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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던 때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그 당시 담임선생님이 애니메이션에 무척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셨다. 무슨 시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교실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셨다. <귀를 기울이면>을 시작으로 그 당시까지 나온 애니메이션을 모두 보여주셨으니,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절반은 그 때 섭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안 그래도 애니메이션을 좋아라했던 나였지만,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매일 TV에서 방영해주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애니메이션이었달까. 상상했거나 혹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상상력 그 이상으로 쉼 없이 펼쳐지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애니메이션에 빠져든 기억이 난다. 그렇게 봤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내 인생 한 부분을 채웠고, 여전히 살아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발음할 때면 늘 어려워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는 그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이어서 기대가 됐던 책이다. 그가 그 만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어떤 소년문고를 읽었고, 어떤 유년을 보냈을까 궁금했다.

 

책은 2010년 <마루 밑 아리에티> 개봉과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계기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랫동안 즐겨 읽어온 소년문고 400여 권 가운데 추천한 50권 한 권 한 권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1부와 자신의 유년과 어린이문학, 자신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2부로 나뉘어있다. 이런 책을 추천했구나, 하며 1부를 가볍게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2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2부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혼자 날 수 있게 되면 정말 굉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p.38)’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 책 <바람의 왕자들> 소개라던가 <마루 밑 아리에티>의 원작이 된 <마루 밑 바루우어즈>에 관한 소개, 비행기의 원시적인 엔진이나 기체에 대해 생생하게 쓰인 책 <플램바즈>에 관한 소개 등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품들을 소개해 준 1부는 1부대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런 책을 읽었구나’하는 정보가 되었다면, 2부는 ‘소중한 책 한 권만 있으면 된다’는 제목의 미야자키 하야오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를, 보는 게 아니라 읽는 느낌이었달까. 그도 그럴게, 처음 책을 만난 무렵이라던가 처음으로 읽은 책, 어린이문학연구회 입회에 관한 이야기 등 이 책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어린이문학은 “다시 해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중략) 그런 어린이문학이 제 연약한 성정에 맞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어린이문학은 그런 유행과는 관계없는 구석진 곳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p.83)

 

아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아이에게는 거듭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세계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p.100)

 

뭐랄까 내 안에 서랍 같은 게 있는 듯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무언가 가득 담겨 있었지요. (p.105)

 

아내가 『고도모노토모』(어린이의 벗이라는 뜻)를 구독해 그 잡지가 집에 꽤 많았는데, 열심히 읽은 것은 어른이었습니다. 어린이책도 꽤 많이 샀지만 아이들이 펼쳐본 흔적은 없습니다. 특히 정성껏 갖춰두면 읽지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놓아두면 읽는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입니다. (p.132)

 

솔직히 말하면 많은 책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50권이 아니라 단 한 권이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p.137)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 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효과를 보려고 책을 건넨다는 발상은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읽히려고 해도 아이들은 읽지 않습니다. (중략) 책을 읽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책만 읽는 아이는 일종의 외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놀면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으니까요.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p.141-2)

 

어린이문학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하고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는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p.155)

 

2부 중에서 공감하며 읽은 구절을 모아봤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어린이문학은 그런 유행과는 관계없는 구석진 곳에 있고, 아이는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으며, 유년 시절 읽었던 책은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내 안에 가득 담겨졌을 것이며, 책은 '갖춤'의 문제가 아니고, 책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많이 읽는 게 중요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게도 그런 책이 있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나는데, 몇 학년 때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짓말하다 죽은 말 이야기>라는 책으로, 비룡소에서 출판되었고, 말 일러스트가 있었는데 하체만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이 한 권의 책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소설을 즐겨 읽는다.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상상력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와 같은 상상력의 힘을 알게 된 책이었으니까.

 

어제, 그리고 오늘 읽은 책이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될지라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내일도 책을 찾아 읽었으면 한다. 이와나미 소년문고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채우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그 애니메이션이 내 유년시절을 채우고, 유년시절을 보낸 지금의 내가 무엇을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책이, 독서라는게 그런 거 아닌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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