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작가 - The Ghost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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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인이 없는 자동차와 파도에 밀려온 한 시체로 시작합니다. 죽은 사람은 영국의 수상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작가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새로운 대필 작가(이완 맥그리거)가 수상의 자서전을 대필합니다. 수상은 이라크 전쟁 포로들을 고문하는 것을 용인해, 그들 중 일부가 살해당한 혐의로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고, 대필 작가는 그의 자서전의 내용과 그의 전임자가 발견한 사실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는 전임자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타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수상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나가는 중, 그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유령 작가>는 늘 자신이 만드는 영화보다 더 큰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삶을 들추어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탄식이 나옵니다. 간단하게 굵직한 사건만 언급해보면, 그는 폴란드계 유태인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수용소에 부모와 함께 끌려갔습니다. 한창 아름다워야 할 유년기에 그는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종내에는 그의 어머니 또한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배우로써 영화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연출에 관심을 두어 데뷔작 <물속의 칼>로 이름을 알립니다(이 영화는 배라는 한정된 공간과 단 세 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영화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긴장감은 정말 뛰어납니다). 할리우드에 정착해 <악마의 씨>라는 걸출한 작품을 만들지만, 배우이자 아내인 샤론 테이트가 연쇄 살인마 찰스 맨슨과 그의 패거리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충격을 받습니다. <차이나타운>이라는 느와르 걸작을 만들지만, 이후에 그는 13살 미성년자 강간혐의로 미국에 추방당하고, 유배를 돌 듯,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다국적 자본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합니다. 추방과 동시에 미국 사법당국은 미성년 강간 처벌을 위해 그를 30여 년간 추적하지만, 그가 거주하는 국가에서 수사를 공조하지 않아 체포를 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다룬 <피아니스트>로 칸느와 아카데미에서도 수상을 해 어느 정도 화해의 제스처를 보여준 듯 했으나, 200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금상태입니다.    

영화 <유령 작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굳이 감독의 일화를 언급한 것은 그가 이번에 만든 영화가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유령 작가의 정확한 표현은 ‘대필 작가’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유령 작가'라는 작명이 원래의 뜻보다 영화의 내용을 더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 존재성을 드러내지 않는(혹은 못하는) 유령 같은 존재. 로만 폴란스키 감독 역시 그의 이름은 있지만,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 삶을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홀로코스트의 경험과, 아내의 잔혹한 죽음, 미성년 강간 그리고 정착할 수 없는 유배의 삶. 하지만 영화가 있는 곳엔 언제나 존재감을 드러내는 감독. 존경할 수도 그렇다고 경멸할 수도 없는 이율배반적인 인물. 그는 언제나 유령 같은 존재입니다.   

 

그의 신작 <유령 작가>는 <물속의 칼>, <시고니 위버의 진실> 이후로 한정된 장소와 소수의 배우들만으로 만든 스릴러입니다. 그의 전작들을 보신 분들은 눈치 채셨겠지만,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스릴러는 (거의 언제나) 느릿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요즘의 스릴러처럼 정신없이 진행하고 관객의 뒤통수를 치기 보다는 이야기와 미스터리를 쌓아가는 고전적인 방식입니다. 그렇기에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같은 진행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조바심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 느릿한 진행이기 때문이지요. <유령작가>의 영화평을 보면 "이게 무슨 스릴러야", "정말 지루하다"는 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요즘 관객들은 괴롭힘을 당하기 원하지 유혹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로저 에버트 옹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지루함을 전적으로 관객의 잘못이라고도 미룰 수가 없습니다. <유령작가>는 미스터리의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최종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추리 소설의 클리쉐입니다. 이 간단한 트릭을 그 날고 기는 CIA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미스터리 장르로서는 힘이 빠지는 구성입니다. 물론 이렇게 평이한 내용을 최고의 배우들로 극을 이끌어가는 솜씨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정작 관심이 있었던 것은 '유령'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는 주인공 말고(그는 스스로를 ‘유령’이라 소개합니다) 수많은 유령들이 나옵니다. 주인공 유령은 아무런 힘도 없는 작가이지만, 다른 유령들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주인공인 유령작가 같이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이 진실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그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그 진실을 덮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령작가는 움직이고 행동했습니다. 물론 그의 행동은 그를 진짜 유령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유령들은 그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했을 겁니다.  

<유령 작가>는 누가 진짜 유령인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령들을 어떻게 몰아낼지에 대한 영화입니다. 물론 이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영매가 되어 이들을 보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그의 커리어에 부끄럽지 않은 묵직한 '정치'선동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덧붙임: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늦게 우리에게 도착한 것 같습니다. 6월 2일이 아닌, 그 전 주에 도착했더라면, 선거 결과는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의 유령들은 정말 영악합니다(혹은 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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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러브
신연식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버즈픽쳐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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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파란 하늘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하늘. 꿈꾸는 듯 흘러가는 하얀 구름. 파란 하늘은 이내 먹구름이 끼더니 빗방울을 쏟아냅니다. 천변만변하는 하늘아래 매일 같은 삶을 살아가는 나이든 사내의 모습. 이런 어두운 하늘에 노을 같은 불꽃이 황홀하게 일어나면서 영화의 타이틀이 뜹니다. <페어러브>.  

 

카메라 수리공인 형만(안성기)은 친한 친구 기혁에게 사기를 당해 조그마한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끊겼던 기혁에게 연락이 오고, 형만은 기혁을 찾아갑니다. 간암으로 투병하고 있던 기혁은 형만에게 자기 딸 남은(이하나)을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애증이 뒤섞인 친구의 부탁으로 형만은 남은을 찾아가고,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ㄴ’자가 붙으면 보통의 삶은 안정적이 됩니다. 뭐 연륜이나 경험이 쌓여서 그렇다기보다는, 20대 때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세상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죠.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결과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길이 아니면서도 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안정감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편입합니다. 안정감을 보장하는 직업은 우리의 전부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관성의 법칙에 몸을 맡기며, 그렇게 삽니다. 신연식 감독의 <페어러브>는 바로 그 굳어진 기성세대들을 향한 이야기입니다.  

형만은 작은 작업대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형이 집에 들어와 같이 살자고 해도, 그는 자신의 작업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래된 LP와 턴테이블, 그리고 수동 카메라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멈춰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형만은 그렇게 수십 년간 고립되어 살아왔고, 그에게 있어 작업실은 형만 자신입니다.   



 

그런 형만에게 남은은 마치 유령 같이 등장합니다. 남은의 첫 등장은 형만이 찍은 사진의 피사체로 등장하고, 두 번째는 울음소리로, 세 번째는 스카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로 등장합니다. 전혀 다른 세대의 애틋한 만남은 마치 현실이 아닌 꿈 같이 보입니다. 그렇기에 형만도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작업실에 다른 사람을 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형만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지만 끊임없이 반문하고 회의합니다. 그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과는 다릅니다. 상대가 친구의 '딸'이기 때문이죠. 남은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형만에 대한 마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냅니다. 하지만, 형만은 다릅니다. 형만에겐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하찮아 보일지라도) 지금껏 쌓아온 평판 혹은 나잇값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형만이 사랑에 빠지기 위해선 일단 자기 자신부터 설득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너랑 나랑 같이 있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지.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피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그리고 그 후엔 그의 주변사람들의 분노와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실이냐? / 야, 이 새끼야! 이건 아니지. / 늘그막에 연애하면서 유난은..." 그리고 마지막엔 남은마저 설득해야 합니다. "이젠 아저씨 말고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영화에서 그들의 사랑은 우리가 해왔고 봐왔던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이 처한 상황이 특별하기 때문에 그들(이라기 보단 형만)은 사랑 말고 윤리적인 판단까지 고려해야만 했지요.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사랑입니다. 특별한 것 없는 일반적인 사랑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랑(Fair Love)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연인이 되면서, 남은과 형만은 자주 부딪힙니다. 남은은 형만에게 "작가가 되는 게 어때요?”"라며 묻지만, 형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합니다. 형만의 나이는 50이고 이미 무언가를 더 시작할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죠. 형만은 오히려 남은에게 "너도 아차, 아차 세 번만 하면 내 나이 돼. 그러니 어서 독립할 생각을 해야지"라며 잔소리를 합니다. 이들은 서로 처한 상황에 맞게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남은이 형만에게 작가가 되라고 하는 것은, 사진 수리공이라는 직업이 창피해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형만과 사랑을 시작하면서 그의 작업실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형만은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한 인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즐기고 같이 공유해야 하지만, 형만의 완고한 세계는 그녀가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20대입니다. 남은의 20대는 미숙하고 불안하지만, 가능성이 열려있는 20대입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닌, 과정의 동력이 분출하는 시기죠. 모든 것이 가능한 그 때, 형만은 그녀에게 따분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빠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오빠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오빠는 작업대 유리창 밖으로 안 나와요. 오빠가 그 작업대에서 나오면 밖으로 나오면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게 생길 줄 알았어요. 근데 항상 외로워요. 옆에 있어도 외로워요."

결국 남은은 형만에게 이별을 통보합니다. "내가 나이를 더 먹고 무뎌지거나 감당할 수 있을 때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그때서야 형만은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후회합니다. 사랑 앞에서 평등한 존재인데, 조금 더 인생을 겪었다는 이유로 남은에게 함부로 대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쏟습니다. 이별의 아픔은 그의 세계에 처음으로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형만은 남은에 대해,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의 인생과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검진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는 형만에게 남은이 찾아옵니다. 물론 이 장면이 실제인지, 형만의 꿈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장면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만은 자신의 작업대를 벗어나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는 것. 물론 두렵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신연식 감독의 말대로 "뭐가 됐건 50대 50이니까" 형만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며칠 잠을 못 잤어요-
어디선가 남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정신없이 밤을 새고 과제물 제출하고,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커튼 위로 춤을 추는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오빠 버릇 있잖아요? 얼굴 비비는 거. 너무너무 피곤할 때 하는 건지 그때 알았어요. 너무 몰랐어요, 오빠를."
나는 남은이를 보고 있지 않아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말하는지 환히 보이는 것 같았다.
"오빠가 평생 안 변할 수도 있고, 내가 변할 수도 있고, 내가 무뎌질 수도 있고, 오빠가 변할 수도 있고. 어차피 어떻게 살아도 백 프로는 아니니까."
커튼 위로 노을이 붉게 타올랐다.
"매 순간 매순간 어떤 면으로는 오십 대 오십이니까. 우리 다시 시작해요."
남은이 눈동자와 같은 노란 노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덧붙임:  

1. 이번에 발매한 DVD에는 본편만 들어있습니다. 게다가 재생 버튼을 누르면 한글 자막이 나와 일일이 Set up에서 자막을 조절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했으면 조금 더 나은 사양으로 발매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습니다. 신연식 감독님의 다음 영화의 성공을 기대합니다!   





 









 

2. 마지막 인용은 소설 『페어러브』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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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 A Singl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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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글맨>에 관심이 있던 것은 감독 톰 포드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구찌에서 수석 다자이너로 활동해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그의 이름을 단 선글라스와 남성 속옷은 소위 ‘명품’ 대열에 끼었습니다. 하지만, 더 궁금한 것은 그의 내밀한 사생활이었습니다. 그는 게이거든요. 게이인 그가 게이에 관한 영화를 찍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요. 90년대 중반 (음반 제작자이자 게이인) 데이비드 게펜이 동성애 커플의 이야기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제작한 것만큼이나, 게이 감독인 구스 반 산트가 게이 인권운동가 하비 밀크의 삶을 그린 <밀크>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싱글맨>은 게이를 다룬 영화이지만, 톰 포드는 게이의 삶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싱글맨>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상실과 공포를 느끼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조지(콜린 퍼스)는 그저 여자 대신 남자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영화는 혼자 사는 사람의 하루를 보여줍니다. 

1962년, 미국. 영문과 교수인 조지는 오랜 연인 짐(매튜 구드)을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는 짐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습니다. 연인을 잃은 상실감에 그는 자살을 생각합니다. 그는 하루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삶을 정리하는 조지에게 세상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테니스를 치는 사내들의 멋진 근육, 빠져들 것 같은 사람들의 눈매, 입술, 향수와 체취. 하지만, 짐이 없는 세상에 이런 것들은 무의미합니다. 그의 빈자리는 오랜 (여자)친구인 찰리(줄리안 무어)도,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마드리드에서 온 청년도 채울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정리한 순간, 조지는 짐과 처음 만난 술집에 갑니다. 그와 처음 만나 시작한 그곳. 바로 그 자리에 자신의 강의를 듣는 케니(니콜라스 홀트)가 정확히 도착합니다. 

<싱글맨>은 어떤 극적인 상황이나 사건이 없습니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조지의 상실감, 고통, 불안, 공포 그리고 추억을 따라갑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가 바라보는 삶.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삶을 따라갑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이 영화를 게이에 관한 영화가 아닌, 삶에 관한 영화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톰 포드는 게이에 관한 영화가 아닌, 남자를 사랑한 남자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이 영화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탐미적인 영상이 그렇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캐릭터에 집중을 합니다. 주인공인 콜린 퍼스부터, 니콜라스 홀트, 매튜 구드, 게다가 한 번 등장하는 조지의 동료 교수 역인 리 페이스까지. 그야말로 꽃미남 열전이라 할 정도로 아찔한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영화의 첫 부분, 잠에서 깨어난 조지가 말합니다. “현재는 단순히 현재가 아니다. ‘현재’는 잔인한 암시다. 어제에서 하루가 지난 때. 작년에서 한 해가 지난 때. '현재'에는 날짜가 붙는다. 지난 '현재'는 모두 과거가 된다.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조만간, 그날이 올 때까지.” 그런 그가 잠들어 있는 케니를 보며 이야기합니다. “순간을 즐기며 삶을 사니 그게 날 ‘현재’로 돌려놓았다. 이제야 모든 것은 의도한대로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조지의 말대로 그래도 삶을 지속됩니다. <싱글맨>은 ‘디자이너가 만든 영화’라는 화제성을 뛰어넘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원작 『싱글맨』의 덕이라 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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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 The God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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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개봉한지 40여년에 가까운 작품을 굳이 이곳에서까지 비평적인 접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게다가 전 비평가도 아니니까요). 저는 이 자리에서 <대부>에 대한 소소한 추억과 지난 18일 알라딘에서 초대한 시사회에서 스크린에서 본 <대부>에 대한 체험만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게 <대부>는 어떤 각인된 한 추억에 가깝습니다. 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적도 없었고, 비디오로도 빌려본 적도 없었으며, DVD를 구매하지도 않았습니다. 전 이 영화를 오직 브라운관에서만 봤었습니다. MBC에서 한 세 번 정도 봤던 것 같습니다. 아마 초등학생 때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같이 지내고 있는 막내 삼촌이 “정말 끝내주는 영화”라며 저를 강제로 보여주다시피 했었습니다. 

물론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죠. 초등생이 이해하기엔 너무나 방대한 인물들이 나왔으니까요. 게다가 생김새는 왜 그렇게 비슷하게 보이는지. 다들 양복을 입고 각진 얼굴에 눈을 부릅뜨며 이야기를 하는데, 미국엔 다 저런 사람들만 있는가보다 생각을 했었더랬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침대가 피투성이인 영화업자의 비명, 장남 소니(제임스 칸)이 벌집이 되는 장면, 대부 돈 비토 콜레오네(말론 브란도)가 과수원에서 쓰러지는 장면, 마이클(알 파치노)의 차가 폭발해 부인 아폴로니아(시모네타 스테파넬리)가 죽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세례식 장면과 학살 장면이 교차 편집된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 죽는 장면들이군요. ㅡ.ㅡ;;; 

아무리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부>는 초등학생이 보기에 지루한 영화였습니다. 초등학생의 세상은 <스타워즈>의 세상이었지 그런 재미없고 무서운 세상은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새벽 1시에야 끝나는 영화를 억지로 견뎌서 봐야한 반발심 때문에 전 <대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 <대부 3> 개봉이 전 세계적인 이슈를 불러일으켰지만, 전 그저 그랬습니다.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세상은 아직 괜찮은 곳이(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리고 거의 20여년 만에, 리마스터링한 <대부>를 다시 봤습니다. 아니, 처음 봤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전 정말 저 영화가 내가 봤던 그 영화가 맞나 싶었습니다. (세월의 힘을 견뎌낸 고전을) 다시 찍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복원력과 해상도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저를 압도했습니다. 말론 브란도의 씰룩 거리는 표정과 작은 몸짓은 저를 숨막히게 했고, 평범한 시민에서 패밀리의 대부로 변해가는 알 파치노의 모습에선 각성한 피터 파거의 모습을 본 것처럼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것을 ‘비즈니스’로 바라보는 냉철함과 심지어 가족마저 속이는 간교함 엄청난 영향력의 가부장주의와 폭력과 권력의 순환 혹은 내리물림. <대부>는 보는 내내 숨이 막힙니다. 등장인물만 해도 엄청난 이 거대한 대서사시를 코폴라는 마치 모든 장면이 다이너마이트인양 숨 쉴 틈 없이 직조합니다. 게다가 이후 거의 모든 느와르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을 고든 윌리스의 카메라와 니노 로타의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은 정말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대부>를 스크린에서 보는 것은 정말 다른 경험일 것입니다. 추억의 영화가 아니라,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일 것입니다. 이것은 이번 리마스터링을 제안한 스필버그의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말대로 절대 거절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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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5-2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대부1>은 확실히 본 기억이 나는데 2,3편은 봤는지가
분명하지가 않아요. 일정만 아니었으면 무조건 신청했을 텐데 못 봐서 아쉽더라구요.ㅠ

Tomek 2010-05-21 07:41   좋아요 0 | URL
다음주에 개봉하니까 꼭 보셔요. 저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새로운 영화였습니다. @.@
고맙습니다. ^.^;
 
-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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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여름날의 강가.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강가에서 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강가에서 떠내려 오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그 무언가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시체입니다. 카메라는 알 수 없는 시체를 계속 주시합니다. 그리고 옆에 뜨는 타이틀 <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여학생의 시(屍)로 시작해 주인공 미자(윤정희)의 시(詩)로 끝납니다. 

시(詩)는 많은 일반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문학 장르입니다. 소설이나 수필처럼 이야기를 풀어쓰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잔가지들을 제거한 언어의 정수만을 골라 시인이 바라본 세상 전반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시를 감상하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시인이 바라본 시각에 심정적으로 동의한다는 제스처입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써야하니까요. 김용탁 시인(김용택)이 술자리에서 이야기 한, “시가 죽어버린 시대, 시를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는 바로 그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소통이 부재한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시(詩)를 쓴다는 것은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see, watch)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것(look at)입니다. 김용탁 시인은 사과를 보여주며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사과를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렇게 보기도 하고, 그늘진 면은 어떤지, 얼마나 많은 햇살을 머금었는지 생각도 해보고, 한 입 베어 물어 먹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수많은 방법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우리 눈에 비치는 세상이 아닌, 그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65세, 아니 66세인 할머니 미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습니다. 치매라 알려진 그 병은 처음에는 명사를 잃어버리고 다음에는 동사를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최근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거의 원체험의 기억만 남는 병입니다. 갈수록 어린애가 되어 가는 것이죠. 세상의 운동성을 개념이라는 틀로 한정시킨 명사의 부재, 그리고 오랜 생활로 묻어온 생활의 때가 서서히 벗겨지면서 미자는 거의 날것 순수한 시각으로 지금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15세 소녀를 생각합니다. 미자는 순수함의 세계로 회귀해 순수한 아이들을 처음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순수함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은 나빠지고 있지만, 아직 윤리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윤리는 절대적인 윤리가 아닌, 아주 작은 범위의 윤리입니다. 여학생의 죽음을 둘러싼 학교 측의 윤리, 자식들의 잘못을 감싸주는 부모들의 윤리, 남은 자식을 키워야하는 극빈층 부모의 윤리가 있습니다. 이 윤리는 서로간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져 사건은 언뜻 잘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사건이 잘 ‘합의’된 날, 미자는 물어봅니다. “이제 정말 끝인가요?” 죽은 여자아이의 억울함은 해결되지 않고 합의란 틀로 덮어버렸는데, 도대체 무엇이 해결된 것일까요? 어찌됐든, 미자는 자신의 윤리를 실천합니다. 그녀는 보호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윤리는 진정한 윤리가 아닙니다. 그녀의 손자는 짐승이 아닌, 사랑스런 손자니까요. 그렇기에 미자는 더 큰 결단을 내립니다. 미자가 시를 배우지 않았다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자는 학교에 찾아가 사건이 벌어진 과학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미자는 죽은 소녀가 투신한 남한강 다리 위에 가 봅니다. 그녀가 떨어진 강가에 가서 그녀의 죽음을 바라봅니다. 소녀의 눈물같은 비에 흠뻑 젖은 미자는 간병인(이자 파출부)일을 하는 강 노인(김희라)의 “죽기 전 한 번 소원”을 들어줍니다. 소녀의 죽음을 바라본 그녀는 죽음의 절실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의아했지만, 동시에 인상적인 장면인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수강생들은 각자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은 아름다움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뒤섞여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을 복기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감정은 딱 나눠지지 않은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물며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복합적이죠.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세상의 이면을 바라봄과 동시에 그만큼 순수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창동 감독은 미자를 통해 역설하고 있습니다. 

예, 역설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메시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생각할 여지를 주기 보다는 가르칩니다. 그의 영화에서 종종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그가 우리의 불편한 점을 들추어낸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영화를 진행하는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가르침은 소중합니다. 그의 교훈은 지금 이 세상에서 정말로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메시지가 중시될수록 영화적인 진행은 그만큼 진부합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다 예상이 되니까요. 진지함 보다는 진부함.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진부함. 영화감상이 아닌 고등학교 윤리 수업을 보충시간을 포함해 연속 두 시간을 들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계속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고, 윤리 선생님의 역할을 그만큼 더 중요해질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의 수업은 다른 어설픈 선생님 수업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그리고 저도 계속 그의 수업을 들을 생각입니다.  

 

 

 

*덧붙임: 

영화의 오프닝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영화에서 시(詩)에 대한 이야기는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와 영화의 마지막 미자(와 희진)의 시낭송은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공기인형(空氣人形)>에서 노조미(배두나)의 시낭송과 비교해볼만합니다. 그러고보니 모두 2010년에 개봉한 영화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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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5-20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할 부분이 많은 리뷰입니다. 'Tomek'님이 메시지라 표현한 걸 저는 관념성이라 이해하고 싶은데요. <오아시스> 이후로 이창동의 관념성이 강화된 듯한 인상입니다. 자연스레 영화적 장치도 많아졌다는 생각이구요. 그 장치들을 고민하고 해석하다 보면 그게 영화를 보는 이들에겐 말씀하신 메시지 혹은 가르침으로 다가오는 것 같구요. 이창동의 초기작이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노력했다면 <오아시스> 후로는 이창동이 사건과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 많아진 것 같구요. 물론 그게 반가울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전자지만요.

Tomek 2010-05-20 11:19   좋아요 0 | URL
파고세운닥나무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오아시스> 이후로 영화적 '재미'가 그만큼 사라진 것이 아쉬워서 툴툴거린 것 같습니다. 진부했지만 그래도 경청할만한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래도 초기작들에서 보인 영화적 재미가 가끔 그립습니다. ^.^;
고맙습니다.

novio 2010-05-2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까 하고 고민했는데, 이 글을 읽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

Tomek 2010-05-23 10:17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흥행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극장에서 내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칸에서 상받아 좀 더 흥행했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

2010-05-21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3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