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개 - Poongs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의 2/3가 흐른 지점, 북파 공작원들에게 잡혀 고문을 당한 풍산(윤계상)과, 마찬가지로 공작원들에게 잡혀온 인옥(김규리)이 한데 만난다. 서로 묶여 있는 이들은 "미친듯이" 서로의 입술을 탐하며 떨어지려하지 않는다. 이 모습을 본 북한간부(유하복)는 총을 쏴대며 이들을 떨어뜨리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사람에게 이 장면에 대해 침을 튀기며 얘기했다. "정말 인상적이지 않아요? 서로 어떻게든 떨어뜨려놓으려는 남과 북이 서로 한몸임을 증명하는 듯한 거대한 메타포를 표현한 것 같아요!" 이 말을 듣자 집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엥? 난 마치 흘레 붙은 '개'들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왜, 길거리에서 개들이 흘레 붙으면 막 사람들이 억지로 떨어뜨리려고 하잖아요. 그 북한간부가 총질한 것도 그런 것 같았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들이지만, 난 이 두 가지 시선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은유와 넘쳐나는 야생동물의 에너지. <풍산개>는 (전재홍 감독에겐 미안하지만) 오롯이 김기덕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물건/사람을 배달하는 한 사내가 있다. 사람들은 그의 연락처나 이름을 모른다. 그저 풍산개가 그려져 있는 풍산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풍산이라 불리우고 있다. 그런 그에게 남한에 망명한 북한 고위층(김종수)이 북에 두고온 사랑하는 연인(이라지만 거의 딸뻘인) 인옥을 데려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지만 이 일에 국정원이 개입하면서, 사건은 조금씩 복잡해지고, 망명한 북한 고위층을 암살하려는 북파 공작원까지 개입하면서 사건은 점입가경이 된다.  

이 영화를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라 해야할지, 전재홍 감독의 작품이라 해야할지 머뭇거려진다. 김기덕 감독은 그의 작품에서 언제나, 사실과 환상을 섞어낸다. 둘 사이에 어떤 명확한 경계는 없으며,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환상이 되고, 또 그 반대가 벌어지기 부지기수다. 그러한 일련의 흐름속에서, 그의 영화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줄거리 상으로는 정말 유치찬란하면서도, 막상 영화를 보면 그 어떤 오라를 느끼는 것은, 그가 현실과 환상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재홍 감독은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에 표현된 '환상'의 요소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아직도 감을 못잡은 것 같다. 그의 첫 번째 데뷔작 <아름답다> 역시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로 찍은 영화다. 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내 기억에서 깡그리 지워버렸는데(그래서 난 <풍산개>가 전재홍 감독의 데뷔작인줄 알았다), 그 이유는 영화가 정말로 "끔찍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역시 환상과 사실이 혼재되어 있는데, 전재홍 감독은 환상의 요소를 모두 사실로 찍었다. 환상의 요소가 사라지자, 김기덕 감독 특유의 그 강한 정서를 중화(혹은 더 증폭)시켜줄 무언가가 사라졌고, 영화는 (장르의 규칙에서 벗어난) 기상천외한 호러무비가 되었다.  

반면, 장훈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에서 특유의 환상 장면을 "스타일화"해서 찍었다. 김기덕 감독의 "환상"이 스타일이 되자, 이 영화는 독특한 장르영화가 되었다. 장훈 감독은 (인간적인 문제는 모르겠으나) 이후의 김기덕 필름 영화들에 대한 이정표를 세운 것이 확실하다.  

전재홍 감독도 이번에 <풍산개>를 찍으면서, 장훈 감독이 이루었던 것을 참고한 것 같다. <아름답다>와는 달리 이 영화는 장르 친화적이며, 액션과 유머가 곳곳에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 특유의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기막힌 이야기 구조 또한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전재홍 감독은 아직도 환상을 다룰 때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풍산개>는 김기덕의 이름을 상기하면, 넘길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넘쳐나지만, 이 장면들에 전재홍 감독의 이름을 떠올리면, 영화 구조상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전재홍 감독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며 해결해야할 문제이겠지만.  

2011년부터 지금까지 2시간 내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하며 본 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 생각해봤다. 며칠전에 DVD로 본 <공포의 보수>를 제외하고는, 극장에서 그런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풍산개>는 확실히 재미있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 안에 품고있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스크린에 풀어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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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5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1-07-0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덕의 '환상' 요소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 되곤 해요.
시간, 빈집, 비몽 등등 거의 모든 영화에서요.
서울 평양을 3시간에 넘나드는 풍산의 존재 자체도 판타지인데
남북 분단 상황 자체도 어쩌면 현실이 아닌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전제로
영화를 봤어요. 그런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우린 그걸 체감하지 못하고 사니까.
한반도 없는 북조선은 존재하지 않아. 이렇게 북한간첩단 대장이 말한 건 뭘까요? 대사들이 좀 서걱거리면서도 날 것 냄새가 많이 났어요.

Tomek 2011-07-06 10:29   좋아요 0 | URL
동감합니다. :D

그런데 이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환상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엔 그 구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숨>을 본 이후로, 그냥 그 둘이 섞이면서 상호보완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문제는 김기덕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은 전재홍 감독이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라 생각했는데, 그 역시 (이번에도) 두리뭉실하게 넘어간 것 같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런 면에선 장훈 감독의 행보가 많이 아쉽기도 하고요. 오히려 김기덕의 에너지를 가지고 온 장철수 감독의 행보가 기대가 됩니다. 전재홍 감독은 김기덕 감독과 떨어져서 작업을 해야 그의 스타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예전에 방은진 씨가 <해안선>을 언급하면서, "김기덕은 '이즘'같은 거대담론을 얘기하면 유치해진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100%는 아니고, 어느 정도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거대담론이라는 것은 어느 누가 이야기해도 어느 정도는 유치함을 담보로 하고 있는 것이니, 그렇게 분개할 일도 아닌 것 같고요. 오히려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거대담론을 풀어내는 것이 오히려 신선해보였으니까요.

아... 정말 <풍산개>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일까요, 아니면 전재홍 감독의 작품일까요... 영화를 찍은 감독의 존재감이 이렇게 적게 느껴지는 경우는 007시리즈 이후로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novio 2011-08-1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심도 있는 글에 경탄할 뿐입니다. 그리고 오랜 만에 이곳으로 왔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Tomek 2011-08-11 09:3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