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너는 나를 들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

그리하여 너는 나를 들을 것이다
내 말들, 때로는
바닷가 갈매기들의 발자국처럼
가늘어지는 말들을.

목걸이, 포도처럼 보드라운 너의 손들을
위한 취한 종

그리고 나는 멀리 떨어져서 내 말들을 관찰한다
그것들은 나의 것이라기보다 너의 것이다
그것들은 내 오랜 고통을 담쟁이 넝쿨처럼 기어오른다

그건 또 젖은 담들을 기어오른다
이 잔인한 놀이는 네 책임이다
그것들은 내 어두운 굴에서 도망친다
너는 모든 걸 채운다, 너는 모든 걸 채운다

너를 보기 전 그것들은 네가 차지한 고독에 붐볐고
너보다 더 슬픔에 익숙했다

이제 나는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것들이 하기를 바란다
네가 나를 듣기를 내가 바라는 대로 네가 듣도록

고통의 바람이 늘 그렇듯 여전히 그것들에 불어온다
때로는 꿈의 허리케인이 그것들을 뒤집어엎는다
너는 내 고통스러운 목소리 속에서 다른 목소리들을 듣는다

오래된 입들의 비탄, 오래된 간청의 피
나를 사랑해다오 친구여, 나를 떠나지 말아다오, 나를 따라다오
나를 따라다오, 친구여, 이 고통의 파도 위에서

하지만 내 말들은 네 사랑으로 얼룩졌다
너는 모든 걸 점령했다, 너는 모든 걸 점령했다

나는 그것들로 끝없는 목걸이를 만들고 있다
포도처럼 보드러운 네 흰 손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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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3-03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여자의 육체]

파블로 네루다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처럼 벌렁 눕는다.
야만인이며 시골사람인 내 몸은 너를 파들어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
그리고 밤은 그 막강한 군단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활의 화살처럼, 내 投石器의 돌처럼 벼렸다.

허나 인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나는 밀크!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放心으로 가득 찬 네 눈!
그리고 네 둔덕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끝없는 내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검은 河床이 흘러내리고,
피로가 흐르며, 그리고 가없는 슬픔이 흐른다.

2008-03-03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례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오래된 정원을 읽고 브레히트의 시집을 샀었다
그리고 오늘 오래된 정원을 보고 브레히트의 시집을 꺼내
이 시를 찾아 적는다

책에는 "아 우리가 어떻게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용돼 있었고,
영화에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가 살짝 스친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살아있다는 것, 멀쩡히 행복하다는 것만으로도 죄의식을 느끼던 시대의 이야기

실은,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보지 않고 있었는데
임상수 감독의 눈으로 풀어낸 것도 나쁘지 않구나




다시 책을 읽으면 또다른 느낌으로 볼수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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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1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발표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다락방님이 다섯개가 아닌 세개만 내셨습니다.쩝.

웽스북스 2008-01-13 02:11   좋아요 0 | URL
이런 이런
출장 난동을 부릴 수도 없고 말이죠 ;;

순오기 2008-01-1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정원' 읽으며, 브레히트 시 공책에 베끼기도 했는데... 영화는 안 봤어요. 지진희는 캐릭터가 너무 약할거 같더란 말이죠. 그래도 빛고을 사람인지라 독서회원들과 가려는데~ 벌써 내렸더라고요!
내가 처음부터 "이 영화 사람들 안 들거야~ 나 살기도 힘든데 누가 영화까지 보면서 괴롭고 싶겠어? 그래도 광주니까 2주는 걸겠지!" 이랬는데, 한주만에 내렸다는...ㅠㅠ

웽스북스 2008-01-14 01:2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 저는 지진희 멋있어라 한답니다 크크크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완전 기뻤었다는 ㅋㅋ

Jade 2008-01-1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오래된 정원 영화보고 필 받아서 소설 사고 영화 다시보고 그랬어요 ㅎㅎ 제가 2007년에 두번 본 건 이거랑 밀양이랑 화려한 휴가, 그리고 색,계(이건 3번-_-;;)

저 장면 보니 그때 느낌이 다시 살아나는것 같아요. 저 때 참 술도 많이 마셨는데 ㅎㅎ

웽스북스 2008-01-14 01:24   좋아요 0 | URL
아 밀양이랑 오래된 정원은 봤고, 두번 볼만한 것 같고, 화려한 휴가는 안봤고, 색,계는 못봤네요- 색,계는 언제고 어떻게든 볼 생각이고, 화려한 휴가는 아마 안보게 되지 싶은데- 제이드님에게 화려한 휴가는 어땠는지 궁금해지네요 ㅎㅎ

Jade 2008-01-14 02:02   좋아요 0 | URL
전 '봄날'읽고 충격받아서 광주관련 자료 많이 찾아봤었어요 망월동 가보려고 처음으로 혼자 버스타고 광주까지 가봤고...그래서 처음 영화 개봉했을 때 기대 많이 했는데 처음 보고는 상업영화라는 점 때문에 실망했었어요...^^ 물론 사람들이 많이 보는게 중요하기도 하죠 그래서 한번 더 봤어요. 아마 그때가 아프님이 영화번개하실때라 알라디너 분들 처음 뵙고 ㅎㅎ

웽스북스 2008-01-14 19:21   좋아요 0 | URL
그랬구나, 알라딘 모임 때문에 한 번 더 보게 된 거였네요 ^^
사실 전, 영화를 보면서 감정에 휩쓸리게 될까봐 겁나서 안봤어요, 그러고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영화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하는 게 참 조심스럽긴 하지만 말이죠-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를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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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2-18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마종기'가 가운데로만 안가면 돼,라며 등록한 태그이건만 ㅠㅠ

깐따삐야 2007-12-18 17:48   좋아요 0 | URL
오히려 그래서 다 아리송하고 좋은 걸-

웽스북스 2007-12-18 19:04   좋아요 0 | URL
ㄲㄲ 암튼 정체 불명의 태그정책이에용 ^^

깐따삐야 2007-12-18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거 나한테 주는 시 맞지요? 흐흐.

다락방 2007-12-18 17:59   좋아요 0 | URL
앗, 깐따삐야님.
이거 저한테 주는 시 같은데요. 흣 :)

=3=3=3=3=3

웽스북스 2007-12-18 19:04   좋아요 0 | URL
호호호호 비밀이에요~!

깐따삐야 2007-12-19 00:43   좋아요 0 | URL
다락님, 웁스! 복잡에 복잡을 더해가는 알라딘의 러브라인- 나 그냥 메피님한테 진짜 올인한다아아아? (다들 잠들었는데 나만 졸리지 않았다)

웽스북스 2007-12-19 09:23   좋아요 0 | URL
그래서 메피님과 둘이 불면의 사랑을 해보겠다는 거에요? 흥흥
이미 투기모드 돌입
(아, 어째서 질투라는 말보다 투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걸까)

2007-12-18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18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을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는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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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2-1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도 자유방임순서로 등록되는 저 태그들

깐따삐야 2007-12-18 17:49   좋아요 0 | URL
빙의 들린 거 아녀요? 숨차 보이는 태그.-_-

웽스북스 2007-12-18 19:05   좋아요 0 | URL
원래는 이런것이 동행, 이었는데 말이죵 ㅠ_ㅠ

Mephistopheles 2007-12-18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내가 나이 먹는다고 푸념을 하는 동안 제 마님도 한 살 두 살 같이 나이를 먹는 거겠군요..^^

웽스북스 2007-12-18 22:50   좋아요 0 | URL
오늘밤에 이 시를 읽어드리세요 분명 좋아하실 거에요 ^^
 


우산

       - 신동문

우산은 비가 내리는 때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젖어 있는 마음은 언제나 우산을 받는다
그러나 찢어진 지(紙)우산 같은 마음은 아무래도 젖어만 있다
더구나 웃음이나 울음의 표정으로
인간이 누전되어 몸 속으로 베어 올 때는
손 댈 곳, 발 디딜 곳이 없어 지리지리 마음이 저려온다
눈으로 내다보는 앙상한 우산살 사이의 하늘은
비가 오나 안 오나 언제나 회색진 배경인데
그런 기상이 벗겨지지 않는 것은
떨어진 마음을 마음이 우산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도 누구의 손도 어쩔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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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2-01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일랜드라는 것, 바로 알아보았어요.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져요...

웽스북스 2007-12-01 20:39   좋아요 0 | URL
이 시를 읽는 순간 저 장면이 떠올랐었어요- 저는 아일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이 누구건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고 있어요 이상한 식별법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아직도 시도때도 없이 재복이가 그리워요 흑

하루(春) 2007-12-0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하악질하고 싶은... 손우산... 저의 완소 드라마라죠. ^^

웽스북스 2007-12-02 14:49   좋아요 0 | URL
크크 네멋이나 아일랜드나.... 전 인정옥 작가라면 기절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