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님은 늘 내게 멘사 시험을 보라고 말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 친구가 멘사 시험을 봤는데요" 라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내 지능의 수준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고, 그게 멘사의 지능에 미치기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 아이큐 테스트로 나오는 문제들을 풀어보면 내 아이큐는 백오십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예전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 친한 언니가 사다 준 멘사 퍼즐 문제집은 1페이지부터 막막했다.
여러모로 보아 백퍼센트 떨어질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겠다고 한 건 다락방님의 소원이 '멘사인 친구'를 갖는 게 아니라 '멘사 시험을 본 친구'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소원쯤은 내가 들어줄 수 있으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선 응시료만 있으면 '멘사 시험을 본 사람'같은 건 쉽게 될 수 있다. 멘사 시험에서 꼴찌를 하든, 역대 최저 점수를 받든, 그건 다락방님의 소원과 상관 없다. 난 다락방님의 소원인 멘사 시험을 본 친구,가 되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멘사 코리아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어가보곤 한다. 아. 나는 정말 좋은 친구야.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말이지 너무 부지런하다. 들어갈 때마다 다음 회차 시험은 죄다 마감. 아. 대한민국에 멘사의 지능을 가진 이가 이렇게 많은 걸까? 혹은 다락방님처럼 '멘사 시험을 본 친구'를 갖고 싶은 이가 많은 걸까? 암튼 올해도 다락방님의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낸다.)
이렇게 다락방님은 나를 자랑스러워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그 날이 오기 전에 전세는 금방 역전되었다. 내가 다락방님을 자랑스러워할 기회가 먼저 온 거다. 다락방님이 책을 냈다. 나는 이제 '작가 친구와 같이 을지로 노가리집에서 술 마시는 여자'가 되었다. 아아아 이 얼마나 근사한 타이틀인가. '멘사 시험 본 친구 있는 여자'보다 훨씬 뽀대나고 멋있는 타이틀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하지만 속으로는 좀 으스대면서) "제 친구가 책을 냈는데요"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게 다 다락방님 덕분이다.
다락방님의 새 책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가 어제 배달온 것도 모르고 나는 하루종일 집 밖으로 한발자국도 안나갔다. 택배가 오긴 했지만, 생수만 온 줄 알았지. 암튼, 오늘 아침 집을 나서는데 다락방님의 이 책이 배달와 있었고, 나는 당장 포장을 뜯어 가방에 들어 있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빼고 이 책을 가방에 넣었다. 안양에 오가는 날이어서 이 책의 대부분을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우연한 선택이었지만, 참 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은 시험 때문에 무언가를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단지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을 때도 최고의 장소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지하철을 타고 얼마나 가야 따져보는 것도 기분 좋은 설렘이고, 지리멸렬한 직장 생활도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는 책 덕분에 견딜 수 있다. 지하철은 책을 읽는데 집중이 정말 잘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혼자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지하철은 나만의 작은 세계다. 그 세계에서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책에 푹 빠질 수 있다."
나는 다락방님처럼 성격이 좋지 못해서 지하철을 타고 얼마나 가야 하나 따져보다가 짜증이 나서 택시를 타기도 하고, 긴 출퇴근시간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 나와 회사 근처에 살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의 안양행이 짜증스럽지 않았던 건 다락방님의 이 책 덕분이었다. 왕복 두시간의 길이었지만, 다락방님이랑 같이 얘기하면서 가는 것 같았다.
이 책의 많은 글들은 알라딘에서 다락방이라는 알라디너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다 읽었을 글이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고? 그렇지 않다. 신이 주신 망각의 은사 덕에 다시 읽어도 새로운 글들이 있고, 또 어떤 글들은 다시 읽어도 그 글을 읽었던 때가 떠오르면서 즐겁기도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책들은 다락방이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풍경이 되어주고, 또 다락방이라는 사람이 책을 보여주는 필터가 되기도 한다. 책과 다락방이 적절히 섞이고 스민 책. 물론 다락방이 이야기하는 것이 그 책의 핵심이나 정곡은 아닐 수 있다. 어떤 책에 대한 글은 (특히 스틸라이프) 그 책에 나온 샌드위치 먹는 장면 하나만 가지고 시작해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끝나기도 한다. 지극히 다락방님답다. ㅋㅋㅋ 스틸라이프를 얘기하면서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 얘기만 하다니 ㅋㅋㅋㅋ 어떤 글에서는 책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책을 읽으며 했던 상상, 편지 같은 게 들어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분절된 이야기들은 다시 여러개의 키워드들로 묶이고, 그 키워드는 다락방이라는 사람과 그녀가 만난 세상을 가리키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무의미한 삶을 쌓아온 것 같다고 계속 한탄하지만, 이런 책들과 이런 시간을 쌓아온 삶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나는 부러웠다. 같은 시간을 알라딘 서재에서 보내고, 책을 읽었는데 게으름뱅이인 나는 읽어온 책들도 생각했던 것들도 다 가물가물하건만, 다락방님은 책을 통해 이런 생각과 이야기를 쌓아온 것이다. (아. 심지어 저는 돌이켜보니 페이퍼도 올해 처음 쓰는 것입니다. ㅜㅜ 게으른자여...ㅠㅠ) 다락방님 말처럼 성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성실함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다. 성실함은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나는 다락방님보다 훨씬 성실하지만 겁나 재미없는 사람을 백만스물여덟명쯤 안다. 성실함은 그가 가지고 있는 무엇을 거들 뿐, 사실 더 중요한 건 '가지고 있는 무엇'인 경우가 많다. 성실함에 더해진 건 그녀만의 거침없는 직설화법의 매력, 하지만 상대를 대할 땐 조금의 공간을 허락할 줄 아는 예의,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고민, 소설에 대한 애정, 그리고 발랄한 상상력과 그녀만의 유머...(라식수술 장면에서 저 빵 터졌어요. "한쪽 눈만 보여도 살아갈 수 있으니..." 라니 ㅋㅋㅋ)
이 책을 다 읽게 된다면, 아마 당신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책을 쓴 다락방이 나쁜 사람일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아. 좋은 사람이구나. 세상의 좋은 사람 한 명이 이렇게 자신의 흔적을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 고마운 일이다.
ps 글을 그냥 끝내기가 아쉬워서...
다락방님이 알라딘 서재를 통해 비밀 댓글로 내게 처음 말을 건넸던 그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이 사람 왜 이러지? 왜 처음 보는 나한테 술마시자고 하지?" 무서웠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강남역 3번 출구 앞으로 가서 함께 술을 마셨고, 그날 이후 우리는 여전히 함께 술을 마신다. 다락방님과 나는 공통점도 많지만 성향적으로는 다른 점도 많아서, 다락방님이 이렇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으면 우리는 친구가 되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다락방님과 내가 결국은 친구가 된 이유를 개인적으로 깨닫기도 했다) 지난 금요일엔 다락방님과 ㄴㄲ님, ㅁㅈ님, ㅇㅍ님, ㄹㅇ님이 함께 모여 을지로의 노가리집에서 술을 마셨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니셜 처리? ㅋㅋ) 이 사람들과 계속 맥주를 마시고 웃으며 살 수 있다면 괜찮은 삶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알라딘은 서재라는 이 작은 세상을 만들면서, 이 속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함께 웃고, 책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리라는 걸 상상했을까. 이 작은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이 어느덧 내게 소중한 세상이 되었다. 다락방님이 그 때 내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면,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
연말에는 작은 선물을 들고 다시 노가리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렇다, 나는 결국 이 페이퍼의 끝을 '나는 작가랑 지난 주에도 술마셨고, 연말에도 술마실 사람'이라는 자랑질 깔때기로 마무리하고야 마는 것이다. ㅎㅎ 굳이 쓸데없는 ps까지 추가해 가면서. ㅎㅎ 이게 다 다락방님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