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나잇 스탠드 - One Night Stan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다소 도발적인 제목과 포스터를 앞세운 영화 <원 나잇 스탠드>는 서울독립영화제와 KT & G 상상마당의 후원으로 기획된 독립영화입니다.  단, 보다 많은 감독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장편이 아닌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로 만들어졌지요. 이와 비슷한 기획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매년 기획하고 있는 '디지털 3인3색' 프로젝트와 거의 흡사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전주국제영화제는 '편당 30분 내외'라는 형식적인 틀만 제시하고, 주제나 내용은 간섭하지 않는 반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주관한 <원 나잇 스탠드>는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는 점입니다.  

   이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는 민감한 주제입니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모호한 바로미터이기도 하지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세 명의 감독들은 이 쉽지 않은 주제를 사용해서 자신만의 이야기까지 풀어내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일타쌍피'의 부담감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전체적인 감상을 이야기한다면, 에로티시즘 면에서는 '별로'입니다. 전혀 충격적이지 않고, 도발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에로영화 특유의 '달뜨고 끈적끈적한 분위기'조차 없습니다. 제가 '섹시하다'고 느낀 장면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어서 문을 여는 장면',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최희진 씨가「코끼리아저씨」노래를 부르는 장면',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비누칠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직접적인 정사 장면보다는 이런 은유적인 장면에서 감흥을 느낀 것은, '영화적 표현의 뛰어남'이라기보다는, 이들이 정사장면 연출에 꽤 미숙하거나,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직접적인 섹스가 아니라, '성(性)을 경유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홍보가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 포스터만 보면, 꽤 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애초 봉만대 감독처럼 단 한가지의 목표로 영화를 만들던가("내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들이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해피 엔드>와 같은 파격적인 장면이라도 들어있던가 해야 할 텐데,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된 것 같습니다. 아니, 영화적인 완성도로 본다면 다 적절한 정사씬에, 적절한 노출이 적재적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마케팅이죠. '선정성'이란 홍보와 영화 제목이 영화가 받아야 할 평가보다 더 낮게 받게 할 것입니다.   

 

   민용근 감독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스토커 이야기입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주승)은 오래 전부터 한 여학생(민세연)을 짝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눈이 조금씩 멀어져 가고, 결국엔 장님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장님이 된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학생의 집 앞에서 기다리며, 그녀의 일상을 (청진기로) 듣고, 그녀의 쓰레기를 가져와 스타킹을 머리에 써보기도 하고, 그녀의 생리대 냄새를 맡으며 그녀를 느낍니다. 저한텐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녀 앞에 나서지는 못하는 자책감과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느끼고 싶어 하는 저 애절한 몸부림! 3자가 볼 때는 더러운 행위이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다가가고 싶은 애절함입니다. 이런 그를 관찰하는 또 다른 여인(장리우)이 있습니다. 그녀는 큰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며, 집안에서도 벗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 빌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선지, 결혼을 앞둔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헤어지자는 통보를 하고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 역시 아픔을 가진 사람입니다. 선글라스녀는 소년을 자기 집에 데려오고 그들이 서로 같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청년은 그녀의 선글라스를 벗기고 얼굴을 만지며 이야기합니다. "닮았어요." 그가 닮았다고 얘기하는 대상은, 그가 쫓아다닌 그녀와 닮았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하는 아픔을 간직한 자신과 닮았다는 것일까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성장영화입니다. 눈 먼 소년은 자신이 눈을 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시력을 잃어가던 때 사랑하는 여인을 쳐다본 모습입니다. 아마도 소년은 자신이 장님이 된다면, 그 기억마저 잃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처절하게 그녀를 기억하려고 애썼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같은 아픔을 지닌, 선글라스녀를 만나게 되면서, 소년은 성장합니다. 자신이 장님이라는 것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소년은 여인의 선글라스를 끼고, 폴대를 짚으며 집으로 갑니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은 추억을 접고 현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참으로 참혹합니다. 

 

   이유림 감독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꽤 난해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시사회에서도 가장 ‘적대적’인 분위기를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 봤을 때, 너무나 자의식이 충만한 불친절한 작품이라 생각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변호사인 남편(정만식)은 오랜만에 부인(최희진)과 산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아내와 잠자리를 가지려 하지만, 아내는 거부를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가 사라지고, 남편은 아내를 찾으러 다닙니다. 아내를 찾으면서, 남편은 아내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의 주위엔 계속『마담 보바리』책이 나타납니다. 남편은 점점 아내가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를 보면서 즉각적으로 떠올린 감독은 ‘데이빗 린치’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너무나 전형적인 데이빗 린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두 개의 자아를 가진 여인, 길을 잃은 남자. <로스트 하이웨이>의 로컬라이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너무나 노골적입니다. 이 뫼비우스의 띠는 영화의 결말에도 이어집니다. 남편의 꿈에서 이어져 아내의 꿈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더욱 더 오리무중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있는데, 결말이 새로운 시작이 되니 답답하지요. 이 난해한 영화의 열쇠는『마담 보바리』입니다. 영화 처음 남편이 든 책은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나온 영문 버전입니다.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 작가가 쓴 책을 영역한 책, 그 위에 아내가 한글로 일기를 적습니다. 언어가 다른 언어로 번역 될수록 원래의 의미는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영화에서 남편 앞에 계속 나타나는 『마담 보바리』는 ‘프랑스어 ⇒ 영어 ⇒ 한글’ 이렇게 세 개의 언어를 거쳐 나타납니다.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간자들에게 이야기를 듣습니다. 남편에게 있어 아내는 점점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것은 아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꾼 꿈이 결국 아내가 꾼 꿈이 되지만, 그들은 그 난해한 꿈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꿈을 매개로 이야기를 한 셈이니까요. 남과 여, 부부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의 골을 이렇게 흥미롭게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장훈 감독의 세 번째 에피소드는 ‘게이 포비아’에 관한 내용입니다. 코미디 장르이며, 시사회 중, 관객들에게 가장 열렬한 반응을 이끈 영화입니다. 저명한 영화 평론가 로메르(달시 파켓,『씨네 21』에 글을 송고하는 바로 그 기자!)는 부천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가 한국에 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곳이 있으니, 바로 한국의 목욕탕입니다. 외국에선 느낄 수 없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저릿저릿함의 매력에 푹 빠진 셈이지요. 그는 진영(이수현)이라는 단골 때밀이를 알고 있습니다. 진영도 매년 자신을 찾아오는 로메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요. 1년 만에 로메르를 만난 진영은 반가운 마음에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합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진영과 여자친구 소희(이지연)와 300일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본의 아니게 같이 데이트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의외로 로메르와 죽이 잘 맞는 소희를 보며 진영은 조금씩 불안해하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소희와 로메르가 같이 잠을 자는 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로메르는 답례로 부천국제영화제에 진영과 소희를 초대합니다. 하지만 불안한 진영은 소희를 떼어놓고 홀로 로메르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진영은 영화제 숙소에서 로메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진영의 망상이 ‘격렬하게’ 시작됩니다. 

   장훈 감독의 세 번째 에피소드는 한국의 때밀이와 안마라는 독특한 소재에서 에로티시즘을탐구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외국인과 한국인,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사랑과 우정이라는 독특한 대비로 진행됩니다. 때로는 문화적 차이, 때로는 성 정체성에서 벌어지는 충돌이 웃음을 넘어서 박장대소를 일으키게 합니다. 내레이션(독립영화 지킴이 권해효 씨가 맡았습니다)의 적극적인 활용은 짧은 러닝타임의 한계와 비전문배우의 약간은 어색한 연기를 감싸 안는 힘을 발휘합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여러 에피소드가 ‘게이’와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로 재미있게 맞물렸습니다. 앞의 두 에피소드들이 조금은 시간이 필요한 생각을 요한다면, 이 에피소드는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냅니다. 모든 장면이 다이너마이트인양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집니다. 아마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본전 생각이 나지는 않을 걸출한 단편입니다. 

 

   조금 쓴소리도 했지만, <원 나잇 스탠드>는 이제까지 알려진 실험영화와 같은 독립영화가 아닌, 발랄하고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선정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의 같은 주제로 영화를 만든 기성 감독들의 <오감도>보다는 훨씬 좋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선정성만 의식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 꽤 볼만합니다.


댓글(4) 먼댓글(1)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한국영화 살리기 위해 경기도가 나섰다
    from 달콤한 나의 도시 경기도 2010-06-15 18:16 
    지난번 경기공연영상위원회 조재현 위원장을 만났을 때(ggholic.tistory.com/1154) 그가 한 말 중 유난히 인상깊은 말이 있습니다. 경기공연영상위원회가 워낙 다른 지역 영상위원회에 비해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그런 경기영상위를 두고 "편의점에서 비빔밥 파는 꼴"이라고 설명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경기영상위의 다양한 업적들을 살펴보며 "아... 정말 다양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마치 양푼비빔밥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들처럼..
 
 
novio 2010-05-02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칼로 썰듯 하시는 예리한 분석이 여전하시네요. 오랜만에 왔는데 글의 매력은 결코 달리는 말 아래로 내려올 생각을 안 하시네요^^. 글 즐감했고, 자주 글을 올려 주세요^^

Tomek 2010-05-05 08:22   좋아요 0 | URL
알라딘 불통 때 며칠 워드에 글을 써버릇했더니 이제는 워드에 쓰는 게 편하더군요. 그러다보니 블로그를 거의 방치했어요. 과분한 칭찬 고맙습니다.

달나시 2010-06-15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달콤시민 입니다 ^^
와~ 정말 novio님의 말씀처럼 너무 멋드러지게 글을 쓰셔서 꼭 영화를 봐야만 할것 같아요
우리 한국영화가 많이 발전하고 있는데~ 흥행만 중요시하는 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도 많이
사랑을 받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글 많이많이 구경하고 갑니다~ ^^
더불어, '경기 영상전문펀드' 관련된 트랙백 하나 살포시 엮고 가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ㅇ^

Tomek 2010-06-16 07:46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
 
시체를 둘러싼 욕망 그리고 파멸
블랙 달리아 - The Black Dahli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블랙 달리아>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실패작입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해도 이러한 평가는 불가피합니다. 물론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기는 합니다. 이 영화가 정말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의도한 최종 편집본인지, 아니면 스튜디오의 강권에 밀려 편집한 버전인지 알 수 없습니다. 가편집본을 보고 원작자인 제임스 엘로이가 만족을 표했다지만, 영화의 러닝타임이 121분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최종 편집이 스튜디오의 강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한 것과 크레딧에 감독의 이름을 빼지 않은점으로 미루어봐서 감독의 최종 편집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사후평가는 의미없는 일이지요. 영화감독은 언제나 결과물로만 평가받는 존재니까요. 

   영화의 화자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드와이트 버키 블레이커트(조쉬 하트넷)입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잔혹하고, 끈적거리며, 복잡하기까지 합니다. 주인공 버키와 리 블랜처트(아론 에크하트)가 파트너가 된 경위부터, 리의 여자친구 케이(스칼렛 요한슨)의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흑인 유아 강간범 주니어 내시에 대한 사건을 수사하던 중 두동강이 난 여자 시체가 발견되는 범죄- 일명 '블랙 달리아' 사건 -가 발생합니다. 리는 (15살에 납치되어 강간당하고 토막살해된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 사건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버키는 수사를 하던 중 죽은 여자와 '거의 같은' 모습을 한 매들린(힐러리 스웽크)을 발견하고, 그녀의 혐의를 숨겨주고 그녀와 섹스를 합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손을 놓고 있었던 주니어 내시가 범죄를 저지르고, 리는 케이와 관련된 일로 죽고 '블랙 달리아' 사건은 지지부진해집니다. 

  

 

   '사건은 왜 이리 많이 벌어지고, 등장인물들은 왜 이리 많은가'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기본 설정은 원작에서 가져온 것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소설은 더 많은 사건과 더 많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게다가 한 번 스쳐지나는 기능적인 사건/인물이 아니라,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연관이 있지요. 골치아픈 구성입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수많은 가지들을 다 쳐내고, 주인공 세 사람과 희생자 엘리자베스 쇼트, 그리고 용의자 매들린의 이야기에 중점을 둡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지를 쳐도, 워낙에 방대한 사건이라 이야기는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이 영화에 관심이 간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을 겁니다. "죽은 여자와 닮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존경하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Vertigo)>을 떠오르게 하는 설정이죠.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블랙 달리아>를 자신만의 <현기증>으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버키가 엘리자베스 쇼트에 서서히 빠지기 시작하는 장면은 원작과는 다르게 보여줍니다. 버키는 엘리자베스의 오디션 필름을 보면서 서서히 그녀에게 빠지기 시작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영화 속의 등장인물에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다가 엘리자베스를 흉내낸 매들린을 만나게 되고, 그는 매들린에게 빠지게 됩니다. 문제는, 엘리자베스와 매들린이 전혀 닮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버키가 매들린에게 빠진다는 설정이 심정적으로 다가가지 못합니다. 너무 억지스러워요. 

   아무리 실패작이라 하더라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답게 '명장면'이 있습니다. 전작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 명장면들은 철저하게 인물의 심리나 사건 전개에 복속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버키와 케이의 대화와, 매들린이 버키에게 가족들을 소개시키는 장면은 롱테이크로 찍었는데,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비정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주니어 내시 건으로 잠복하고 있는 버키와 리의 공간과 '블랙 달리아' 시체가 발견된 공간을 한 번에 보여주는 롱테이크 역시, 이 두 사건이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가장 명장면이라면, 리가 죽는 장면을 들 수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 불과 얼음, 아버지와 딸, 친구와 연인, 삶과 죽음, 시간(屍姦)과 근친상간이 한데 어우러진 기막힌 씬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을 한 번에 느끼기 쉽지 않다는 점이지요. 영화 자체로 느끼기에도 힘들 뿐더러, 반볷해서 감상했을 때, 그리고 적극적으로 영화에 뛰어들었을 때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영화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도저도 아닌 범작이 될 뿐이지요.  

 

 

   영화는 너무 많은 설명을 제거했습니다. 리가 왜 그렇게 블랙 달리아 사건에 집착하는지, 왜 그렇게 신경증적인 모습이 되었는지, 버키는 왜 매들린이 엘리자베스와 닮았다고 생각하는지, 최소한 이 정도의 물음표만 제거했더라도 영화는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블랙 달리아'사건은 그 자체로 맥거핀입니다. 영화의 캐릭터들은 이 끔찍한 사건을 수사하지만, 모두들 자신의 욕망을 해결하는데 쓰지요. '블랙 달리아'를 이용해 돈을 요구하고, 섹스도 하며, 질투와 살인 등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몰락에 관한 드라마지요. 하지만, '블랙 달리아' 사건은 너무 강렬한 사건이지요. 이 끔찍한 사건은 영화 전체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다르게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관객이 궁금한 것은 "누가 어떻게 죽였냐"이지, "왜 그녀는 죽었는가"가 아니기 때문이죠. 

 

   <블랙 달리아>는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평범한 감독의 걸작보다 비범한 감독의 실패작이 더 흥미롭다는 속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영화입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그렇기에 원래 붙어있던 살의 모양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 나온 남자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다세포 소녀>와 수위를 다투는 악명 높은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연출한 이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집 나온 남자들>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유쾌합니다. 물론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마냥 킬킬거리며 웃을 수 없는, 무언가 불편한 것이 있었듯이, <집 나온 남자들> 역시 마냥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아쉬운 점은, <여교수...>에서는 그 불편함을 끝까지 유지하는 감독의 뚝심이 보였던 반면, <집 나온 남자들>에서는 너무 쉽게 대중과 타협한 점입니다. 

   멋진 외모와 지적인 모습의 음악평론가 성희(지진희)는 라디오 생방송 중 아내와의 이혼을 통보합니다. 방송이 끝나고 그는 친구(이자 아내의 옛 애인인) 동민(양익준)과 강릉으로 가출을 합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보니, 자신이 생방송으로 이혼을 통보한 하루 전 날, 아내가 먼저 이혼을 통보하고 가출을 했다는 것을 압니다. 분노한 성희는 아내를 찾으러 돌아다닙니다. 아내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희는 자신이 아내를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존재 자체를 몰랐던 아내의 오빠(이문식)가 성희와 동민 앞에 등장합니다. 이들 셋은 합심해서 성희의 아내를 찾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성희의 모습은 지적이고 신사같습니다. 하지만, 친구 동민과 만나자마자 그는 입에 욕을 달고 다닙니다. 게다가 성격은 불같고, 자기 중심적이지요. 부자(1억은 그에게 있어서 얼마 아닌 돈입니다)이지만, 친구는 동민 혼자입니다. 그런 성격에 친구가 있을리 없지요. 성희가 아내를 찾는 이유도 자신의 자존심이 상해서입니다. <집 나온 남자들>은 이 미숙한 남자의 성장담입니다. 아내를 찾으러 다니면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희와 동민의 여정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연상시킵니다. 『오뒷세이아』가 아내 페넬로페에게 돌아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인 것 처럼, <집 나온 남자들> 역시 아내를 찾아다니는 이야기입니다. 성희는 오뒷세우스처럼 아내를 찾기 전까진 집에 가지 못합니다. 성희와 오뒷세우스에게 아내는 집과 같으니까요. 오뒷세우스가 수많은 여정을 거치듯, 성희도 여러 여정을 거칩니다. 술집을 차린 예언자(점쟁이, 김여진)에게 신탁을 받기도 하고, 세이렌(김양숙, 옥지영)의 노래에 취해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아내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내의 손목에 칼자국이 있었다는 것도, 아내가 돈이 필요해 다단계에 빠졌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이해심이 부족하고, 당신은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아내의 편지에 있는 말을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성희는 조금씩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내의 오빠인 유곽(이문식)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조금씩 흔들립니다. 한국 영화의 고질적 병폐인 신파가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물론 신파 자체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신파'가 영화의 분위기와 주제에 잘 부합하느냐지요. 제 생각엔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의 갑작스런 신파는 지금까지의 유쾌한 소동을 무효로 만들었거든요. 물론 이 영화에 나오는 신파는 '질질 짜는' 신파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갑작스러운 반성은 영화의 방향이 너무 틀어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내의 편지와 결말 그리고 에필로그는 사족에 가깝습니다. 굳이 아내의 가출에 대해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 듭니다. 시나리오 상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결말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사건의 봉합은 '작가(writer)'적인 관점에서는 꼭 필요한 법이니까요. 하지만, 영화적인 리듬에서는 아닌 것 같아요. 결말부는 그냥 설명을 하지 않았으면, 영화적으로 더 괜찮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 짧은 기간에 성희가 아내를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내의 말대로 "이해력의 향상"만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성희 역의 지진희 씨의 연기는, 솔직히 많이 아쉽습니다. 아무리봐도 지진희 씨는 양아치 역할이 안어울리는 것 같아요. <여교수...>에서도 비슷한 역할이었지만, 그래도 그 역할은 자신을 점잖은 사람으로 포장한 역할이라 괜찮았는데, 양아치 역은 그에게 맞지 않는 옷같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동민 역의 양익준 씨와 유곽 역의 이문식 씨는 딱 그들에게서 기대할 만한 역할과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김여진 씨와 옥지영 씨의 과장된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고요. 하지만, 성희의 아내 역은... 이 역은 연기의 문제라기 보다는 영화의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으니까요. 

   수요일,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5명의 관객과 영화를 봤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내렸겠지요. 만감이 교차하는 아쉬운 영화입니다. 이하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0-04-15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우 관객이 5명이였다구요? 속상하네요. 극장엔 잘 가지도 않으면서...ㅠ
지진희는 저도 좋아하는 배운데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반듯한 이미지라 안 어울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요즘 TV에도 나오더만, 하도 조선왕실 울거먹어 식상해서 안 보게 되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정진영도 나오는데...ㅜ

Tomek 2010-04-16 09:42   좋아요 0 | URL
너무 반듯해서 좀 안어울리는 것 같아요. <수>에서 냉철하고 터프한 역은 그런대로 어울렸는데, 양아치는 영... 텅 비어보인다고나 할까... 좀 많이 아쉬웠어요. 이번에 맡은 숙종도 좀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어서... 궁금하네요. ^.^;
 
공기인형 - Air Do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의 7번 째 영화 <공기인형(空気人形)>은 독특한 영화입니다. 공기인형이 사람이 된다는 '갑작스러운 설정'은 충분히 영화라는 매체에서 용인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흐름은 마치 다큐멘터리같이 담담합니다. 영화는 충분히 극적인 요소가 있지만,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은 별 관심이 없는듯 무심히 영화를 진행합니다. 주인공인 공기인형 노조미(배두나)를 제외한 나머지 배역들은 거의 동일한 분량을 가지고 있고 감독은 이들에 대해 평가를 내리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관찰자 시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을하는 히데오(이타오 이츠지)는 공기인형과 함께 지냅니다. 그는 인간과의 관계에 지쳐 인간의 대용품인 공기인형과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아침, 히데오가 출근을 한 사이, 공기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모습을 한 공기인형은 바깥 세상을 구경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서로 소통하자.'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은 이 뻔한 메시지를 숨기거나, 은유하거나, 환유하지 않고 상영시간 116분 내내 직접 제시합니다. 영화의 내용이나 만듦새보다는 메시지 전달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밋밋한 전개에 world's end girfriend의 아름다운 음악과 노조미의 잠언과도 같은 내레이션이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노조미가 만나는 대도시 도쿄에 사는 이웃들은 하나같이 경제활동을 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입니다. 이들은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극도록 자제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지냅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상처가 조금씩 삐져나오지만, 그것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상처를 드러낼 때는 오직 노조미 앞에서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인형이니까요. "나는 공기인형. 인간을 대신하는 대용품." 하지만 그녀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마음을 가진 존재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느끼고 서로 소통하는 '예쁜' 마음.

   그래서인지 영화는 아름다우면서도 굉장히 아픕니다. 특히나, 아무리 '인형'이라고 주문을 외워도 '배두나'라는 배우를 인형으로 볼 수는 없지요. 이 영화는 마치 김기덕 감독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절반씩 나눠 찍은 필름을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이 편집한 영화 같습니다. 영화에 대해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한데, 무언가 모를 불편함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우연히 빚어진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은 메시지를 택한 것 같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없었던 공기인형의 '숨'은 그녀를 둘러쌌던 사람들에게 '어떤 활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공기인형처럼 방안에만 틀어박혀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 거식증 여인이 창문을 열고, 영화 처음에 공기인형이 창문을 열고 얘기했던 말을 이야기합니다. "예쁘다." 그녀가 본 것은,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의 영화적 자살입니다. 그는 영화를 포기한 대신 메시지를 이야기합니다. "인간이라면, 서로 소통하자.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내 영화따위는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네. 그것은 아름다운 자살입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제 마음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orgettable. 2010-04-0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추천합니다!! 와, 좋은 리뷰에요.
아름다운 영화적 자살이란말. 너무 멋져요. +_+
(아, 너무 찬사라 진실성이 없어보이긴 하네요 -_- 하지만 진짜라능 ㅋㅋ)

그럼에도,
김기덕감독과 라스 폰 트리에감독이 반씩 나눠 찍은 필름을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이 편집했다, 라니..
무척 보고 싶지만 쉽게 보러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네요 ㅎㅎㅎㅎ

Tomek 2010-04-06 18:17   좋아요 0 | URL
끔찍한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소한 웃음을 불러일으키지요. 그런데 다 보고나서 곱씹어서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마냥 낭만적인 영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내용을 생각해보면 정서적으로 끔찍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치 <도그 빌>이나, 김기덕 감독 영화의 독특한 자학 같은. 관심 있으시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칭찬 고맙습니다. ^.^;
 
타이탄 - Clash of the Titan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루이스 루터리어 감독의 <타이탄(The Clash of the Titans)>은 레이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동명의 영화(국내에서는 <타이탄족의 멸망>으로 알려짐)를 리메이크 한 작품입니다. '페르세우스 이야기'가 원전 아니나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도 원작과 같이 신화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원작이 제우스와 테티스간의 갈등으로 극이 빚어졌다면, 이번에 리메이크한 <타이탄>에서는 제우스(리암 니슨)와 하데스(랄프 파인즈)간의 갈등이 주 원인이 됩니다. 전 이 설정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자식들 중 막내입니다. 그의 아버지인 우라노스와 어머니 게(가이아)가 자손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예언을 하자, 그 말이 무서워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리지요. 이에 격분한 아내(이자 누이인) 레아는 막내 제우스를 크레테 섬에서 몰래 낳습니다. 장성한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술수를 써 그동안 삼킨 다섯 형제들을 토하게 합니다. 태어난 순서는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플루톤(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순인데, 제우스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다섯은 갓난아기인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자란 순서대로 본다면 서열이 거꾸로 된 셈이지요. 이 간단한 설정으로 잘난 동생/못난 형 컴플렉스를 끌어들일 수 있는 셈입니다. 동생 제우스와 형 하데스(그런데 영화에서는 반대로 자막을 썼어요), 천상의 신과 저승의 신. 이 갈등은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이 이야기에선 포세이돈이 끼어들 여지가 없지요. 둘만의 갈등으로도 충분히 이야기거리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기실 페르세우스 이야기에 하데스를 끌어들인 것은, 좀 더 명확한 적을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원작에서의 테티스는 '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밋밋했으니까요. 그리고 원작은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멜로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리메이크는 거대 자본이 들어간 액션 어드벤처 장르입니다. 이야기의 성격이 바뀌어 질 수 밖에 없겠지요. 그리스 신화의 한 장을 차지한 페르세우스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이 됩니다. 이 이야기는 <페르세우스 원정대>라고 불리워도 될 정도로 <반지의 제왕>이 떠오릅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메두사의 머리를) 얻으러 가는 것일 뿐이지요. 골룸 대신에 캘러보스(원작에서는 제우스의 벌을 받은 테티스의 아들이었으나, 리메이크에서는 다나에와 페르세우스를 바다에 버린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가 원정대의 뒤를 쫓아오는 것까지 똑같습니다. 캘러보스는 굳이 나올 이유가 없는 캐릭터였는데, 두가지 정도의 기능을 위해 억지로 등장한 것 같아 좀 그렇습니다. 대신 메두사의 과거 이야기라던가, 원정대 개개인의 간략한 소사를 다룬 것은 이야기를 좀 더 튼튼하게 만든 것 같아 좋았습니다. 

원정대는 페르세우스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페르세우스가 가진 신의 선물(재능)을 탐내기도 하며

원정대가 움직이는 모습을 광활한 자연과 원경으로 보여주기도 하며

골룸 역할의 캘러보스가 원정대의 뒤를 바짝 따라갑니다. 

 

   크리처는 원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거대해졌습니다. 디지털의 힘 덕분이지만, 원작에서 볼 수 있었던 '투박한 아름다움'은 더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점점 진짜같아질수록 가짜같다고 할까요? 하지만, 사막에서의 전갈과의 싸움과 마지막 크라켄을 사이에 둔 하데스와 페르세우스의 추격전은 정말로 보는이를 정신없게 만듭니다. 

   이 영화에서 인간의 왕들은 올림포스의 신들과 전면전을 치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인간을 위치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 신의 자리에 "그들-왕"을 올리는 것 뿐입니다. 페르세우스는 이런 과도기에 아주 독특한 위치에 처한 영웅입니다. 그는 반신이지만 반인이며, 신의 대접을 받는 인간 영웅이지만, 신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영웅이 될 수 없었겠죠.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고, 신이면서 신이 아닌 독특한 위치의 영웅을 그릴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100여분에 풀어내기란 쉽지 않겠죠. 영화는 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 덧붙임: 

1. 원작의 안드로메다 대신 페르세우스를 도우는 이오는 아르고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페르세우스가 아르고스 출신이라 그녀를 집어넣은 것 같은데 매우 기발합니다. 

2. 리암 니슨과 랄프 파인즈는 어찌나 닮았는지 진짜 형제처럼 보입니다. 

3. 제우스의 마지막 선물은 그의 바람둥이 기질을 충분히 보여주는 선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페르세우스의 표정은 "아빠 고마워요"하는 표정이었어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