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입국 심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56
김경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렌지주스 캔을 누가 백금으로 만들겠는가> 

 

2007년 1월 아침부터 안개비가 가로등 불빛에 섞여 내렸다

커피와 빵 냄새 속 비행.......기는 지연되고 초청단은

공항 근처 레스토랑에서 경제학자의 강의를 당겨 들었다

 

ㅡ가격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정보의 집약체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얼마나 가치를 부여하는가

최고의 생산 방법은 무엇인가 값은 곧 그 물건,

그 존재입니다

가격이 없으면 당연히 교환도 안 이뤄지죠

 

실은 다 가격 때문이었던 거야 안 이뤄지는 사랑도

이별도 나와 그들의 가격 원하는 원치 않는 가격의

이마나 콧날이 등 뒤가 다른 가격

저 크레용 두께 같은 안개와 낭만의 가격이

모두의 발목을 묶어버리는 거지

 

ㅡ사회주의도 가격 제도를 얕보다 망했죠

인생의 먹구름들도 값을 얕봐서였나 먹구름이어서

값이 망한 건가 갑자기 유리창에 서리는

부러진 우산살들과 곰팡이 번진 구두와

6월의 장대비 냄새 11월의 나뭇잎, 그들의 가격 제도를

 내가 얕봤던가 그들이 나를 얕봤던가

 

ㅡ오렌지주스 캔을 누가 백금으로 만들겠습니까

학자는 일월의 하늘 여기저기 가격표를 붙이고

나는 두 귀를 붉히며 그러니까 내 가격은 얼마쯤인가,

진열대 앞에서 우왕좌왕한다

 

 

 

오렌지 주스가 나와서 올려본 추억의 오렌지 주스 유리병.

오렌지 주스 다 마시면 이 유리병에 물도 담고 과일청도 담그고 나름 활용도가 높았다.

지금은 다 플라스틱이나 팩같은 걸로 나와서 유리병은 아예 멸종된 게 아닐까 싶음.

옛날에 서울우유인가 연세우유인가가 다 마시고 접은 종이우유팩으로 의자도 만들고 했었는데

어느날인가 사라져버린 그 행사 다음으로 아쉬운 오렌지주스 병.

(그런데 부자들은 백금캔 만들어서 오렌지 주스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건강식품이 트랜드라는데 유기농 오렌지 담아서...)

 

 이 시의 좋은 점부터 얘기해보겠다. 우리나라의 사노 요코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파격적인 시를 많이 써냈다. 시를 보면 여행을 많이 다닌다던가, 자신을 어머니와 닮았다고 주장하는 애인을 만났다던가 굉장히 일상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써낸 탓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시를 보면 자연을 사랑하고, 녹색연합 구독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보적인 생각을 많이 담고 있는데도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것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육식성의 아침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녀는 웰빙을 위해 채소를 먹는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동시에 아침부터 고기를 먹는 자신을 클로즈업하고 있다. 소위 옛날에 유행했던 '막 이래~'라는 문장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집에선 케이크를 놓고 축제를 벌이고 있는데도 그 안에 있는 화장실같은 좁고 컴컴한 남의 방 같은 데에서 철사같은 김밥을 먹고 있는 자신을 묘사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그 시는 북적북적하고 시끄러운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작은 집에 들어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김경미 시인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혹은 진보라 불리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명박근혜 시대를 살면서 덴마크를 보고 느끼는 참담한 심정을 표현하는지도. 사실 기가 찰 일이다. 한때 민중시를 썼다는 시인인데 지금은 왜 이렇게 암담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러나 이 책이 비슷한 분위기와 상황에 처한 요즘 글쓰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기 좋은 이유는,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 이상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로 남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녀를 이상하다고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비수를 꽂는 질문이다. 그것도 이중으로 말이다. 그녀가 시에서 대놓고 이상하다고 지적하는 것들은 사실 별반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이 학자에게 만큼은 그녀가 조금 달라진다. '아. 그래? 아아. 그렇구나. ㅅㅂ. 그렇구나.' 같은 말투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사회의 정말 이상한 것들에게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척 하면서 학자에게 혹은 쇼핑을 하다 진열대에 문득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그래서 제 가격은 얼마쯤인가요?' 이는 이수영의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어감이 약간 다르기도 하다. 그녀는 당연히 분개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는 자기 자신을 비판함으로서 문학을 창작해내려는 모든 한국 예술가들이 갖춰야 할 기본 사항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시는 한없이 개인적이고 가벼워보이지만, 이는 그녀가 정치에 휘말려들고 연애의 암흑기에 휩쓸려보고 이 세상의 온갖 사기에 머리채 잡힌 채로 끌려가봐야 얻을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민중시의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점점 자신의 내부로 파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는 건 안타깝지만, 민중시의 그 새빨갛고 뜨거운 분위기가 싫다면 이 시를 읽어보길 바란다. 예술성은 상당히 높다.

 

  

이 시를 읽고서 아리아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한 번 남겨본다.

 

세상의 기척들 다시 쓰다 중에서

 

얇은 백합꽃 같은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면

봄도 겨울도 같은 계절 같은 생각

바다 위의 수상가옥 한 채, 물 드나드는 골목들,

언제고 발밑을 찰랑이는 물의 기척과

팔에 서린 노 자국

다만 수면을 스치는 햇빛의 굴절일 뿐

땅 위의 국경들 끝없는 듯해도

발밑은 언제나 같은 물속입니다

 

 

등장하는 음악과 시:

 

https://youtu.be/qNgXg1FkQc8

나,라는 이상함 중에서

 

독시체르 같은 이름

어딘지 지독한 음정과 박자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그 악기의

단단한 뺨

그 흉내에 번번히 실패하는 것

슬픔에 담갔다 꺼낸 것들은 안심이 된다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들은

무조건 믿어도 좋다

 

https://youtu.be/HUCJkwBNtTE

실패들

 

머루나무처럼 크는 데 실패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연주에도 실패했다

얼굴 검은 고양이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

골목과 서재를 가진 집에서

수녀가 되는 데 실패했다

 

* 라벨의 피아노곡과 스카보르의 추억이 나오는 시는 뭘 어떻게 잘라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전문을 올리기도 난감하더군요.

직접 찾아서 보시길.

 

https://youtu.be/5NeifukySv8 (밤의 가스파르)

https://youtu.be/mGfUszwN5x0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The Gothard Sister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 창비시선 310
송경동 지음 / 창비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촛불 연대기 

 

미선이 효순이 때

처음 촛불을 들었다 화염병도 죽창도 아닌

연약한 촛불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 싫었다

 

촛불의 열기를 모아 권력이 된 노무현은

부안 핵폐기장 건설을 위해 2만이 사는 부안에

2만 5천의 공권력을 투입했다

미제국의 더러운 석유전쟁에

군대 파병을 결정했다 부안에서 여의도에서

다시 흔들리는 촛불들을 보아야 했다

 

이듬해엔 WTO 각료회담 저지를 위한

한국투쟁단의 일원으로, 한 손엔 핵과

한 손엔 자유무역협정을 들고

전세계 인민의 목을 조르는 무장한 세계화를 막겠다고

태평양 건너 멕시코 깐꾼까지 원정투쟁을 갔다

그곳에서 '다운다운 WTO'를 외치며 이경해 열사가 자신의 심장에 칼을 박았다

전세계 인민들의 가슴이 부르르 떨렸다

어떤 이는 회담이 열리는 컨벤션쎈터로 돌격했고

나는 커터기로 철책을 끊다 곤봉에 맞아 쓰러지기도 했다

시시때때로 쏟아붓는 열대성 폭우 속에서

촛불 하나를 지키기 위해 두꺼비처럼 몸을 말았다

총구를 들이댄다 해도 꺼트릴 수 없는 증오의 촛불

 

가장 긴 촛불은 평택 대추리 촛불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800일 동안 촛불을 켰다

한반도는 동북아 전쟁기지가 아니라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다국적 전쟁기계들에게 내어줄 순 없다고

포클레인에 철거당하는 대추초교를 부여안고 울었다

700명이 지키는 대추초교를 감싸고

1만 5천의 군경이 몰려오던 5월 4일 새벽

처음으로 손에 든 촛불을 놓고 죽봉을 들었다

이것은 아니라고 아니라고 허공을 향해 휘저었다

그럴 때마다 내 영혼도 따라

바람 앞의 촛불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대추리에서 쫓겨나자

한미FTA 떼강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FTA는 일터 하나를 뺏는 것이 아니었다

마을 하나를 뺏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쌀과 영화와 의약품과 방송만 빼앗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모든 가치를 빼앗는 것이었다

경쟁력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라는 말

경쟁력이 없는 대지는 대지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를 뛰었다

싸움이 가물가물해질 때 허세욱 열사는

자신의 몸을 심지로 내놓았다

그는 우리 모두의 양심을 끝까지 소진케 했다

 

그렇게 몇년 나는 지난 시절

화염병과 돌과 쇠파이프를 들던 손에

촛불을 들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서성였다

촛불은 진화하면 화살촉이 되는 걸까

들불이 되는 걸까 때로는

백만 촛불로 광화문을 뒤덮어보기도 했지만

광장은 다시 차벽과 공권력의 폭력에 밀리고

나는 다시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그들이 오른 구로역 CC카메라탑 아래에서

콜트, 콜텍 기타 만들던 노동자들이 오른

양화대교 천변 고압송전탑 아래에서

다시 용산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아래에서

순한 촛불 하나를 들고 있다

 

단 한번도

민중 무력 없이 세상이 바뀐 적은 없다고

청원으로 민주주의는 성장하지 않았다고

불붙는 심장의 열기는 차마 꺼내지 못하고

가끔 촛농처럼 뜨거운 눈물 몇방울 떨구며

순한 촛불 하나를

어두운 밤 보탠다

 

 

 

김규항 씨랑 왠지 좀 비슷해보이는 외모...

진보(좌파) 지식인들은 어째 다들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

안경과 특유의 머리가 유행인건가.

https://youtu.be/_AWCRrm8Tp0 

 

 사실 (학력과 전과 여부를 따지는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출신과 살아온 날을 보면 지식인이라고 말하기도 상당히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송경동은 자신의 분노를 전문시위꾼으로서의 활약과 끈질긴 창작으로 발휘했고, 결국 시집을 여러편 발행하여 꽤나 유명세를 탐으로서 지식인의 등급에 올랐다. 깡패시인, 땜빵시인, 거리의 시인 등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키워드는 상당히 강렬했고 특히 그가 처음 기획한 희망버스는 중산층이 '시인'과 함께 인생의 쓴맛을 직접 경험해본다는 데서 누가 봐도 상당히 창의적이었다.

 

 

  

사실 나의 현실친구들에겐 노래를 잘 부르는 게 2016년의 버킷리스트라고 했는데,

사실 개뻥이고 진실은 송경동 시인처럼 시원하게 예술적으로 민중시를 낭송해보는 것이다.

https://youtu.be/aEL-PW7seJ8

 

 그가 희망버스를 기획한 이후로 시를 안 쓴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송경동 시인이라고 해서 왜 그런 내부의 갈등이 없었겠는가. 그는 시인답게 시집에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지금은 촛불을 들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경찰의 버스를 타고 넘어가 청와대로 나가서 싸우고 싶다고. 평화시위따위 다 얼어죽고 혁명이 살아남으라고. 냉동고를 열으라고. 그러나 그의 폭발적인 감성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무난하게 명성이 있고 시도 정말 무난하게 쓰는 안도현 시인을 중요한 자리에 앉혔다. 난 안도현 시인도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빽이 있었기에 그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박근혜가 정권에 앉았다고 하여 그 동안 절필을 하다니 정말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가 열심히 정권에 맞서 싸우는 데 참여를 했다면 모르겠다. 그가 몸을 사린 결과 도종환 시인같은 사람들은 '정치 욕심에 예술혼이 더럽혀졌다'는 욕을 먹고 있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돼지처럼 먹고 싸느라 정치엔 아무것도 관심없는 척하는 방관자들은 그나마도 모르겠지만, 굉장히 우리나라는 순결이라는 걸 따진다. 예전에 열사라는 호칭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자살한 비정규직 해고 조합원 사람을 어떻게 감히 열사로 부를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살이 문제가 아니라 해고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규직' 주도자는 10년 후 내연녀가 민노총 여성위에 성폭력 행위자로 고발하여 공개사과문을 쓰게 된다. 이는 마치 조선 시대 열녀문을 세우느냐 마느냐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과 흡사하여 지켜보는 사람의 역겨움을 유발했다. 문단 계열에서 시인의 예술 순수성을 운운하는 데 나는 아주 넌덜머리가 난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명박근혜 시대가 되자 그제서야 종교와 작가들과 시민들이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많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내 입장에서는 이제라도 관심을 가져주니 감사할 노릇이다. 하지만 노무현 시대도 아닌 김대중 시대부터 알게 모르게 정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다수 운동권에서 발을 떼었다. 수없이 차별을 당한 그들은 이제 터무니없는 국가의 폭력성과 무책임성에 슬픔보단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머릿속으론 인정할 수 없지만,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고 얼굴을 보면 마치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혹은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 소년소녀들같다. 양 극단 최단 끝에 서 있는 사람 둘은 닮는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내 친구 중엔 진심으로 북침을 주장하는 군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정말로 가정생활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어 실생활에서 현재진행형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다. 정말 청원은 소용 없는 걸까, 민중 무력이 답일까. 그 전에 국가가 이 둘을 모두 위로하고 품어줄 순 없는 걸까. 촛불집회에서부터 운동권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촛불집회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막막해지는 시집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R 4
김경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라이아이스

ㅡ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 사이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골목 끝 슈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피부에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끝에 닿는 그 짧은 순간에

내 적막한 열망보다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

온몸의 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

내 안의 야경을 다 보여줘버린 듯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이다

달 사이로 진흙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들어 가고 있다

귀신처럼

 

 

 

이야기는 다시 페르소나로 돌아온다.

나는 내 안으로 들어가서 나를 붙잡고 이야기한다.

나는 너를 사랑해.

김경주 시인은 나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배를 잡고 웃는다고 한다.

 

 나는 한 때 저마다 땅 속을 깊이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빗대어 사람에게 저마다의 인생이 있으니 비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도 땅을 가장 잘 파헤치고 그 누구보다도 빨리 땅의 근본에 가 닿을 수 있는 자들은 오타쿠들일 것이다. 하지만 오타쿠들의 가장 큰 단점은 공감하고 연대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자신들을 껴안으려다 파멸한다. 그런 경우는 자기 수용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라고 한다. 보통 그런 경우는 초자아가 굉장히 강력한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단순히 자기 자신이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그런데도 혼자서 지레 자기 자신의 초자아에 겁을 먹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밀리터리 오타쿠가 자기 합리화를 한다는 건 아니라고 말해두고 싶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려 하는 것도(부정적인 자신을 지워서 사회에 인정을 받고 싶은 매슬로우의 인정욕구인데) 문제가 있다. 김경주 시인은 자신의 가슴 속을 열어보면 전인류 수억명의 시체로 인해 피가 바다를 이룰 것이라 한다. 이를 보건대 그는 수없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혹은 죽여가면서 자기 자신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그 어떤 날을 꿈꾸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페르소나 4에서 주인공들은 자기 내부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싫은 자신을 포옹하면서 전투력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럼 주인공들이 착하다는 건 내부의 어떤 주인공 자신들이 결정하는가? 나는 이에 대해 의문을 가져왔는데 김경주 시인은 이 시집에서 가장 명확하게 결론을 내린다. 결정하는 그 자는 유령같고 귀신같고 음악같아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낭송하시는 우아한 모습...

 

 시에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설정을 많이 붙여왔던 점이나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볼 때 그는 명백히 오타쿠이다. 하지만 그는 가끔씩 굴 밖으로 나와 따뜻한 애정을 품고 세상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암으로 죽어가시는 듯 한데 그래서 그런지 이 시집 자체에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설탕공장에 다니는 아가씨 이야기 다음엔 공장에서 퇴근하여 피로한 몸을 눕히고 악몽을 꾸는 누이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더불어 팬티를 같이 입는 아버지에 대한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이 분은 시인 뿐만 아니라 극작가로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결국 첫 시집부터 인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많이 담겨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다. 가르치지 않고 잰체하지 않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인권을 짓밟아버리는 초단편소설가 장주원이라던가, 자기 자신의 가난밖에 공감할 줄 모르면서 글을 씁네 하고 있는 내가 아는 어디의 누구하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등장하는 음악과 시:

https://youtu.be/NCXRqgXiARA

음악은 우리가 생을 미행하는 데 꼭 필요한 거예요 중에서

시간과의 친교로 음악은 인간의 세계에 가서 망명을 보내다 죽는다

 

https://youtu.be/F6nyy7G9MDA

음악은 우리가 생을 미행하는 데 꼭 필요한 거예요 중에서

일찍이 소년들은 사슬을 끌고 걸어가 구석에서 독한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떤 음악 속으로 시간을 유배해버린 자신의 열렬한 회의 때문이다

 

https://youtu.be/Pe-T3b7E3rc

음악은 우리가 생을 미행하는 데 꼭 필요한 거예요 중에서

생의 마지막 리듬은 자신의 맥박을 들으며 천천히 저격수의 음악을 받아들이며 상대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허물어진다

 

https://youtu.be/zYpBHc8px_U

음악은 우리가 생을 미행하는 데 꼭 필요한 거예요 중에서

그 사람이 아직 소녀였을 때 그는 현기증 때문에 늘 첫 서리를 피했다 가장 추운 곳에 닿아 우는 새처럼 모든 흉상들이 두려웠던 시절 소녀는 몇 년 동안 집에 살았지만 몇 년 동안 집을 비웠다고 기록했다 그것이 그 소녀의 음악이라고 청년이 되고 나서 얼굴이 틀어진 소녀들을 자신의 구멍으로 불러놓고 그는 한참을 수줍어해야 했다

 

https://youtu.be/dbbtmskCRUY

폭설, 민박, 편지 1 중에서

빈 술병들처럼 차례로
그리운 것들이 쓰러지면
혼자서 폐선을 끽끽 흔들다가 돌아왔다
외로웠으므로 편지 몇 통 더 태웠다
바다는 화덕처럼 눈발에 다시 끓기 시작하고

 

https://youtu.be/K6KbEnGnymk

테레민을 위한 하나의 시놉시스 중에서
(실체와 속성의 관점으로)

<속성>
이 극에서 작곡가 아낙사고라스는 사랑하는 한 여인을 위해 자신이 만들었던 음악을 사람으로 환생하게 하여 이루지 못한 사랑을 추행에 이루려 한다. 자신의 자아를 음악에 부여하며 살아간다.
(...)
"다음 세상에서 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거라."
(...)
"그 생에도 내가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을 테니, 내가 음악이 되어 너를 깨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차 여행 중에서

일레인 파울러 팔렌시아 

나는 내 가방을 찾아야 한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칼과 카메라 한 개가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기 위해 준비한.

(...)

나는 옆 칸에서 가방을,

스프링 장치가 된 손잡이에 녹이 나서 날이 바스러진 칼들과,

모래가 가득한 카메라를 찾는다.

- p. 634

 

 

  

이 책에서 가장 답이 없는 정신분열증과 관련해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한 장면을 찾으려고 했는데

마침 환자들이 그린 그림들이 등장했다,

그 와중에 옆에 있는 분은 이 그림이 가장 좋다고 한다.

잠깐 이 그림의 어디가...?

 

 주석만 빼고 70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책이다. 그나마도 2권은 아직 못 읽었다. 10월 30일쯤 인상적인 구절을 올렸는데 어제 막 읽기를 끝마치고 이제야 글을 올린다. 물론 11월 12월에 도착한 다른 잡지 책들과 몇몇 시집을 해치우느라 더 시간이 들긴 했다만 게이에 대해서 나오는 구절들을 일일히 필사하면서 읽다보니 인권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인데 게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게 이 책에 대해서 꼭 해야 할 질문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게이이다. 그는 그로 인해 자신이 부모에게서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대우를 받아왔으며, 일반인에게 가했다고 하면 당장 쇠고랑 찼을 동성애치료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한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거의 일평생 자신보다 더욱 정체성을 무시받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즉, 장애인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중점적으로 인터뷰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1부 아들에 대한 내용이다. 마지막부인 장애에서는 현재까지도 아동과 페미니즘과 장애인권에 엄청난 혼돈과 논란을 일으키는 금단의 시술, 애슐리 치료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상당히 격한 대화가 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애슐리 치료법만 빼면) 그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부모는 진정으로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아이를 사랑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아동(혹은 자신이 부모가 되겠다는 의식이 거의 없는 분들)은 우선 자신이 '이 꼴이' 난 것이 자신의 부모가 무작정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대부분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결국 우리 독자들은 마지못해 우리 자신의 가정을 돌아보게 된다, 부인하고 싶더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샘터 2016.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원래 꿈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뭔가 말이 안 되는, 들으면 웃음이 나오는 그런 것입니다. 터무니 없고 가당치 않고, 이루어질 가능성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그런 어떤 불가능입니다."

 

 

나이가 많던 적던 간에 꿈을 이루기 위해선

 

 

적잖은 시련을 거쳐야 하는 법이죠.

 

 

언제라도 날 수 있습니다.

순서는 소중한 날의 꿈, 하늘의 유실물, 러브라이브입니다. (아 마지막은 해체했으니 올리지 말아야 하나?)

언제라도 날 수 있는 건 사실 호노카였지만 저는 호시조라 린을 좋아하니 린짱의 점프로 올립니다.

불만이면 님들도 블로그에 포스팅하세요.

 

 중요한 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정신연령이나 인성이 어린애와 다를 바 없는 경우를 많이 본다는 것이다. 요즘 성형수술로 주름살을 펴 얼굴을 젊게 보이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모든 게 어려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로 젊은이들 가운데에서도 꼰대들이 굉장히 많다. 군대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인간들은 그래도 약과다. 특히 내가 군대에서 실세를 잡았다느니 축구를 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인간들을 보면 짜증을 넘어서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런 게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취직이라던가 회사 생활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걸 자기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런 심리에 관해서 아는 사람은 넌지시 나에게 댓글이나 쪽지를 주길 바란다. 일단 나는 이들의 생각과 개똥철학을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보고 있다.

 아무튼 초혼하는 나이도 상당히 늦어지고 있고 심지어 꽤나 나이를 먹으셨는데도 결혼을 안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들 중에서 잘 사는 이들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도 다시 취업을 해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샘터는 정작 중요한 문제들을 거론하지 않았다.

 

 1. 나이가 든 여자들은 아무리 수술을 하여 이뻐진다 한들 혼인을 하기가 여전히 어렵다. 나이 든 남자들이 나이 든 여자들과 결혼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들은 젊은 여자만 찾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부나 노처녀에 대한 사회의 편견도 상당하니 이 문제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2. 노인연금 문제가 심각하다. 아예 없애버리자는 의견도 있던데 그 쥐꼬리같은 노인연금에라도 의지하는 하류층들이 있는 이상, 오히려 늘려야지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말 우리나라를 노인공경의 사회로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노인 분들이 먹고 살게는 해 줘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재취업 센터도 증축하고 복지도 늘려야 한다.

 3. 여전히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가 대두되고 있다. 이는 2번과 같은 방식으로 복지를 늘려야 해결할 수 있다. 잘 사는 노인과 못 사는 노인의 차이가 심각하다. 돈이 없다면 '나이? 그 까짓것!' 이라거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못 해볼 것이다.

 

 요즘 30대의 꿈이 무엇인지 아는가? 결혼이거나 혹은 결혼했다면 좀 더 평수 큰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다. 혹은 나이가 들어서 가게를 차릴 거라 말한다. 자영업자가 몰락해가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노인이 되서 나이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혹은 억척같이 사느라 나이주의를 극복할 사고방식을 가질 틈이나 있겠는가? 배고픔보다 더 괴로운 것은 희망이 없는 상태라 한다. 대부분의 50대 분들이 이 상황을 잘 몰라서 '우리 때도 힘들었지만 포기하고 그러지 않았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사회가 진보했다가 다시 퇴보하는 걸 몸으로 실감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힘들다 하소연하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나름 열심히 산다고 ㅡㅡ.

 요새 생긴 종편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나이 든 사람들을 주 고객층으로 선정해서 그런지 자꾸 잘 사는 노인 분들을 촬영하면서 젊은 층들이 괜히 겁에 질리곤 한다며 지적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에 TV에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젊은 시절에 죽어라 일해도 늙어서 몸과 마음에 병만 걸린다는 사실을 이젠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복지가 최선이다. 듣고 있나 대통령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