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빨강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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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해

남자애들 거시기가 커지면
몸무게가 늘어날까? 안 늘어날까?
거시기가 엄청 땅땅하게 커지면
당연히 늘어나는 거 아닌가?

궁금해 미칠 것 같아서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과학 선생님께 여쭤봤다
계집애가 엉큼한 생각이나 한다며,
꿀밤 얻어터질 각오 하고 물어봤다

내 생각엔 분명
몸무게가 늘 것 같은데, 안 늘어난단다

 

  

젠장 낸들 알았나. 청소년시집에서 거시기털 미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올 줄...

그런거 궁금해서 죄송합니다 쿨럭... 그러나 어차피 인간은 다 변태 아니겠습니까.

 

 유치원 시절 때부터 동시가 좋았다. 중고등학교 올라가고 공부를 하면서 심오한 고전 취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대학을 가면서 영미 시에 탐닉했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다시 동시가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딱히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거나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힐링이 된다기보다는 그냥 아이들의 사회에 대해서 관찰하는 게 재밌는 듯하다. 출산율이 적어지면서 아이들의 사회가 점점 국한적으로 되어가고, 어른들이 겪는 것만큼이나 힘든 경쟁을 치러야 하는 지금에선 동시가 점점 더 재밌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청소년 소설이나 청소년 시도 상당히 재밌는 면이 있다. 아무리 노인분들이 애 같다고 해도 노인과 아이에 관련된 차이는 명확히 존재한다. 난 그중 하나가 성과 관련된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은 성교육을 처음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노인분들에게도 성교육을 시킨다고는 하지만, 이미 결혼하고 성적 체험을 한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거의 즐거운 놀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확실히 (가급적 건드리고 싶지 않지만) 흥미 있는 존재이긴 하다. 성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은 데다 리비도도 넘치는 시기인데 대학에 다니는 미래를 위해선 보통학교에 항시 갇혀 있어야 한다. 선배들에게 담배나 술을 배우고 남자 혹은 여자친구를 사귀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첫 경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겪는 일들인데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나. 저 위의 인상 깊은 구절에서 여학생이 한 질문이 당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청소년들만이 세상을 향해할 수 있는, 아니해야 할 당연한 질문일 수도 있다.
 
 ex/ 지인들에게 물어봤는데, 실제로 몸무게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혈류 작용의 문제라서 이미 몸무게에 포함되어 있다나? 어떤 놈은 오히려 몸무게가 빠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그럼 남자는 몸무게를 약간이라도 속여서 잴 수 있다는 메리트가 생기겠네. 고추 세운 다음 측정하면 될 거 아냐. 개 이득? ' 이렇게 말했는데 몸무게 매일 재시는 분들은 고혈압 결려서 쓰러질 수도 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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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6.3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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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다정함은 많이 느끼고 표현하는 일이다. 다정함이란, 섣불리 억제하고 눈치 보는 우유부단함과는 다른, 엄격함을 내재한 너그러움과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다정함은 말이나 눈빛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직접 다가가 몸을 움직여야만 보여지는 것, 그러니까 실천과 함께 자라나는 것.

 

 

 

 난 왜 2월이 다가오면 딸기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내가 봐도 난 다정함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남을 비꼬는 일은 정말 잘하는데 남에게 무언가를 주는 데엔 매우 서투르다. 변명하자면, 어떤 사람이 잘 해주면 나도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줘야겠다고는 생각하는데 다른 일이 끼어들면 금방 까먹기 일쑤다(...) 이래서야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기주의자는 이기주의자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예를 들어, 성격이 매우 꼬인 아이가 사회에 적응이 안 돼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내내 책을 읽었다고 하자. (다들 눈치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성격 매우 꼬인 아이가 바로 나다.) 책을 읽으면서 지식이 점점 쌓이기도 하지만, 책을 나의 취향에 맞게 구입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 점점 출판사마다 나름대로의 비전과 개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편역과 완역을 구분해서 책을 사고, 그러다 보니 나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약은 지식도 생겨서 철학 책이 아니라 철학을 설명하는 책을 먼저 읽고 아는 체를 하게 된 점도 있지만;;; 타인을 차단하면 어느 정도 이익이 생기는 것도 있다. 당연히 손해가 더 많지만 말이다. 
 
 삶을 사는 게 힘들고 지친다면, 가끔씩은 공백을 둬야 한다. 나는 봄이 되면 보통 정신이 느슨해지고 몸에 병이 생기고 실수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진다. '몸이 풀린다'는 말이 그야말로 딱 맞다. 그런 경우는 몸이 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다이어트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저녁을 먹으면 바로 취침한다. 가끔은 이기주의자가 될 필요도 있다. 물론 항상 이기주의자인 경우라면 예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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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Jeju 섬데이 제주 Vol.2 - 제주의 숲 Someday Jeju 섬데이 제주 2
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 북노마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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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와 당근이 같은 것이라니!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머릿속에 그려진 당근과 홍당무는 모양조차 달랐다. 당근은 우리가 늘 먹는 역삼각형의 매끄럽게 생긴 그것, 홍당무는 <곰돌이 푸>같은 외국 애니메이션에나 나오는 좀더 길고 울퉁불퉁한 모양의 그것이 아니었나? (...) 충격적이었던 아침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평대리를 걸어보았다.

 

 

  

 당신이 만일 센타로의 일기를 보면서 저 주인공 토끼의 살인적인 귀여움에 마지막권까지 미친듯이 침흘리며 탐닉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냉혈한이나 싸이코패스일 것이다.

 

 내 입덕의 계기가 된 센타로의 일기를 기억하게 해줘서 이 책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굉장히 간지럽고 낯뜨겁고 손발이 마구 오그라드는 내용이긴 하지만... 요즘 너무 마음이 깊이 가라앉는 내용의 책들을 많이 봐서 솔직히 리프레시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은 제주도를 갔다와서 이 책을 봐서 훨씬 더 기분이 좋아졌다. 성격도 전반적으로 좀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회사에 갔더니 왠지 사람들이 다정하게 대해줬다;;; 이게 뭔가 싶고 굉장히 부담이 갔는데 아무래도 내가 평소보다 따지고 들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 약간은 인정한다. 아무튼 제주도는 그놈의 힐링에 효과가 좋은가 보다. (정용준의 바벨 때문에 현재는 다시 흥분되어 있는 상황이다.)

 

  

 비자나무 숲과 사려니숲길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숲이 울창하다고 그렇게 이야기들을 하는데, 솔직히 버스타고 조금만 가면 설악산을 볼 수 있고 무료입장할 수 있는 나에겐 그닥(...) 그냥 평지에 굉장히 잘 정돈된 나무들이 가지런히 서 있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내가 흥분한 건 나무가지들보다는 그 밑에 깔린 우둘두둘한 뿌리와 바위에 쭉 깔려있는 이끼였다. 이 그림과 같이 말이다. 이 그림은 일본 일러스트란에서 퍼온 것인데, 그 때 본 숲과 비교한다면 좀 더 인위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중이고 일본에도 가본 친구 말에 의하면 일본의 숲은 자연보다는 인공정원의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런 것으로 둘의 장단점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제주도를 지킨 보람이 이런 데서 발휘가 되는구나 생각했다.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산책하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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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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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던 걸까. 저 글들을 통해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뭐였을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 부질없구나.

 

 

  

사실 주인공 요나랑 마리가 사랑하는 장면은 무지 짤막하지만 이 소설을 설명하는 데 이 이상 적절한 짤방이 없구나.

아스카: 이 바보 신지! 내가 얼마나 널 열심히 구했는데! 

 

 지금 이 시대에 모두가 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구원과 힐링이란 단어는 사실 종교에 근원한다. 구분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구원은 그리스도교가 꿈꾸던 '메시아' 즉 인류보완계획으로 압축되며, 힐링은 마음 들여다보기와 거울 닦기를 강조하는 불교에서 유래한다. 이 문장만 써도 왠지 또 종교를 믿는 인간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돌멩이를 던져댈 것 같으니 일단 이 정도로 하겠다(...) 이 책은 둘 다 다루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구원 쪽에 관련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특히 '창세기'에 집중하고 있는 점이 굉장히 재밌다. 나도 일단 가톨릭교라 후자에 집중해서 보았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자제하겠지만 이 책에 대한 평가들에 대해서 반박할 게 몇 가지 있다. 일단 이 책에 등장하는 평론가 씨가 소설 후반 부분에 '종말'이란 단어 한 번 나온 거 가지고 필이 꽂혀서 계속 종말론 이야기를 하고 계시지만 이 책에서 중요한 메시지는 요한계시록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흔하게 비교하는 1984 소설하고도 굉장히 다르다. 1984에서의 권력자 오브라이언은 굉장히 매혹적이었지만 이 소설에서 나오는 권력자들은 학자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굉장히 한국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브라이언보다는 대우를 말아먹은 우리나라 정치인 이한구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자체가 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지금 사회 현상이 갈수록 말도 못하게 정치랑 얽혀들어가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 책은 사실 이쪽 계열에서는 굉장히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문제작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서평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대부분은 혼란스러운 심정을 나타내며 짧게 끝나고, 소수는 길게 우리나라의 디스토피아화를 피력한다. 정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이는 나같이 포괄적인 덕후가 아니면 소설 속에서 나온 노인처럼 백내장 걸리지 않은 한쪽 눈으로밖에 볼 수 없는 장르이긴 하겠다. 종교나 애니메이션이나 장르소설이나 둘 다 깊이 파고들어가지 않아서 문제지만;

 어제도 이에 대해서 글을 썼지만 오늘도 똑같은 말을 하겠다. 정치에서 '인간'으로 구원자를 찾지 마라. 정치계는 인간보다는 그 인간의 뿌리, 즉 출신에 강하게 좌우되는 분야이다. 차라리 그 인간이 소속되어 있는 무리의 이데올로기와 공약, 철학, 역사에 주목하라. 그리고 사실상 현실의 선견자는 일을 저질러놓는 트러블 메이커에 가깝다. 그렇기에 자신이 내뱉은 말과 벌여놓은 약속들의 파장을 수습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절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그럼 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냐고? 신은 이미 위기가 없는 절대자인데 뭐 하러 인간을 구원하겠나? 인간이 십이지장충을 구원할 수 있는가? 나에게 신이란 이런 존재다. TV를 키면 방대한 인간들이 나오는데, 그 인간 하나하나가 채널을 이루는 거다. 신은 울다가 웃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재미있었던 몇몇 채널을 킵해두고 다른 쓸모없는 채널들을 하나하나 '소멸'시키는 거다.
 
 그러나 지워버린 것들 중 몇몇 채널들은 가끔 아쉬움을 남기며 머릿속에 떠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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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Jeju 섬데이 제주 Vol.1 - 제주에서 카페하기 Someday Jeju 섬데이 제주 1
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 북노마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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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무거운 시소가 있다면, 그것을 버리기에 비자나무 숲만한 장소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진실은 언제나 약간의 거짓을 품고 있는 법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고, 만약 진실을 원한다면 거짓의 활약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바다에 절벽이 펼쳐져 있을 때 나는 죽음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난데없는 민폐를 고스란히 입을 주민들을 생각하여
나는 자비롭게 담을 넘어 뛰어오르려 하는 내 충동을 잘 다스린다.
이것은 내 진실이 섞인 거짓말 하나.
사진은 박은아가 지은 불면증이라는 만화의 한 장면입니다.

 

 군데군데가 삭제된 거짓말 섞인 진실 둘. 

 난데없이 서울에서 짐을 꾸리고 있을 때 나는 절망을 상상했다. 이미 눈이 아득해질 만큼의 절망을 느낀 적은 한 번 있었으므로 그저 상상만 했다. 아, 이제 나는 정말로 끝이로구나. 내 일부인 어떤 세상의 멸망이었으므로 그 다음엔 이별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 때. 촛불집회 다음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아니 평생의 힘을 다 짜낸 것 같은 고성을 지르고 나서 전화를 던져버리고(다행히 그 다음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안 들리게 전화는 끈 것 같다. 아니 껐었나?) 씩씩대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기까지도 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면서도 멀쩡히 잘 살아온 걸 보면 그래도 살 만한가 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심보선의 시 <이 별의 일>, 그리고 멸망과 이별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아니, 잘 못 살았던 것도 같다. 귀촌을 하긴 했다지만 귀농을 하긴 아직 싫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밭농사 아르바이트의 유혹이 있었는데도 여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듯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여기서 평생 이주민으로 살고 싶어하는 듯하다. 아직도 서울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고, 길치인 나의 특성상 점점 홍대에서 길을 찾아가는 일이 막막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책을 읽으면서 칵테일 마실 수 있는 몇 군데는 꿰고 있다. 그러나 바다를 보는 일은 좋다. 여기서 일하시는 언니들 말마따나 내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제주에서 홍대 못지 않은 카페, 신촌 못지 않은 책방을 차리겠다는 꿈은 어떤가? 모든 문명의 번식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선 바람과 싸우는 게 일차적으로 힘들다 하던데, 언제나 그랬지만 '그곶' 바람을 맞으면 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졸음이 밀려오면서 눈꺼풀이 감긴다. (사실 남쪽만 가면 그런다.) 이 책을 읽으니 다시 그런 졸음이 몰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읽는 내내 차분해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마치 추운 곳에서 근무하고 난 다음 퇴근하여 전기장판을 키고 뜨끈해진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차가운 귤을 까먹는 듯한.
 
 진실이 섞인 거짓말 셋. 항상 내가 차버리고 밀어대니 나름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을 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잘못은 아니다. 당신들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외로웠다. 하지만 당신들의 잘못은 아니다. 아니, 당신들도 잘못했고 나도 잘못했다. 내가 왜 술도 안 마시고 멀쩡한 정신으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배고파졌다. 밥이나 술이나 둘 중 하나를 먹어야 할 시간이다. 혹은 둘 다를. 일단 한라산 '하얀 거'부터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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