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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지식들 가운데는 당장 사람들을 유용하게 해 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하는 것들이 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 되었다. 인문대학 대학원에는 지원자가 점점 줄어들고, 몇 년 전엔가는 호서대에서 철학과를 폐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문학, 사학, 철학... 이런 지식들은 이제 용도 폐기되어야 할 운명의 학문 분야일까?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법학이나 경제학, 의학이나 컴퓨터공학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반면 인문학이나 예술은 비타민이나 무기질과 같다고 하겠다. 비타민만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섭취하는 식품에 비타민이 부족하면 피부가 꺼칠해지고 신진대사가 상쾌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마련이다.

단순한 생존 이상, 풍요롭고 윤기나는 삶이 되려면 실용 학문과 인문학의 균형 잡힌 섭취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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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별로 재미 없을 줄 알면서도 본 교관의 멋진 강의를 듣기 위해 이렇게 '비좁은 자리'를 찾아주신 여러분들께 형식적으로나마 조의를 표한다. 자리가 비좁은 관계로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1. 커피를 마시지 마라(?) 커피 대신 녹차를 마셔라. 어쩔 수 없이 커피를 마셔야 한다면 그늘에서 자란 커피나무로 만들어진 커피를 찾아 마셔라(어떻게 그것을 구별하냐고 나한테 묻지는 마라. 자리가 비좁다).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를 마시지 마라. 아, 물론 어렸을 때부터 치과 의사가 되는 것을 꿈꾸다가 좌절한 후, 빈번하게 치과를 방문하는 것으로 그 소박한 꿈을 대리 만족하려는 정신질환자들은 응당 여기에서 제외된다.

2. 신문을 읽지 마라(?) 종이 신문 대신 인터넷 신문을 읽어라. 어쩔 수 없이 종이 신문을 읽어야 한다면 이웃들과 돌려가며 읽거나 도서관에서 읽어라. 그 경우에도 안 읽어도 되는 신문과 읽어서는 안 되는 신문(특히 조선일보)을 꼭 구별할 일이다.

3. 새로운 옷을 사 입지 마라(?)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 즉시 뜨게질을 시작하거나 벼룩 시장이나 알뜰 장터를 기웃거릴 일이다. 또한 될 수 있으면 옷을 빨지 말고 오래도록 입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보자. 어쩔 수 없이 그 옷을 세탁할 때에도 찬물에 가루 비누 없이 손으로 직접 빨아 입기를 애절하게 호소하는 바이다.

4. 다국적 기업의 신발 산업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급진주의자들(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데, 뭐 하려고 이 강연을 듣고 있나? 본 강연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녹색 소시민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이 도시의 아스팔트를 전부 갈아엎고 맨발로 '그대가 본 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자들에게 치열하게 요구해 보는 것이 재미 있는 발상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신발을 신어야 한다면 다만 오래 신을 수 있는 신발이나 중고 신발을 사신을 일이다.

5. 한국의 녹색 소시민들이여, 어떤 유혹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석유를 대체하는 신기술의 도입을 저지하고 있는 전 세계 거대 자동차 기업 경영진들의 거시기에 똥침을 놓는 일을 용기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할 비밀 결사대를 결성하라. 그렇지만 우리의 다수 '녹색 소시민들'이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사야 할 때에도, 부디 거대 자동차 회사의 파상적 선전 공세를 경계할 일이다.

6. 컴퓨터! 쓸데없이 종이에 프린트를 하지 말고 눈이 좀 나빠지더라도 모든 원고는 화면상에서 직접 교정 볼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종이에 프린트를 하려고 한다면 여러 차례 이면지를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대여섯 차례 종이 뒤집기를 계속하여 프린트를 하고 나면 당신들은 정작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잊어버리게 되고, 보물찾기라는 유쾌한 놀이에 빠져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될 것이다.

7. 당신은 당신의 피골이 상접하고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을 때에 한하여 붉은 살코기를 먹을 일이다(?) 맥도날드나 버거킹 등에서 주말 오후 온가족이 둘러앉아 햄버거를 사먹는 일이 대한민국 중산층의 한가로운 여가 선용이라고 생각하는 '촌스러운' 생각은 이제 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보다 급진적인 '적색 시민들'이라면 전 세계적 다국적 기업의 맥도날드 대리점 앞에서 고추장 비빔밥을 비벼먹는 극한적 시위 투쟁을 벌일 일이다. 환경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몸에도 좋지 않는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 자신을 애써 학대하려고 하는 매저키스트들을 제외한다면, 명랑 사회의 녹색 시민 구보 씨들은 생협에서 취급하는 유기 농산물을 먹거나, 주머니 속에 상추씨를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적당한 곳에 슬~쩍 뿌리는 일을 지금 바로 시작하라.

8. 마지막으로 본 교관의 강연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본 교관에게 물어볼 생각 하지 말고 도서출판 '고물코'에서 최근 절찬리에 판매하고 있는 [지구를 살리는 불가사리들과 수달 친구]라는 책을 사서 꼭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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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 > 사다리 다시 내놔요!

오래 전, 누나가 선을 봤다. 캠브리지 교수란다. 혹시나 해서 이름을 물어봤다. 장하준이란다. 세상에나!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전설인 바로 그 장하준이 누나와 선을 보다니! 난 그의 동생과 초등 및 고교 동창이었고, 대학 동문회에서 장하준 형을 알게 되었다. 하준 형의 졸업생 환송회에서 그 형이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토플 성적-680점인가?-을 안고 캠브리지에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와, 나한테 저런 선배도 있구나" 하고 뿌듯해 했던 기억이 난다. 누나와의 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후후, 무척이나 팬시한 것을 좋아하던 우리 누나는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 걸로 유명한 수수한 캠브리지 교수가 전혀 마음에 차지 않았단다. 누나는 시종 시큰둥했고, 신부감을 구하러 고국을 찾은 하준 형도 불쾌했다는 말을 전했다. 하준 형을 존경하는 나로서는 아쉬운 순간이지만, 형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까다롭고 이해심이 부족한 우리 누나였다면, 다음과 같은 일이 힘들었을 테니까.
[[아내 희정과 딸 유나, 아들 진규는 불규칙하게 발작적으로 진행되는 나의 집필 버릇과 집안일에 대한 소홀함을 기꺼이 감내해 준 것은 물론 끊임없이 사랑을 보내 주어 큰 힘이 되었다. 이제나마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한다(17쪽)]

해외에 나간 한국인의 성공에 무지하게 열광하는 우리나라에서, 20대에 이미 캠브리지 교수가 된 하준 형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좀 희한한 일이다. 미스 유니버스가 됐던 브룩 리처럼 한국인의 피가 조금만 섞여도 얼마나 난리를 피웠던가. 그런 면에서 보면 세계 각국의 찬사를 받았다는 이 책의 번역이 2년이나 지난 후에 이루어진 이유는 이해하기 힘들다. 내 생각에, 그건 저자의 주장이 우리나라 기득권의 이해에 맞지 않기 때문일 것같다. 기득권이 두손들어 환호하는 신자유주의를 저자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으니까.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제목처럼, 선진국들은 자기들이 발전 단계에 있을 때는 높은 관세와 더불어 강도 높은 보호주의 정책을 폈고, 선진국이 되자 개발도상국에게는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산업 발전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그간의 경제사에서 발전의 대부분이 자유무역 시대보다는 보호주의 시대에 이루어졌는데 말이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경제학자답게 그의 주장은 빈틈이 없고, 그가 내민 증거들은 너무도 명확해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다지 재미가 있지는 않다. 그건 내가 숫자나 통계가 나열된 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책이 논문 형식으로 쓰여진 때문이다. 제목에서 제시된 주제를 이러이러한 방법을 써서 논증하는 것, 그게 바로 논문 아닌가. 책 뒤에 붙은 수많은 참고문헌의 목록이 저자의 성실함을 드러내 주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83쪽에 나온, 분배를 통한 성장을 이룬 스웨덴의 성공사례나, "사회복지 제도들은 단순한 사회적 안전망 이상의 것이다. 신중하게 계획되고 시행된다면, 사회복지 제도를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의 성장을 높일 수 있다(189쪽)"는 저자의 말은 언제까지나 성장만을 부르짖는 우리나라 기득권층이 한번쯤 새겨들을 대목일 것 같다.

한가지 더 말하자. 1936년 벨기에는 주 40시간제를 도입했다. 미국이 주40시간제를 채택한 것은 1938년이었다. 그로부터 근 70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어느 분이 쓰신 글이다. [5월말까지 풀가동이다. 지난달 내가 일한 시간은470시간이다. 총 720시간 중에서 난 470시간을 일한셈이다. 많이했네~] 이렇게 일하면 도대체 얼마나 받을까? 그분의 다른 글이다. [사람들이 퇴사를 하고 있다는 거다. 경기도 안좋고 자동차 해외 공장이 생기고 남자들즉 우리의 가장들은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가지고 자식들 먹여살리려고 안간힘 쓰고 있으니...] 어제 토론 프로에 나온 분들 중 우리나라가 지난 17년간 지나치게 분배만 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나마의 분배마저 안했으면...큰일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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