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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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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대, 나는 서점을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다. 초등학생 시절, 과학실을 빌려 임시 서점처럼 만들고 ‘도서 바자회’를 열었던 그 때 그 공간부터 언제 가도 어김없이 기분 좋은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이 책의 추천글을 쓴 한겨레 문화팀장이자 건축 칼럼니스트 구본준은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아름다운 서점을 닮았’을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서점이 곧 천국인 사람이었다.

 

단지 책이 좋아서 서점을 좋아하는 내게 서점이 좋아서 책이 좋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심어준 서점은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이었다. 정갈하지만, 그래서 다소 딱딱한 느낌의 대형 서점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던지라 책방마다 느낌이 무척 달랐던 헌책방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중 신촌에 있던 헌책방의 구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는,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에 계산대가 자리해 있고 남은 공간은 하나 같이 크기가 다른 책장들이 있는데, 그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또한 제각각으로 꽂혀 있었다. 난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찾는 책을 검색해서 한 번에 찾는 일은 편리했지만, 그 책을 찾는 것으로 끝이었을 뿐 다른 책에 눈을 돌리고 손이 갈 기회가 적었다. 헌책방은 정갈한 맛은 없었지만 내 발길이 닿는 대로, 내 손길이 닿는 대로 접할 수 있는 책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신선했고, 재밌었다. 또, 책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툭하고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책탑으로 가득한 헌책방도 기억난다. 그 책탑 밑 부분에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책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무너질까, 책을 빼진 못하고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헌책방이었을지라도, 내겐 이렇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는 서점이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는 존재만으로도 행복하고, 가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 자신할 정도의 서점들 소개로 가득한 책이다.

프랑스 파리, 센 강 왼편 기슭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는 학생들의 거리 라탱 지구. 커다란 벚나무 그늘에, 지금도 전 세계에서 모이는 젊은 작가 지망생들의 유토피아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03년에 극장으로 지은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객석을 모두 떼어내고 서가로 대체되어 갤러리 벽면 전체를 모두 책으로 채운, 모든 분야를 망라해 35만 권이나 되는 책을 보유한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서점.

그리스 산토리니, 신들이 사랑한 에게 해의 석양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산토리니 섬 북쪽 끝에 위치한, 일찍이 플라톤이 꿈꾸었던, 바다 저편에 전설의 왕국에서 이름을 딴 ‘아틀란티스’ 서점까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정말이지 아름다운 서점들을 책 한권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서점들은 사진으로나마 내 눈으로 보는 것도 좋았지만, 이 책에 실린 인터뷰와 칼럼 또한 아름다운 서점들만큼이나 매혹적이어서 이 책에 대해 만족하게 했다. 그 중 가장 와 닿았던 글은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인터뷰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눈으로 돌아볼 수 있고 내 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만큼만 꽂혀 있던 그 작은 서점의 책들이 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존재가 되었던 것 같다. 음악, 미술, 철학 같은, 건축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책뿐이었으나, 정보가 지나치게 많지 않으니 내 상황에 맞게 책을 취사선택하기 쉬웠다. 서점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투적인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책이든 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책과 조우하거나 혹은 자신의 세계관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 기능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p.41)

 

후지모토 소우에게는 자신의 눈으로 돌아볼 수 있고 자신의 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만큼만 꽂혀 있던 그 작은 서점의 책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존재가 되었듯이, 지금도 세상 곳곳의 누군가가 이다지도 아름다운, 세상 곳곳의 서점들을 찾아 인생의 책과 조우하거나 혹은 자신의 세계관에 접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 서점과는 거리가 먼 서점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있어 ‘인생의 서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서점이 있다면 그 서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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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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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소설가 신경숙님이 출연하신 SBS 힐링캠프를 챙겨봤다. 많은 이야기 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고, 여운이 길었던 말은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사는 일이었다. 엄마는 내게 ‘엄마’니까. 엄마에게 있어 엄마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거다.

 

엄마에게 엄마가 필요하듯,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잊고 사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혹은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로 위로 받고, 이해가 필요한 연령층은 비단 청년만이 아니다. 학업과 연애, 취업으로 고민하는 청년만이 아니라 자식과 건강, 여생에 대해 고민하는 중⋅노년에게도 필요하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 『인생 수업』이었다. ‘중년’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중년인 부모님이 떠올랐으므로, 나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당신 혼자 생각하셨을 일이기도 하고, 친구와 만나면 이야기 할 법한 일이기도 하고, 아직 그런 적은 없지만 자식인 내게 터놓고 이야기 하고 싶을 법한 일―현재의 나는 행복한지에 대한 고민, 생로병사에 관한 고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죽음에 관한 고민, 쌓아온 인연에 대한 고민, 여생에 대한 고민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고, 그러한 일들에 대한 법륜 스님의 혜안이 담긴 책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든, 남편이 어떻게 했든, 아내가 어떻게 했든, 자식이 어떻게 했든, 부모가 어떻게 했든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고 나는 그 가운데서 나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p.273)

 

에필로그 속 구절인데, 나는 이 구절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 부모님을 비롯한 중년층들은 중년에 이를 때까지 자신이기 이전에 직장에서는 직급으로, 집에서는 자식의 부모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나부터 행복하라’는 법륜 스님의 말은, 나부터 행복해지기 위해 직장과 가정에서의 위치를 내려놓고 자신만을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그것이 그들의 인생임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서 자신부터 행복하라 말함과 동시에,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한다. 그 조언이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이해’가 되고, 때로는 ‘살’이 되어 결국에는 ‘힘’이 된다. 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는 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 말이다.

 

책이 다루는 주제가 주제인지라, 노년을 맞이할 중년과 노년의 삶을 사는 연령층에게 더욱 좋은 책이겠지만, 중⋅노년에 속하지 않는 나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었다. 가깝게는 부모님, 멀게는 나의 미래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은 부모님과 함께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을 같이 읽고,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다운 것처럼 당신의 삶 또한 그러하다고, 그러니 기운 잃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라는 말을 전하는 대화를 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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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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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편(偏)’이 심한 나는, 음악 역시 챙겨 듣는 음악만 듣곤 한다. Original Sound Track, 줄여서 OST라 부르는 음악이 그것이다. 내 생애 첫 MP3플레이어였던 코원의 F1을 구매해서 기기에 처음 넣었던 노래 역시 OST였다. 컴퓨터 하면서 무한 반복해 듣는 OST였지만 좋아라하는 OST를 기기에 넣어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고 신났더랬다. 하루는, 장르와 관계없이 드라마, 영화 등 작품에 쓰인 음악이라면 ‘닥치고’ 좋아하는 OST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그건, 음악을 들으면서 그 작품, 다시 말해 음악과 함께 접하는 ‘이야기’가 좋아서 나는 OST를 이렇게나 좋아하는구나, 라는 결론을 내렸다. 작품 속 캐릭터, 혹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OST를 들으면 음악은 내게, 좀 더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들렸으니까. 이렇게 음악을 듣는 나에 반해, 소설 뿐 아니라 수필에서도 매력이 묻어나는 우리의 흑임자 (cf.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김중혁 작가님의 이번 에세이 『모든 게 노래』에 담긴 노래들은 전부 김중혁 작가님의 일상에서 재생 된 노래들이다.

 

유명 소설가 K1, K2와 남쪽으로 꽃을 맞으러 가는 차 안에서 함께 들었던 장사익씨 버전의 <봄날은 간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글 쓰는 재능을 물려주신, 취미삼아 노래 교실에 다니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김연자의 노래 <10분 내로>, 음악을 듣는 데 있어 스킵을 멈추게 만든 듀란듀란의 데뷔 앨범, 앨범 제목을 들었을 때 마치 전쟁 때 잃어버린 기분이었던 그룹 얄개들의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독자에게 받은 선물인 ‘Afternoon’의 첫 앨범 《남쪽섬으로부터》중 <해변의 아침> 등등.

 

각각의 사연들을 떠올리면 사연과 함께 한 노래가 떠오르고, 노래를 떠올리면 그 노래와 함께 한 사연이 떠오르는 노래들. 그래서인지 『모든 게 노래』를 읽고 있으면, 내 인생에서 재생된 노래들이 떠오른다. 럼블피쉬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기억되는 생애 첫 아르바이트였던 공장 아르바이트, 좋아했던 보이 그룹의 멤버 미니홈피 뮤직 플레이어 리스트에 있어서 듣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가수로 손에 꼽게 된 Ra.D(라디)의 노래들, 하나뿐인 친척 언니 결혼식에서 형부가 부른 SG워너비의 <내 사람>, 여러 코드가 잘 맞아 절친한 친구와의 사이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코드 ‘성발라’ 성시경의 노래들, 중학생 시절 18번이었던 Daylight(데이라이트)의 <Daylight> 등등. 때로는 폭풍 공감하고, 때로는 키득거리고, 때로는 좋은 경험이 되는 『모든 게 노래』 속에 실린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OST 위주로 음악을 듣는 나지만, 내게도 인생의 21번, 93번, 137번 트랙 쯤 되는 노래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글을 쓰려고 떠올리지 않아도, 내 인생 구석구석 어딘가에 숨어있는 노래들을 말이다.

 

재밌게 챙겨 읽었던 씨네 21 속 칼럼,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와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에 실린 글들이 한데 묶여 나온 이 책은 크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장으로 묶여있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하게 계절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음악과 계절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계절은 음악의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고, 음악은 계절의 공기가 되어 향기를 더 잘 맡을 수 있도록 해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태풍이 몰아치면 늘 듣던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 (p.53)

 

캐롤은 언제 들어도 캐롤이지만, 눈 내리는 겨울에 들어야 제 맛인 것처럼 음악과 계절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벚꽃 흩날리는 봄에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듣고, 무더운 여름에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듣고, 낙엽지는 가을에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듣고,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에는 박효신의 <눈의 꽃>을 듣는 나로서는 반가운 구성이었다.

 

소설가 김중혁의 감성을 완성해준 뮤지션들에 대한 오마주이고, 때로는 고뇌하는 청춘에 대한 위로이며, 때로는 한 소설가의 문학 생활에 대한 지론이자, 때로는 소중한 일상에 바치는 연가인 『모든 게 노래』속 글들을 읽다 보면 정말이지, 인생에 있어 희로애락 무엇이든 노래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모든 게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견뎌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견딘다. 시간의 속도를 더디게 만들기 위해 필름 속에다, 컴퓨터 속에다 풍경을 담는다. 우리는 소설을 쓰고 읽으며 시간을 견딘다. 소설 속에 거대한 시간을 담아 시간의 처음과 끝을 파악하려 애쓰고, 시간을 되돌리고 빨리 흐르게도 하며 시간의 민낯을 보려 애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시간을 견딘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의 모습과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의 속도를 화면 속에서 보며 우리의 시간을 잊는다. 그렇게 견딘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견딘다. 아니, 이 말은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운다. 시간을 가뿐히 뛰어넘어 다른 시간과 공간에 가닿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게 시간을 견딘다. 음악이야말로 가장 짜릿한 마법이다. (p.229)

 

위 구절은 내가 이 책을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구절이다. ‘시간’에 관심이 많고, ‘음악’을 좋아하는 작가 김중혁이 전하는, 시간을 견디는 가장 짜릿한 마법인 ‘음악’을 설명하는 데에는 이만한 글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우고, 시간을 가뿐히 뛰어넘어 다른 시간과 공간에 가닿는 방법을 배우고, 그렇게 시간을 견뎌왔고 또 견뎌낼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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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11-29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해밀 2013-11-30 01: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으로 가는 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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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던 때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그 당시 담임선생님이 애니메이션에 무척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셨다. 무슨 시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교실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셨다. <귀를 기울이면>을 시작으로 그 당시까지 나온 애니메이션을 모두 보여주셨으니,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절반은 그 때 섭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안 그래도 애니메이션을 좋아라했던 나였지만,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매일 TV에서 방영해주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애니메이션이었달까. 상상했거나 혹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상상력 그 이상으로 쉼 없이 펼쳐지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애니메이션에 빠져든 기억이 난다. 그렇게 봤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내 인생 한 부분을 채웠고, 여전히 살아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발음할 때면 늘 어려워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는 그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이어서 기대가 됐던 책이다. 그가 그 만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어떤 소년문고를 읽었고, 어떤 유년을 보냈을까 궁금했다.

 

책은 2010년 <마루 밑 아리에티> 개봉과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계기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랫동안 즐겨 읽어온 소년문고 400여 권 가운데 추천한 50권 한 권 한 권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1부와 자신의 유년과 어린이문학, 자신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2부로 나뉘어있다. 이런 책을 추천했구나, 하며 1부를 가볍게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2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2부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혼자 날 수 있게 되면 정말 굉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p.38)’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 책 <바람의 왕자들> 소개라던가 <마루 밑 아리에티>의 원작이 된 <마루 밑 바루우어즈>에 관한 소개, 비행기의 원시적인 엔진이나 기체에 대해 생생하게 쓰인 책 <플램바즈>에 관한 소개 등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품들을 소개해 준 1부는 1부대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런 책을 읽었구나’하는 정보가 되었다면, 2부는 ‘소중한 책 한 권만 있으면 된다’는 제목의 미야자키 하야오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를, 보는 게 아니라 읽는 느낌이었달까. 그도 그럴게, 처음 책을 만난 무렵이라던가 처음으로 읽은 책, 어린이문학연구회 입회에 관한 이야기 등 이 책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어린이문학은 “다시 해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중략) 그런 어린이문학이 제 연약한 성정에 맞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어린이문학은 그런 유행과는 관계없는 구석진 곳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p.83)

 

아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아이에게는 거듭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세계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p.100)

 

뭐랄까 내 안에 서랍 같은 게 있는 듯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무언가 가득 담겨 있었지요. (p.105)

 

아내가 『고도모노토모』(어린이의 벗이라는 뜻)를 구독해 그 잡지가 집에 꽤 많았는데, 열심히 읽은 것은 어른이었습니다. 어린이책도 꽤 많이 샀지만 아이들이 펼쳐본 흔적은 없습니다. 특히 정성껏 갖춰두면 읽지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놓아두면 읽는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입니다. (p.132)

 

솔직히 말하면 많은 책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50권이 아니라 단 한 권이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p.137)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 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효과를 보려고 책을 건넨다는 발상은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읽히려고 해도 아이들은 읽지 않습니다. (중략) 책을 읽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책만 읽는 아이는 일종의 외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놀면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으니까요.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p.141-2)

 

어린이문학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하고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는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p.155)

 

2부 중에서 공감하며 읽은 구절을 모아봤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어린이문학은 그런 유행과는 관계없는 구석진 곳에 있고, 아이는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으며, 유년 시절 읽었던 책은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내 안에 가득 담겨졌을 것이며, 책은 '갖춤'의 문제가 아니고, 책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많이 읽는 게 중요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게도 그런 책이 있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나는데, 몇 학년 때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짓말하다 죽은 말 이야기>라는 책으로, 비룡소에서 출판되었고, 말 일러스트가 있었는데 하체만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이 한 권의 책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소설을 즐겨 읽는다.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상상력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와 같은 상상력의 힘을 알게 된 책이었으니까.

 

어제, 그리고 오늘 읽은 책이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될지라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내일도 책을 찾아 읽었으면 한다. 이와나미 소년문고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채우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그 애니메이션이 내 유년시절을 채우고, 유년시절을 보낸 지금의 내가 무엇을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책이, 독서라는게 그런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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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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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문득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 패러디해봤다.

 

그가 초상화를 수집하기 전까지는 초상화는 다만 한 장의 초상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초상화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때 초상화는 그에게로 가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웃자고 패러디 해본 건 아니고, 이 책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에 대한 느낌이 딱 저러했다. 저자도 서문에서 말하지 않던가. ‘이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물론 당시에는 나도 미처 몰랐다.’ (초상화 수집에 대해) 고 말이다.

 

작가의 초상화를 수집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시, 소설, 희곡 등 작품이 곧 작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실제 작가의 얼굴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작가의 이목구비가 궁금할 때도 있고, 얼굴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인상이 궁금할 때도 있고. 그렇게 궁금해 하다가 기회가 되어 작가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목구비가 이렇게 생긴 사람이 이런 작품을 쓴 거구나, 이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 이런 작품을 쓴 거구나 싶은 생각. 그리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작가의 얼굴을 보면서 작가의 삶을 읽게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얼굴에 생긴 주름과 작가의 눈빛 그 사이에서.

 

이 책의 매력은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전하는 작가의 얼굴, 초상화 이야기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진정한 매력은 그가 초상화로 운을 띄우고 소개하는 작가들 이야기, 문학 비평에 있었다. 그의 글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고, 특유의 솔직하고 명료한 표현만큼은 일관되어서 책을 펼쳐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초상화보다 글에 더 집중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작가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지 모르고 읽었을 정도로)

 

아쉬웠던 건,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어로 글을 쓰는 문학평론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인데, 내가 독일 문학에 생소해서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가 대부분에 대해 모르고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알고 읽으면 더 재밌었겠지만, 모르고 읽는 것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가들의 작품이 ‘고전’이어서 가능했다. 1920년생으로 올해 나이 93세인 저자와 작가와 작품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작가가 쓴 작품이 고전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고전만이 가지는, 시대를 초월하는 힘 덕분에 나는 저자의 셰익스피어 혹은 괴테에 대한 평론을 읽고, 공감할 수 있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中)

 

김춘수 시인의 꽃 마지막 구절처럼,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수집한 것은, 단순히 작가의 초상화가 아니라 잊혀지지 않는 한 장 한 장의 초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초상화 수집이었으나 자신에게 있어 인생의 일부가 되었고, 한 문학평론가의 이력에 한몫을 담당한 수집이었으니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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