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요짐보 - Yojimbo the Bodyguar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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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用心棒)>를 보면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특히 <요짐보>는 그 정점이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느끼는 모든 설렘이 다 들어있습니다. 매력적인 주인공, 경계에서 위태롭게 움직이는 이야기, 악의 한복판에서 빛나는 휴머니즘, 그리고 장쾌한 액션! 이것만으로도 현대의 관객들이 열광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텐데, 구로사와 감독은 이 이야기에 자신만의 인장을 추가합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어느 이름 없는 무사(미후네 도시로, 영화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쿠와바타케 산주로[桑畑三十郎]라 밝히지만, 이는 '뽕나무밭'과 '서른 살'이라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가 한 마을에 들어갑니다. 이 마을은 비단과 유곽을 장악한 세이베이 패거리와, 술과 노름을 장악한 우시토라 패거리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마을은 이들 패거리의 싸움으로 매일 관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제대로 살지 않고 한탕을 위해 이들 패거리에 몸을 의탁하는 실정입니다. 이름 없는 무사는 양쪽 패거리의 욕심을 이용해 요짐보(보디가드)를 자청한 후, 각자의 세력을 약화시킵니다. 하지만, 우시토라 패거리에 똑똑하고 총을 쓰는 우노스케(나카다이 타츠야)가 돌아오면서, 그리고 방관만 하던 이름 없는 무사가 다른 사람의 아내이자 어머니를 갈취한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면서, 팽팽하던 마을의 세력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요짐보>의 세계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완전히 미쳐버린 세계입니다. 마을엔 항상 비가 내리거나 마치 황무지인양 강한 돌풍이 붑니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제대로 살기 보다는 한탕을 위해 삽니다. 어른들은 이런 젊은이들을 향해 한숨짓거나 혹은 세이베이가 아들에게 하는 말처럼, 더 독하게 만들 뿐입니다. "도둑질이나 살인을 하지 않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정신 바짝 차려!" 이름 없는 무사는 이런 혼란스런 세상에 들어와서, 이들 악의 세력을 없애버릴 생각을 합니다. 그는 (이미 충만한, 하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심을 부추겨 세력싸움으로 서로 살인을 저지르게 합니다. 아니, 살인이라기보다는 '제거'라고 하는 표현이 낫겠죠. 그는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친놈들을 서로 자멸하게 만듭니다. 큰 싸움을 벌려놓고 망루에 올라가 낄낄거리며 세이베이와 우시토라 두 패거리의 싸움을 지켜보는 모습은 영락없는 '죽음의 신(死神)'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조롱하며 방관하던 이름 없는 무사가 이들의 세력싸움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계기는 인간에 관한 일입니다. 우시토라 패거리는 자신의 오야붕(親分)이 원하는 여자를 바치는데, 그녀는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입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 그저 눈물만 흘리는 이들 부자를 보고 이름 없는 무사는 칼을 빼들고 여인을 구하고, 이 가족을 다른 곳으로 보냅니다. 이런 결정은 그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것을 알지만, 그는 그 위험을 감수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쳤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이 되는 인륜은 저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짐보>에서 액션의 쾌감은 대단합니다. 실제 칼과 칼이 부딪히는 장면도 대단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투에 다다르기까지의 '무드'입니다. 악(惡)만 남은 세상, 미친 듯이 불어대는 황량한 바람, 서로 칼을 들고 긴장하는 모습. 정말이지 시간이 멈추어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한없이 늘이고만 싶은 영화의 시간! 구로사와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시네마틱 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리즈시절, 이 영화를 완전히 베껴 <황야의 무법자>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요짐보>가 구로사와 감독이 그토록 존경했던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의 설정을 가져온 것이긴 했지만, 그는 분명 창조적으로 변형했습니다. 하지만, <요짐보> 이후의 서부극(!)은 그저 이 영화를 답습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만큼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을 만큼 이 영화가 매력적이라는 방증이겠지요.  

영화의 마지막, 모든 악을 깡그리 처단하는 이름 없는 무사는 영화 오프닝에서 본, 우시토라에게 붙겠다던 마을 청년을 봅니다. 이름 없는 무사는 그 청년의 부모에게서 물을 한 모금 얻어 마셨지요. 이름 없는 무사는 그 청년을 죽이는 대신 호통을 칩니다. "제대로 살아갈 생각을 해!" 그 호통은 그가 부모에게 전하는 물 값이자, 구로사와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너무 진부한 메시지라고요?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살아라!" 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진심으로 이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화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덧붙임:  

믹 잭슨 감독의 <보디가드>에서 보디가드 역을 맡은 케빈 코스트너가 극장에서 <요짐보>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난, 이 영화를 서른 번도 넘게 봤어요." 산주로(三十郎)에 대한 멋진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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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7-2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보고 싶다하면 막 찾아서 대령하는 그런 남친이 가지고 싶어졌어요ㅋ

Tomek 2010-07-29 07:23   좋아요 0 | URL
꼭 찾으실 거예요 :D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 - Three Bad Men In A Hidden Fortr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隠し砦の三悪人)>은 무시무시한 활극의 쾌감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이 액션의 쾌감의 잔상만이 가슴에 가득 남았었는데, 이번에 감상했을 때는 다른 면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여전히) 미친 세상에 살아남은 인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두 농부 마타시치(후지와라 카마타리)와 타혜(치아키 미노루)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 신세라 괴롭기만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금붙이가 들어간 나뭇가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들은 금을 찾는데 혈안이 됩니다. 그 와중에 마카베 로쿠로타(미후네 도시로)라는 이상한 사내를 만나 같이 하야카와까지 금을 옮기게 됩니다. 마카베는 이번 전쟁에서 망한 아키즈키의 장군이었으며 그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왕족 유키 공주(우에하라 미사)를 동맹을 맺은 하야카와로 안전하게 데려가려는 목적으로 이들 두 농부를 이용합니다. 이로써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남자와 한 여자의 목숨을 건 여행이 시작됩니다.

영화는 두 계급의 생태를 이분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타시치와 타혜로 대변되는 농민 계급은 탐욕스럽고 천박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살아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습니다. 반면, 마카베 로쿠로타로 대변되는 지배 계급은 고결하고 명예롭습니다. 이들은 개인의 삶 보다는 더 높은 이상(국가나 왕족 같은)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피붙이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합니다. 이처럼 정 반대되는 성향을 지닌 국가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공주를 호위할리 만무하지요. 가는 곳마다 사건이 벌어지고 위기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들 계급이 서로를 보완해주면서 위기를 탈출해가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입니다. 농부들의 탐욕은 이들을 위기에 빠뜨렸지만, 마카베는 농부들의 탐욕스러움을 이용해서 적진을 빠져나가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후에 이들을 잡기 위해 병사들을 파견했을 때, 마카베는 자신의 무공을 이용해 공주를 보호하지요.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서로 보충해나가는 모습. 이것은 전형적인 유교의 시스템입니다. 군말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는 모습.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이 영화에서 국가관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관심은 '인간'이니까요.  

이 여행에서 인간을 경험하는 것은 유키 공주입니다. 그녀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갇힌 성 안에서 백성, 인간들을 개념으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그녀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봅니다. 인간의 추함, 천박함, 탐욕, 그리고 삶의 의지와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녀 머릿속에서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인간의 실체를 느꼈습니다. 긍정적인 모습의 인간의 모습 뿐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추함까지도 인간의 한 모습이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인간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영화의 절정, 불놀이 축제에서 그녀가 보았던, 모든 것을 태우고 새로 시작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보고 그녀는 재건할 국가의 상을 그렸습니다.  

이렇게만 글을 쓰니 영화가 심각해 보이는 것 같지만,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놀라운 활극의 연속으로 가득합니다. 우선 화면비.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최초 시네마스코프 비율입니다. 2.35:1의 기나긴 횡비를 구로사와 감독은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합니다. 특히나 수평과 수직을 이용한 대각선식 액션은 영화의 너비를 깊게 만드는 황홀감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액션! 마카베가 말을 타고 결투를 벌이는 모습은 정말로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가 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스크린에서 경험해야하는 영화입니다. 작은 화면에서, 그리고 양 옆이 다 잘린 화면으로 본다면, 그저 줄거리 정도는, 그리고 조지 루카스가 이 영화에서 <스타워즈>의 영감을 받았는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압도적인 중량감은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 덧붙임:  

한국 시네마데크에서는 상영이 끝났지만, 부산 시네마데크와 필름포럼에서 상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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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 The Phantom of the Oper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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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영화는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매체입니다. 같은 점이라면 연극과 영화는 시나리오와 배우,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감독과 공연을 보는 관객이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연극의 공연은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 있는 반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은 가능한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조각의 예술입니다. 마치 퀼트를 꿰매듯 여러 쇼트를 이어 붙이기 때문에, 영화는 장소의 제한이 없습니다. 그것을 상영할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한 <오페라의 유령>은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 아니라,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동명 뮤지컬을 필름으로 옮긴 경우입니다. 조엘 슈마허는 이 작품을 영화로 옮기면서 어떤 야심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마치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무대를 카메라에 옮길 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뮤지컬 넘버 때문이었죠. 문제는 이 뮤지컬이 순전히 노래로만 연결됐다는 점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중요한 순간에 곡이 나오는 게 아니라, <에비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극을 이끌어갑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이 관람했다는 <오페라의 유령>은 이미 뮤지컬 자체가 원본이 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뮤지컬 넘버를 수정한다는 일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때문에 영화는 아주 지루한 버전의 뮤지컬이 되었습니다. 뮤지컬은 고정된 자리에 앉아 다양한 시선의 편집으로 극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개입이 들어갑니다. 이 경우 영화는 자신의 장점을 잃어버립니다. 제 아무리 에미 로섬과 제라드 버틀러가 공연을 한다 하더라도, 이 점은 상쇄시키지 못합니다. 극의 호흡도 뮤지컬 넘버를 무리하게 쫓아가다보니 너무나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틴이 유령의 가면을 벗기는 장면은 '영화적으로' 찍어야 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뮤지컬 넘버를 포기 못하는 바람에, 그 장면은 정말 코미디처럼 찍혔습니다. 매체가 바뀌면 창조적 변형이 있어야 하는데, <오페라의 유령>엔 그런 장면이 없습니다.

 

 

원작의 관점에서 본다면, 1925년 작 <오페라의 유령>과 마찬가지로 흥미롭고 스피디하게 각색했습니다. 불필요한 인물은 없애거나 한 명의 인물로 합쳤으며, 현재를 나타내는 흑백화면으로 막(act)을 나눈 것도 참신했습니다. 하지만, 에릭(유령)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것은 좀 불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영화적인 장면이지만, <엘리펀트맨>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으니까요.  

2004년 작(作) <오페라의 유령>은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입니다. 좀 더 새로운 영화가 나올 수도 있었지만, 할리우드는 너무나 안전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10만원에 가까운 티켓 가격보다는 7천원 티켓 값이 저렴하기는 하죠. 하지만 가격이 떨어진 만큼, 뮤지컬이 갖는 정수를 영화는 담지 못했습니다. 분명 영화가 이야기를 담을 우위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반성할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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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2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게 이거였습니다.
나름 괜찮았던 거 같은데 토멕님 말씀 들으니 그도 그렇군요. 흠...

Tomek 2010-07-24 10:24   좋아요 0 | URL
뮤지컬을 보지 않았으면 괜찮은 영화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느낌이 달라서요.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감독의 역량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원작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에미 로섬이 연기한 크리스틴은 아름다웠지만... ㅠㅠ
 
오페라의 유령 (1943) - 할인행사
아서 루빈 감독, 수잔나 포스터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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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루빈 감독의 1943년 작(作) <오페라의 유령>은 총천연색(Technicolor) 영화이자 토키 영화입니다. 1925년에 만들어진 <오페라의 유령>에서 이미 확인했듯이,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활자보다는 시각적 이미지에 더 어울립니다. 1925년 작 <오페라의 유령>은 이 점을 알고 있었고, 원작보다 더 탄탄한 이야기로 가공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1925년 작 <오페라의 유령>이 무성영화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크리스틴 다에의 '천상의 목소리'가 어떤지, 유령이 연주하는 불세출의 곡 「위풍당당한 돈 주앙」이 어떤지 상상으로만 떠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토키가 상용화되면서, 우리는 이제 영화에서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를 볼 수 있고, 환상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이런 영화적 이벤트에 적합한 소재입니다. 할리우드가 이런 기막힌 소재를 가만 둘리 없지요.  

그런데 결과물이 참으로 난감합니다. 원작을 그대로 각색해도 좋을 이야기를 할리우드는 이상한 방식으로 각색했습니다. 원작 『오페라의 유령』은 미스터리의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1943년 작 <오페라의 유령>은 원작의 미스터리를 거세했습니다. 영화는 초반 30분간 오페라 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 에릭 끌로댕(클로드 레인스)이 오페라 극장 지하에 사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그는 여배우 크리스틴 드보아(수잔나 포스터)를 사랑하고 수년간 지원합니다. 크리스틴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리고 크리스틴은 파리 경시청 경감 라울(에드가 베리어)과 오페라 극장 단원 아나톨(넬슨 에디) 사이에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느 날 공연에서의 실수로 에릭은 오페라 극장에서 쫓겨나고, (크리스틴의 레슨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그는 자신의 협주곡을 출판사에 팔려고 하지만, 사기를 당합니다. 그는 충동적으로 살인을 하지만, 상처를 입습니다. 그는 오페라 극장의 지하로 내려가 생활합니다. 그리고 크리스틴을 스타로 만들 계획을 짭니다.   





 

이렇게 미스터리 구조를 포기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볼거리'입니다. 영화에는 3번의 오페라 공연 장면이 나오는데, 오히려 이 영화는 오페라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오페라 공연에 집착합니다. 화려한 볼거리와 음악은 정말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만큼 뛰어나지만, 이 영화는 원작을 너무나 오독하고 있습니다(원작을 그대로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성(姓)이 모두 바뀌어 있습니다).   





 

원작의 흥취를 버리고 남은 것은 유치한 삼각관계 로맨틱 코미디와 후반부의 어드벤처 식 활극입니다. 할리우드는 이 비통한 멜로를 유치한 로맨틱 코믹 어드벤처로 만들었습니다. 영화사(映畵史)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인지는 몰라도 제게는 악몽인 작품입니다. 



 

 

*덧붙임: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을 만들 때 1925년 작 <오페라의 유령>뿐 아니라, 이 작품에서도 중요한 요소를 가져왔습니다. 원작에서 유령의 얼굴은 괴물에 가까운 반면, 뮤지컬에서는 이 영화에서처럼 얼굴의 반만 흉칙하다는 설정이 바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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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 Phantom of the Oper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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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작, <오페라의 유령>은 흑백영화이자 무성영화입니다. 영화는 발명품으로 시작했고, 그 자신이 수많은 테크놀로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옛날 영화를 보는 것은 (지금 영화의 기술력과 비교해서) 촌스러움과 지루함을 감안해야 합니다. 더구나 무성영화는 대사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우들은 과장된 연기와 표정으로 극을 이끌어 갈 수 밖에 없지요. 관객은 그저 진득하니 눈으로만 영화를 봐야 합니다. 그렇기에 감독은 잔재주를 피울 수 없지요. 감독은 우직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책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오페라의 유령』의 이야기는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음모, 공포, 서스펜스, 사랑 등 거의 모든 장르가 담겨있습니다. 소설은 이 매력적인 소재를 잘 직조하지 못한 반면, 영화는 이 이야기를 굉장한 볼거리를 담아 진행합니다. 늘어졌던 원작의 이야기는 더욱 탄탄해진 것 또한 장점으로 다가옵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는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실제로 유령을 봤다는 직원이나 단원들도 상당수 존재하지요. 하지만 새로운 극장주는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어느 날 오페라 극장의 프리마돈나 카를로타는 이상한 편지를 받습니다. 주연 자리를 크리스틴 다에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큰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내용이죠. 카를로타는 이 편지를 무시하지만, 그 저주는 현실이 되고 극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결국 크리스틴 다에가 주인공을 차지하고 화려한 데뷔를 합니다. 실은 오페라의 유령이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크리스틴을 좋아하는 라울 자작 때문에 크리스틴은 갈등을 합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오페라의 유령을 속이고 라울에게 돌아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안 유령은 엄청난 복수를 준비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엄청난 볼거리로 가득합니다. 거대한 오페라 극장의 위용과 그 안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무대는 스펙터클(spectacle)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1막의 클라이맥스라 부를 수 있는 샹들리에도 말 할 것 없고, 극장 지하의 유령의 거처 또한 화려한 볼거리를 수놓습니다. 하지만,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오페라의 유령, 에릭의 모습입니다. 소설에서 묘사한 해골에 가까운 모습의 끔찍한 모습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백미입니다. 물론 어느 판본의 영화를 보더라도 아름다운 크리스틴 다에도 빼놓을 수 없지요, 이 영화에서는 매리 펠빈(Mary Philbin)이 크리스틴 역을 맡았습니다. 그녀는 세월이 흘러도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새겼습니다.  









제가 본 판본은 오리지널 원본이 아니라, 1930년 사운드를 입힌 인터내셔널 판본입니다. 필름엔 여러 색과 필터가 들어가 있으며, 특히 중간에 가면무도회 장면에서는 일부 칼라로도 나옵니다. 하지만 가장 특별했던 것은 새로 만들어진 음악이었습니다. 이 음악은 <오페라의 유령> 영상에 맞춰 만들어졌는데, 어찌나 잘 맞아떨어지던지 무성영화가 아닌 유성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성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이지 새로운 경험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문법과 지금 영화의 문법이 워낙에 다르기 때문에 ‘보는 방법’을 따로 배우거나 익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섣부르게 다가가면 "무성영화는 지루한 영화"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 경우는 무식하게도 그냥 부딪힌 경우였습니다. 그리피스 감독의 <국가의 탄생>이 첫 무성영화였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지요. 고정된 카메라와 과장된 연기와 드문드문 등장하는 자막, 게다가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은 저를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 왜 이 영화가 명예와 불명예로 점철된 영화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무성영화를 접하는 게 그리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왜 이 영화들이 고전 대접을 받는지 몸소 느낄 수 있게 되었지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무성영화를 처음 접하고 싶지만,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야할지 망설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전 <오페라의 유령>으로 시작하시라고 감히 권해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라는 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맛볼 수 있는 전체요리로서 충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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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영화죠? 저도 최근에 봤는데, 압도되었습니다.
43년도 Claude Rains 주연의 영화도 꽤 좋았는데,
이 무성영화를 보고 나니 갑자기 비교되더군요.^^
완벽하다고 해도 될 영화였습니다.
저도 무성영화를 좋아합니다. 특히 버스터 키튼의 희극영화요.

Tomek 2010-07-19 10:50   좋아요 0 | URL
정말 굉장한 영화죠! 어쩜 이렇게 놀라울 수 있는지!
1943년 작은 만듦새는 좀 나아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실망인 작품이었어요. 유령의 탄생과정 따위는 정말로 궁금하지 않은데! ㅠㅠ

stella.K 2010-07-1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건 무성이 아닌데 이게 몇번 만들어졌나 봅니다.
너무 오래된 영화라 괜찮을까 싶은데 안 그런가 봅니다. 흠...

Tomek 2010-07-19 10:53   좋아요 0 | URL
1925년, 1943년, 1964년, 1989년, 1998년, 2004년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전 1964, 1998년 작품 빼고 다 본 것 같습니다.
영화 재미있으니 꼭 한 번 보셔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