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잘 우는 아이였다. 요샛말로 찌질해서 잘 우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말다툼을 해도 뭐가 서러운지 무서운지 눈물부터 주륵주륵 흘렸더랬다. 그럼 상대는 제풀에 꺽여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고, 억울한 듯 자기가 울린 게 아니라는 제스쳐를 취하기도 했고, 도리어 더 화를 내기도 했다. 의도한 적은 없었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건데 말싸움하면서 울지 않기 위해 벽과 싸우는 연습을 할 정도로 나는 울음부터 터뜨리는 내가 싫었었다.

 

뉴스의 사건을 보고도 울었고, 배구 경기를 보면서도 울었으니 당연히 영화를 보면서는 안우는 날이 없었다. 크게 울 일이 아니어도 슬펐고, 울 수 있는 장면이면 휴지 한  통을 옆에 끼고 마음껏 울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여동생은 늘 나를 비웃었다. "저거 촬영한 거야. 진짜 아니야 가짜야!" 가스나, 어찌나 현실적인지.

 

엉엉 울지는 않았다. 소리없이 우는 편이었다. 대학 때에는 내 모습 중 우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던 친구가 있었을 정도이니 아마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잘 우는 편이었나보다. 그런데 울면 많이 아프다. 눈이 퉁퉁 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온 몸의 진을 다 빼는 듯 하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울 상황을 피했다. 극장에서도 펑펑 울던 나이지만 주먹을 꽉 쥐며 울지 않으려고 애썼고(물론 성공한 적은 거의 없다.), 남편과 다툴 땐 얼음장처럼 스스로를 차갑게 만들었다. 동정심이 생길 땐 머릿 속으로 얼마나 많이 스스로를 설득했는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어느 덧 울음이 줄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눈물 총량의 법칙이 있는가보다. 예전보다 횟수는 현격히 줄었는데 울음이 너무 깊다. 눈물이 몇 시간이고 내내 흐른다. 왜 그럴까? 나이가 들었으면 그러지 않을만도 한데. 생각해 보건대 어릴 땐 울면서 말도 같이 했던 것 같다. 속상한 것을 눈물과 말로 함께 쏟아낸 것 같다. 엄마가 있었고, 동생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연인이 있었다. 나이가 들었고 여전히 내겐 엄마가 있고, 동생도 있고, 친구도 있고, 남편도 있다. 그런데 눈물이 날 땐 그들을 피해 혼자만의 공간으로 도망간다. 그 속에서 소리죽여 운다. 내 울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그러다 아이에게 가장 먼저 들키곤 해서 마음이 두 배로 아프다.

 

그런데 눈물을 오래 흘리다보면 눈물을 흘리는 시간동안은 몹시 고통스러운데 다 흘린 후에는 후련하다. 다 그렇다더라. 치유의 힘이 느껴진다. 문득 힐링에 관한 책들과 방송 프로그램들을 떠올려본다.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람? 힘들거나 슬프거나 아프거나 답답할 땐 눈물을 흘리면 그게 가장 좋은 치유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눈물도 아무나 아무때나 흘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슬픔을 찾아서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찾아낸 슬픔의 소스 그 이상으로 펑펑 울어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오늘도 많이 울고 많이 아팠다. 울고 나면 요샌 뼈마디도 아프다. 헛헛한 마음이 채워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후련은 하다. 말로 뱉어내지 못할 땐 울음으로라도 토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배설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울자, 힐링에 관한 다른 것을 찾아 헤매지 말고.

 

<읽으면서 펑펑 울고 그 울음이 고마웠던 책과 영화 몇 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단 와우북에서 적지 않은 책을, 이곳저곳의 온라인 서점에서 적지 않은 책을, 지금도 매일 택배아저씨가 던져주는 책들(정말 우리동네 택배 아저씨들은 왜 책을 문앞에 두고 가는거야 ㅠㅠ)이 꾸준한 요즘이다. 그러면서 읽고 있는 책이 진도가 나가지 않아 사실 뭔가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다. 근래 너무 쉽게 읽히지 않는 책들만 읽은 건 아닐까 나름대로 분석해보기도 하지만 꼭 그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책꽂이에 꽂힌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언젠가 누가 TV에서 윤종신씨가 반년은 예능을 실컷 하다가 반년은 가수로서의 고민에 빠지는 것이 반복된다고 하던데 나도 비슷한 것 같다. 한 반년은 실컷 사는 데 열중하며 합리화, 정당화를 신 나게 하다가 또 반년은 사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것의 반복이 되는 것이 말이다. 요즘은 후자의 시기인 듯 하다. 아마 가을이라는 계절도 한 몫하지 싶다.

 

근래 묵직한 책들을 읽고 있고 앞으로도 한 두권 계획된 책들이 좀 묵직한데 가벼운 책들을 사이 사이 읽는게 좋을 것 같다. 이건 뭐 마치 의무감으로 읽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 책 읽는 것이 즐겁다. 말투가 영 가을스럽다. 사놓고 읽지 않은 <모든 게 노래>를 비롯하여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도 적지 않지만 또 습관처럼 온라인 서점에 매일 들어오니 새로 나온 책들도 보게 된다. 사던 안사던 어떤 책이 나오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어쩔 수 없다. 사던 안사던이라고 했지만 그 중 많은 책이 구입 목록에 언젠가 오르는 것을 보면 관심 신간을 정리하는 페이퍼가 스스로에게 책을 살 때 충동구매를 막아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또 오늘 한 블로거가 추천한 책이 맘에 든다고 해 주셔서 누군가에게 함께 책을 고른다는 의미도 주는 것 같아 기분이 꽤나 좋다. 오늘은 좀 가을의 마음을 봄처럼 느끼게 할 책들에 눈길이 간다. 이렇게 책을 고르고 페이퍼를 쓰다보면 두 시간 훌쩍(정말 책을 취향 따라 고르자니 책 고르는 데 적잖은 시간이 흐른다. 그 점이 스스로에게 묻게 만들기도 한다. "뭘 이렇게까지 열심히 고르니?"라고.) 충만하게 간다. 두 시간 후엔 좀 박탈감도 들지만 말이다.

 

 

[오늘, 수고했어요], 이수동 (알라딘가 12,420원)

 

 <토닥토닥 그림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수동 화백의 신간이 한달 전쯤 출간되었다. 사실 나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이 책을 어찌나 사랑하시던지 한동안 트위터엔 이 책의 구절과 그림이 많이 올라오곤 했다. 그때 난 좀 무거운 느낌이 좋아서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요즘 같이 무게가 느껴지는 때에 읽으면 봄처럼 가벼운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늦게나마 추천해 본다. 출간 당시만 해도 사은품이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포스트잇을 준다^^

 

 

 

 

눈여겨 보지 않을 때에는 표지도 내 보기엔 그저 그랬는데 미리보기로 속을 보니 안에 담긴 그림들이 정말 너무 탐나게 예쁘다. 엽서로 제작되면 모조리 사고 싶을 정도로. 이 책 읽고 나면 그 그림들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편지가 쓰고 싶을 것 같다. 가을 날 봄바람을 마주하는 기분, 좋다 딱 좋다!!

 

 

 

 

[시를 어루만지다], 김사인 (알라딘가 11,700원)

 

 중견시인 김사인의 시 감상글 모음이라고 해야할까, 시 해설서라고 해야할까? 시가 해설이 어디있겠는가 싶으니 감상글 모음이라는 표현이 더 좋겠다만 시인의 감상이니 해설에 더 가까운 감상일 수도 있겠다. 시가 뭐가 가볍냐고, 할지도 모르겠다만

시집의 경우에는 읽으면서 한 시인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독서이지만 이런 류의 책들은 다양한 시를 한 번에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느낌이 가벼워진다. 비슷한 책으로 권혁웅 시인의 <당신을 읽는 시간>이 있는데 시인의 해석이 나와 같거나 다른 부분을 생각하면서 읽은 기억이 괜찮았다. 더구나 시를 즐겨 읽지 않는 사람일 수록 이런 스타일의 시 감상서가 편할 것 같아 추천해 본다. 사이버 문학광장의 세번째 문학집배원인 나희덕 시인의 배달시(?)모음집인 <유리병 편지>도 괜찮을 것 같다.

 

 

[체호프 유머 단편집], 안톤 체호프 (알라딘가 14,720원)

 

 

체호프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알고 어떤 책이 유명한지도 알지만 난 체호프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누군가의 책을 읽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어디 가서 책 좀 읽는다고 말하기엔 또 썩 당당하지 못하다. 사놓은 책은 물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단언컨대 '유머'라는 말 때문이다. 그것도 단편으로. 이 책은 안톤 체호프가 돈이 필요해서 썼던 유머 소설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이를 테면 작가의 초기작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더 끌리는데? 왠지 내가 읽게 될 체호프의 '첫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체호프는 시기별로 읽는 걸로!^^

 

 

 

[시간 있으면 나좀 좋아해줘], 홍희정 (알라딘가 8,550원)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제 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홍희정의 <시간 있으면 나좀 좋아해줘>이다. 이 책 출간 소식에 정말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홍희정 작가를 좋아하느냐고? 죄송하게도 처음 접했다. 그럼? 당연히 제목 때문이다. 왠지 뒤에 '바쁘면 말고......'라고 말을 흐릴 것만 같다.

 

출판사 트위터에 올라오는 이 책의 구절들을 읽을 때마다 그렇게 마음이 행복해진다. 따뜻해진다. 문학동네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몇 구절을 옮기며 오늘 책 소개는 끝! 아마 읽다보면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몇 살을 먹어도 좋은 법이야.  https://twitter.com/munhakdongne/status/389583151460147200

 

무엇보다 그녀의 웃는 얼굴이 좋았어. 초승달을 떠올리게 하는 웃음이랄까. 구름이 스르르 비켜나면서 살며시 드러나듯 애틋하게 빛나는 미소 말이야. 그래서 얘기했지. 뭐라고요?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달라고. 

https://twitter.com/munhakeditor/status/389558652966686720

 

그 사람이 웃어주는 것만으로 우주의 모든 애정을 받는 것 같은 느낌,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모아 밤새 태산이라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흠뻑 젖는 시절을 마음껏 누려야 돼.

https://twitter.com/munhakeditor/status/3895584320988405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저 탐험 - 짐 큐리어스 바닷속으로 가다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82
마디아스 피카르 지음 / 보림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3D책을 처음 읽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흑백으로 된 3D는 처음이다. 흑백으로 3D를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3D책의 목적에 화려한 볼거리 제공도 포함될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었다. 흑백 3D는 어떤 느낌일까,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바닷속이면 열대어나 물풀들을 포함하여 각종 동식물들의 색깔이 화려하던데 해저를 흑백으로 탐험한다? 어떤 느낌일지 호기심 반 기대반으로 책을 펼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흑백이기 때문에 3D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색이 화려했다면 색에 묻혀서 입체감이 덜 느껴졌을데 흑백으로 표현되니 입체감이 그야말로 3D였다. 일반적으로 입체라고 부르는 것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가장 가까이 , 그리고 그 아래, 그 더 아래, 그 더더 아래의 이중 삼중의 깊이감이 느껴졌다. 참 신기한데 뭐라 표현할 수가 없어 아쉽다. 오죽하면 입체 안경 안쪽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했을까? 물론, 실패했다. 이 신기함은 직접 경험해봐야만 알 수가 있다.

     

 

 

 <그림 1>                         <그림 2>                          <그림 3>

 

 

스토리는 무척 간단하지만 또 무척 흥미롭다. 기본적으로는 <그림 2>의 마을에 사는 <그림 1>의 아이가 <그림 3>의 방식으로 바다 아래를 탐험하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일종의 판타지 그림책이다. 하지만 그것으론 이건 너무나 턱없는 설명이다. 아이와 함께 물 속으로 들어간 우리의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스토리, 그게 바로 이 그림책의 진짜 스토리이다.  스토리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스토리를 설명해주는 글밥이 없다. 스토리는 입체 안경을 낀 사람 마음이다. 그 점이 더 맘에 든다. 무한한 상상으로 아이들을 인도한다. 처음 읽었을 때와 두번째 읽었을 때의 스토리조차도 달라진다. 그 변화무쌍함이 이 책을 자꾸 반복해서 읽게 하는 힘이다.

 

아이는 오늘 아침에 유치원에 가기 전에도 이불 위에서 내복 바람으로 이 책을 펼쳐들었다. 입체 안경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그 사이즈가 아이들에게 딱이다. 사실 책을 처음 받고 입체안경을 제일 먼저 꺼내게 되는데 2개가 들어있다는 점도 센스 있었지만 그 크기가 아이들 얼굴에 딱 맞는다는 점이 더 좋았다. 기존의 많은 책들은 어른인 내가 써도 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이는 이 안경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비밀 창고에 보관해둔다. 어쨌든 오늘 아침에도 그 입체 안경을 쓰더니 책을 처음부터 읽지 않고 특정 부분에 고개를 들이밀면서 본다. 이야기 후반부에 물회오리에 빨려들어가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그 장면인데 자기가 마치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참 기가 막히게 귀엽다.

 
   

   

 

 

좋은 그림책의 조건 중에 하나가 그림으로 아이의 상상력을 촉진시켜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글밥 대신 입체감을 준 이 책은 좋은 그림책이다. 더구나 보림 출판사의 이 제본 크기의 책들이 물리적으로도 매우 견고하다는 믿음이 있어서 오래 두고 놀면서 상상하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형제가 있다면 같이 쫑알거리며 함께 3D안경을 쓰고 봤을 텐데 괜히 미안하다. 친구를 초대해서 함께 보여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취한 날이었나 보다. 글시가 하하하 어이없게 웃기다. 그 와중에 어려운 책도 읽었네 ㅠㅠ

 

20130803

오랜만에 알딸딸하게 취했다. 취할수록 잠든 아이가 보고 싶었고 예상치 못하게 책이 읽고 싶어졌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은 강신주와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이다. 스스로도 술이 취한 순간 책이 읽고 싶어졌다는 사실이 우스웠지만 지금 나는 [독서의 역사]를 읽다 말고 일기를 쓴다. 웃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책값은 책 나름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소엔 책값이 비싸다는 생각은 한다. 차 한 잔, 식사 한 끼 값도 안된다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건 한 달에 차 한 잔 사 마시고, 식사 한 끼만 사먹는 사람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또 책값이라는 것이 희한한게 정말 좋은 책에 대해서는 책값이 터무니없이 싸다고 생각하게도 된다. 그러니 책값은 책 나름이랄 수밖에 없다.

 

최근 새물결에서 출간된 지그문트 바우만의 [리퀴드 러브]를 읽고 있다. 저자의 서문 앞에 역자의 글이 짧지 않다. 자부심이 대단하다 느껴지고 기대감도 자연히 같이 높아졌다. 하지만 읽다보니 뭔가 불편하다. 일전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를까 내용은 그때보다 더 쉬워진 게 분명한데 문장이 영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간간히 받는다. 그래서 따져보니 최근 새물결 출판사의 인문서들의 번역은 조형준 번역가가 주도적으로 한 모양이다.

 

 

이런 저런 글들을 읽다보니 최근 그가 주관하여 번역해 내놓은 토마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가 정가 99,000원(알라딘가 89,100원)으로 출간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토마스 핀천의 책도 안 읽어봤으니 그 책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고전책을 추천하는 책들에서 작가의 이름과 책의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어 어렴풋이 좋은 책인가보다 짐작할 따름이다. 두 권을 합치면 페이지 수가 1500쪽이 된다고 하니 번역에 힘도 들었을 것이고 출간에 공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글을 읽어보니 굳이 1500쪽까지 나오지 않아도 될 것을 늘렸다는 부정적인 글도 있고, 오자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만 700부만 찍었다는데 아직 품절이 안된 것을 보니 출판사의 변론처럼 잘 안나가는 책이 맞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독자들의 말들처럼 비싸서 일반 독자는 쉽게 구매하기가 어렵다는 데에 더 동의한다. 참고로 원서는 2만원 대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비싸다고 무조건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99,000원의 가격이 적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개인적으로는 6-7만원 선 정도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터무니 없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물론 결론은 편집과 번역의 질에 달려있겠지만 지금까지 나오는 의견으로는 번역에 썩 우호적이지는 않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비롯된 기획자에 대한 내 느낌도 썩 우호적이지 않다.) 확인은 책을 봐야 하겠기에 그저 일단은 시립 도서관에 신청부터 하고 봐야겠다만 비싼 돈으로 구입해야할 책에 번역이나 오탈자에 대한 잡음이 있다면 구매에는 많이 망설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토마스 핀천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구입할 것임은 분명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책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700명에 못 미친다는 점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출판계에서는 다리박매 보다는 박리다매가 더 의식있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선입견이려나? 노이즈에는 성공한 듯 한데 마케팅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 전 궁리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베르토 망겔(난 '망구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의 초기작인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을 구입했다. 1250쪽 정도에 6만원에 못 미치는 가격이었지만 구입 결정은 번역가를 따지지 않은 결과이다. 이 책을 몇 부나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같은 사람이 적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현재도 인문학 전문사전 1위이고 인문학 100위 안에 5주째 들고 있다는 것이 반증한다.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저자의 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읽은 이들의 입소문이 좋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아직 읽기 전이다.

 

책을 사고도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그것과 아주 무관하게 오늘 밤 문학동네 팟캐스트 '문학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곳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열린책들에서 소개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번역가의 섬세함에 찬사를 보낸 것을 아주 우연히 들었다. 최애리 번역가로 불어전공자였지만 영문학 번역도 아주 훌륭했다고 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 봤더니 글쎄 [인간이 상상한....]가 떡하니 제일 위에 뜨지 않겠는가! 책을 읽기도 전에 번역가에 대한 신뢰감이 생기니 이는 가격과 무관하게 기쁜 경험이다. 물론 그 기대가 깨지지 않기 전까지만 유효한. 하지만 적은 리뷰로 보았을 때는 번역이 주는 배신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기억해 둬야지 최애리 번역가!

 

 

두꺼운 책을 읽다보면 그 두께 만큼이나 기하급수적으로 오탈자가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초에 읽은 [쟁경]이 그랬다. 책은 참 좋았는데 오탈자가 정말 많이 발견되었었다. 하지만 책이 주는 기쁨이 컸기에 노엽다기 보다는 안타까움에 출판사에 살짝 쪽지로 알려드렸었다. 다행히 재쇄에 반영하신다는 말씀을 들어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지만 재쇄를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책은 읽어보면 좋았는데 말이다. 1000쪽이 조금 못 되는 책이었는데 가격은 3만원 대였다. 아주 단순하게 가령, 이 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500쪽당 2만원이라고 쳐서 [인간이 거의 .....]는 5만원,  [중력의 무지개]는 6만원이면 될 것 같긴하다.  너무 단순화 시켰나??^^

 

 

     

- 사진 출처 : yes24 [서양미술사(포켓에디션)] 도서정보

 

 

[인간이 거의 ....]가 있기 전까진 [쟁경]이 가장 두꺼운 책이었고 그 전에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가 가장 두꺼웠다. 700쪽이 조금 안되는 책이었고 가격은 [쟁경]과 같다. 다만 [서양미술사]의 경우에는 올 칼라 도록이 많이 삽입되어 그 가격도 전혀 비싸게 여겨지지 않았다. 도리어 [중력의 무지개]나 [인간이 거의....]의 가격을 볼 때 38,000원 이상이 되어도 되지 않겠는가 싶어진다. 요샌 문고판이 나와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겨 더욱 기쁜 책이다.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보니 판형은 작아졌던데 쪽수가 늘어난 모양이다. 속은 들여다 보지 못했지만 응서점 상세보기를 통해 보니 칼라가 살아있어 다행이다. 앞의 책들을 보니 착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큰 책을 읽어본 바로는 이해가 아주 쉽게 잘 된 책이니 번역 논란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쭉 써놓고 보니 논란이 되고 있는 [중력의 무지개]의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싼 감은 있는 듯 하다. 안나까레니나가 1200쪽이 좀 안되지만 3-4만원 선이고, 초역임을 감안하더라도 번역에 노력을 많이 기울인만큼 많은 독자들이 함께 널리 읽게 하는 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나름의 이유야 다 있겠지만 토마스 핀천이 궁금한데 이 책으로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공들인 작품이 널리 읽힐 때의 기쁨 만큼 큰게 어딨으랴?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제도적으로 작은 출판사에서 대작을 출간할 때에는 지원을 해 준다던가 하는 다른 묘책이 있으면 좋겠다. 대형 출판사와의 공동 출간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인가? 암튼 700부 한정 판매라니, 그래서 그 가격이라니,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아쉽다. 번역이 어려운 걸 보면 내용도 어려울 거야 흠,, 세뇌 세뇌 세뇌 그래! 참아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3-10-1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값이 비싼것은 어쩔수 가 없단 생가이 듭니다.박리다매라고 많이 팔려야 책값도 싸게 할텐데 기본적으로 웬만한 인문학책은 3천부 판매가 어렵다보니 그냥 살사람만 사라고 비싸게 책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인문한 책만 아니라 제가 선호하는 장르소설의 경우도 과거보다 책값이 많이 올랐는데 역시 읽는이가 적어서 그런것 같더군요.
뭐 원서 읽을 실력은 안되니 그냥 번역되 나오는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합니다용ㅡ.ㅡ

그렇게혜윰 2013-10-14 23:36   좋아요 0 | URL
그 이유 자체가 씁쓸하더라구요. 얼마나 안팔리면 싶다가도 비싸면 나부터도 못사보는데 싶기도 하구요. 비싸게 산 책이 번역이 좋다면야 위안이 될 테지만 비교대상도 없고 검증도 안되고 오자가 많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결국은...누굴 탓해야할지 모르겠어요^^