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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여왕 폐하 대작전 UE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피터 R. 헌트 감독, 조지 래젠비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피터 헌트 감독의 6번 째 007시리즈인 <여왕 폐하 대작전>은 정말로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보통 프랜차이즈 시리즈에서 캐릭터의 주인공이 바뀌면, 보통 그 시리즈는 새로 시작하기 마련인데, <여왕 폐하 대작전>은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가 숀 코너리에서 조지 레전비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5편의 시리즈의 연속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기이한 영화다. 이렇게 시침 뚝 떼는 영화 전통은 종종 홍콩 영화에서 발견되곤 하지만, 그래도 주연 배우가 바뀌면 판을 새로 짜는 것이 도의건만, <여왕 폐하 대작전>은 그렇지 않다.
이 시리즈의 패착은 제작진이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숀 코너리가 5편의 영화에서 보여준 제임스 본드 캐릭터는 여유와 유머 그리고 능글맞음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대중은 그렇게 학습되어 왔다. 하지만, 숀 코너리가 시리즈에서 하차를 결정하자, 제작진은 이전과는 다른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구축했다. 조지 레전비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는 무엇보다도 진지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무모할 정도로 맹목적이고 집착한다. 유머가 풍부하고 여유로우며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영국 신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이런 하드 보일드한 본드는 너무나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조지 레전비의 계보는 티모시 달튼과 대니얼 크레이그로 이어지지만, 숀 코너리 - 로저 무어 - 피어스 브로스넌으로 이어지는 영국 신사(혹은 바람둥이)적인 이미지의 계보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이전 다섯편의 007 시리즈의 특징은 '아기자기한 액션'에 있다. 본드는 항상 위험에 빠지지만, 그는 Q가 개발한 신형 무기를 사용해서 기발하게 탈출한다. 하지만 <여왕 폐하 대작전>에는 그렇게 제임스 본드를 규정할만한 것이 없다. 엄청난 액션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007 시리즈를 보면서 기대할만한 요소가 없다. 그래서 재미는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든다.
가장 큰 패착은 영화의 악당을 블로펠드로 설정한 것이다. 블로펠드는 범죄 조직 스펙터(SPECTRE)의 수장으로 <위기 일발>과 <썬더볼>에서는 목소리만 등장했고, <두 번 산다>에서 처음 얼굴을 드러냈다. 항상 악당들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이 무시무시한 존재가 갑자기 손수 악당짓을 하니 뭔가 모르게 굉장히 위화감이 들었다. 마치 대기업 CEO가 갑자기 구멍 가게를 경영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뭐 이런 패착은 원작 소설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물론 이것은 <여왕 폐하 대작전>을 007 시리즈의 연속성에서 보았을 때 느끼는 생각들이다. 이 영화를 이전의 숀 코너리가 출연한 5편의 작품들을 무시하고 독립적인 작품으로 여긴다면, 정말 흥미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실패로, 제작사인 이온 프로덕션은 모험 대신 안전을 택했고, 007 시리즈는 다시 초기의 능글맞은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갔으며, 조지 레전비는 2대 제임스 본드이자, 단 한 편의 007영화에 출연한 비운의 배우가 됐다. 이후 하드 보일드 제임스 본드를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20여 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