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피아노 협주곡이 라흐마니노프 2번이라 한다. 영화<샤인>의 영향 때문에 요즘은 3번의 멜로디도 사람들이 친숙하게 여기지만, 클래식음악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라흐마니노프 2번은 그 멜로디가 라흐마니노프라는, 아니 피아노 협주곡의 일부라는, 아니 심지어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사람들이 막연히 좋아하던 경우가 있었다.(악기 편성에 따라서는 폴 모리 스타일로도 들릴 수 있다) 마치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8번(비창) 2악장이 'Midnight Blue'라는 팝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이 아름다운 음악의 탄생 배경에는, 좌절한 천재가 겪은 깊은 고통, 절망에서 일어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예술혼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에 더욱더 매료되었는지 모르겠다.

4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9세에 상트 페테르부그르 음악원에 입학했던 라흐마니노프는 1897년, 그의 나이 24세 때 발표한 교향곡 1번이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으며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젊은 나이에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 음악가... 세상은 그를 잊어버리고, 요양원에서는 잘나가던 천재 음악가라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라흐마니노프에게 행운이었던 것은, 의식이 깨어 있는 의사를 만났다는 것이다. 오늘날에야 다양한 심리 요법들이 개발되어 정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회복과 재활을 돕고 있지만, 19세기 말만 해도 정신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인생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요양원의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는 달랐다. 달 박사는오늘날로 치면  '긍정적 자기암시'와 유사한 기법을 사용하여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무의식에 "나는 훌륭한 음악가이다" "나는 성공할 수 있다"와 같은 자신감을 불어넣도록 도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재기에 성공한 라흐마니노프, 1901년 이 곡을 완성한다. 같은 해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피아노를 연주했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곡은 달 박사에게 헌정된다. 내가 아는 한 클래식 음악사에서 의사에게 헌정된 유일한 작품이다. 아름다운 인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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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6-2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음악 중 하나라...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1번의 실패로 신경증까지 걸렸던 그가 2번의 대성공을 거두기까지 맺어진 인연은...참 사람 살면서 좋은 사람 만나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하는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합니다....오늘 이 음악을 다시 들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