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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엘 다녀왔다. 북한산은 2005년에 처음 직장이란 델 들어가서 주말등산 거절하지 못하고 쫄래쫄래 쫓아갔다가 죽을 뻔했던 이후로 6년만이었다. (음. 그래도 흑돼지는 맛있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직장생활을 한지 6년을 꽉 채우고 몇개월이 더 흘렀다는 게 놀랍다. 체감하기로는 한 4년쯤 된 것 같은데... 가끔 계산해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더 놀라운 건 계산할 때마다 놀란다는 사실이다. 붕어도 아니고.
습도가 높은 날이라 숲이 습기를 마구 토해내는 것 같았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땀을 흘려본 건 처음이고, 내 땀이 이렇게 짜다는 걸 안 것도 처음이다. 둘레길이라지만, 말이 둘레길이지 북한산은 둘레도 어마어마해서 긴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을 여러번 반복하다보니, 결국 꽤 높이 올라와 있었다. 음. 뭔가 사기당한 기분이랄까. 그래도 지도상으로 보면 둘레가 확실히 맞긴 맞아, 어디 따지지도 못하고, 따질 데도 없고, 저질체력 동지와 함께 성질만 버럭버럭 내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씩씩, 하게 오르고 싶었는데 씩씩, 거리며 올랐구나. 그래버렸구나. 앞으로 매주 둘레길을 걸어 1바퀴 종주를 하기로 했는데 (둘레길도 종주로 쳐줍니까?) 다 하고 나면 살도 빠지고, 체력도 좋아질까? 음. 4시간을 걷고 빕스에서 폭식을 하는 바람에, 몸무게는 확실히 안줄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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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전 분식집에서는 두가지 김치를 줬는데 하나는 일반 김치였고, 하나는 얼갈이 김치였다. 나는 김치를 더 달라고 하고 싶은데 일반 김치 말고, 얼갈이 김치를 더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 김치가 얼갈이 김치라는 걸 몰라 이렇게 말했다. 자신있고, 당당하게.
"아줌마, 김치좀 더 주세요. 파란 김치요"
저질체력 동지 언니는 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이런 모지리야. 그럼 저건 빨간 김치냐? 라고.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언니, 제가 양념의 색이 아니라, 배추의 색으로 구분하고 있는 거 모르겠어요? 빨간 김치라뇨. 하얀 김치죠" 라고.
내가 당한 비웃음은, 더 설명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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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의 <환영>을 읽었다. 사람들이 가기 꺼려하는 곳으로 저벅저벅 들어가, 동정해달라고도 하지 않고, 이해해달라고 하지 않고, 예쁘게, 공감할 수 밖에 없게, 혹은 사랑스럽게 그리려 애쓰지도 않고, 기교를 부리지도 않고, 덤덤하게, 오히려 덤덤해서 참 지독하게 삶을 그려낸 작가의 작업이 매우 고맙다. 오늘 북한산에서 계곡 앞 백숙집을 지나는데 문득 그녀의 소설이 생각나더라. (음, 소설 속 백숙집은 백운호수나 산정호수, 뭐 이런 동네 같았지만. ㅎ 나는 북한산 백숙집에 반대하오! 산 한복판에서 풀냄새 맡으며 걷다가, 풍겨오는 백숙냄새는 정말 불쾌하다 ;)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그 아슬아슬하고 끈덕끈덕한 길을 택해 꾸덕꾸덕 걸어가는 그녀의 작업은 매우 의미있게 여겨진다. 이 책 덕분에,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내내 찝찝했던 이유도 조금 더 명확해졌다. 나는 지금 그녀가 걷고 있는 길이 마음에 안드는 것이다. 희망과 긍정이 타협 아닌 용기, 라고 말했다는 그녀의 인터뷰 문구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의혹과 당혹감이 구체화된 작품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사랑스러운 소설, 을 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사랑하니까, 나는 안쓰럽고, 불편하고, 지긋지긋한 그 길을 애써 걷는 사람들에게 더 박수쳐 주고 싶다. 김이설의 <환영>이 그랬고, 얼마 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만난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가 그랬다. 그녀들이, 부디 지치지 않고 오래 좋은 소설을 써주길 기대한다. 김사과의 책은 단행본으로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데, 그녀의 02를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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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최근 내가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것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었다. 실은 나도, 가진 게 없는 인간이라, 내가 가진 것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열망도 가지고 있고 그렇게 스스로를 포장해보려고 부던히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건 쓰디쓴 실패. 포장을 하긴하는데, 그 포장지가 너무 투명해서 다 부질없는 짓이 되버린다. 결국 내 정체는 얼갈이 김치를 몰라서 파란 김치라고 하고 (이런, 얼간이) 기껏 운동하고 폭식으로 몸무게를 회복하고야 마는 모지리 오브 모지리. 포장실패자.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질투는, 포장실패자가 포장성공자에게 보내는 시기이고 질투인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내가 투명포장지로 포장을 하는 인간이라도, 어쨌든 포장형 인간인지라, 어디가 포장인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으니 ;; 논리는 없고 직관만 발달해서, 설명은 못해도 여튼 알긴 알겠는, 뭐 그런 것들이 열광을 막는 것 같다. 그런 건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데 말이다. ;;; 왜 저에게 이런 것들이 보이는 겁니까, 임금님 귀에서 당나귀 형체가 돋습니다요, 라고 대숲에 가서 외치고 싶은 심정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것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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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에대해 또 한가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그렇게 피곤하게 걸어도 11시에 잠드는 건 정말 무리, 인 사람이구나"
내일 교회 늦으면 혼나는데. 잉잉. 교회로 '존트' 하고 싶어요.
(네, 타이거 타이거 읽고 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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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지긋지긋한 (제대로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긋지긋하대) 여름이 지나고 나면, 올 가을은 슈퍼스타K3와 하이킥이 있다. 흐흐. 슈퍼스타 K3 이번에는 1회부터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