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지 마 두 번째 이야기 약해지지 마
시바타 도요 지음, 채숙향 옮김, 문서빈 사진 / 지식여행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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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세상 어딘가에서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  

 

일본 어딘가에서

집단 따돌림도 일어나고 있지  

 

상냥함이라는

인플루엔자는

유행하지 않는 걸까 

 

배려라는 증상이

만연하면 좋을 텐데

 

 

 

 

그러나 좀 이쁘다고 쓰다듬어 주면 꼭 주인 손을 무는 개들이 있다.

 

 

 뭐 어차피 미운 인간이라서 싫은 소리를 툭툭 내뱉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 그런 식의 말을 하면 단체에서 나가겠다는 식의 망언을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이전엔 하는 짓이 귀여워서 머리도 쓰다듬어 줬는데 괘씸하기도 하지. 순간 그런 짓을 한 내 손모가지를 절실히 자르고 싶었다. 사실 '응 너 나가.'라고 말하고 싶었으나(아마 대학 시절이었다면 가차없었을 것이다.), 순간 이 인간이 예전에도 그런 몹쓸 망발을 하여 어떤 단체에서 잘려나갔던 적이 있는 게 생각났다. 그래서 일단 내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가만히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화를 풀라며 적절히 넘어가줬다. 그 이후로도 나는 아직도 그 인간에게 싫은 소리를 계속 깐족대고 있고, 그 녀석은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게 왠지 죄책감이 드는지 요즘은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게 한다 ㅋ 그러나 다시는 만나기 싫은 게 내심 생각이고, 그 단체들도 나를 끌어들이려 하진 않는 듯하다.

 

 잔소리하는 아들이 얼마나 귀찮을까. 몸이 아플 때나 시상을 고민할 때 다른 사람들이 성가셔보이지 않을 때가 왜 없겠는가. 겉으로만 친절하게 굴면서 속으로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가식적인 인간들이 주변에 한 둘은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는 말 한마디를 꿀꺽 삼킨다. 아들에게 '내가 어릴 때 니 오줌 똥도 치워줬는데 내가 늙었다고 니가 지금 날 괄시하냐?' 식의 말을 하면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네가 어릴 때 장난감 사달라고 떼썼던 것처럼 나도 젊어지는 약 사달라고 발 동동 굴러볼까?' 식의 말은 어찌 보면 귀여운 협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귀여워도 만만치는 않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에게 '나쁜 일에만 돌아가는 그 머리를 좀 더 좋은 일에 써봐.'라고 촌철살인의 충고를 날린다. 위의 인상깊은 시에서도 '내가 거짓 상냥함도 못 가릴 정도로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다'라는 포스가 막 풍기지 않는가. 나도 글로는 좀 길게 쓰고 싶지만, 말로는 이렇게 딱 한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을 쿡 찌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다. 물론 내 머릿속엔 그 사람을 거꾸러뜨릴 결정적인 한 마디가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 마디만 하면 사람들이 폭주 스위치가 켜지는지 마구 날뛴다. 재수없다느니 잘난 체 한다느니. 그 사람의 약점을 내가 바로 알아챘으니 저런 복잡한 반응을 보이는구나 생각하여 기분은 좋아진다. 하지만 이 리뷰 처음 부분에서도 말했듯이, 이 세상엔 멘탈이 너무 약한 인간들이 많으니 무슨 이상한 짓이나 벌이지 않을까 걱정되어 최근엔 조정을 거치는 중이다. (순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여러분도 2016년엔 멘탈을 좀 강화시키시길. 이 분은 시를 잘 쓰시긴 하는데, 너무 다른 사람의 멘탈에 대해 염려하시다보니 옳은 일에 대한 관념이 뚜렷하지 않아 좀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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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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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쉰두번째 결혼식의 패랭이꽃  

 

언니랑 결혼할 거야.  

 

여섯 살 지혜는 강보에 싸여 절집 당간지주 밑에 있었다  

 

햇것이 처음 본 당간지주가 아팠는지  

 

재재재 떠들 나이 되어서도 한쪽 눈을 심하게 깜박거렸다  

 

응 결혼하자 우리.  

 

혼이 맺어지는 저물녘엔 여린 것들 우는 소리가 또렷해진다 

 

저 죽으면 패랭이꽃 될 거라 믿은  

 

아픈 지혜는 패랭이꽃이 이쁜 톱날 같아서 무섭다 했다  

 

절집 당간지주 밑에 한 해 걸러 한 번씩 패랭이꽃 핀다  

 

 

지혜가 당간지주 밑에 오기 전부터 그랬다

 

 

  

패랭이꽃하면 역시 카드캡터 사쿠라(체리)에서 주인공 사쿠라의 어머니 나데시코 씨가 생각난다.

그림 왼쪽에 있으신 분인데,

우리 어머니 신혼여행할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이분과 헤어스타일이 상당히 닮아서 좀 무섭다(...)

 

 카드캡터 사쿠라에서 그녀는 이미 죽은 존재이다. 하지만 사쿠라와 그 가족들이 항상 그녀의 빈 자리를 의식하고 마치 그녀에게 말을 걸듯이 항상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특히 마법사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집안일과 회사일을 아무 불만 없이 척척 해결하는 사쿠라의 아버지 역할이 큰 것처럼 보인다. 듬직하면서도 왠만한 여성보다도 여성미가 철철 넘치는 그의 모습은 카드캡터 사쿠라를 그린 클램프의 그림체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사쿠라의 어머니 '나데시코'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르는 그는 그녀를 열렬히 숭배함으로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며, 그녀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사랑으로 인해 모든 것을 감싸주는 포근한 사랑에 가득 차 있다.

 (생각할수록 끔찍하지만) 나는 전생에 남성을 끔찍히 싫어하는 남성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김선우의 시는 확실히 환생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을 동물이나 식물로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며, 심지어 남성으로 자신을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그녀의 시를 읽으면서 하고 싶은 질문은, 굳이 자신을 남성으로 설정해서 '아내'라는 인물을 둘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다. '언니랑 결혼할 거야.' 라고 시작되는 이번 시를 지음으로서 (하필이면 패랭이꽃, 나데시코라는 게 포인트다.) 그녀는 퀴어로 격상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빨강'이라는 책을 낼 예정이다. 녹색당에 지대한 관심을 보임으로서 그녀는 사회 현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에 낼 그녀의 책은 산문집이다. 사실 모성이 사회 관습으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엄마'라는 단어로 힐링이 가능하다는 김선우 씨(혹은 김선우 씨의 팬들)의 발상이 너무나 불편하다. 아직까지 나는 불모와 무책임의 문학이 너무나 좋다. 30세에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가 너무나 강력히 인식에 남았다. 즉슨, 시대에 좀 많이 뒤쳐진 나조차 이 시집을 읽고선 '시대에 뒤쳐져 있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도 인식하고 있는지 녹색당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당원이 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신념을 끝까지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남성들은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88년도가 좋았지 생각하는 인간들에게도 추천한다. 그 시절 즈음이나 혹은 군대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아마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 한 몫한 가해자거나 방관자가 아닐까? 물론 난 전자나 후자나 똑같이 더럽다고 보지만.

 

 오브ㅡ라ㅡ디 오브ㅡ라ㅡ다 중에서 

 

열 살에 나는 뒤란에서 혀를 깨문 엄마의 입속에

노란 수건을 틀어막으며 소리 질렀죠

죽지ㅡ마ㅡ죽지ㅡ마ㅡ 미쳤어?

오브ㅡ라ㅡ디 오브ㅡ라ㅡ다, 살아서 복수해요

인생은 아직 진행 중이에요

사극 속의 영웅들은 저마다 편을 갈라 전쟁을 하면서

어머니의 복수! 어머니의!라고 외쳐대죠

어머니의 이름으로 더러운 피도 맑은 강이 된다고 설교하죠

어머니들은 더 이상 흘릴 피가 없어 관을 풀어 가시 풀 요람을 짜고

붓다는 슬픔을 피해 보리수 아래 숨었나 봐요

 

열네 살 마이코 중에서

 

...... 네 엄마에게 가서 하라고 해! 오, 엄마, 미안해요, 참을 수 없이 지독한 걸 요구하는 군인에게 대들며 악 쓴 날엔 이가 부러지고 온몸이 멍들었네 멍든 자리마다 쇤 가시풀 독사처럼 똬리 틀어 몸속이 구만리 지옥이었네...... 지옥을 본 이들 중엔 젖가슴만 만지다 가는 군인도 있었지......

 

 

 성추행과 강간을 포함하여 섹스할 때 유독 예의가 똥이어서 여자를 아프게 만드는 상대가 있다. 그럴 땐 '니 엄마한테 가서 이렇게 해봐라'라고 소리질러 주라.

 

 

 

이 참에 한꺼번에 올려보자 싶어 애니판 나데시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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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6.1.2 - no.004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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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거리를 떠돌고 싶지 않았고 무얼 보더라도 앞으로도 떠돌고 싶지 않았다. 아마 죽은 자를 살리는 모습이라면 그런 것을 보기 위해 며칠 떠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죽은 자들이 말한 것은 나는 그런 것이 전부 남아있을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풀과 가지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은 것은 나중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이며 다른 길로 걷게 해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이 누구를 살릴 수도 있다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내가 최근에 겪었던 일들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시급이 늘어난 대신에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같은 부서 직원들 중에 나만 그렇게 되었는데, 사람들과 모여서 먹는 도중에 그 사건이 이상하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러면서 내가 일하고 있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주장했다. 남들과 출근 시간도 다른데 심지어 쉬는 시간도 있다고. 난 그래서 받는 시급이 적은 데다가 진짜 본사에서 그렇게 정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속으론 울화가 끓어올랐다. 아니 본사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먹고 살 수가 있지, 나라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노동부에 진정을 내던 내지 않던 내 선택이지 상담해오지도 않았는데 남들이 진정을 내라느니 내지 말라느니 대체 무슨 참견을 그리도 하는 것인가.

 

 서론이 길었지만 아무래도 악스트랑 상관이 있는 것 같아서 비유삼아 올린다. 생각해보니 이 질문의 결론은 이렇다. '대체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참견하는가?'

 

 

 

 

  일단 이 일을 듀나에게 먼저 덧붙이겠다.

 

 인터뷰 하시는 사람들도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 한국에서 '성숙'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아주 미심쩍게 바라보고 있어요"라고 한 건 이 기사를 비꼰 것이다. 왜 악스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달려드는 팬이던 안티팬들이던 당연히 연결시켜서 볼 거라 생각했나? 난 우연히 이 기사를 본 후에 악스트를 본 인물이지만, 어떤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댓글로 남기지 않고 다른 잡지에서 흘리듯이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불쾌했다. 상당히 매너없는 행동이었다. 마스킹을 반대하는 그의 행위가 정말로 정당하다면 남들이 당신보고 성숙하다고 하던 미숙하다고 하던 무슨 상관인가?

 

기사: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088248#cb

 

 고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무 의미 없다고 비꼬면서도 후반에 고전에 대해 언급한 건 명백한 그의 말실수이다. 일단 내가 그에 대한 지식이 없기도 하지만, 평론한다고 남들보다 내가 더 많이 뭔갈 안다고 해서 어떤 사회현상이나 영화작품에 대해 저렇게까지 길길이 뛰며 반대하는 건 좀 억지이지 않나. 이전에 별점 주는 걸 후회하고 있다고 언급했으면서 말이다. 꼰대라기보단, 어딘가 심각하게 자기 자신과 소통이 되지 못하는 자라고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확실히 듀나 프로젝트는 흥미있다. 하지만 듀나같은 인물은 듀나 오직 하나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같은 전업 글쓰기이고 둘 다 예의가 없는데 듀나는 욕을 먹고 장강명은 욕을 안 먹어도 되는가에선 또 얘기가 다르기도 하지만. (난 장강명도 듀나도 싫긴 하다.) 어쨌던 한국인은 다들 자기 잘났다고 주장하는 게 종특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문학에서 말고 다른 인터뷰자리에선 수위 좀 낮출 순 없는 거냐고. 난 딱히 악스트 망해도 상관없는데 따위로 이야기하는 듀나나 듀나 쪽쪽 빨기에 열광하는 듀나빠들이나 난 둘 다 이젠 정말 참을 수 없이 거북하다. 듀나처럼 되지도 못하고 사회에 섞여서 익명을 떨칠 수 없으니 그렇게 되는 빠들은 불쌍하다 인정하면서도...

 

 결국 문제는 등단제도인가, 싶기도 하다. 자신도 사이언스톨로지같은 사람이면서, 신도들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종교를 그렇게까지 비판하는 걸 보면 마치 자신은 종교로부터 벗어나 완전무결하게 순수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걸까? 마찬가지로 등단을 하지 않았다고 명백히 밝히면서 그에 적개심 비슷한 걸 품고 있는 듯했다. 등단하면 아무래도 사회에 섞여버리니까, 완벽하게 벽을 쳐서 막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어서 무의식적 열패감을 언뜻 본 것 같은데 과연 내 착각이었을까? 결론은 그의 태도 자체가 전혀 쿨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바로 본론이다. 악스트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내가 주목한 건 듀나가 아니라 듀나를 접한 백다흠 씨와 배수아 씨의 반응이었다. 실례이지만 워낙에 개성이라는 게 없는 그 듀나에게 농락당하는 두 사람이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워낙 활자 중독이라 왠만한 책들은 끝까지 읽는데 그 습관이 후회되지 않는 몇 안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런 인터뷰를 따낸 것 자체가 악스트의 고난이도 수법인지도.

 

  

사실 이 때문에 1점 줄까 했는데 단편소설들이 좋았기 때문에 간신히 3점 준다.

연재소설들은 특히 악스트 문 닫으면 어디서 연재할지도 알 수 없으니... 

 

 그러나 '나 알아요?'(마치 관등성명이 뭐요?라는 질문을 보는 것 같았다.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충격이었다.)라던가 '여자에요 남자에요? 전 여성분같은데.'(아니 남자던 여자던 글만 맛나게 잘 쓰면 되지 그런 게 대체 무슨 상관인가. 몸의 성별은 남자인데 트랜스젠더여서 젠더는 여성이라면, 대체 듀나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될지 제대로 헤아려 본 것이며, 만약 내 예상대로라면 또한 그 죄를 어떻게 씻을 것인가.) '송경아 작품 알아요?' 같은 질문은 정말 아니었다. 일본에서 야나기 나기는 야나기 나기고 클라리스는 클라리스지 '야나기 나기 혹은 클라리스 그들은 누구인가' 같은 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오타쿠가 뭔지 모른다는 걸 감안해도 꽤 심각한 공격이었다. 야나기 나기나 클라리스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익명성이 날아가기 때문에 그들은 더이상 야나기 나기나 클라리스가 아니다. 백다흠 씨와 배수아 씨는 의도치 않게 듀나를 공격했거나, 혹은 듀나의 밥줄을 끊으려 한 것과 마찬가지다. 난 명백히 전자라 본다. 아마 이런 인터뷰는 우리나라라서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선 듀나의 말이 맞기는 하다.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인터뷰를 그대로 싣는다면 그게 진정한 인터뷰라 할 수 있을까? 최대한 양보해서 듀나가 계속 자기 소설작품 이야기만 하는 인터뷰에 의도적으로 출현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오타쿠도 악스트에 글을 올리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싸튀충이라고 해도 일단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건 사람들이고 사람들은 의견을 쓴 거다. 또한 백다흠 씨가 악스트 말고 다른 데서도 활동한다 하더라도 악스트에 대해서 자신의 작품들만큼이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지 않다 할 수가 없다. 결국 이번 악스트 2016년 1-2월호를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악스트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난 조금 힘들지 않을까 본다. 대체 아름다움이란 게 보편적이기나 할까? 냉수 한 잔으로 정신을 좀 깨운 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될 것을.

 

 근데 그 전에 오스카 와일드 소개 중에 나온 아름다운 책과 아름답지 않은 책이라는 병크 발언에서 웃음이 터져야하는 거 아닌가? 싶다. 당신들이 도대체 뭐길래 잘 쓴 책과 못 쓴 책을 거론하세요, 라고 하고 싶지만 출처인 오스카 와일드 씨는 돌아가셨고 문제는 글 쓰신 분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오스카 와일드의 많은 문장 중 하필 그런 걸 거론하셨냐는 거다. 등단한 글이 아름답다는 거냐? 우리나라 글 왜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 많은지 이제야 알겠다고 할까. 이렇게 현명한 독자들을 당신들이 감히 악스트라는 잡지로 계몽한다고? 그런 정신으로 글을 쓰는데 아무리 작가의 사회적인 의견을 담는다고 한들 사람들이 받아들이겠는가? 잘 쓴 책, 잘못 쓴 책. 비싼 책, 싼 책. 두터운 책, 얇은 책. 큰 책, 작은 책. 잘 찰리는 책, 안 팔리는 책. 내가 읽을 수 잇는 책, (나만) 읽을 수 없는 책, 19금 책, 19금 아닌 책. 대체 이런 것들을 구별하는 기준이 뭔가? 잘 쓴 책의 기준이 뭔가. 100만부 이상 팔린 책?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책? 스테디셀러로 선정된 책? 잘 쓴 책은 독자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시대가 점점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전(으로 선정된) 책 중에서도 좋은 책은 많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다 구식이다. 티벳 사자의 서를 끝까지 읽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걸 마음 속으로 깊숙히 재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진심으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일단 옛날 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의 생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게 좋다. 가끔 '김사인의 시시한 다방'에서도 '왜 현대 시인들이 (우리들은) 이해못할 추상적인 시들을 쓰는 걸까요? 이제 좀 그만했으면...' 따위의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정말 그만해주지 않겠는가. 토할 것 같다.

 

 그럼 마무리를 하자. 악스트는 일단 이것부터 정해야 할 듯하다. 악스트의 모임은 문학가들이 돈을 벌려고 겸사겸사 평론가가 되려는 모임인가, 아님 평론가들의 편협함을 깨 보려는 모임인가. 이걸 빨리 정해야 판타지 소설 작가들도 라이트 노벨 작가들도 초청해서 인터뷰를 해보고 소설도 청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악스트가 그런 잡지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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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 5
우미노 치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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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대역이란 없다는 걸 알았지.

 

  

다른 사람들은 이 결말에 대해서 옥신각신했었는데 난 유독 덤덤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테마와 어울리려면 그런 결말이 나와야 한다.

 

 애니메이션으로 봤다가 이번에 만화로 본 허니와 클로버. 쓸모없는 설명을 해주는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그림체의 변화와 컷만으로 분위기를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것 때문에 나는 만화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타케모토 유타에 대한 설명과 그가 살고있는 시대상에 대한 부분이 예리하게 드러나서 놀랐다.

 

 

 

3평 플러스 부엌 1.5평. 욕실 없음. 대학까지 걸어서 10분. 지은지 25년. 집세 3만 8천엔. 방음이라고는 제로에, 전부 자취생. 아침 햇살이 눈부신 동향. 미대에 합격해 도쿄에 상경했는데, 학교 주위가 온통 밭이라 놀라고, 내가 지은 밥이 너무 맛없어 놀라고, 대중탕 요금에 놀라고, 산더미 같은 과제에 놀라고. 하지만 이젠 그런 것도 다 일상.

 

이런 곳에서 사는 미대 남학생 3명에게 하구미라는 아름다운 여고생이 소개되었다.

이 3명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한 명은 이미 불가능한 사랑에 매달려 있어서 타케모토에게 양보하는 식으로 포기한다. 이 녀석 아닌 척 하지만 곁눈질 한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6~10권 리뷰에서 지속하기로 하고. 타케모토는 '안 그래도 부모님 사이의 분위기가 복잡한 나같은 것이 감히 그녀를 좋아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여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 그의 졸업작품은 번뇌에 가득차 있다. 탑에서 사리가 쏟아질 듯하다(...) 너무 속이 좋아 어른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항상 자신의 졸업작품은 완성하지 못하고, 결국 '영원히 학생'으로 전락한 시노부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하구미를 그냥 손에 올려놓은 채로 이리저리 팽개치고 다닌다.

 

 내가 뜬금없이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이유는 그들이 연애를 하지 않는 갖가지 이유가 2015년에 출간된 김종욱의 소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단편집에 나오는 열두 가지 이유 중에 잠정적으로 속하기 때문이다. 온갖 유혹을 물리치며(?) 40살에 접어든 화자 아니 작가의 고백은 (플레이스테이션 2가 일본에서 선풍적으로 팔릴 때쯤인) 2000년도 초반에 졸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즉 30대 후반이나 40살이 되었을 이 캐릭터들의 독백과 소름끼치게 맞아들어간다. 최근 40대는 '신청년'(매일경제 기사) 혹은 '영포티'(라이프 트렌드 2016)라고 불린다. 그들은 더 이상 집 마련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을 사기엔 이미 빚이 있는데 또 빚을 져야 하니 포기한 건 아닐까?) 그리고 결혼, 출산 등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하는 데에도 돈이 들고 애를 낳는 데도 돈이 드니 포기한 건 아닐까? 아니 그리고 1번에서 이미 집이 없는데?) 창업보단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요즘 자영업자들 창업하면 1년 내로 망한다는데?) 또한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한다. (이미 앞에서 집도 결혼과 출산도 창업도 다 못하는데 소비라도 왕창 해야 하지 않겠음?)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을 어리다고 주장하는 50대, 너무 순종적이라고 생각하는 10~20대들에게 절규한다. 우리의 20대를 보라고. 우리도 당신들의 20대 못지 않게 아름다운 삶을 살았노라고,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렇게 가난하다고. 그들에게서 우리가 느끼는 건 인간의 나약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경험을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하는 건 나쁜 일이라고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성실함과 꾸준함이 있는 사람은 그 와중에도 살아남는다. 예를 들어 네잎클로버를 찾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어떤 교수가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당신들 사이에서 변종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네잎클로버같은 무리에서도 변종은 항상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학생들은 네잎클로버를 찾는다는 생각보다는 세잎클로버와 다른 것을 찾는다는 관점으로 열심히 클로버들을 뒤졌고 결국 모두 네잎클로버를 찾았으며, 심지어 그 드물다는 다섯잎크로버를 찾아낸 학생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잘못을 했다. 네잎클로버를 못 찾은게 아니라, 네잎클로버가 반드시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끝나지 않은 게 아니라 당신이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무집착을 모토로 삼는다고 이야기하며 거들먹거렸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을 사랑해보지도 않았다. 한 사랑에 매달리느냐 포기하느냐에 너무 고민하느라 다른 사랑을 선택하는 제3의 길을 잊어버렸다. 결국 기억하는 것도 잊혀지는 것도 모두 사랑으로 귀결된다. 평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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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6.1.2 - 합본호
'작은 것이 아름답다' 편집부 엮음 / 작은것이 아름답다(잡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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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눈여겨 본 것이 '100퍼센트 재생에너지'라는 구호였어요. 과거에는 환경운동가만 주장했는데 놀라운 건 정부 대표, 기업대표, 지자체장들이 모두 100퍼센트 재생에너지를 이야기해요. 엄청난 변화입니다. 세계가 재생에너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뜻이에요.

 

 

  

전등을 나무에 두르는 것이 우리에게 보기 좋을 지는 모르지만

실상으로는 나무를 화형시키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은

이미 매스컴과 여러 환경단체들의 활동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에게는 다시금 충격이었다. 대부분 제설제 재료로 염화칼슘이 쓰이는데, 그렇게 마음껏 쓰고 그 결과로 부식된 도로를 보면서 질색을 했으면서도, 길가의 가로수에게 튀길 경우의 영향력에 대해서 우리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가로수의 나무들이 가로세로에 높이마저 1미터 조금 넘는 흙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다. 마치 무덤과 같은 곳에서 갇혀있는 것이다. EBS 다큐멘터리에서는 '녹색동물'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다. 식물들도 이동하면서 산다. 추운 곳이 질린 북극과 남극의 식물들이 대이동을 하여 여러 차선의 지역들에 정착을 하였는데, 그 귀한 식물들이 서식하는 곳 중 하나가 설악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위에 케이블카를 짓는다고 하지 않는가. 미친 짓이다. 그 나무들을 모두 뽑아서 다른 곳에 옮겨심는다 한들 그들이 살아갈리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살아가라고, 요새는 경쟁시대이지 않냐고 강요한다. 약육강식이라는 말은 이미 언급될 필요도 없는 듯.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인간을 위해 지구와 그 모든 생물은 희생되는 게 순리인 듯. 인간도 동물이라는 진실은 땅 속에 묻어버린다. 애매한 게 나쁜 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 괴롭지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나쁜 일이다. 당신의 마음 속엔 악이 들어있다,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 그들에게 산제물로 자신의 영혼을 바치고 있다, 라고. 동정과 배려와 연민의 마음을 모를 때 혹은 모른 척할 때 당신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당신이라는 껍데기 속에 기생하는 게 과연 정말로 당신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치 마녀의 세뇌처럼, 아무리 옆마을로 가려고 해도 미타기하라 시로 돌아가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반역의 이야기 세계에서 나오는 2층버스처럼, 우리는 한번도 그런 걸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니, 알아도 내심으로 모른 척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와 동물들에게는 영혼이 없어서 고통도 없다는 아주 옛날 고리짝 서양의 몹쓸 철학을 철석같이 마음에 간직하면서 말이다. 철학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전에는 가난하더라도 왠만큼 자급자족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면, 지금은 가난한 자에겐 자급자족할 권리마저 없다. 심지어 생각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탓에 그들의 멍청함은 소름끼치기까지 하다. 요즘 시대엔 가난하면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P.S 변명하듯이 붙여보지만 난 그닥 종교에 헌신적인 사람이 아니다. 딱히 죽은 이후에 뭘 잘해보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아마 미신으로 인해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선과 악이 공존한다. 나와 정치관이 맞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연스러움을 가두려는 편협함과 속물적인 위'악'스러움에 구역질이 날 뿐. 그에 대한 정상적이지 못할 정도의 분노는 정의가 아니라 사실 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항상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눈빛을 한 사람, 박그림같은 샤프한 성인군자에게서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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