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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Jeju 섬데이 제주 Vol.1 - 제주에서 카페하기 ㅣ Someday Jeju 섬데이 제주 1
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 북노마드 / 2014년 5월
평점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무거운 시소가 있다면, 그것을 버리기에 비자나무 숲만한 장소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진실은 언제나
약간의 거짓을 품고 있는 법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고, 만약 진실을 원한다면 거짓의 활약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바다에 절벽이 펼쳐져 있을 때
나는 죽음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난데없는 민폐를 고스란히
입을 주민들을 생각하여
나는 자비롭게 담을 넘어
뛰어오르려 하는 내 충동을 잘 다스린다.
이것은 내 진실이 섞인 거짓말 하나.
사진은 박은아가 지은 불면증이라는 만화의 한 장면입니다.
군데군데가 삭제된 거짓말 섞인 진실 둘.
난데없이 서울에서 짐을
꾸리고 있을 때 나는 절망을 상상했다. 이미 눈이 아득해질 만큼의 절망을 느낀 적은 한 번 있었으므로 그저 상상만 했다. 아, 이제 나는 정말로
끝이로구나. 내 일부인 어떤 세상의 멸망이었으므로 그 다음엔 이별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 때. 촛불집회 다음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아니 평생의 힘을 다 짜낸 것 같은 고성을 지르고 나서 전화를 던져버리고(다행히 그 다음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안 들리게 전화는 끈 것 같다.
아니 껐었나?) 씩씩대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기까지도 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면서도 멀쩡히
잘 살아온 걸 보면 그래도 살 만한가 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심보선의 시 <이 별의 일>, 그리고 멸망과 이별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아니, 잘 못 살았던 것도 같다. 귀촌을 하긴 했다지만 귀농을 하긴 아직
싫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밭농사 아르바이트의 유혹이 있었는데도 여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듯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여기서 평생
이주민으로 살고 싶어하는 듯하다. 아직도 서울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고, 길치인 나의 특성상 점점 홍대에서 길을 찾아가는 일이 막막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책을 읽으면서 칵테일 마실 수 있는 몇 군데는 꿰고 있다. 그러나 바다를 보는 일은 좋다. 여기서 일하시는 언니들 말마따나 내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제주에서 홍대 못지 않은 카페, 신촌 못지 않은 책방을 차리겠다는 꿈은 어떤가? 모든 문명의 번식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선 바람과 싸우는 게 일차적으로
힘들다 하던데, 언제나 그랬지만 '그곶' 바람을 맞으면 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졸음이 밀려오면서 눈꺼풀이 감긴다. (사실 남쪽만 가면
그런다.) 이 책을 읽으니 다시 그런 졸음이 몰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읽는 내내 차분해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마치 추운 곳에서 근무하고 난 다음
퇴근하여 전기장판을 키고 뜨끈해진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차가운 귤을 까먹는
듯한.
진실이 섞인 거짓말 셋. 항상 내가 차버리고 밀어대니 나름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을 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잘못은 아니다. 당신들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외로웠다.
하지만 당신들의 잘못은 아니다. 아니, 당신들도 잘못했고 나도 잘못했다. 내가 왜 술도 안 마시고 멀쩡한 정신으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배고파졌다. 밥이나 술이나 둘 중 하나를 먹어야 할 시간이다. 혹은 둘 다를. 일단 한라산 '하얀 거'부터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