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한 남자들에게 여자들은 매력은 느낄지언정 정작 이성으로 쉽게 다가가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완벽해 보이는’ 남자들 중에 의외로 애인이 없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한때 유행했던 ‘외로운 킹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들 중에서 아폴론은 요즘 말로 하면 거의 완벽한 스펙을 갖춘 신이었다. 제우스의 아들로서 집안(?) 좋았지, 잘생겼지, 지적이었지 게다가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 하지만 아폴론은 수없이 많은 사랑에 실패한다. 월계수로 변한 다프네가 그랬고 카산드라도 그 중 하나.
아폴론은 “나와 동침하면 너에게 세상 모든 일을 내다 볼 수 있는 예언의 능력을 주겠다.”라며 카산드라를 유혹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카산드라는 아폴론의
사랑을 외면하게 된다. 화가 난 아폴론은 카산드라에게 ‘예언의 능력’을 주긴 했지만 그 예언의 ‘설득력’을 빼앗아 버린다.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게 된 것이다.
조국 트로이가 파리스가 데려온 헬레네에 의해 위기를 맞게 되리라는 예언도, ‘트로이의 목마’가 조국을 망하게 할 것이란 예언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결국 트로이는 그리스에게 멸망 당한다. 그녀 역시 그리스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게 되고
원치 않았지만 아가멤논의 자식을 둘이나 낳게 된다.
그녀 생의 마지막 순간, 아가멤논과 같이 있던 그녀는 자기와
아가멤논이 비참하게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가멤논에게 그것만은 미리 예언하지 않는다. 결국
질투에 눈이 먼 아가멤논의 아내에게 둘 다 비참하게 죽게 된다.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했지만 정작 그녀도 진정한 사랑이나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먼 생을 살다간 것이다.
어느 시대에도 카산드라같이 남보다 앞서 ‘깨어 있는’ 인물은 늘 있어왔다. 항상 일이 터지고 나서야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후회했지만….
혹시 여성 알라디너분들 중에
가족이나 회사동료 및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다들 한 귀로 흘려듣거나, 아예 들으려고도 안 하는
경우가 있는가?
그렇다면 젊은(또는 어린) 시절, 아폴론같이 잘생긴
남자의 사랑을 외면하고 울린 적이 있는 건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볼 일이다. 그 남자를 울린
죄로 저주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와이프의 말을 항상 의심 없이 믿고 착한 아이처럼 잘 따른다. 그녀는 나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았으므로 ‘설득력’을 상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요즘 다시 틈틈이 그리스신화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다. < 로마인이야기
>도 10권 넘어가면서 황제이름들이 헷갈리기 시작해서
결국 외우기를 포기했는데, 도대체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여러 번 읽었건만 항상 신과 등장인물들의 이름, 그리고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은 기억이 엉키고 가물가물하다. 머리가
나쁘면 반복학습을 할 수밖에.
여기저기 펼쳐놓고 읽고 있는 다른 책들
도스토예프스키의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이야기 전반부의 장황하고 지루한 얘기들이 항상 이 책 읽을 때의 고비다. 부디
이번에는 끈기있게 완독해야지.
그밖에 조경란의 < 혀 >, 쉼보르스카의
< 끝과 시작 >, 마크 쿨란스키의 < 대구 >를 집안 곳곳에 놔두고 동시다발적으로 찔끔찔끔 읽고 있다.
사놓은 책들은 많고 읽을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이것 또한 핑계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