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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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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불안증 환자를 만나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저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한번도 보지 못한 이국 남자가, 저널리스트라는 일반적인(다분히 고정관념이기도 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그려졌다. 그의 글을 읽으며 웃으며 그의 부글거리는 아랫배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 듣고 싶어졌다.

   

나는 의사도 심리학자도 사회학자도 과학사가도 아니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불안에 대해 글을 쓴다면 나보다 훨씬 학술적 권위가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종합이자 르포르타주다.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대중문화, 최신 학술 연구에서 불안에 대한 탐구들을 한데 모으고, 이걸 정말로 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불안의 직접 경험과 함께 엮으려 한다. (p41)


  그는 불안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데, 고통의 강도가 점증되어 괴로워하는데도 웃픈 얘기로 듣고 있는 나는 예의가 아닌 것 같지만, 열성적인 청강생, 아니 열성적 독자가 되어 그를 응원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불안에 대한 개인의 경험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시사적이고 학술적이고 문학적이고 고발적이기도 한 그의 글은 부글거리는 그의 아랫배만큼이나 매력이 부글거리기 때문이다.

  일상이 불안으로 점철된 삶,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이 신경증 환자에게 내려진 처방은 계속 ‘불안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고지식한 신경증 환자에게 정신과 의사는 간단히 ‘약’을 처방하는 대신 불안에 대한 글을 쓸 것을 권유한다. 극심한 불안 공포증에 시달리는 이 순진한 환자는 그때부터 불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불안의 경험에 대해 기억하며 불안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불안에 대해 사색했던 이들의 글귀들과 불안을 경험한 이들은 누구인지, 불안에 대한 유전학, 불안증에 대한 의학적 명명까지를 깊이 탐구한다. 불안이 언제부터 병이 되었는지, 불안의 역사와 함께 전개되었던 무수한 ‘약’의 행진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선, 한글판 제목이 상당히 끌리게 정해졌다. 원제를 변경하는 경우 생뚱맞거나 유행하는 형태의 제목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 책의 경우 한글판 제목이 딱 어울린다. 훨씬 친근감과 공감이 느껴지며 그의 문체와 내용과 잘 맞는 제목이다. 또한, 개인의 경험을 엮은 이 책은 상당한 분량임에도, 불안증 ‘환자’의 글임에도 가독성과 설득력이 있다.




불안을 어떻게 할까


  불안은 병인가. 불안이 단지 예민한 신경증의 발현이었던 시대에서 치료약이 발명됨으로써 ‘병’으로 간주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불안증 환자가 더욱 증가되어 이 세상엔 불안한 환자들이 넘치는 시대가 되기까지. 여전히 논란은 지속되고 있고 사람들은 불안증을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고 치료가 되거나 치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불안증이 의학적 병명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현대는 불안증 환자들이 넘쳐난다. 약 하나로 금세 불안증상이 완화된다 하더라도 불안의 경험은 일회성으로 끝나거나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이름도 알기 힘든 무수한 불안증 약들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병의 증세가 완화되는 듯한 느낌들을 가지지만, 어쩐지 불안의 경험은 반복된다. 그래서 저자는 불안은 영원한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불안의 형태는 바뀌었으나 불안의 경험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기에.

  그래서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불안은 심리 치료나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불안은 피하거나 약으로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자아 발견을 위한 길, 자아실현의 길(p292)로 삼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불안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제거해야 할 증상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실존으로의 부름이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귀 기울여야 하는 메시지(퍼시, 예수회 주간지《아메리카》, 1957.)”니까 죄책감, 자의식, 슬픔, 수치, 불안 등의 세계와 우리 영혼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를 신체적 병증으로 생각하고 약으로 달랜다면 더욱 심한 인간 소외가 일어난다(p295).


  사색이 되게 만드는 불안증상을 없애기 위해 사색적으로 불안에 접근한 저자는 결국 불안이라는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로부터 자기 성찰과 자기 발견의 기회를 삼고자 한다. 그리고 불안이 용기를, 보다 도덕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용기와 도덕적인 불안을 나타낸 이들에 대한 사례를 덧붙임으로써 단지 의견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가능할 수 있는 일임을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불안증은 고달프다. 그 증상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약으로 완벽히 치료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또한 병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던 것이라면 불안은 더 깊이 끌어안고 있어도 좋다. 적어도 저자처럼 불안을 생각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내 불안은 낫지 않는 상처처럼 가끔은 나의 삶을 막아서고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떤 힘의 원천이자 은총이기도 하다. (p422)

    

  불안에 대해 이러한 글로 마침을 할 수 있다면 저자의 불안을 치유하기 위한 글쓰기는 성공한 것이 아닌가. 부분 부분 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알약을 삼키며 증상을 완화시키면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불안을 안고 있지만, 처음 의사에게 달려갔던 불안증 환자의 모습에서 얼마나 달라진 채로 저자는 불안을 마주보고 있는가. 이러한 치유책을 알려주는 의사가 있다면 당장 달려가 진료를 받고 싶다. 이런 환자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의사를 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사색할 수 있다면 나도 당장, 불안증 환자가 되고 싶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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