 탈출하면 삶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가족, 인간관계, 현실 세계의 우정―을 잊어버릴 수 있다. (p220~221)


  페이스북에 물들어 중독된 이들. 저자는 이들의 사례들을 통해 페이스북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 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페이스북의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 무엇보다 ‘정보’라는 측면에서의 이 기능의 유용성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러나, 정보의 취사선택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통제적으로 정보를 선택할 수 있을까. 개인정보가 원치 않는 곳에 퍼져가는 상황이나 원치 않는 정보를 무의식중에 습득하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페이스북이라는 도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방식이 문제를 양산해내는, 부정성을 확산해 가는 요인이 된다.

  저자는 페이스북에서 만날 수 있는 부정적 이용자들을 감정조종자라 칭하며 파괴자, 나르시시스트, 순교자, 유혹자, 스토커라 명명한다. 자신이 아무리 페이스북의 건전한 이용자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유형을 만나 자신의 감정이 그들로 인해 통제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자존감과 생활의 리듬이 깨지며 한껏 충족되었던 감정이 파괴되고 있음을, 애써 찾은 디지털 세계의 안락함도 무너짐을 경험하는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기보다 디지털 세계에서 글을 읽고 사진을 보는 것에 더욱 열광하고 있다. 만나서도 각자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시간과 마음을 쓰고 있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맺음을 원하는 것일까. 이러한 관계맺음이 디지털 세계의 변화에 맞추어진 것이라면, 디지털 세계에서도 무너지고 파괴되는 관계맺음은 계속 이어가야 하는가.   



그러나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행복의 열쇠이고, 균형을 회복하는 한가지 방법은 최신 기술을 잠시 멀리하는 것이다. (p262)


  페이스북으로 인해 겪게 되는 부정적 사건에 대한 경각심은 저자가 충분히 알려주고 있는데, 어찌 탈출구가 안 보인다. 저자가 제시하는 처방전은 어찌 보면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 될 것 같지만, 그렇기에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같다. 저자는 현명하게 페이스북을 이용할 것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미 페이스북에 중독된 이들이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페이스북 이용하지 않기’가 결론이라면, 이것은 오랜 시간 공들여 책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선 김빠지는 일이다.

  페이스북에서 잠시 멀리하기 위해서 페이스북에 심취되어 나타나는 여러 사례들이 ‘당신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경각심을 통해 두려움으로 페이스북의 접속을 끊게 만들겠다는 의도라면, 사례가 주는 경각심은 충분히 인지된다. 이 책의 차별점은 대부분의 심리학책이 그렇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이다. 그 사례를 모으고 재구성하며 분석함으로써 심리학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해석에 대한 당위성이 올라간다.

  하지만 이 책은 페이스북 심리학을 읽기 전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전개된다. 특별한 통찰도 특별한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는 듯 보인다. 인터넷 중독에서 늘 보던 기사의 내용 이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법 실망스럽다. 인터넷에, SNS에 중독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없이 논의되어 왔다. 다만, 이 책은 페이스북을 한정해서 제시했을 뿐이다. 어느 특정 분야에 대한 심리학적 원인에 대한 분석이 이미 익숙하다는 것은 그 해결방법 또한 전위적이라기보다는 익숙한 것이면서 해결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지 못하는, 페이스북을 끊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거듭 생각하면 왜 이렇게 단편적인 형태로 심리학적인 접근이 이루어졌을까란 생각이 거듭 든다. 물론 가장 빠른 해결을 위해선 가장 큰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법적인 차원에서 페이스북 중독에서 놓여 날 수 있었던 사례들이 첨가되었다면 어땠을까.

  이 책은 쉽고 상당히 가독성이 좋다. 어려운 심리학적 용어로, 이론적이고 학구적으로 나열한 책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임상심리학자가 제시하는 페이스북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기대했기에, 페이스북 심리학이란 이름으로 뭔가 ‘한방 있는’ 통찰과 해결책을 기대했기에 아쉬울 뿐이다. 인터넷에 중독되면, 페이스북에 중독되면 이렇게 돼라고 말하는 선생님에게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가 ‘끊어!’라는 답변을 들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히 저자의 수많은 사례연구와 거기에서 분석한 페이스북 중독의 원인들을 보면 페이스북을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거나 적어도 페이스북 중독인지 아닌지 스스로를 체크하게 한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경각심을 가지고 페이스북 이용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것임은 분명할 것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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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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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불안증 환자를 만나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저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한번도 보지 못한 이국 남자가, 저널리스트라는 일반적인(다분히 고정관념이기도 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그려졌다. 그의 글을 읽으며 웃으며 그의 부글거리는 아랫배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 듣고 싶어졌다.

   

나는 의사도 심리학자도 사회학자도 과학사가도 아니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불안에 대해 글을 쓴다면 나보다 훨씬 학술적 권위가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종합이자 르포르타주다.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대중문화, 최신 학술 연구에서 불안에 대한 탐구들을 한데 모으고, 이걸 정말로 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불안의 직접 경험과 함께 엮으려 한다. (p41)


  그는 불안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데, 고통의 강도가 점증되어 괴로워하는데도 웃픈 얘기로 듣고 있는 나는 예의가 아닌 것 같지만, 열성적인 청강생, 아니 열성적 독자가 되어 그를 응원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불안에 대한 개인의 경험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시사적이고 학술적이고 문학적이고 고발적이기도 한 그의 글은 부글거리는 그의 아랫배만큼이나 매력이 부글거리기 때문이다.

  일상이 불안으로 점철된 삶,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이 신경증 환자에게 내려진 처방은 계속 ‘불안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고지식한 신경증 환자에게 정신과 의사는 간단히 ‘약’을 처방하는 대신 불안에 대한 글을 쓸 것을 권유한다. 극심한 불안 공포증에 시달리는 이 순진한 환자는 그때부터 불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불안의 경험에 대해 기억하며 불안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불안에 대해 사색했던 이들의 글귀들과 불안을 경험한 이들은 누구인지, 불안에 대한 유전학, 불안증에 대한 의학적 명명까지를 깊이 탐구한다. 불안이 언제부터 병이 되었는지, 불안의 역사와 함께 전개되었던 무수한 ‘약’의 행진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선, 한글판 제목이 상당히 끌리게 정해졌다. 원제를 변경하는 경우 생뚱맞거나 유행하는 형태의 제목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 책의 경우 한글판 제목이 딱 어울린다. 훨씬 친근감과 공감이 느껴지며 그의 문체와 내용과 잘 맞는 제목이다. 또한, 개인의 경험을 엮은 이 책은 상당한 분량임에도, 불안증 ‘환자’의 글임에도 가독성과 설득력이 있다.




불안을 어떻게 할까


  불안은 병인가. 불안이 단지 예민한 신경증의 발현이었던 시대에서 치료약이 발명됨으로써 ‘병’으로 간주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불안증 환자가 더욱 증가되어 이 세상엔 불안한 환자들이 넘치는 시대가 되기까지. 여전히 논란은 지속되고 있고 사람들은 불안증을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고 치료가 되거나 치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불안증이 의학적 병명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현대는 불안증 환자들이 넘쳐난다. 약 하나로 금세 불안증상이 완화된다 하더라도 불안의 경험은 일회성으로 끝나거나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이름도 알기 힘든 무수한 불안증 약들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병의 증세가 완화되는 듯한 느낌들을 가지지만, 어쩐지 불안의 경험은 반복된다. 그래서 저자는 불안은 영원한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불안의 형태는 바뀌었으나 불안의 경험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기에.

  그래서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불안은 심리 치료나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불안은 피하거나 약으로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자아 발견을 위한 길, 자아실현의 길(p292)로 삼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불안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제거해야 할 증상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실존으로의 부름이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귀 기울여야 하는 메시지(퍼시, 예수회 주간지《아메리카》, 1957.)”니까 죄책감, 자의식, 슬픔, 수치, 불안 등의 세계와 우리 영혼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를 신체적 병증으로 생각하고 약으로 달랜다면 더욱 심한 인간 소외가 일어난다(p295).


  사색이 되게 만드는 불안증상을 없애기 위해 사색적으로 불안에 접근한 저자는 결국 불안이라는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로부터 자기 성찰과 자기 발견의 기회를 삼고자 한다. 그리고 불안이 용기를, 보다 도덕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용기와 도덕적인 불안을 나타낸 이들에 대한 사례를 덧붙임으로써 단지 의견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가능할 수 있는 일임을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불안증은 고달프다. 그 증상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약으로 완벽히 치료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또한 병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던 것이라면 불안은 더 깊이 끌어안고 있어도 좋다. 적어도 저자처럼 불안을 생각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내 불안은 낫지 않는 상처처럼 가끔은 나의 삶을 막아서고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떤 힘의 원천이자 은총이기도 하다. (p422)

    

  불안에 대해 이러한 글로 마침을 할 수 있다면 저자의 불안을 치유하기 위한 글쓰기는 성공한 것이 아닌가. 부분 부분 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알약을 삼키며 증상을 완화시키면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불안을 안고 있지만, 처음 의사에게 달려갔던 불안증 환자의 모습에서 얼마나 달라진 채로 저자는 불안을 마주보고 있는가. 이러한 치유책을 알려주는 의사가 있다면 당장 달려가 진료를 받고 싶다. 이런 환자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의사를 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사색할 수 있다면 나도 당장, 불안증 환자가 되고 싶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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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기 신간평가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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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 현실을 만드는 레시피 (양장)
로런스 부시 지음, 이종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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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현실을 만드는 레시피

 

 표준이란 알고보면 보이지 않는 권력이자 현실을 창조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표준을 정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산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논의에 분석철학과 윤리학을 접목하고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얘기한다.

 생각하면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표준, 기본에 매인, 집착하는 삶인 것도 같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만든 것이 사실은 권력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권력의 메커니즘에 순응하게 되었는지를 파헤쳐 보는 책이라니, 읽어보고 싶다. 

  

일탈

 

 표준이라는 제목과 대비되는 일탈.

 이 책은 성 인류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게일 루빈의 논문 선집이다. 문화인류학자로서 그녀가 선구적으로 개척한 성적 하위문화에 관한 민족지학적 연구들로 채워졌다고 하는데...

 왜 일탈이라고 제목지었을까?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빈곤하게 살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많은 가난한 이들이 힘겹게 살고 있는데, 어느덧 가난한 이에 대한 멸시가 강화되고 있다. 오래전 빈곤은 개인의 책임으로 했는데, 다시 가난이 죄가 되고 가난한 이는 죄인이 되는 세상이다.

 이 책은  미국 사회가 가난을 죄악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처벌하는 데까지 나아갔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 타이비는 경제 논리에 잠식된 사법 시스템과 그 지배를 받는 디스토피아 미국 사회를 그리고 부의 양극화가 집어삼킨 미국의 사법 시스템을 해부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도 바로 적용되는 부분일 것이다. 

 

 

소모되는 남자

 

 남녀차에 대한 새로운 사회진화적 해석을 하는 책이다. 저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고, 성공한 문화들은 다른 경쟁문화를 능가하기 위해 이런 남녀차를 더욱 부각시켜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화는 남성의 역할을 성취하고 생산하며, 다른 이들을 부양하고, 필요하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강요함으로써, 결국 남성을 착취한다. 저자는 남성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문화로부터 상당한 이점을 얻는다는 점과 동시에, 그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고통 받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최근,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또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책이라 읽어볼 만하다. 영원한 전쟁, 여성과 남성이여!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저자는 불안증과 평생 싸워온 환자이자 저널리스트 스콧 스토셀이다. 에세이로서 거의 모든 분야와 시대의 불안에 관한 지식을 강박적일 만큼 완벽하게 망라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현대는 여러 형태의 불안속에 살고 있다. 저자가 보는 불안의 요인이 무엇인지에 관해 광범위한 탐구와 구체적인 사례들을 찾아, 불안의 개념과 치료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불안의 이유는 무엇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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