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쯤 전에 아침을 먹었다. 여기 병원 사람들은 부지런해서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혈압과 맥박을 체크한다. 그러면 나는 그 때 부스스 잠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러 간다. 6시에서 7시 사이에 간호사 언니가 와서 그날의 링겔을 팔에 꽂아주기 때문에, 내가 씻을 수 있는 시간은 그 때가 유일하다. 이렇게 맞이한 병원에서의 아침이 벌써 5번째. 아침에 머리를 감고 오면 머리가 마를 때까지 다시 누울 수가 없다. 첫날, 다시 잤다가, 머리가 아주 우울하게 말라서 후배에게 샤기컷 했냐는 얘기도 들었다. -_-
독감과 열감기 후유증으로 위에 장애가 온 줄 알았던, 나의 정확한 병명은 A형 간염이었다. 지난 토요일에 울면서 링겔을 맞았던 원효로의원에서 간염인 경우에도 이런 증상이 올 수 있으니, 피를 뽑아놓고 가라고 했던 말에 울상이 되어 툴툴대며 피를 뽑았었는데 (피뽑는거 무서워요) 월요일날 피검사 결과를 본 의사가 깜짝 놀라 전화를 했다. A형 간염이라고. 수치가 3,000이 넘는다고. 일상 생활이 불가능했을텐데 어떻게 생활했느냐며, (택시타고 출퇴근하고, 그나마 가서도 일 거의 못하고, 헉헉거리며 앉아있다가 반차내고 왔었어요. 흑흑흑.) 소견서 써줄테니까, 내일(화요일) 아침에 당장 병원에 들러 받아서 큰 병원 가서 입원하라고. 아. 놔. 입원이라뇨. 아니아니되옵니다. 라며 애꿎은 원효로의원 의사선생님께 항변했으나, 항변한다고 이게 어찌 될 문제이던가. 아침에 소견서 조용히 받아서 곧장 안양 집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
A형 간염은 음식 등을 통해서 균이 입으로 들어와서 생기는 병이란다. 친구 C는 그 와중에도 너 흙주워먹었지, 뭐 이런 얘기를 -_- 정말로 흙주워먹던 우리 윗세대 분들은 어렸을 때 흔적도 없이 앓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내 또래 세대들의 경우는 비교적 깨끗하게 자란 세대라 어린 시절 앓고 지나가지 않아 뒤늦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금 우리 병실에도 내 또래 한 명이 A형 간염으로 함께 고생중이다. 우리 아래 세대들은 예방접종을 통해서 거의 항체를 가지고 있고, 아마 지금 내 또래가 주사도 안맞고, 어렸을 때 앓지도 않은 낀 세대쯤 되나보다. 어쨌든 뚜렷이 치료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회복을 기다려야 하는 병이라, 한달 정도의 충분한 휴식 기간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간 잘 먹고, 잘 쉬는 것만이 방도라, 정말 잘 먹고, 잘 쉬고 있다. 그야말로 이런 웰빙병도 이런 웰빙병이 없다.
병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비위가 약해질대로 약해져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음식 만드는 냄새도 못맡아서, 기름기 쪽 빠진 병원 음식이 오히려 좋았고, (그래봐야 고작 1/4 공기 정도를 먹는 게 다다) 엄마가 만들어준 죽은 안먹고 나는 병원밥만 먹겠다고 선언해 엄마의 비웃음을 샀는데, 아, 이제는 병원밥이 좀 지겹고 너무 자연적인 음식(담백한 밥과 과일)들만 먹었더니, 막 정크푸드같은 게 먹고싶다. 며칠 전에는 커피가 너무 먹고 싶어서 양심상 커피는 못먹고(라고 말하지만 실은 병원 커피가게 영업이 끝났었다. ㅜㅜ) 커피 아이스크림을 먹고 결국은 탈이 났다. 하하하. 난 이래서 안되는 거다. ㅜㅜ 하지만 그날의 하겐다즈 커피 아이스크림은 나의 구원이었다며. ㅜㅜ 나는 앞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어도 하겐다즈만 먹겠다는 기도 안차는 결심도 했었다.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병원에 들어오니 이래저래 보는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고, 또 생각할 것도 많다. 그 와중에, 아팠던 친구들 얼굴이 많이 떠오르더라. 얼마 전 대장암으로 고생했던 친구 H. 옆에서 대장 내시경만 받는 분들 봐도 그렇게 힘들어보이는데, H는, 정말 힘들었겠구나. 위 아파서 고생하던 옛직장 D대리님. 이렇게 위가 아팠던 거였구나. 경험을 했을 때야 비로소 이해되는 것들. 우리는 무지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다소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여실하게 느껴진다.
아. 아직도 할 말이 한바탕 남아 있는데, 이게 아무리 웰빙병이여도, 오래 앉아있기가 살짝 힘들어서... 그간 노트북이 있으면서도 꺼내지도 않고 있었다. (실은 병실에 무선 인터넷이 된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다. 아이팟이 안잡히길래 안되는 줄 알았다.) 이제 다시 자리에 누워야겠다. 그래도, 이제 노트북 꺼냈으니, 좀 덜 심심하겠다.
좋은 봄날, 병실 얘기만 계속 쓰게 되서 유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쓰겠다는 얘기)
다들, 좋은 봄 보내시고요. 드디어 봄다운 날씨가 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실은 날씨 몰라요. 하늘 보고 추측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